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1레벨 플레이어 (8/225)
  • ┃1레벨 플레이어

    ‘설마?’

    상태창에서 고유 스킬 ‘구매’를 열어 잔여 포인트를 주시한 상태로 뿔 토끼 1마리를 잡았다.

    ‘이게 뭐야?’

    현성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뿔 토끼를 잡는 순간 포인트가 늘어났다.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늘어난 포인트는 고작 112포인트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뿔 토끼를 잡아 보았다.

    늘어난 포인트는 131포인트.

    뿔 토끼가 주는 포인트는 개체마다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아 봐야 140포인트가 한계였다.

    ‘경험치를 얻을 수 없는 건가?’

    자신은 몬스터를 사냥할 때 경험치 대신 포인트를 받는 것 같았다.

    ‘그, 그럼 레벨 업은?’

    레벨 업을 해야 전직을 하고 직업을 얻을 수 있다.

    레벨 업을 해야 미분배 스텟이 생겨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런데 레벨 업을 못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현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망했다.’

    물론 열심히 사냥을 해서 포인트를 모아 고유 스킬 ‘구매’로 비약과 스킬북을 습득해 강해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

    지난 열흘 동안 판매를 통해 벌어들이는 포인트는 전자 기기 판매와 건전지 판매를 모두 합쳐 1억 5,000포인트 정도였다.

    한데 몬스터를 잡아서 얻는 포인트는 고작 140에 불과했다.

    어느 세월에 사냥으로 포인트를 모아 비약과 스킬북을 구매해 강해지겠는가.

    차라리 판매를 통한 장사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편이 나았다.

    ‘그것도 지금처럼 판매가 될 때 이야기야.’

    사냥이나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아이템을 호기심에 구매하는 이들의 숫자는 정해져 있다.

    결국 점점 아이템이 판매되는 주기가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는 건전지 장사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현성이 판매하는 전자 기기들을 사 줄 고객들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해도, 엘릭서를 구매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것도 나쁜 건 아니야.’

    희망이 아예 없었던 때에 비하면 이것도 결코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쉬운 마음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타악!

    그때 현성의 등 뒤에서 무언가가 달려들었다.

    소리를 들은 현성이 번개같이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좌악!

    붉은 피 보라와 함께 뿔 토끼 1마리의 목이 날아갔다.

    키이익!

    그게 시작이었다.

    동족의 피 냄새를 맡고 모여든 뿔 토끼들이 일제히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너무 넋을 놓고 있었기에 주변이 뿔 토끼로 가득 찬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휘익!

    현성은 ‘초급 검술 지식 - 일반 등급’ 패시브 스킬이 알려 주는 경로대로 움직였다.

    좌악!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끼이이익!

    뿔 토끼들이 애처로운 비명을 토해 내며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현성은 정신없이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현성의 주변으로 뿔 토끼들의 사체가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일반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몬스터 뿔 토끼 300마리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뿔 토끼 사냥꾼 - 일반 등급]

    ‘이건 뭐야?’

    현성은 화들짝 놀랐다.

    업적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칭호라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현성은 남은 뿔 토끼를 정리하고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최현성

    플레이어 레벨 : 1

    메인 직업 : 없음

    칭호 : [뿔 토끼 사냥꾼 - 일반 등급]

    스텟 : [힘 70] [민첩 70] [체력 70 +1] [마력 30] [정신력 30]

    미분배 스텟 : [0]

    고유 능력 : [판매] [구매]

    액티브 스킬 : [힐 - 일반 등급] [파이어볼 - 일반 등급] [도발 - 일반 등급] [매직 미사일 - 일반 등급] [실드 - 일반 등급] [은밀한 기습 - 일반 등급] [은신 - 일반 등급]

    패시브 스킬 : [단단한 몸 - 일반 등급] [강인한 체력 - 일반 등급] [삼재심법 - 일반 등급] [초급 검술 지식 - 일반 등급] [초급 마법 지식 - 일반 등급]

    전에는 없던 칭호가 생겼다.

    거기다 체력 스텟이 1 증가했다.

    현성이 재빨리 칭호 ‘뿔 토끼 사냥꾼 - 일반 등급’을 눌러보았다.

    [뿔 토끼 사냥꾼 - 일반 등급]

    -체력 스텟 1 증가.

    -희귀 등급으로의 성장이 가능합니다.

    ‘특별한 업적을 달성했을 때 스텟을 추가로 준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인터넷에서 봤던 정보 중 하나다.

    타고난 스텟을 늘릴 수 있는 방법.

    바로 특별한 업적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걸 다른 사람이 달성할 수 있나?’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몬스터 뿔 토끼 300마리를 사냥한다?

    초고가의 아이템을 덕지덕지 바르고 사냥하면 1레벨도 뿔 토끼를 일격에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300마리를 잡기도 전에 레벨 업을 한다는 점이다.

    300마리는커녕 100마리를 잡기도 전에 뿔 토끼의 레벨을 초과해 버릴 것이다.

    ‘나한테 나쁜 건 아니야.’

    현성의 눈이 반짝였다.

    ‘희귀 등급 칭호로 성장이 가능해.’

    일반 등급인데 체력 스텟이 1늘었다.

    희귀 등급이 되면?

    분명 더 늘어날 것이다.

    ‘상황이 달라졌어.’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 * *

    ‘간만에 낚은 대어 같은데.’

    이수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일격.

    단 일격에 뿔 토끼의 숨통을 끊었다.

