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이게 실패할 리가 없어.’
게스피트는 게임에 푹 빠진 마니아다.
그런 그녀가 한때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스X XX프트, 리XX, 디XX로 등등의 게임을 외면할 리가 없었다.
많이 넣었으니 아마 저 중 하나둘 정도는 충분히 게스피트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현성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일주일 후 게스피트가 현성을 소환한 것이다.
“확실히 여러 명이서 즐기는 건 또 다른 맛이 있더구나.”
게스피트의 말에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그런데 저런 좋은 물건이 있었으면 진작 팔 것이지, 왜 이제야 꺼낸 거냐?”
게스피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형 발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피가 크고 연료를 많이 소모해 최대한 판매를 늦췄을 뿐입니다. 사실 아직도 준비가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정유 회사 인수는 아직 협상 중이었다.
“시판되면 연료 가격은 어떻게 매길 생각이냐?”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보다 조금 높게 책정할 예정입니다.”
“아주 포인트를 긁어모으겠구나.”
게스피트가 장난 섞인 어투로 말했다.
“게스피트 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입니다.”
“일단 받아라.”
휘익!
게스피트가 작은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탁.
현성이 주머니를 받았다.
“신화 등급 비약이다. 선물로 주마.”
‘주머니 자체가 전설 등급 아이템이네.’
게스피트가 던진 주머니는 아공간 스킬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 전설 등급 아이템이었다.
무려 수천억 포인트를 호가하는 물품인 것이다.
현성이 주머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최상급 스텟 증가 비약 500개.’
지금의 현성으로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보물이었다.
이것만 해도 3조 포인트였다.
‘역시 통이 크셔.’
선물로 받은 것만 해도 3조 5천억 포인트어치는 될 것 같았다.
“혹시 몇 개 더 구입할 수 있을까요?”
현성의 물음에 게스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합당한 포인트를 지불한다면 얼마든지 대신 구매해 주마. 단, 조건이 있다.”
“말씀하시죠.”
“이번에는 저걸로 한판 붙어 보는 게 어떻겠느냐?”
‘스X XX프트잖아.’
절로 웃음이 나왔다.
현성은 한때 게임에 미쳐 살았다.
그런 만큼 당연히 스X XX프트도 많이 했다.
프로 게이머가 될 실력은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현성은 13살의 나이에 처음 스X XX프트를 접한, 고인물 중에 고인물이었다.
‘적당히 빌드 알려 드리면서 호감을 사야겠군.’
현성과 게스피트가 게임을 시작했다.
결과는 당연히 현성의 승리였다.
‘게임 경기 DVD도 돈이 되겠어.’
지구로 귀환한 현성의 머리가 맹렬히 굴러갔다.
‘이걸 잘만 활성화시키면 큰 포인트를 벌 수 있겠어.’
게스피트를 포함한 극소수의 VVIP만을 위한 판매 콘텐츠가 될 확률이 높긴 했다.
하지만 판매창이 남아 음식까지 판매하는 현성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었다.
‘그러려면 게임을 더 보급해야 해.’
게임에 대해 잘 아는 건 당연히 게임 제작사다.
‘회사를 좀 인수해야겠어.’
현성이 플레이어로 활동하며 마석을 모아 판매해 벌어들인 돈만 조 단위에 이른다.
어디 그뿐인가.
일본 규슈섬과 시코쿠섬의 던전은 모두 현성의 소유다.
규슈섬과 시코쿠섬의 던전 출입료만 받아도 웬만한 소국의 국가 재정과 맞먹는다.
거기다 현성에게 돈을 주지 못해 안달이 난 국가들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처럼 거액을 주고 현성을 통해 자국의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강대국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돈지랄 한번 해 보자.’
게임 회사, 영화사, 방송국, 배터리 및 발전기 제조사, 컴퓨터 및 노트북 제조사, 정유 회사 등 사야 할 기업이 너무 많았다.
‘그 전에 스텟부터 올리자.’
현성이 게스피트에게 받은 주머니를 개봉했다.
최상급 힘 스텟 증가 비약 – 신화 등급
-힘 스텟이 1 상승한다.
-힘 스텟이 500이 넘는 플레이어에게는 효과가 없다.
-사용 방법 : 섭취
‘먹자.’
부지런히 비약을 섭취했다.
그 결과 모든 기본 스텟을 500으로 올릴 수 있었다.
