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첫 사냥 (7/225)

┃첫 사냥

최하급 던전에서 좋은 게 나올 리가 없다.

마석도 가뭄에 콩 나듯 나오고 출몰 몬스터인 뿔 토끼의 사체도 별다른 쓸모가 없다.

뿔 토끼 던전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사냥을 해도 시간당 20만 원을 버는 게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초보 플레이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몬스터의 수준이 낮아 초보 플레이어들의 첫 사냥 상대로 적합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던전을 운영하는 국가에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전직을 하지 못해 직업이 없는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이용하는 던전에 안전 요원들을 배치해 놓는다는 점이다.

초보 플레이어가 생명의 위험 없이 안전하게 실전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이보다 이상적인 사냥터가 어디 있겠는가?

게임으로 치자면 튜토리얼 모드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초보 플레이어들이 없는 돈도 만들어서 저레벨 던전을 찾았다.

플레이어는 플레이어 등록증만 있으면 플레이어 전용 은행에서 손쉽게 대출받을 수 있다.

1레벨이라도 장비 걱정, 던전 사용료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옛말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현성은 아이템 대여와 던전 사용료를 지불하기 위해 플레이어 전용 은행 창구에서 대출을 받았다.

플레이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억까지 빌려준다나?

그래서 현성도 일정 금액을 대출받아 장비를 대여했다.

물론 스킬의 장인 스킬북을 현금화하면 바로 갚아 버릴 생각이었다.

‘좀 더 팍팍 팔렸으면 좋겠는데.’

현성이 변함없이 한결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판매창을 주시하며 아쉬워했다.

첫날처럼 완판 행진이 이어졌다면 포인트가 빠르게 모여 순식간에 구매 등급을 올리고 엘릭서까지 구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성이 올린 전자 제품은 의외로 잘 팔리지 않았다.

3주간 겨우 2개만 팔렸다.

첫날 올리자마자 완판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이었다.

‘하긴 1억 포인트가 넘어가는데, 누가 대량 구매를 하겠어? 게스피트 고객님과 백화 고객님 같은 경우가 아니면…….’

그 둘은 현성에게 있어서 가장 큰손이었다.

현성이 포인트를 복구한 이유도 이 두 고객 덕분이었다.

‘참 천사 같은 분들이야.’

현성은 자신이 그 둘을 진상이라고 불렀던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저 고객들 중 가장 큰손인 게스피트와 백화를 향해 무한한 감사와 찬사를 보낼 뿐이었다.

게스피트와 백화가 단순히 자신의 아이템을 고가에 사 줘서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그 둘의 존재는 현성의 영업 방침을 정하는 기준이 되어 주었다.

현성은 그 2명 덕분에 VVIP 고객의 영향력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박리다매보다 고가 판매 정책이 최고야.’

현성이 고유 능력 ‘판매’에 등록할 수 있는 아이템 숫자는 고작 10개에 불과하다.

박리다매를 하고 싶어도 박리다매를 할 수가 없다.

뭐, 설사 가능했다고 해도 현성은 고가 판매 정책을 유지했을 것이다.

가격을 낮춰 수십 개의 아이템을 파는 것보다 바가지를 잔뜩 씌워 아이템 1개를 파는 게 더 남는 장사였으니까 말이다.

현성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구매창에 현대 과학기술이 들어간 아이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독점.

이것만큼 무서운 단어는 없다.

현성은 명품 메이커들이 하는 고가 판매 정책을 계속해서 유지할 생각이었다.

판매량이 적기는 했다.

하지만 아이템 하나가 팔리면 무려 1억 포인트가 들어온다.

전자 기기 하나가 팔리면?

휴대용 충전기와 건전지는 자동으로 팔린다.

‘열흘에 1개 정도 팔린다고 하지만 나쁠 건 없어.’

티끌 모아 태산이다.

이대로 포인트를 모으면 아버지를 완치시킬 수 있다.

