소설리스트

8권. 완전범죄 (92/225)

┃완전범죄

멕시코 범죄 조직이 현성의 가족에 대한 납치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타국에서 테러를 자행하고 민간인 납치를 시도한 멕시코의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필요하다면 무력으로라도 멕시코를 응징하겠다.

러시아가 선수를 쳤다.

오크 로드 사건에 이어 이번에도 가장 먼저 현성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멕시코가 대한민국에서 벌인 민간인 학살 및 납치 행위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멕시코를 테러 지원국 명단에 올리는 것을 검토 중이다.

-강력한 경제제재와 함께 테러범들에 대한 무력 소탕을 준비하겠다.

러시아의 뒤를 이어 미국도 재빨리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에도 한발 늦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2등 자리는 지켰다.

그 뒤를 이어 중국, 인도, 일본, 유럽연합 등등 수많은 국가들이 멕시코의 테러 행위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한국 정부가 상황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기도 전에 타국에서 먼저 경제제재와 무력 소탕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한국 정부도 부랴부랴 공식 성명을 발표하며 멕시코를 맹비난했다.

하지만 뭔가 한발 늦은 감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맹비난이 쏟아지자 멕시코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테러로 희생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백배 사죄하고 보상하겠다.

-테러를 계획하고 저지른 이들을 모조리 찾아내 엄벌에 처하겠다.

-절대 멕시코 정부에서 주도한 일이 아니다.

-이건 몇몇 범죄자들의 일탈 행위에 불과하다.

-멕시코는 절대 테러 지원국이 아니다.

-한 국가의 범죄자가 타국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당 국가에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세계 각국에 경제제재 성명 취소를 정중하게 요청한다.

멕시코 정부의 말은 정론이었다.

멕시코인들 사이에서도 시날로 길드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시날로 길드의 테러 및 납치 사건으로 인해 멕시코가 전 세계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강대국들이 일제히 경제제재를 선언하면서 멕시코의 경제 수치가 일제히 폭락했다.

멕시코 페소의 가치 역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건 너무 과도하다.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전 세계가 인류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플레이어의 눈치를 보고 있다.

-멕시코인들은 죄가 없다.

-테러 지원국 선정과 경제제재는 절대 안 된다.

-범죄를 당한 이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해서 아무런 죄가 없는 이들에게까지 피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온갖 인권 단체들이 들고일어나 멕시코에 대한 경제제재를 반대했다.

한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대규모 테러도 아니었고, 사실상 테러라기보다는 납치 시도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여파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아주 지랄들을 하네.’

현성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인터넷은 완전 개판이었다.

멕시코 정부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범죄 조직에 대한 엄벌을 약속했으니 이 정도에서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과 말뿐인 약속을 어떻게 믿느냐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래도 전체적인 여론은 적당히 넘어가자는 쪽이 우세했다.

‘아니, 자기들이 뭔데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이런 일은 피의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해야 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경호원들이었다.

당연히 모든 일을 진행함에 있어 사망한 경호원의 유가족과 부상당한 경호원들의 의견을 우선시해야 했다.

한데 이미 사망한 경호원들의 일은 대중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저 현성의 분노와 멕시코 정부의 후속 조치에만 온 관심이 쏠려 있었다.

‘이대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지.’

현성이 장문의 글을 작성해 인류의 수호신 홈페이지에 올렸다.

글의 내용은 특별할 게 없었다.

-피의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우선시해야 한다.

-국제 범죄 조직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정론이었다.

여기에 UN에 대한 비판도 살짝 추가했다.

-UN의 침묵을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과 멕시코 모두 UN 가입국이다.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 UN이 나서야 한다.

은근슬쩍 발을 빼고 있던 UN을 고의적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현성이 올린 글은 순식간에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와 동시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퍼져 나갔다.

원래 글이라는 게 어떤 내용인지도 중요하지만 누가 썼느냐도 중요한 법이었다.

현성이 글은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일으켰다.

전 세계인들이 엄청난 공감을 표시하며 현성의 글에 동의했다.

특히 인류의 수호신 홈페이지 회원이었던 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UN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9개 이사국이 긴급 특별 총회를 요청했다.