‘앞으로는 소모형 아이템을 사용할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크겠어.’
전설 등급까지는 큰 부담이 없었지만 신화 등급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스텟 1을 복구하는 데 무려 60억 포인트가 들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이 거실로 나갔다.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시지 않은 듯했다.
“루시아, 이거 받아요.”
현성이 루시아에게 비약을 내밀었다.
“성공하신 겁니까?”
“네.”
루시아의 물음에 현성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주군. 비약을 구매하는 데 소모된 포인트는 꼭 갚겠습니다.”
“그냥 제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루시아는 단호했다.
“이거 우신이한테는 그냥 줄 건데요? 루시아에게만 포인트를 받으면 제가 미안하잖아요. 그냥 군주가 주는 하사품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루시아가 강해져야 저한테도 더 많은 도움이 되잖아요.”
“알겠습니다, 주군.”
현성의 설득에 결국 루시아가 넘어갔다.
현성에게 큰 부담이 되는 수준의 포인트였다면 루시아는 끝까지 고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다 보니 루시아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역시 루시아한테는 선물이라는 말보다 하사품 같은 말이 더 잘 먹힌단 말이야.’
현성은 사냥을 끝내고 돌아온 아버지와 백우신에게도 비약을 나눠 주었다.
아버지는 적지 않게 놀라셨지만 반품 못 한다는 현성의 말에 결국 비약을 섭취하셨다.
백우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좋다고 받아먹었다.
“아버지, 이제 미분배 스텟 찍으셔도 돼요.”
“그게 정말이냐?”
현성의 아버지 최형규가 놀라서 물었다.
“예, 비약은 이걸로 끝이거든요.”
게스피트가 확답해 주었다.
스텟을 올릴 수 있는 비약은 최상급이 끝이라고 말이다.
“그럼 바로 찍으마.”
아버지가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미분배 스텟을 찍으셨다.
이번에는 백우신 차례였다.
“이제 상태창은 볼 줄 알지?”
“응, 형.”
현성의 물음에 백우신 힘차게 대답했다.
백우신은 3차 전직을 통해 수호 기사라는 희귀 등급 직업으로 전직했다. 그 결과 과거보다 장애 정도가 많이 낮아졌다.
“내 말 잘 들어. 여기랑 여기를 누르는 거야.”
현성이 백우신의 상태창을 직접 가리키며 알려 줬다.
“이렇게?”
백우신이 스텟을 찍었다.
상태창에 있는 스텟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간 지속된 루시아와 아버지의 교육이 효과를 본 것이다.
“그래, 잘했어.”
현성이 환호를 터트리며 칭찬해 줬다.
“나 잘했다!”
“그래, 잘했어.”
현성이 차근차근 백우신의 스텟을 분배했다.
백우신의 미분배 스텟은 체력과 정신력에 집중되었다.
미분배 스텟을 모두 찍은 아버지와 백우신의 스텟은 랭커 수준으로 훌륭하게 변모했다.
이 모든 게 비약의 힘이었다.
낮은 스텟도 500에 도달했고 주력 스텟은 1,000이 넘었다.
아버지와 백우신은 더욱 빠르게 레벨 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레벨 업을 통해 모은 스텟을 온전하게 주요 스텟에 투자해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나도 부지런히 해야지.’
레벨 업을 할 수는 없지만 업적을 통해 스텟을 쌓을 수는 있다.
‘미국도 거의 정리되어 가니까 이제 캐나다로 가 볼까.’
우선 북아메리카 대륙부터 정복해 볼 생각이었다.
‘우선 쇼핑부터 마무리하자.’
현성 소유의 해외 투자회사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세계 각국 기업들의 지분을 확보했다.
주로 한국 기업들이 많았지만 게임 회사나 영화사 같은 경우는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필요한 돈은 마석 판매 자금과 시코쿠섬 던전 입장료로 해결했다.
이런 현성의 행보가 언론에 알려졌다.
언론은 1,000조 원의 플레이어가 움직였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현성과 마찰이 있었던 대기업들도 바짝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성의 위상이 전과는 180도 달라졌다.
무력을 배제하고 돈의 위력만 따져도 국내 대기업들이 감당하기 힘든 거액이었다.
막말로 적대적 M&A에 나서면 어쩔 것인가?
언론은 현성이 대기업을 인수할지도 모른다고 떠들기까지 했다.