“같이 파티하실 탱커분 구합니다! 최고 대우해 드려요!”

“같이 파티하실 힐러분 구합니다! 던전 사용료 대신 내 드립니다! 안전 절대 보장! 오시면 바로 출발합니다!”

던전 입구는 마치 시장 바닥 같았다.

아무리 최하급 뿔 토끼 던전이라고 해도 안전한 건 아니다.

죽을 위험이 낮다 뿐이지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사고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을 정도로 재수가 없는 경우에는 죽을 수도 있다.

당연히 안전을 위해 방어력이 좋고 도발 스킬을 가진 탱커나 부상을 치료해 줄 수 있는 힐러를 구하려 한다.

‘뭐, 문제는 탱커나 힐러가 드물다는 거지만.’

플레이어 중 딜러의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그에 반해 탱커나 힐러는 적다.

당연히 몸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나라면 가볍게 파티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지.’

현성은 탱커 스킬과 힐러 스킬을 포함해 근딜 스킬과 원딜 스킬까지 익히고 있는 만능 플레이어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포지션으로든 파티에 들어갈 수가 있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은 뿔 토끼를 사냥하고 미리 구매해 놓은 스킬의 장인 스킬북을 사냥을 통해 얻은 척하는 거다.

괜히 파티에 들어갔다가 소유권 문제로 골치를 썩을 생각은 없었다.

“여기요.”

현성이 플레이어 등록증을 내밀었다.

삑!

던전 출입구 관리원이 바코드를 찍었다.

던전 사용료는 후불이다.

입장할 때 한 번, 퇴장할 때 한 번 바코드를 찍으면 자동으로 사냥한 시간이 나오는 시스템이다.

“다른 파티원은 없으신가요?”

던전 출입구 관리원의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현성이 짧게 대답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관리원이 현성을 한심하단 눈빛으로 바라봤다.

말을 하지 않아도 얼굴에 생각이 다 드러났다.

‘혼자 던전에 들어가는 무모한 놈으로 생각하겠지.’

고레벨들도 솔로잉 사냥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몬스터 사냥은 무조건 파티 사냥이다.

그게 정석이다.

현실은 게임이 아니다.

여차하면 죽을 수 있고, 평생 불구가 되는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당연히 위험을 나누고 안전한 사냥을 도와줄 동료를 구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몬스터는 플레이어보다 강하다.

무리를 짓는 경우도 있다.

비슷한 레벨대의 몬스터를 사냥하더라도 보통 5인에서 9인까지 파티를 짜서 사냥하는 게 정석이다.

하나 현성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현성의 보유 스텟은 40~50레벨은 되어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40~50레벨 플레이어가 1~5레벨 사냥터에 들어간다?

위험해지고 싶어도 위험해질 수가 없다.

몬스터가 무리를 지어 수십 마리씩 몰려도 상관없었다.

하룻강아지 수십 마리가 모여도 호랑이 1마리를 상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남자 관리원은 그런 현성을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말리지도 않고 던전 출입을 허가해 줬다.

던전 내부에 있는 안전 요원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한번 죽을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죽을 위기를 겪고 안전 요원들에게 실려 나와 봐야 앞으로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현성은 남자 관리원의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을 무시하고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 입구는 완벽하게 밀봉되어 있었고 작은 쪽문을 통해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던전을 제거하는 방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으로써는 주기적으로 던전 내부의 몬스터를 청소해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지 않게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정부에서 이런 최하급 던전에 1차 전직을 마친 플레이어들을 배치해 놓는 이유는 초보 플레이어들의 안전도 안전이지만, 주기적으로 던전을 청소해 몬스터 웨이브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슈욱!

현성이 쪽문 앞에 있는 차원 게이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와아!”

절로 탄성이 나왔다.

신선한 공기와 순도 높은 마력이 함유된 대기가 현성을 반겼다.

던전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던전 벽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는 했지만 제대로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다.

‘동굴형이네.’

던전은 모두 내부 구조가 다르다.