UN은 부랴부랴 긴급 특별 총회 일정을 잡았다.

의제는 당연히 테러 행위 근절이었다.

총회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뤄질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테러 및 납치 사건이라는 건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세계 각국은 한글과 심리학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현성이 인류의 수호신 홈페이지에 올린 원문을 하나부터 열까지 낱낱이 해석했다.

현성의 진의를 최대한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 * *

현성이 쓴 글 하나로 인해 멕시코 정부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 버렸다.

한편 이번 사태의 주범인 시날로 길드의 마스터 아르치발도는…….

“빌어먹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설마 실패할 줄이야.’

아르치발도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계획은 완벽했다.

경호원들도 별다른 무리 없이 제압했다.

한데 그런 복병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설마 정체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랭커를 비밀 경호원으로 쓰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어딜 가든 최고의 대접을 받는 랭커가 가사 도우미와 비서로 일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해가 크군.’

페르텍토와 안드레스를 포함한 고레벨 플레이어를 다수 잃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교육시킨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도 잃었다.

“빌어먹을.”

속이 쓰렸다.

괜한 욕심을 부려 아까운 수하들만 잃고 말았다.

‘다시 한번 시도해 볼까?’

도박판에 끼어들어 판돈을 잃은 사람은 본전 생각에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아르치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야. 한 번 실패한 이상 성공 확률은 더 낮아졌어. 무조건 실패할 거야.’

다행히 아르치발도는 바보가 아니었다.

‘잃은 판돈이 아깝기는 하지만 패배가 확정된 도박판에 또 돈을 걸 수는 없지.’

아르치발도가 애써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난리가 났지만 아르치발도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멕시코 정부가 바보가 아닌 이상 경제제재를 당할 리도 없고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될 리도 없다.

설사 시행된다고 해도 아르치발도에게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그저 일반인들의 삶만 더 팍팍해질 뿐이다.

가장 걱정되는 건 타국의 무력 투사였다.

‘정말 나서지는 않겠지.’

아르치발도는 러시아와 미국의 말을 엄포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타국의 일에 러시아와 미국이 피를 흘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국이 한국에서 납치 사건을 벌였을 때처럼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혹시 모르니까 적당히 액션을 취해야겠군. 시날로 길드라는 이름을 버려야겠어.’

시날로 길드는 태생이 범죄 조직이다.

그렇다 보니 시날로 길드라는 이름 자체에 별다른 애착이 없었다.

큰 사고가 터지면 껍데기를 버리고 음지로 몸을 숨긴다.

그 후 다른 이름으로 활동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들은 자신들이 악의 원흉을 제거했다고 희희낙락할 것이다.

* * *

테러 행위 근절을 의제로 삼은 UN 긴급 특별 총회가 열렸다.

가입국의 수장들이 일제히 뉴욕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긴급 특별 총회가 열리기도 전에 뉴욕에 도착했다.

이유는 단 하나.

현성 때문이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직접 연설을 한다는 게 확실한 정보입니까?”

“이모탈 길드에서 그렇게 알려 왔으니 확실하겠지요.”

“그동안 꽁꽁 감추고 있던 최현성 플레이어의 모습이 드디어 언론에 공개되겠군요.”

“아무래도 이번 일에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벌써 두 번째 아닙니까?”

“저는 그보다 중국이 경제제재와 무력 투사 운운하는 게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똥 묻은 개 두 마리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꼴이지요.”

“최현성 플레이어가 어떤 인물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것 같은데…….”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보다 나이가 상당히 젊다고 들었습니다.”

“예,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현성은 한국 나이로는 서른 살이 넘었다.

하지만 만으로는 아직 20대였다.

“그 젊은 친구와 좋은 인연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미리 도착해 자리에 착석한 가입국의 수장들이 연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앞으로 일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UN 긴급 특별 총회에서 현성이 직접 연설을 한다.

현성을 직접 만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동안 현성과 아무런 접점이 없던 나라의 수장들 입장에서는 작은 인연이라도 만들어 볼 절호의 기회였다.

웅성웅성.

그때 멀리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찰칵! 찰칵!