    한두 번이라면 요행이나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니었다.

    모든 사냥이 일격에 끝냈다.

    뿔 토끼 여러 마리가 몰린 위기 상황도 말끔하게 해결했다.

    ‘끌어들어야 해.’

    저건 진짜였다.

    * * *

    마석을 챙긴 현성은 다음 사냥감을 향해 움직였다.

    근처에 뿔 토끼를 한 번에 처리했기에 조금 멀리 이동해야 했다.

    “이봐요.”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성이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플레이어?’

    현성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성 플레이어 2명이었다.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자신과 같은 저레벨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현성이 차고 있는 저가형 대여 장비와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고급스러운 장비들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양산형이 아닌 맞춤형인가?’

    몸과 갑옷이 한 몸이라도 된 듯 딱딱 들어맞았다.

    방어구와 몸의 사이즈가 맞지 않아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현성과는 천양지차였다.

    “경계할 필요는 없어요. 저는 안전 요원이니까요.”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어쩐 일로……?”

    현성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안전 요원들은 저레벨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다.

    죽을 위기에 처해야 나타나지 그게 아니라면 시선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정적으로…….

    ‘이 근처에 안전 요원이 있었나? 횃불 같은 건 보지도 못했는데.’

    “제가 차원 게이트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근무 교대를 하고 귀환하는 중이었거든요. 뿔 토끼를 피하기 위해서 은신 계열 스킬을 사용해서 아마 저와 이 친구의 존재를 모르셨을 거예요.”

    ‘은신 계열 스킬?’

    방금 전까지 인기척은커녕 숨 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의 곁에 2명이나 몸을 숨기고 있었다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러다 본의 아니게 그쪽 분이 사냥하시는 모습을 쭉 지켜봤거든요.”

    ‘쭉 지켜보고 있었다고?’

    현성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뿔 토끼 던전에서 사냥하시는 것치고는 실력이 너무 뛰어나셔서 절로 시선이 갔어요. 혹시 레벨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여성의 말에 현성의 머릿속에 경계 신호가 울렸다.

    현성의 레벨은 1이다.

    하지만 스텟 총합은 273이다.

    이걸 들켜서 좋을 게 없었다.

    “제가 그걸 알려 드려야 할 의무가 있나요?”

    현성의 말에 여성이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 물론 의무는 없으시죠. 저는 그저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예요. 제가 서우 길드 소속이거든요.”

    여성의 표정에 은은한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서우 길드라면 현성도 알고 있었다.

    대기업인 서우 그룹을 스폰서로 두고 있는 대형 길드였다.

    “상태창만 확인시켜 주시면 제가 서우 길드에 들어오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드릴게요.”

    그건 곤란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레벨 업이 불가능하다는 페널티까지 생겼다.

    현성은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길드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상태창을 전체 공개해야 했다.

    그러면 자신의 비밀이 알려진다.

    1레벨 플레이어가 비정상적인 스텟과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상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사냥을 했는데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

    더 수상했다.

    레벨이 오르지 않는데도 계속 강해진다?

    더 의심스럽다.

    상태창 전체 공개는 스스로 자멸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전 길드에 따로 가입할 생각이 없어서요.”

    현성이 그 말과 함께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던전 출입구를 향해 이동했다.

    “잠깐만요!”

    여성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날려 현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현성으로서는 미처 반응할 틈조차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혹시 서우 길드 모르세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입할 생각이 없다고요?”

    황당함이 가득한 여성의 말에 현성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어디 소속되는 걸 싫어해서요. 굳이 길드에 가입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요.”

    “혹시 다른 대형 길드와 인연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현성은 자만심에 빠져 천지분간 못 하는 애송이의 모습을 연기했다.

    “하, 참.”

    현성의 연기가 먹혀들었는지 여성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럼 이만 비켜 주시겠습니까?”

    현성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여성이 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들었다.

    “혹시 나중에 길드에 가입할 생각 있으면 여기로 연락하세요. 실력만 있다면 동급 최고 대우를 해 드릴게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성이 명암을 받아 들고 여성을 스쳐 지나갔다.

    “던전을 나가실 생각이라면 함께 가시는 건 어떨까요? 귀찮은 일을 피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싫습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현성이 발걸음을 옮겼다.

    * * *

    ‘까칠하기는.’

    레벨도 안 알려 줄 줄은 몰랐다.

    거기다 서우 길드 소속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도 무시할 줄은 몰랐다.

    ‘저것도 다 한때지.’

    이수희가 멀어지는 신입의 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뒤따라가 다시 설득하는 것은 포기했다.

    상대의 마음속엔 자만심이 가득 차 있었다.

    저런 상태라면 자신이 아무리 달콤한 말을 속삭여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후회할 게 뻔한데.’

    길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플레이어와 받을 수 없는 플레이어의 성장 속도는 천양지차다.

    지금은 자신감이 넘치지만 분명 얼마 가지 않아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이야기해 봐야 소귀에 경 읽기였다.

    그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을 때, 길드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자신이 건넨 명함을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상대가 자신이 건넨 명함의 존재를 잊는다면?

    명함을 버려 버렸다면?

    자신이 먼저 발견한 대어를 애먼 이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

    ‘그럴 수는 없지.’

    따로 손을 써 놓을 필요가 있었다.

    “언니, 우리 언제 던전 밖으로 나가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던 김지수가 처량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당장.”

    짧은 대답과 함께 이수희가 다시금 어둠의 장막 스킬을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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