어떤 곳은 낮처럼 밝았고 어떤 곳은 밤처럼 어두웠다.

또 늪지로 이루어진 던전도 있었고 숲으로 이루어진 던전도 있었다.

현성이 찾아온 뿔 토끼 던전은 동굴형이었다.

지반은 단단했지만 어둡고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입구는 제법 넓었지만 던전 중심부로 진입하는 길은 여러 종류의 갈림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안전 요원들이 차원 게이트 앞에 피워 놓은 횃불이 아니었다면 아마 10미터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을 것 같았다.

‘여기가 던전.’

차원 게이트 근처에서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보였다.

방패, 창, 칼 같은 원시적인 무기를 든 플레이어들이 이마에 날카로운 뿔이 달린 2미터가 넘는 거대 토끼와 싸우고 있었다.

‘저건 토끼가 아니라 맹수네, 맹수.’

현성은 난생처음 실물로 목격한 몬스터의 모습에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이마에 달린 뿔도 뿔이지만 토끼 주제에 이빨과 발톱이 비상식적으로 날카로웠다.

인간의 연약한 뼈와 살 따위는 가볍게 찢어발겨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현성은 일단 다른 플레이어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두두두두!

탱커의 도발 스킬에 걸린 뿔 토끼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플레이어 파티의 탱커를 들이받았다.

꽈아앙!

커다란 소음과 함께 탱커의 몸이 뒤로 밀렸다.

나름 고가인지 방패는 멀쩡했다.

하지만 방패를 지탱하던 탱커의 두 팔은 멀쩡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악!”

커다란 비명과 함께 탱커가 방패를 놓쳐 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실수.

하지만 이곳에서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1~5레벨 초보 플레이어들이 사냥하는 최하급 던전.

사실상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는 모두 초보 중의 생초보였다.

플레이어 아카데미에서 3주간의 교육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 생활을 하며 평범한 삶을 영위하던 일반인들이다.

그런 그들이 사나운 몬스터를 상대로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완벽하게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른 탱커가 도발 스킬로 재빨리 어그로를 끌었다.

그사이 힐러들은 부상당한 탱커에게 힐을 넣어 주었다.

부상을 회복한 탱커가 다시금 방패를 집어 들었다.

2명의 탱커가 도발 스킬을 쓰며 뿔 토끼의 시선을 끌었다.

그사이 창을 들고 있던 딜러 3명이 연신 공격을 퍼부었다.

‘꽤 오래 걸리네.’

최하급 던전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했다.

한데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현성이 주시하고 있던 플레이어 파티는 8분여간의 혈투 끝에 겨우 뿔 토끼 1마리를 잡았다.

시선을 돌려 다른 파티를 살펴보았다.

대충 비슷비슷했다.

빠르면 3분 정도 걸렸고, 길면 8분 정도 걸려 뿔 토끼 1마리를 잡았다.

‘웬만해서는 나서지 않는 건가?’

현성의 시선이 안전 요원들에게 향했다.

그들은 만화책을 보거나 잡담을 떨고 있었다.

심지어 보드 게임을 하는 놈도 보였다.

웬만한 비명에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파티가 괴멸하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을 모양이네.’

안전 요원들은 초보 플레이어들이 뼈가 부러지건 살이 찢어지건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알아서 해결하겠지 하고 방치하는 수준이었다.

‘일단 조금 깊숙이 들어가야겠어.’

현성의 레벨은 1이다.

하지만 실제 능력치는 40~50레벨 플레이어와 맞먹는다.

‘이 정도면 충분해.’

고작 1레벨 던전.

뿔 토끼 정도는 얼마든지 혼자서 사냥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실수를 해도 위험할 일은 없었다.

‘은신.’

현성이 액티브 스킬을 발동시켰다.

정면으로 붙어도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첫 사냥인 만큼 최대한 조심했다.

은신은 일반 등급의 스킬인 만큼 효과가 뛰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두운 던전의 환경 덕분에 손쉽게 어둠에 녹아들 수 있었다.