기자들이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그리고 최대한 목청을 높여 질문을 쏟아 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이번 UN 긴급 특별 총회에서 어떤 연설을 하실 계획입니까?”

“테러에 대한 책임을 멕시코 국민들에게도 물으실 겁니까?”

“최현성 플레이어, 한 말씀만 해 주시죠!”

기자들을 잔뜩 몰고 온 현성의 등장에 각국 수장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확실히 보통 인물이 아니군.’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져.’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군.’

‘볼수록 매력적이야.’

현성을 직접 목격한 각국의 수장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평가를 시작했다.

현성이 특별 총회장에 들어오자 허락받지 못한 기자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벌떡!

그 순간 미국의 윌슨 대통령과 러시아의 표트르 대통령 그리고 중국의 마분석 부주석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현성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연신 대화를 주고받았다.

각국의 수장들 입장에서는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강대국의 수장들이 아부를 떠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UN 긴급 특별 총회가 시작되었다.

“UN 연합군을 투입해 멕시코의 범죄 조직들을 모조리 뿌리 뽑아야 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멕시코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고 경제제재를 실행해야 합니다!”

강경한 안건들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범죄 조직을 뿌리 뽑는 것은 찬성이지만 먼저 멕시코가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괜한 개입으로 멕시코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질 수도 있습니다.”

“테러 지원국 지정과 경제제재는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둘로 갈라져 치열하게 대립하는 와중에, 드디어 현성의 특별 연설 시간이 도래했다.

-이모탈 길드의 자문위원장이자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는 최현성이라고 합니다.

현성이 연설을 하는 모습이 방송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편 그 시각.

사건의 시발점인 아르치발도 역시 UN 긴급 특별 총회를 시청하고 있었다.

‘말은 번드르르하게 하는군.’

최현성이라는 플레이어의 영향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래 봤자다.

시날로 길드라는 이름은 이미 버리기로 결정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가족을 대상으로 테러를 저지른 시날로 길드를 박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이번 일의 주범인 아르치발도에게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UN 연합군이 움직이든 미국이나 러시아가 움직이든 그때쯤이면 시날로 길드는 빈껍데기만 남은 상태일 테니까 말이다.

‘어리석은 놈.’

자신이었으면 UN 긴급 특별 총회에 참석하는 대신 바로 멕시코로 날아와 무력으로 보복에 나섰을 것이다.

‘실컷 떠들어라. 오히려 고맙다. 네놈이 거기서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동안 껍질을 바꿔 쓸 시간을 벌었으니까 말이다.’

아르치발도가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위이이이잉!

갑자기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마약 제조 공장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원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무슨 일이야?”

-큰일 났습니다, 보스! 적이 쳐들어왔습니다!

“뭐?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아르치발도가 불같이 화를 냈다.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1명인데 엄청나게 강합니다.

“고작 1명 가지고 이 난리를 부리는 거야?”

마약 제조 공장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수하들은 모두 300레벨 이상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이었다.

아무리 강해도 1명에게 당할 이들이 아닌 것이다.

-저놈은 이, 인간이 아닙니다! 칠흑빛 뇌전을 사방으로 흩뿌리는데,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칠흑빛 뇌전?”

순간적으로 최현성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현재 UN 긴급 특별 총회에서 연설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 * *

파지지직!

칠흑빛 뇌전이 마약 제조 공장을 지키고 있던 시날로 길드원들을 시커먼 숯덩이로 만들었다.

죽은 시날로 길드원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잔존 마력이 스킬북과 마석으로 변했다.

종종 숯덩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시신이 나오면?

콰직!

탐식의 서가 게걸스럽게 먹어 치워 버렸다.

‘쓰레기 같은 놈들.’

안면 보호대로 가려진 현성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마약 생산 공장에서 부려지던 이들은 사람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말 그대로 노예처럼 부려졌고 처분당했다.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통해 마약 생산 공장에서 벌어진 일들을 모두 목격한 현성은 시날로 길드원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현성은 일절의 자비도 없이 시날로 길드원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가끔 도주하려는 놈들이 나왔지만.

-냐앙!

퍼억!