플레이어 재벌의 탄생이라는 거창한 기사까지 나왔다.
하지만 현성은 그저 자신의 고유 스킬을 좀 더 유연하게 사용하기 위해 돈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현성은 기업 구매를 하면서도 틈틈이 사냥을 다녔다.
돈보다는 포인트 벌이가 목적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용병 고용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게스피트는 물론이고 다른 단골 고객들까지 현성을 고용했다.
고용주들의 주목적은 전투가 아닌 판매 상품 상담이었다.
현성은 고객들에게 근거리 통신망 설치를 제안했다.
꽤 많은 고객들이 현성의 제안에 동의했다.
현성은 그 덕에 막대한 포인트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스킬 업그레이드는 당분간 접어 둬야겠네.’
현실이고 고유 스킬 구매창이고, 스킬북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
현성이 대량으로 스킬북을 구매한 후폭풍이었다.
‘뭐, 쓸 만한 게 없나?’
현성이 아이 쇼핑에 들어갔다.
가능성이 희박하겠지만 혹시 성장형이나 유일 등급 아이템이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구매창을 훑어 내렸다.
종속 각인이 완료된 레드 드레이크의 알 - 영웅 등급
-주의 사항 : 구입 즉시 부화됨.
-부화된 새끼 레드 드레이크는 눈을 뜬 직후 처음 목격한 생명체에게 종속된다.
-판매자 : 불카드곤
-판매가 : 299,999,999,999포인트
‘아, 펫이 있었지.’
3,000억 포인트라는 미친 가격을 가진 판매 상품.
과거에는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살 생각은 없었다.
지금 현성에게 있어 영웅 등급 몬스터 1마리의 전투력은 그다지 큰 가치가 없다.
잘 키워 고레벨로 성장시킨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결정적으로 지구에서 드레이크를 키웠다가는 당장 난리가 날 것이다.
‘뭐, 좀 쓸 만한 게 없나?’
현성이 전설 등급 제품들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어?’
그런 현성의 눈에 신기한 것이 들어왔다.
하급 인간형 골렘 - 전설 등급
-인간과 동일한 외형을 가지고 있는 골렘입니다.
-마석을 동력원으로 사용해 가동시킬 수 있습니다.
-전사형입니다.
-자동 복구 기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300레벨의 고정 레벨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벨 업이 불가능합니다.
-핵이 파괴되지 않는 한 소멸되지 않습니다.
-핵을 만진 당사자가 마스터가 됩니다.
-판매자 : 불카드곤
-판매가 : 999,999,999,999포인트
‘엄청 비싸네.’
가격이 무려 1조였다.
한데 레벨이 달랑 300이다.
‘레벨 업이 안 된다는 말은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말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성이 골렘을 검색했다.
다양한 종류의 골렘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간형 골렘들은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
반면 전형적인 골렘의 외형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비슷한 전투력을 가진 영웅 등급 몬스터의 알보다 골렘의 가격이 월등히 더 비싸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골렘은 600레벨대까지 구매가 가능하네.’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중급 400레벨 골렘의 가격이 3조 포인트.
상급 500레벨 골렘의 가격은 10조 포인트.
최상급 600레벨 골렘의 가격은 무려 30조 포인트였다.
‘음…….’
가격이 부담되기는 했다.
그래도 강한 구매 의사가 솟구쳐 올랐다.
‘엄마랑 누나의 경호원으로 쓰기 딱이야.’
아버지는 스스로 랭커급의 무력을 갖췄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어머니와 누나는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에 한 번 불미스러운 일이 있지 않았는가.
‘400레벨대 골렘 정도면 그렇게 큰 부담이 되지도 않고.’
6조 포인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여력이 있었다.
400레벨 골렘의 전투력이 400레벨 몬스터와 비슷하다고 가정한다면?
웬만한 고레벨 파티는 가볍게 씹어 먹을 수 있다.
랭커급 파티가 오지 않는 한 어머니와 누나에게 위해를 끼치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보험은 많을수록 좋아.’
현성이 구매를 결정했다.
-중급 인간형 골렘 - 전설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현성의 방에 작은 구체가 등장했다.
‘뭐야?’
사람이 아니라 작은 구체가 나왔다.
현성이 구체를 만졌다.
-골렘의 마스터로 등록되셨습니다.
-전설 등급 인간형 골렘이 기동을 시작합니다.
-골렘의 외형을 설정해 주십시오.