현성은 던전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초보 플레이어들도 없고 정부에서 고용한 안전 요원들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말이다.

뿔 토끼 던전의 심층부에 위치한 차원 게이트.

이곳에서 막 안전 요원들의 근무 교대가 이루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근무 교대자인 이나일과 박보웅이 기존에 근무를 서고 있던 이수희와 김지수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 네 사람은 모두 같은 길드 소속이었다.

“응, 너희도 고생해.”

네 사람 중 가장 직위가 높은 이수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성공하셨습니까?”

“아니, 허탕이야.”

이나일의 질문에 이수희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저희가 근무 서고 있을 때 나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산 채로 생포해 놓겠습니다.”

“네, 저희가 꼭 생포하겠습니다.”

이나일과 박보웅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호언장담했다.

“그래, 꼭 그렇게 해 줘.”

이수희가 힘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걱정하지 마십쇼. 저희들 실력이면 충분합니다.”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잡아 놓겠습니다.”

자신만만한 두 사람의 말에 이수희의 얼굴이 확 하고 일그러졌다.

“그걸 누가 몰라? 안 나오니까 문제잖아?”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이수희의 신경질에 이나일과 박보웅은 마치 자신들이 잘못이라도 한 양 고개를 푹 숙였다.

하급 길드원인 그들로서는 길드의 간부인 이수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이나 플레이어나 조직 생활은 고달픈 법이다.

“힘내요, 언니. 며칠 안으로 꼭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김지수의 위로에 이수희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벌써 보름째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이수희는 4차 전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고레벨의 플레이어다.

그런 그녀가 이런 최하급 던전에 들어온 이유는 전직을 위해서였다.

1차, 2차, 3차, 4차.

전직 조건은 플레이어마다 모두 다르다.

영웅 등급의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초보 존에 얼쩡거리는 최하급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수희의 경우 4차 전직을 위한 조건이 상당히 손쉬운 편이었다.

우두머리 뿔 토끼 사냥.

뿔 토끼는 최하급 몬스터.

우두머리라고 해 봐야 고작 5레벨이다.

나타나기만 하면 1초 안에 숨통을 끊어 줄 자신이 있었다.

한데 이놈이 도무지 나타나지를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수희는 점점 짜증이 늘어났다.

“가자, 지수야.”

“네, 언니.”

김지수가 곁으로 다가오자 이수희가 스킬을 사용했다.

“어둠의 장막.”

스킬 시전과 함께 이수희와 김지수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둠의 장막은 자신과 시전 대상의 모습, 소리, 마력을 감춰 주는 영웅 등급 스킬이었다.

이 스킬 덕분에 이수희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대형 길드의 간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괜히 드잡이할 필요는 없지.’

이수희가 스킬을 시전한 이유는 경험치도 마석도 주지 않는 귀찮은 뿔 토끼 떼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함께 귀환 중인 김지수가 힐러였기에, 뿔 토끼들이 달려들면 자신이 모두 처리해야 했다.

“언니,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뭔데?”

“아, 글쎄 제3팀장님이랑 제2지원 팀 막내가 보급품 창고에서…….”

어둠의 장막 속에 들어간 이수희와 김지수가 잡담을 나누며 태연하게 뿔 토끼 던전을 가로질렀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그리 작지 않았다.

하지만 뿔 토끼들은 자신의 바로 곁을 지나치는 두 사람의 존재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어? 언니, 저기 사람 아니에요?”

한참 뜨거운 이슈거리를 떠들던 김지수가 화들짝 놀라며 전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람 맞아.”

이수희가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눈치도 빠르네.’

이수희는 진작 불청객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김지수가 못 본 것 같기에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다.

‘이제는 그냥 넘어갈 수도 없네.’

“와! 저 사람 여기까지 혼자 왔나 봐요. 아니면 파티원을 잃은 건가?”