뚱이의 냥냥 펀치에 그대로 세상을 하직해야만 했다.

‘아주 씨를 말려 버린다.’

이번 참에 시날로 길드를 포함해 길드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범죄 조직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아르치발도인지 뭔지 하는 놈도 잡아야 하는데.’

시날로 길드라는 범죄 조직을 운영하는 쓰레기.

멕시코 정부는 아르치발도의 이름과 외형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성은 아니었다.

이 모두가 사이코 메트리 스킬의 힘이었다.

‘비밀 거점을 족치다 보면 그놈도 나오겠지.’

한국에서 잡힌 놈들의 소지품을 통해 시날로 길드의 비밀 거점을 파악했다.

여기 있는 놈들을 족치고 소지품을 확인하면 다른 비밀 거점이 나올 것이다.

현성은 그렇게 하나둘 굴비 엮듯 나오는 놈들의 비밀 거점을 싹 다 쓸어버릴 계획이었다.

꽈아아앙!

흑뢰룡의 숨결이 시날로 길드의 길드원들을 순식간에 제거해 나갔다.

“저놈은 이, 인간이 아닙니다! 칠흑빛 뇌전을 사방으로 흩뿌리는데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때 다급하게 누군가와 통화를 나누는 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슈욱!

현성이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을 사용해 그놈에게로 갔다.

서걱!

용혈검을 휘둘러 머리를 날려 버렸다.

그리고 그놈이 통화하고 있던 스마트폰을 잡아 들었다.

-칠흑빛 뇌전?

당황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혹시 네가 아르치발도냐?”

현성의 물음에 대답은 없었다.

뚝!

그저 바로 전화 통화가 끊어졌을 뿐이다.

‘매너가 없는 놈이네.’

현성이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통해 아르치발도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하지만 딱히 나오는 게 없었다.

놈들도 자신의 보스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비밀 거점의 위치는 꽤 많이 알고 있었다.

‘가 볼까?’

현성이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을 사용해 다음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오늘 하루 동안 싹 다 쓸어버려야 하는데.’

분신술 스킬은 다 좋은데 쿨타임이 너무 길었다.

현성은 UN 긴급 특별 총회에 참석하기 전에 스킬 여러 개를 구매했다.

분신술은 그중 하나였다.

분신술 – 준신화 등급

-액티브 스킬

-시전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의 30%를 보유한 분신을 만든다.

-유지 시간 : 24시간

-쿨타임 : 72시간

준신화 등급 스킬 분신술은 무려 500조 포인트나 하는 고가였다.

하지만 현성은 과감하게 구입했다.

그 활용성이 무척 뛰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일을 실행하기에 적격이었다.

분신에게 목표를 정해 주고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자동으로 공격을 했다.

일종의 자동 사냥 모드였다.

하지만 필요시에는 현성이 분신을 직접 컨트롤할 수도 있었다.

분신을 컨트롤하는 건 마치 몸이 2개가 되는 느낌이었다.

전투에서 활용하게 위해서는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꽤 오랜 시간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단순한 연설 정도는 손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현성은 분신술 스킬 외에도 인식 방해 스킬, 매혹 스킬, 카리스마 스킬 등등 온갖 패시브 스킬을 구입해서 익혔다.

자신의 모습을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인식 방해 스킬은 편안한 일상생활을 위한 보험이었다.

당연히 현성이 익힌 모든 스킬은 30%로 다운그레이드되어 분신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도착했네.’

시날로 길드의 또 다른 비밀 거점에 도착했다.

‘속전속결로 간다.’

파지지직!

현성의 몸이 칠흑빛 뇌전에 휩싸였다.

화르르륵!

화염의 서 역시 붉은 이빨을 드러냈다.

꽈아아아앙!

칠흑빛 뇌전과 붉은 화염이 시날로 길드의 비밀 거점을 급습했다.

“습격이다!”

“막아!”

시날로 길드원들이 벌 떼처럼 튀어나와 현성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이 현성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파지지직!

칠흑빛 뇌전이 시날로 길드원들의 몸을 한 줌의 재로 만들었고, 붉은 화염이 시날로 길드원들의 몸을 불태우며 소모된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켜 줬다.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아 정리가 끝났다.

