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불사의 서 (14/225)
  • ┃불사의 서

    현성이 삼두표와 술래잡기에 한창일 시각.

    붉은 갈기 늑대 던전은 난리가 났다.

    사냥을 하던 플레이어들이 다른 플레이어들의 시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체를 발견한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퇴각했다.

    그 후 자신들이 목격한 사실을 안전 요원들에게 알렸다.

    안전 요원들은 바로 외부로 지원을 요청하고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사냥 중인 플레이어들을 복귀시키고 문제의 원흉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일방적으로 당했어.”

    사체를 확인한 안전 요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갈가리 찢긴 사체에 난 이빨과 발톱 자국은 엄청나게 컸다.

    “여기 발자국이 있는 것 같은데.”

    한 안전 요원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보통 놈이 아니야.”

    거대한 발자국을 확인한 안전 요원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우리끼리 가도 될까?”

    안전 요원 하나가 불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럼 가만히 있자는 이야기야?”

    “반대쪽 차원 게이트를 지키던 안전 요원들한테 연락이 없었잖아. 그럼 이 발자국의 주인에게 당했다는 건데, 우리라고 별수 있겠어?”

    그 말에 다른 안전 요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안전 요원이라고 거들먹거리긴 했지만 그들도 이제 겨우 1차 전직을 마친 햇병아리들일 뿐이다.

    자신들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수색해 보자.”

    한 안전 요원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럼 너 혼자 가. 난 의무 기한 채우다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아.”

    “야, 그럼 던전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하냐?”

    “내가 알 게 뭐야? 난 붉은 갈기 늑대를 사냥하는 초보 플레이어들을 보호하러 온 거야. 이런 괴물을 상대하러 온 게 아니라고.”

    “너 말 다 했어?”

    “다 했다, 어쩔래?”

    안전 요원들 사이에서 내분이 벌어졌다.

    “자, 자, 둘 다 진정해.”

    “그래,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잖아.”

    다른 안전 요원들이 흥분한 둘을 말렸다.

    하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갑론을박이 계속해서 이어질 뿐이었다.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한 안전 요원들은 결국 더 이상 던전 내부로 진입하지 못했다.

    모두가 힘을 합쳐도 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괴물이 상대다.

    따로 찢어져 움직였다가는 개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 * *

    “헉! 헉!”

    현성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더럽게 안 차네.’

    마력이 오르는 속도가 엄청나게 더디게 느껴졌다.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들은 공격 한 방 한 방이 상당히 강력하다.

    하지만 유일한 단점이 바로 이거였다.

    마력 조루.

    비약을 섭취한 현성의 마력은 168이다.

    그럼에도 마력 차는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사실 현성의 마력 회복 속도는 무척 빠른 편이었다.

    문제는 다급한 상황 탓에 그 사실이 제대로 실감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저놈은 지치지도 않나.’

    머리 2개가 파이어 스피어에 꿰뚫려 꽤 많은 피를 흘렸던 삼두표는 어느새 출혈이 멈춘 상태였다.

    거기다 이미 죽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2개의 머리에 난 관통상이 서서히 아물어 가고 있었다.

    재생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박살 난 머리까지 재생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가 신화에 나오는 히드라야 뭐야?’

    히드라도 불로 지져진 상처는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놈은 달랐다.

    파이어 스피어에 꿰뚫린 화상을 꾸역꾸역 회복하고 있었다.

    ‘2개의 머리에 난 상처가 회복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해.’

    현성이 전력을 다해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파이어 스피어 한 방을 사용할 마력이 모였다.

    ‘빗나가면 끝장이야.’

    체력도 거의 고갈 직전이었다.

    ‘승부를 보자.’

    현성이 그대로 몸을 돌려 삼두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삼두표는 도주하던 현성이 몸을 돌리자 화들짝 놀라 움찔했다.

    하지만 잠시였다.

    캬아아아앙!

    삼두표가 금세 흉성을 드러내며 현성에게 덤벼들었다.

    ‘파이어 스피어.’

    현성이 흡혈검을 버리고 파이어 스피어 스킬을 창처럼 움켜쥐었다.

    다른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들이 봤다면 기겁할 장면이었다.