‘오호.’
꽤 디테일한 설정이 가능한 모양이다.
성별은 여자로 설정했다.
어머니와 누나를 근접에서 경호하려면 아무래도 성별이 여자인 게 편했다.
‘일단 어머니 것부터…….’
현성이 어머니 연배의 중년 여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화아아악!
구체에서 밝은 빛과 함께 강력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마력이 유형화되며 신체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쿠웅!
변화가 마무리된 골렘이 공손히 현성에게 무릎을 꿇었다.
‘무슨 안드로이드를 보는 것 같네.’
골렘은 골렘인데, 겉모습이 전형적인 인간이다 보니 영화에 나오는 안드로이드가 떠올랐다.
“너 내 말은 알아들을 수 있냐?”
현성의 물음에 골렘의 입에서 난생처음 들어 보는 언어가 흘러나왔다.
-본 기체에는 언어 통역 스킬이 기본 탑재되어 있습니다.
“오호.”
말까지하는 걸 보니 정말 사람 같았다.
“새로운 언어 습득은 가능한가?”
-충분한 정보가 있다면 하루 정도면 새로운 차원의 언어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하루라…….”
인터넷을 사용한다면 언어 익히는 건 금방일 것 같았다.
“목소리는 바꿀 수 있나?”
현재 골렘의 목소리는 약간 이질적이었다.
기계음 같다고나 할까?
-가능합니다. 어떤 목소리로 변형할까요?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좋을 것 같은데.”
-샘플이 필요합니다.
현성이 스마트폰을 조작해 어머니 연배의 배우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재생시켰다.
-섭섭하지 않게 넣었다. 그러니까 그 돈 받고 내 아들이랑 헤어져.
드라마 대사가 나왔다.
“섭섭하지 않게 넣었다. 그러니까 그 돈 받고 내 아들이랑 헤어져. 이렇게 말씀이십니까?”
골렘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혹시 네 외형도 수정할 수 있어?”
“마석만 충분히 공급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래?”
현성이 테스트를 시작했다.
영웅 등급 마석을 동력원으로 공급해 주자 골렘이 자유롭게 몸을 변화시켰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청년, 중년 남성, 중년 여성 등.
동영상만 제공해 주면 성별과 나이와 상관없이 자유자재로 외모와 목소리를 변화시켰다.
‘이거 완전히 도플갱어네.’
이 골렘 생각보다 쓸모가 많을 것 같았다.
현성은 1기의 골렘을 더 구입했다.
두 번째 골렘의 외형은 누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으로 정했다.
‘이제 신분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이누쿠소를 이용할까, 마분석을 이용할까?’
현성이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안전하게 마분석을 이용하자.’
마분석을 이용하면 조선족 출신 중국인 신분증 2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누쿠소의 입지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신분증이 좀 불안했다.
이누쿠소가 신분증을 만드는 수법은 실제 있는 인물의 가짜 신분증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비밀 요원들이 사용하는 신분 중 하나를 줬다.
골렘들을 던전에서 사냥 시킬 것도 아니고 가사 도우미와 전자 제품 매장 직원으로 쓸 계획인데, 괜히 찝찝한 구석이 있는 신분증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마분석이라면 출생신고까지 완벽하게 꾸며진 진짜 신분증을 만들어 주겠지.’
현성이 골렘들의 사진을 찍어 마분석에게 보냈다.
그 후 문자를 통해 사진 속 인물들의 신분증 2개를 만들고 그 사람들이 한국에 입국한 공식 기록까지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신분 문제는 해결됐고.’
현성은 일단 골렘들에게 언어 학습을 시켰다.
일단 한국어를 알아야 가사 도우미 노릇을 하든 전자 제품 매장 직원을 하든 할 거 아니겠는가.
현성은 인터넷을 통해 골렘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를 교육시켰다.
마분석이 따끈따끈한 신분증을 배달해 줬다.
현성은 골렘들에게 신분증을 주고, 하나는 집안 가사 도우미로 하나는 전자 제품 매장에 취직시켰다.
골렘들의 지식 습득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겉모습도 그렇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수준으로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한계는 있었다.
‘창의력이 없어.’
현성이 주입하고 배운 정보만을 내뱉을 뿐 거짓말을 한다거나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하지만 현성은 만족했다.
‘전투 능력도 없고 상황 대처 능력도 떨어지는 도플갱어의 진혼보다는 훨씬 낫지.’