‘오늘 하루면 충분하겠어.’

현성이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 뒤 다음 목표물이 있는 방향으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다.’

현성은 본신의 능력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주력 공격 스킬인 흑뢰룡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마음껏 사용했고, 심지어 뚱이까지 꺼내 들었다.

전투 흔적을 보면 백이면 백 현성이 범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성은 현재 공식적으로 UN 긴급 특별 총회에서 전 세계인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연설을 하는 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연설이 끝나면 미국, 러시아, 중국을 포함한 각국의 수장들과 함께 아주 긴 티타임을 가질 예정이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강대국의 수장들이 현성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줄 증인이 되는 것이다.

‘완벽해.’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것만큼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일도 없다.

* * *

“미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르치발도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위이이잉!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빌어먹을!”

아르치발도가 발작했다.

연속적으로 비밀리에 감춰 둔 거점들이 각개격파 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오다 보니 정신이 반쯤 나갈 만도 했다.

“칠흑빛 뇌전…….”

이건 최현성 플레이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하지만 최현성 플레이어는 지금 미국 뉴욕에 있었다.

장거리 공간 이동이 가능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지금도 아르치발도의 눈앞에 켜진 TV에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야, 혹시 네가 아르치발도냐?

처음에 전화를 받았을 때 들려왔던 목소리.

그건 분명 방금 전 연설을 마친 최현성 플레이어의 목소리였다.

결정적으로 한국어였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아르치발도는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거점을 바꾸고 수하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려도 귀신같이 알고 쫓아와 학살을 자행했다.

당연히 사이코 메트리 스킬의 힘이었다.

시날로 길드원들이 아무리 도망을 쳐도 현성 앞에서는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밀 거점들이 하나둘 박살이 났다.

불과 반나절 만에 멕시코의 거대 길드인 시날로 길드의 전력이 70% 이상 사라졌다.

‘여기로 오면 어떻게 하지?’

비밀 거점들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자 아르치발도는 점점 불안해졌다.

‘일단 도망가자.’

자신이라도 살고 봐야 했다.

아르치발도가 금품을 챙긴 후 다급하게 몸을 피했다.

그로부터 5분 후.

파지지지지직!

칠흑빛 뇌전이 아르치발도가 머물던 비밀 거점 위로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꽈아아아아앙!

아르치발도가 머물던 비밀 거점이 순식간에 초토화되어 버렸다.

‘망할!’

수하들과 함께 다급하게 도주하던 아르치발도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꼼짝없이 잡혀 죽을 판이었다.

“흩어져!”

아르치발도는 결국 수하들을 뿔뿔이 흩어 놓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찾았다, 아르치발도.’

현성은 연속적으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하며 순식간에 아르치발도 일행을 따라잡았다.

뿔뿔이 흩어지긴 했지만…….

‘그럼 다 쓸어버리면 그만이지.’

파지지지직!

칠흑빛 뇌전의 갈래들이 도주하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꽈아아아앙!

레벨이 높아서 그런지 저항하는 놈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런 놈들에게는…….

파지지지직!

한 방 더 꽂아 주면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된다.

‘오호.’

그 와중에 끈질기게 살아남아 도주하는 플레이어가 하나 있었다.

슈욱!

현성은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을 사용해 도주하는 플레이어의 앞을 가로막았다.

“헉!”

옷과 머리카락이 시커멓게 타 버려 알몸이 된 플레이어가 경악한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찾았다.”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쥐새끼처럼 잘 숨어 있던 이번 사태의 원흉 아르치발도.

놈을 드디어 잡았다.

“넌 도대체 누구야?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아르치발도가 억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누군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아? 설마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내 가족을 건드린 건 아니지?”

“최, 최현성 플레이어…….”

아르치발도의 얼굴에 짙은 좌절감이 피어났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미국 뉴욕에 있어야 할 최현성 플레이어가 도대체 어떻게 이곳에 있다는 말인가.