김지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아닌 거 같아. 몸에 상처 하나 없잖아. 거기다 은신 스킬도 사용하고 있고.”

“아, 그러네요. 그럼 왜 혼자 여기까지 왔지?”

김지수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이수희의 표정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왜 혼자서 있는 거야?’

짜증이 솟구쳤다.

아무리 최하급 던전이라지만 던전은 던전이다.

‘또라이 자식.’

이수희의 눈에 비친 방문자는 최저가 무기와 갑옷을 입고 있었다.

무기와 갑옷에 플레이어 전용 장비 렌탈 업체의 마크가 찍혀 있는 걸로 봐서 장비를 구입할 돈도 없는 생초보였다.

‘미친놈.’

꼭 저렇게 객기 부리는 놈이 있었다.

던전의 깊숙한 곳에는 몬스터가 무척이나 많다.

하지만 웬만한 실력자 파티가 아니고서는 접근하지 않는다.

몬스터가 많다는 말은 차분하게 1마리, 1마리씩 상대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실수로 다른 뿔 토끼가 반응하기라도 하면 파티가 괴멸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당연히 던전의 심층부는 한산했다.

‘욕심도 많고 멍청한 놈이네.’

다수의 인원으로 파티를 짜서 들어왔다면 실력 있는 파티인가 보다 하고 이해라도 해 주련만 달랑 혼자 왔다.

‘암살자 계열인 것 같은데.’

은신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걸로 보아 확실했다.

‘귀찮아 죽겠네.’

저놈은 분명 뿔 토끼 1마리를 기습 공격할 것이다.

문제는 기습을 해도 초보 플레이어가 저런 저렴한 렌탈 장비로 뿔 토끼의 숨통을 한 번에 끊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뿔 토끼가 반격을 할 것이고 저 초보 플레이어는 죽음의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에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귀찮은 일도 없어서 좋았는데.’

귀찮은 일이 막 생겨 버렸다.

‘예상대로네.’

방문자가 은밀하게 뿔 토끼의 후방을 점했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내리꽂았다.

검에 은은한 마력이 느껴지는 걸로 봐서 스킬도 사용한 모양이다.

‘스킬 한 방에 뿔 토끼가 죽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최저 레벨 몬스터라고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

뿔 토끼를 일격에 죽이려면 30렙 중반 정도는 되어야 했다.

푸욱!

찌이익!

털썩!

‘……?’

이수희의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마구 떠올랐다.

‘뭐야?’

일격에 뿔 토끼가 죽어 버렸다.

* * *

‘간단하네.’

현성이 뿔 토끼의 심장을 관통한 검을 뽑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말과 달리 현성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살을 가르고 뼈를 꿰뚫는 감촉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아무리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생명체를 죽였다는 사실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파리나 모기 같은 벌레를 제외하고 다른 생명체를 직접 죽여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어. 익숙해져야 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를 위해서야.”

현성이 애써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진한 피비린내가 코를 타고 들어와 금방이라도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꾹 참았다.

‘꽝이네.’

몬스터의 사체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석은 몬스터의 사체에 남은 잔존 마력이 응축되어 탄생한다.

변화 없이 시체로 남았다면 마석을 얻을 수가 없다.

사실 단번에 마석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몬스터의 사체가 마석으로 변하는 경우보다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은신.’

현성의 몸이 다시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후 다른 뿔 토끼에게 다가갔다.

‘은밀한 기습.’

그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푸욱!

키익!

털썩!

뿔 토끼는 역시 일격에 죽었다.

잠시 뿔 토끼의 사체를 주시하던 현성이 다시금 은신 스킬을 사용했다.

그 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같은 작업의 반복.

오직 그것뿐이었다.

* * *

이수희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저렇게 쉽게 뿔 토끼를 사냥하는 초보 플레이어는 처음 봤다.

‘신입이 아닌가?’

하지만 장비를 봤을 때는 분명히 막 각성한 신입이었다.