급할 때는 현성의 대역 역할을 맡겨도 충분할 것 같았다.
어차피 말이 가사 도우미고, 전자 제품 매장 직원이지 실제로는 경호원이다.
그런 만큼 제대로 가사 도우미 일을 못 해도 되고 전자 제품 매장 일을 못 해도 된다.
‘이제 안심이 좀 되네.’
골렘 둘을 어머니와 누나에게 붙여 놓으니 저번과 같은 일이 생기더라도 충분히 예방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위이이잉!
그때 현성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개인용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일본 비밀 요원이 사용하던 스마트폰이다.
이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 사람은 이누쿠소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지?”
현성이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일본 정부가 공작에 들어갔습니다.
“공작?”
-예, 주인님께 지불된 대가가 너무 과도하다는 소문과 함께 국부 유출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현성은 규슈섬과 시코쿠섬의 던전 소유권을 공식적으로 넘겨받았다.
국제사회 공증도 받았고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했다.
“이것들이 처음부터 장난질을 치네.”
일본이 이렇게 나올 줄은 알았다.
한데 너무 빨리 움직였다.
-규슈섬의 몬스터 토벌이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또 시코쿠섬의 던전 출입료가 이미 주군의 투자회사로 지급되지 않았습니까?
“일본 내 여론은?”
-아직까지는 주인님의 지지층이 굳건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공작이 계속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님의 일본 내 입지가 흔들릴 겁니다.
“그런다고 내가 일본 정부한테 던전 소유권을 주지는 않을 텐데?”
-일본 정부 역시 당장 주인님께 드렸던 던전 소유권을 되찾아 올 생각은 없습니다. 이건 그저 미리부터 여론을 선동해 훗날을 도모하려는 사전 작업입니다.
“알았다.”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생각보다 일찍 쓰게 생겼네.’
한 몇 달은 던전 수익을 독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성화에 조금 더 일찍 돈을 풀어야 할 것 같았다.
‘이건 네놈들이 자처한 거다.’
현성의 눈에 진한 독기가 피어올랐다.
* * *
현성이 언론을 통해 규슈섬 던전과 시코쿠섬 던전에서 발생한 수익 전액을 각각의 섬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공표했다.
우선적으로 학교, 병원, 주거지 등등.
주민들의 생활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에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은 물론 세계 각국이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타국에서 번 돈을 자국으로 가지고 가지 않고 그 나라에 재투자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일본 국민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국부 유출이라고 지껄이던 놈들 어디 갔냐?
-뇌신께서 일본에 큰 자비를 베푸셨다.
-뇌신께서 일본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갚으려면 나라를 가져다 바쳐도 부족하다.
-나라를 가져다 바칠 수는 없지만 던전 소유권 정도는 드리는 게 맞다. 뇌신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차피 사용도 못 할 던전 아니냐?
현성에 대한 열기가 식지 않았던 일본 국민들의 충성심이 더욱 높아졌다.
특히 현성을 신으로 섬기는 카페의 회원 수가 다시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현성은 일단 이모탈 길드 일본 지부를 개설했다.
그와 함께 이모탈 길드원에게는 던전 출입료를 30% 할인해 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플레이어들이 폭발적으로 모여들었다.
현성은 레벨에 상관없이 모든 플레이어들을 받아들였다.
그와 동시에 모든 시설이 붕괴된 규슈 지역에 학교, 병원, 주거지 건설을 시작했다.
시코쿠섬 역시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모탈 길드 일본 지부가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가입한 플레이어 숫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숫자로만 따지자면 일본 최대 규모였다.
문제는 지금도 이모탈 길드 일본 지부에 가입하는 플레이어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어설프게 복구가 시작된 규슈섬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과 시코쿠섬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의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계약 조건도 나쁘지 않고 던전 입장료까지 30% 할인받을 수 있으니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제대로 걸려들었네.’
이모탈 길드 일본 지부 소식을 들은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던전은 현대사회에서 마르지 않는 금광이나 유전과 마찬가지다.
던전 소유권은 분명 큰돈이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마석이었다.
현성은 이모탈 길드 일본 지부를 설립하느라 결국 다른 나라에서 투자금을 받았다.
말이 투자금이지, 사실상 자국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 해결해 달라고 주는 뇌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돈으로 이모탈 길드 일본 지부로 몰려든 플레이어들의 계약금과 연봉을 해결했다.