다른 사람을 대역으로 썼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미국, 러시아, 중국을 포함한 각국의 수장들의 눈이 옹이구멍이 아닌 이상에야 다른 사람인 걸 몰라보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눈앞의 현성이 거짓인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멕시코 최강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날로 길드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홀로 박살 낼 수 있는 인물은 최현성 플레이어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가, 감옥에 가겠습니다.”

아르치발도가 현성에게 싹싹 빌며 애원했다.

“싫어.”

현성이 씩 웃고는 그대로 용혈검을 휘둘렀다.

좌악!

아르치발도는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왼 손가락 4개가 날아가 버렸다.

“이 개자식아!”

아르치발도가 전력을 마력을 뿜어내며 거세게 저항했다.

아무리 싹싹 빌어도 현성이 자신을 살려 줄 것 같지 않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던가.

아르치발도 입장에서는 이제 이판사판이었다.

하지만 쥐가 고양이를 물 수는 있어도 숨통을 끊기는 힘들었다.

그건 현성과 아르치발도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서걱!

전투가 진행될수록 아르치발도의 신체가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손가락이 잘려 나가고, 손목이 잘려 나가고, 팔이 잘려 나갔다.

“허억! 허억!”

고통을 참아 가며 악을 쓰고 반항하던 아르치발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체력은 바닥을 드러냈으며 마력 역시 고갈 직전이었다.

“으아아아아!”

아르치발도가 사력을 다해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서걱!

단순히 의지로 뛰어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툭!

아르치발도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잔존 마력이 하나로 뭉쳐 아이템이나 마석으로 변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먹어 치워라.’

콰직!

현성의 명령에 따라 탐식의 서가 아르치발도의 시신을 말끔히 먹어 치웠다.

‘그럼 제대로 마무리를 지어 보자.’

시날로 길드 청소는 끝났다.

하지만 멕시코에는 시날로 길드처럼 길드의 탈을 뒤집어쓴 범죄 조직이 너무 많았다.

생계형 좀도둑 수준이 아니다.

마약과 인신매매를 포함해 온갖 반인륜적인 죄를 저지르는 쓰레기들이었다.

‘청소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마무리를 해야지.’

현성이 그간 사이코 메트리 스킬로 알아낸 정보를 통해 멕시코에 있는 범죄 조직 소탕에 들어갔다.

* * *

“이번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미합중국은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윌슨 대통령님.”

현성은 분신을 컨트롤하며 대통령들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보다 정말 경제제재나 무력 투사는 원하지 않으십니까?”

러시아의 표트르 대통령이 물었다.

“무고한 이들이 피해를 보는 건 최대한 피해야겠지요.”

“정말 뛰어난 인품을 지니고 있으시군요. 제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멕시코를 절대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 러시아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정말 보복을 하지 않으실 겁니까?”

중국의 마분석 부주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분석이 아는 현성은 절대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무고한 이들이 피해를 보는 게 싫다고?

그럼 중국에서 자행한 대학살은 뭔가?

몬스터로 변해서 중국을 초토화시켜 놓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으흠, 너무 자비로우신 것 같습니다. 뭐하면 우리 중국이 대신 총대를 메 드릴 수도 있는데.”

마분석이 안타까움에 몸부림쳤다.

마음 같아서는 중국에서 그렇게 깽판을 치고 멕시코는 왜 봐주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아닙니다. 이번 일로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보다 멕시코 정부가 피해자분들에게 제대로 된 배상을 하길 원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보상을 해 드리기는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멕시코 대통령이 충분한 배상을 약속했으니 그건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겁니다.”

현성의 말에 윌슨 대통령이 걱정 붙들어 매라는 듯 대답했다.

“아마 제가 개인적으로 보상한 금액보다는 큰 액수를 배상해 드려야 할 겁니다.”

“꼭 그렇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윌슨 대통령의 호언장담에 현성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현성을 보며 표트르 대통령을 포함한 각국의 수장들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쉽게 넘어갈 거면서 UN은 왜 끌어들인 거야?’

‘이럴 거면 긴급 특별 총회를 열 필요도 없잖아?’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 주려는 목적으로 UN 긴급 특별 총회에 참석한 건가? 그런데 그럴 거면 차라리 멕시코를 궁지에 몰아넣는 게 더 나은 선택일 텐데?’