거기다 뿔 토끼를 일격에 죽일 레벨의 플레이어는 뿔 토끼를 아무리 사냥해도 경험치를 얻지 못한다.

20레벨의 법칙.

자신보다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하면 정상적인 경험치와 마석 그리고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보다 20레벨 이상 낮은 몬스터를 사냥하면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레벨 차이가 날수록 몬스터 사체의 잔존 마력이 마석이나 아이템으로 변하는 비율이 줄어들고 20렙 차이가 나면 아예 변하지 않는다.

신입이 아니라면 1시간당 20만 원의 입장료를 내고 뿔 토끼를 잡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저 남자의 말.

아주 작은 중얼거림이었지만 이수희의 귀에는 그의 말이 똑똑히 귀에 들어왔다.

어쩔 수 없다.

익숙해져야 한다.

그 말의 뜻은 하나였다.

‘저 자식, 첫 사냥이 분명해.’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언니, 저 사람 정체가 뭘까요?”

김지수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수희에게 물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언니, 저 사람 조금만 더 지켜보다 가면 안 될까요?”

“안 될 건 없지.”

이수희도 저 정체불명의 사내에 대한 호기심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던전을 나가 봐야 딱히 할 일도 없고.’

원래는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드라마나 예능 프로를 보며 푹 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수희의 눈앞에 드라마나 예능 프로보다 더 재미있는 볼거리가 생겼다.

* * *

현성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냥에 열중했다.

은신 스킬과 은밀한 기습 스킬을 이용한 사냥.

무척 빠르고 순조로웠다.

마력이 부족할 일도 없었다.

현성의 마력 스텟과 정신력 스텟은 무려 30.

일반 등급 스킬 2개만 사용하는 터라 다음 목표물인 뿔 토끼를 향해 이동하다 보면 알아서 소모된 마력이 회복되었다.

‘마석이 나오기는 하는구나.’

마석도 얻었다.

고작 5개뿐이었지만.

‘그런데 레벨 업이 이렇게 힘든 거였나?’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상태창을 주시했다.

상태창에 나와 있는 현성의 레벨은 여전히 1이었다.

‘엄청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정말 쉽지가 않네.’

현성은 파티 사냥이 아닌 솔로잉 사냥을 했다.

쉽게 말해서 뿔 토끼 1마리의 경험치를 독식했다.

대략 9명이 모인 파티가 5분 정도 걸려 잡을 뿔 토끼도 거의 1초 만에 쓰러트렸다.

그런데 레벨은 여전히 1이었다.

‘게임처럼 경험치 바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

각성 시스템 창은 게임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플레이어의 편의를 위한 부분이 상당히 부족했다.

‘그래도 1시간 안에는 끝낼 수 있겠지.’

마력을 회복한 현성이 다시금 사냥에 나섰다.

1시간이 지났다.

레벨은 여전히 1이다.

2시간이 지났다.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최현성

플레이어 레벨 : 1

메인 직업 : 없음

스텟 : [힘 70] [민첩 70] [체력 70] [마력 30] [정신력 30]

미분배 스텟 : [0]

고유 능력 : [판매] [구매]

액티브 스킬 : [힐 - 일반 등급] [파이어볼 - 일반 등급] [도발 - 일반 등급] [매직 미사일 - 일반 등급] [실드 - 일반 등급] [은밀한 기습 - 일반 등급] [은신 - 일반 등급]

패시브 스킬 : [단단한 몸 - 일반 등급] [강인한 체력 - 일반 등급] [삼재심법 - 일반 등급] [초급 검술 지식 - 일반 등급] [초급 마법 지식 - 일반 등급]

‘뭔가 이상한데…….’

정말 이상했다.

레벨 업이 힘들기는 하지만 1렙에게는 예외였다.

1레벨 플레이어는 보통 하루에서 이틀 정도 사냥을 하면 레벨 업을 한다고 들었다.

현성이 사냥한 뿔 토끼의 숫자는 웬만한 파티원 전원을 레벨 업 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런데 레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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