당장은 막대한 손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 것이다.
던전 소유권과 플레이어.
이 둘을 손에 넣으면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다.
‘야금야금 올려야지.’
현성은 던전 출입료를 계속해서 상승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올린 만큼 혜택도 줄 것이다.
오직 이모탈 길드원에게만 말이다.
‘규슈섬과 시코쿠섬에서 활동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을 이모탈 길드원으로 만들어 주마.’
이게 현성의 계획이었다.
또 미리 발표한 대로 던전 수익은 모두 규슈섬과 시코쿠섬에 재투자할 생각이다.
재투자.
투자는 기부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 국민들은 그 사실을 혼동하고 있다.
현성이 짓는 학교, 병원, 주거지.
이 모두가 현성 개인의 소유물이다.
현성 소유의 건물에서 잠을 자고, 현성 소유의 학교를 다니고, 현성 소유의 병원에 다닌다.
현성은 그 외에도 최대한 많은 양의 사유지를 구입할 생각이다.
그와 함께 규슈섬과 시코쿠섬에 뿌리를 내린 일본 기업들의 지분을 확보할 계획도 있었다.
이 계획이 온전히 실현된다면?
규슈섬과 시코쿠섬은 말만 일본 영토지 실질적으로는 현성의 사유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 * *
꽝!
“저 머저리 같은 놈들!”
아쿠나베 총리가 책상을 내려치며 분노했다.
“저게 원조가 아니라 우리의 영토를 빼앗아 가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 거야?”
아쿠나베 총리는 노성을 토해 냈다.
이미 던전 운영권과 영토의 일부분을 빼앗겼다.
잃었던 것을 되찾기 위한 작업을 슬금슬금 진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현성이 개입하는 바람에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다.
현성은 규슈섬과 시코쿠섬을 통째로 먹어 치우려고 하고 있었다.
한데 국민들은 그걸 보고 욕설을 퍼붓기는커녕 잘했다고 박수를 친다.
아쿠나베 총리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다 못해 썩어 문드러질 지경이었다.
“원래 민중은 어리석습니다.”
“맞습니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존재들 아닙니까?”
“제대로 설명해 주기 전까지는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알지도 못할 겁니다.”
장관들이 진노한 아쿠나베 총리를 달래기 위해 쩔쩔맸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사들인 토지와 주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게.”
애써 화를 가라앉힌 아쿠나베 총리가 장관들에게 물었다.
“이미 주요 노른자위 땅의 대부분이 넘어갔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무섭게 토지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국토부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관방 장관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다음은 경제부 장관 차례였다.
“내실 있는 대기업들은 건재하지만 규슈섬과 시코쿠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5할 이상이 최현성 플레이어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관방 장관과 경제부 장관의 대답을 들은 아쿠나베 총리의 속마음이 타들어 갔다.
“플레이어들의 동향은 어떤가?”
아쿠나베 총리의 물음에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이누쿠소가 입을 열었다.
“규슈섬과 시코쿠섬에서 활동하던 플레이어의 7할 이상이 이모탈 길드에 가입했습니다. 이모탈 길드에 가입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거대 길드나 중견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뿐입니다.”
쉽게 말해 소속 없이 파티 단위로 활동하거나 소규모로 길드를 운영하던 이들이 모조리 이모탈 길드로 흡수되었다는 뜻이었다.
이누쿠소의 보고를 들은 아쿠나베 총리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더러운 매국노 새끼들!”
아쿠나베 총리가 이모탈 길드에 들어간 플레이어들을 욕했다.
땅이나 주식이야 돈의 힘을 당해 낼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저, 그게 최현성 플레이어의 전략이 너무 좋았습니다. 던전 출입료를 30%나 할인해 준 일로 인해 규슈섬과 시코쿠섬에서는 이모탈 길드에 가입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소리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심지어 거대 길드나 중견 길드에서도 이탈자가 나올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게 조삼모사라는 걸 왜 몰라?”
최현성은 분명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던전 출입료를 올릴 것이다.
아니, 완벽하게 독점이 이루어지면 과거에 본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더 높은 가격의 던전 출입료를 받을 것이다.
그럼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플레이어들이 손해를 볼 확률이 높았다.
“그 덜떨어진 놈들은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쿠나베 총리가 노성을 토해 냈다.
던전과 플레이어는 현대사회의 근간이다.