세계 각국의 수장들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현성을 주시했다.

처음에 보여 주었던 묘한 아우라와 카리스마는 여전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에 압도된 것은 처음뿐이다.

지금은 다들 적응해서 현성의 의도를 분석하기 바빴다.

그때 윌슨 대통령의 보좌관이 다가와 무언가를 보고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각국 정상들을 보좌하는 보좌관들이 일제히 방금 들어온 소식을 자신의 상사에게 보고했다.

윌슨 대통령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건 표트르 대통령을 포함한 타국의 수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중국 대표로 참석한 부주석 마분석만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현성이 태연한 어조로 물었다.

“아, 그게 이번 일의 원흉인 시날로 길드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칠흑빛 뇌전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플레이어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윌슨 대통령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말꼬리를 흐렸다.

칠흑빛 뇌전을 주력을 사용하는 랭커는 현성뿐이다.

아니, 애초에 랭커라고 해도 시날로 길드 같은 대형 길드를 혼자 무너트릴 수는 없다.

그런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는 오직 현성뿐이었다.

“직접 범죄 조직을 소탕하시다니 참 정의로운 분이신가 보군요.”

현성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데 그분이 거기에 그치지 않고 멕시코에 암약하고 있던 범죄 조직들을 모두 소탕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하군요. 사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못했습니다. 아무리 정의로운 일이라도 플레이어가 본인의 힘을 이용해 초법적인 일을 저지르면 바로 처벌받는 세상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서 빨리 그분을 잡아 법의 심판대 아래 세워야겠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현성과 윌슨 대통령이 태연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분을 잡기가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혼자서 멕시코의 범죄 조직을 소탕할 정도의 뛰어난 실력도 실력이지만 전신을 꽁꽁 싸매고 있어 신상이 드러나지 않았거든요.”

“멕시코 정부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든 사안이겠군요.”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상착의와 사용하는 무기 그리고 사용하는 스킬을 바탕으로 찾으면 금방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범죄를 저지르고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현성의 태연한 대답에 각국의 수장들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말만 들으면 현성과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 같다.

하지만 범인은 누가 봐도 현성이었다.

문제는 그 현성이 자신들의 눈앞에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눈앞의 현성은 분명 사람이었다.

악수를 하며 확인한 손의 온기도 분명 사람의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최현성 플레이어의 대역을 하고 있는 건가?’

‘저렇게 정교하게 다른 사람으로 분장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심각한 문제인데.’

‘이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세계 각국의 수장들이 모두 혼란을 금치 못했다.

“일단 공식적인 알리바이가 없는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공식적인 알리바이 말씀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현성의 말에 윌슨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확신했다.

이번 일을 저지른 범인은 현성이 확실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인물이 가짜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중국 대표로 참석한 마분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국의 국가 부수석.

공식적으로는 중국 서열 2위다.

하지만 중국의 국가주석이 국가 부주석인 마분석의 꼭두각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마분석은 실질적인 중국의 1인자이자 시황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의 독재자였다.

또한 이 자리에 있는 세계 각국의 수장들 중 유일한 플레이어였다.

“전 이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분석이 현성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쉽군요.”

현성이 마분석의 손을 마주 잡았다.

사아아악!

그 순간 일반인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마력의 파동이 마분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에 대항하듯 현성의 몸에서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마분석은 전 세계 랭킹에서 3위 안에는 꼭 들어가는 랭커 중의 랭커다.

현성과 마분석의 마력 싸움에 각국의 정상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경호원으로 따라온 랭커들도 두 사람의 마력 대결에 기겁하며 자신의 보호 대상 앞을 가로막았다.

“크흠, 그럼 저는 이만.”

마분석이 먼저 꼬리를 말고 손을 뺐다.

마력 싸움에서 밀린 것이다.

“편하게 쉬십시오.”

현성이 태연한 어조로 마분석을 배웅하고는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진짜인 게 확실한가?’

윌슨 대통령이 눈짓으로 자신의 호위를 서고 있는 랭커 죠셉에게 물었다.

죠셉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확인 과정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수장들에게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절대 다른 누군가가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방금 전 마력 파동은 진짜였어.’