    어떤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가 발현한 스킬을 직접 손에 쥐고 싸울 생각을 하겠는가?

    삼두표가 앞발을 휘둘렀다.

    현성이 방패를 내밀었다.

    콰직!

    방패가 두부처럼 으깨졌다.

    하지만 현성의 왼팔은 견뎌 냈다.

    “큭!”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고통에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고통에 정신을 잃을 틈이 없었다.

    삼두표의 다른 쪽 앞발이 날아오기 전에 오른손에 들린 파이어 스피어를 삼두표의 마지막 남은 머리를 향해 쑤셔 넣었다.

    콰직!

    파이어 스피어가 삼두표의 턱을 관통해 그대로 두개골을 뚫고 튀어나왔다.

    쿠우웅!

    집채만 한 덩치의 삼두표가 쓰러졌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약간이나마 회복된 2개의 머리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진짜 끈질기다.’

    현성의 오른손에 들린 파이어 스피어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현성이 계속해서 마력을 주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푸욱!

    현성이 파이어 스피어로 회복되고 있는 2개의 머리에 새로운 구멍을 뚫어 주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업적 - 일반 등급

    -단독으로 1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레벨 파괴자 - 일반 등급]

    ‘최초 칭호? 이놈이 네임드였어?’

    현성이 다 놀라기도 전에 다시금 업적이 떠올랐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희귀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희귀 등급 네임드 몬스터 삼두표 그라돈을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홀로 삼두표 그라돈을 쓰러트린 자 - 희귀 등급]

    ‘보상이 좀 짜네.’

    죽을 고생을 하며 잡았다.

    2개의 칭호를 준 건 좋지만 하나는 일반 등급이고 하나는 희귀 등급이다.

    하지만 보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슈우우욱!

    삼두표의 사체와 잔존 마력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건…….’

    마석 아니면 스킬북일 것이다.

    뭐든 좋았다.

    사실 사체는 현성이 들고 가기는 너무 컸다.

    설사 들고 갈 수 있는 사이즈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사이즈가 작은 마석이나 스킬북으로 변해 주는 게 좋았다.

    ‘스킬북이다.’

    푸른빛이 감도는 고풍스러운 디자인.

    희귀 등급 스킬북이었다.

    현성이 스킬북을 손에 쥐었다.

    [불사의 서 - 유일 희귀 등급]

    -패시브 스킬북

    -머리가 완전히 파괴당하지 않는 한 죽지 않습니다.

    -즉사하지 않는 한 모든 상처가 천천히 회복됩니다.

    -성장형 스킬입니다.

    ‘유일 희귀 등급?’

    이런 스킬북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효과도 엄청났다.

    머리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니?

    거기다 즉사하지 않는 한 모든 상처가 회복된다니?

    이 말은 머리만 잘 보호하면 불사신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물론 ‘천천히’라는 전제가 붙어 있기는 했다.

    아까 삼두표의 경우에도 상처가 회복되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엄청난 효과였다.

    결정적으로.

    ‘성장형 스킬?’

    구매창을 통해 아이쇼핑으로 수많은 스킬들을 구경했다.

    하지만 유일 희귀 등급이라느니 성장형 스킬이라느니 하는 건 처음 봤다.

    ‘탱커들이 눈에 불을 켜겠네.’

    말이 희귀 등급 스킬이지 그 효과는 가히 영웅 등급 스킬이나 전설 등급 스킬과 맞먹을 것 같았다.

    거기다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장이 가능하다.

    어쩌면 영웅 등급 스킬이나 전설 등급 스킬로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로 엄청난 보물을 얻은 것이다.

    ‘유일.’

    현성은 유일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야.’

    네임드 몬스터는 단 1마리만 존재하는 특별한 몬스터다.

    물론 같은 종의 몬스터인 삼두표가 성장해 네임드 몬스터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라돈이라는 이름을 가진 네임드 몬스터는 단 1마리뿐이다.

    그리고 불사의 서라는 이름을 가진 스킬북도 단 하나뿐이다.

    -패시브 스킬북 불사의 서 - 유일 희귀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의 눈앞에 문구가 나타났다.

    곧바로 예를 눌렀다.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던전은 위험한 곳이다.

    이번 같은 위험이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른다.