던전은 광산이고 플레이어는 마석을 캐내는 광부다.
광산인 던전을 현성에게 빼앗겼지만 광부인 플레이어를 지키면 손해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광산인 던전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광부인 플레이어까지 빼앗긴다?
이건 규슈섬과 시코쿠섬에서 발생하는 모든 이익을 빼앗겼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이모탈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에게 세금은 부과할 수 있지 않습니까? 중앙정부의 실질적인 손해는 없는 것이니 노여움을 거두시지요.”
국세청 청장의 말에 아쿠나베 총리의 얼굴이 야차처럼 변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당신 생각이 있는 사람이야, 없는 사람이야?”
아쿠나베 총리가 대로했다.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생성되거나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면 그걸 누가 막나?”
“그야…….”
슬그머니 입을 열던 국세청 청장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그런 문제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자위대와 고레벨 플레이어들뿐이다.
자위대는 중앙정부의 통제에 따른다.
하지만 고레벨 플레이어는 아니다.
일단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빠르게 소집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일본 정부는 거대 길드에 많은 특혜를 주며 공생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특혜 중 하나가 바로 세금 감면이었다.
“지금 규슈섬과 시코쿠섬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길드가 바로 이모탈 길드야! 그런 그들에게 제대로 된 세금을 걷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막말로 이모탈 길드가 배 째라고 나오면 곤란해지는 것은 일본 정부다.
이모탈 길드의 규모가 작다면 혜택을 주는 데 큰 부담이 없다.
하지만 이모탈 길드는 개나 소나 다 길드원으로 받아들였다.
그 덕에 이모탈 길드 일본 지부에 소속된 플레이어 숫자만 2만 명이 넘었다.
그들 모두에게 세금 혜택을 준다?
가뜩이나 힘든 일본 정부의 재정에 심대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렇다고 안 줄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이모탈 길드와 일본 정부의 관계가 삐걱거린다?
그럼 손해를 보는 건 일본 정부였다.
“완전 진퇴양난이군.”
아쿠나베 총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게 다 어리석은 국민들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국민들이 우둔해서 그렇습니다.”
“플레이어들도 문제입니다. 그깟 돈 몇 푼에 매국노의 길을 택하다니요?”
갑자기 성토의 장이 펼쳐졌다.
아쿠나베 정부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라가 통째로 최현성이라는 외국인에게 넘어가게 생겼다.
한데 국민들이 정부 속도 모르고 최현성을 숭배하고 신격화한다.
아쿠나베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어리석은 국민들을 탓하며 가슴을 치고 있을 때,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이누쿠소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이누쿠소의 왼쪽 손목에 걸린 시계.
아니, 시계로 위장한 초소형 카메라가 국민들을 욕하는 장관과 각료 들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녹화하고 있었다.
‘주인님께서 기뻐하시겠군.’
훗날 현성이 사용할 수 있는 패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 * *
현성은 사냥과 장사 그리고 용병 지원을 병행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고용주 각투브크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갑자기 용병 고용이 떴다.
현성은 곧바로 예를 눌렀다.
화악!
밝은 빛무리가 현성의 몸을 휘감았고, 금방 낯선 세상이 현성의 눈앞에 펼쳐졌다.
‘전투 상황은 아니네?’
당장 용혈검을 뽑아 들고 휘둘러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화로워 보였다.
현성이 소환된 공간은 넓은 방이었다.
방 중앙에는 TV와 DVD를 비롯해 노트북과 컴퓨터가 자리해 있었고, 양 벽에는 온갖 종류의 피규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용주가 현성의 단골 고객 중 1명인 듯했다.
“당신이 DVD를 판매하는 최현성이 맞나?”
이마에 커다란 뿔이 3개나 달린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현성에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고용주님. 저를 소환하신 용건이 무엇입니까?”
현성의 물음에 고용주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도대체 왜 DVD만 따로 판매를 안 하는 거냐!”
고용주 각투브크의 일갈에 현성이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름이 익숙하다 했다.
현성은 그냥 단골손님 중 하나이기에 익숙한가 보다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DVD라는 말을 들으니 상대가 누구인지 확실히 기억이 났다.
“아, 베스트 구매평 써 주신 분!”
영화 터미XX터 2가 들어 있는 XXX사의 TV와 DVD 플레이어 세트 판매 상품에 욕설이 담긴 베스트 구매평을 쓰며 현성을 성토했던 인물이었다.