러시아 푸티나가 자신의 몸에 돋아난 닭살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방금 전 현성이 뿜어낸 마력 파동에 자신도 모르게 방어 스킬을 사용할 뻔했다.

현성 다음으로 전설 등급 아이템을 많이 가지고 있는 신윤아라고 해도 저 정도 마력을 뿜어낼 수는 없었다.

결정적으로 신윤아는 현재 한국 대통령과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해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혼란스러웠다.

랭커들을 기겁하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마력 파동을 뿜어낸 현성과 멕시코 범죄 조직을 실시간으로 쓸어버리고 있는 현성.

둘 다 진짜가 아니라면 절대 보여 줄 수 없는 위용을 선보였다.

‘스킬? 아니면 또 다른 조력자?’

둘 중 무엇이 진실이든 세계 각국의 수장들은 현성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 * *

현성은 그날 멕시코 범죄 조직의 대부분을 소탕했다.

그 후 장거리 공간 이동 스크롤을 사용해 뉴욕으로 돌아와 분신이 소멸되기 전에 바꿔치기를 했다.

그 뒤에는 느긋하게 남은 일정을 소화하고 다시금 한국으로 귀환했다.

‘말끔하게 마무리했어.’

경고도 날렸고 응징도 했다.

군주의 외침으로 마분석에게 명령을 내려 자신이 가짜가 아닌 진짜라는 것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현성으로서는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 외유였다.

하지만 세계 각국 정상들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다 파악했다고 생각한 순간 새롭게 드러난 현성의 능력은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바짝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현성이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는 범죄를 실현시켰다.

이번에는 좋은 일에 그 힘을 사용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자신들이 다음 범죄의 타깃이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현성은 온갖 증거를 다 들이밀어도 처벌하기가 힘든 인물이다.

한데 증거도 없다?

그럼 그냥 앉아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생겨난 커다란 고민거리 때문에 각국의 정상들은 자신들이 현성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 동원되었다는 사실에 기분 나빠 할 기력도 없었다.

근심 걱정에 빠진 각국의 정상들과 다르게 일반인들은 축제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인류의 수호신께서 범죄자들에게 엄벌을 내리셨다!

-이건 신벌이다! 신벌이 아니라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칠흑빛 뇌전이 하늘에서 떨어져 범죄자들을 소탕했다!

인류의 수호신에 빠진 광신도들은 열광했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추종하는 추종자들의 소행이겠지?

-아마 그렇겠지. 그게 아니면 누가 그런 일을 했겠어?

-난 최현성 플레이어의 소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말이 되냐? 그때 최현성 플레이어는 UN 긴급 특별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었잖아.

-맞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는 접어 둬라.

-내가 봤을 때 플레이어들 중에서 인류의 수호신에 빠진 광신도가 저지른 짓 같다.

-나도 그 의견에 한 표.

-어찌 되었든 범죄자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았다니 속이 다 시원하다.

-맞아. 법대로 했으면 제대로 소탕하지도 못했을 거고 잡아들였어도 징역형이 고작이었을 거 아니야?

-죽어도 싼 놈들이 죽은 일이다!

일반인들 역시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은 모두 범죄자였다.

시날로 길드가 무너진 이후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증언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마약, 인신매매, 살인, 성폭행, 아동 착취 등등.

그간 시날로 길드가 저지른 범죄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 일의 진실이 무엇이든 최현성 플레이어와 연관된 게 분명하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

-맞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건드리면 그 조직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조직이 통째로 무너진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건드리는 조직이 나오면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서 무너트려야 한다.

시날로 길드 같은 범죄 조직들은 멕시코에서 벌어진 참상에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현성이 범죄를 저지른 시날로 길드만 무너트린 게 아니라 멕시코에 있던 다른 범죄 조직도 무너트렸기 때문이다.

죄지은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은 격이었다.

살아남은 멕시코의 범죄 조직들은 시날로 길드에 대해 이를 빡빡 갈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시날로 길드의 조직원들을 쥐 잡듯이 잡았다.

괜히 현성이 뒤처리한다고 다시 멕시코로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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