    생존은 최우선 과제였다.

    자신이 죽으면 아버지의 치료와 가족들의 행복은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벌의 목숨과 돈은 견줄 수 있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화악!

    스킬북이 사라졌다.

    그리고 현성의 패시브 스킬 창에 불사의 서가 등록되었다.

    ‘낫는다.’

    삼두표 그라돈의 앞발을 막아 내면서 방패가 파손되고 왼팔을 다쳤다.

    왼팔이 팅팅 부어 가는 것이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서서히 고통이 사라지고 있었다.

    ‘체력을 소모한다.’

    불사의 서는 체력을 소모해 상처를 회복하는 것 같았다.

    ‘체력은 충분해.’

    뭣하면 더 올리면 된다.

    힐 스킬까지 사용하면 더 빠르게 회복될 것 같았지만 마력이 바닥이라 당장 사용하기는 힘들었다.

    ‘이것도 한번 살펴볼까?’

    현성이 방금 습득한 칭호를 향해 눈을 돌렸다.

    [최초의 레벨 파괴자 - 일반 등급]

    -모든 스텟 5 증가.

    ‘대박!’

    역시 최초는 달랐다.

    현성에게는 2개의 최초 칭호가 있다.

    ‘최초의 영웅 등급 업적 달성자’와 ‘최초의 전설 등급 업적 달성자’다.

    ‘이것도 중복이 가능할 거야.’

    현성은 최초의 일반 등급 업적 달성자와 최초의 희귀 등급 업적 달성자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일반 등급의 ‘최초의 레벨 파괴자’ 칭호를 얻었다.

    그럼 이후에 희귀 등급, 영웅 등급, 전설 등급 칭호를 모두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모두 중복되는 만큼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것도 살펴보자.’

    현성이 또 다른 칭호로 눈을 돌렸다.

    [홀로 삼두표 그라돈을 쓰러트린 자 - 희귀 등급]

    -체력 스텟 3 증가.

    ‘나쁘지 않네.’

    다른 희귀 등급 업적은 고작 스텟 1을 올려 줬다.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스텟을 3이나 올려 줬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녀석이었구나, 너.’

    삼두표 그라돈.

    현성에게 무려 2개의 칭호와 1개의 스킬을 주었다.

    ‘돌아가자.’

    더 이상 여기 머물러서 좋을 게 없었다.

    거기다 삼두표와 드잡이질을 하며 체력과 정신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

    휴식이 필요했다.

    * * *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일단의 무리가 붉은 갈기 늑대 던전의 중심부를 관통했다.

    “플레이어 발견!”

    무리의 선두에 자리한 사내가 외침과 함께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붉은 갈기 늑대를 사냥하고 있는 7인 파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

    “뭐야?”

    붉은 갈기 늑대를 사냥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들을 바라보았다.

    딱 봐도 붉은 갈기 늑대 던전에서 사냥하겠다고 돌아다닐 레벨이 아니었다.

    풍기는 기세부터 차고 있는 장비까지 자신들과 격이 달랐다.

    “플레이어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현재 붉은 갈기 늑대 던전에 상위 레벨의 몬스터가 출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대한 빨리 던전을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이미 두 자릿수가 넘는 플레이어들이 사망했습니다.”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여성의 말에 플레이어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사실입니다.”

    여성의 확답에 플레이어들은 모든 스킬을 쏟아부어 붉은 갈기 늑대 사냥을 마무리하고 재빨리 던전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사냥 중인 플레이어들을 퇴거시킨 무리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중간중간 플레이어들을 만나면 같은 말을 반복하며 사냥을 중단시키고 던전에서 내보냈다.

    “상위 레벨의 몬스터로 추정되는 개체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나요?”

    여성의 말에 선두에 선 남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붉은 갈기 늑대뿐입니다.”

    남성의 말에 여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최대한 빨리 상위 레벨의 몬스터를 제거하고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수색을 계속합니다.”

    여성의 말에 무리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던전은 너무 넓었다.

    이 잡듯이 수색을 하고 있지만 상위 레벨의 몬스터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플레이어 발견!”

    선두에 선 사내의 외침에 무리가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던전 안에서 홀로 이동하고 있는 플레이어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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