“그래! 그게 바로 나다! 베스트 구매평은 읽지도 않는 줄 알았더니 읽기는 읽었구나.”
“당연히 읽었지요.”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웃어?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베스트 구매평을 봤다면서 왜 그따위로 행동해? 거기다 왜 내 컴플레인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다 씹는 거야? 너 포인트 좀 벌었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냐?”
피식!
고용주 각투브크의 말을 들은 현성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감히 날 비웃어?”
고용주 각투브크의 몸에서 강력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현성으로서는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었다.
하지만 현성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용병 공격 불가인 건 아시죠? 규정 어기시려고요?”
현성의 물음에 고용주 각투브크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도대체 왜 DVD를 따로 안 파는 거냐? 도대체 이유가 뭐야?”
고용주 각투브크의 물음에 현성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제가 살고 있는 세계의 사정이기 때문에 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고용주님.”
“사정은 무슨! 너 지금 포인트 더 벌려고 바가지 씌우는 거잖아!”
“아닙니다. 믿어 주십시오.”
현성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현성을 불러낸 각투브크는 그 말을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너 그런 식으로 배짱 장사 하다가 큰일 난다.”
“고용주님의 조언,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언제 DVD만 따로 팔 거야?”
“그건 저로서도 알 수가 없습니다.”
TV와 DVD 세트의 인기가 언제 떨어질지는 현성도 모른다.
“제발 이러지 말자. 너도 기왕이면 욕먹으면서 물건 파는 것보다는 칭찬 들으면서 물건 파는 게 좋잖아. 거기다 컴플레인 조심해야지? 그러다가 갑자기 영업정지 당하면 어쩌려고.”
컴플레인이 쌓여 영업정지를 당하려면 아직 멀었다.
박리다매로 팔아먹었던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 덕분이었다.
‘아, 박리다매는 아닌가?’
박리다매라고 하기에는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의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고용주님의 조언을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현성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현성의 말을 들은 각투브크는 울상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죽도록 두들겨 패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만 굴뚝같을 뿐 직접 위해를 가할 수가 없었다.
위협도 안 통한다.
걱정해 주는 척하고 이야기했는데 씨알도 안 먹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히려 아양을 떨며 살살 꼬드겨야 하는 처지다.
“우리 서로 상생하면서 가자, 응?”
“저, 고용주님, 그보다 한 가지 제안드릴 게 있습니다.”
“제안? 그게 뭔데?”
“혹시 근거리 통신망을 설치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현성의 물음에 각투브크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근거리 통신망? 그게 뭔데?”
“그게 뭐냐 하면…….”
현성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컴플레인을 걸기 위해 용병 고용을 한 고용주를 상대로 영업을 펼쳐 추가 수익을 올린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고용 비용까지 얻을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고였다.
“난 그딴 거 안 해!”
각투브크가 노성을 터트렸다.
“알겠습니다, 고용주님.”
현성이 무심한 표정으로 한발 물러났다.
지금까지 용병 고용을 통해 많은 고용주들에게 영업을 해 왔다.
당연히 지금처럼 영업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성이 손해 볼 일은 없었다.
현성이 손목에 차고 있던 마석 전용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고용주님, 혹시 저에게 더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DVD만 따로 팔라고.”
“그건 불가능합니다. 혹시 다른 용건이 있으십니까?”
현성의 물음에 각투브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전 이만 제 차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직 최소 고용 시간 안 지났잖아. 그냥 있어.”
“방금 고용주님이 저에게 시키실 일이 없다고 하셨죠? 저도 몰랐었는데 이런 경우는 용병 쪽에서 고용 취소를 해도 최소 고용 비용이 그대로 지불되더군요.”
“뭐?”
“그럼 전 이만. 앞으로도 제가 판매하는 상품에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화악!
그 말과 함께 현성의 모습이 사라졌다.
화들짝 놀란 각투브크가 자신의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성의 말대로 최소 고용 시간만큼의 포인트가 사라져 있었다.
“이 사기꾼 새끼가……!”
각투브크가 다시금 용병 고용을 선택했다.
하지만…….
-영웅 등급 용병 최현성 님이 고용주 각투브크 님의 용병 고용 요청을 거절하셨습니다.
현성이 용병 고용을 거절해 버리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각투브크 입장에서는 제대로 얻은 것은 하나도 없이 포인트만 대량으로 날린 꼴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