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과 1-212화 (212/293)
  • 212.

    불려온 경비대장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살면서 경비대장을 지금까지 몇 번 만나 본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사람이 달랐다. 원래 경비대장이라는 직책이 이렇게 회전율이 빠른 직책인 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경비대장은 내게 익숙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상대의 신분이 왕자라는 것을 굉장히 의식하는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전하, 하명하십시오. 수도의 경비대원들은 전하의 명에 따라 죽는 시늉도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정말 필요 없는 각오였다.

    “에드워드에게 이미 말 들었을 것 같은데. 수도를 나가는 사람들을 검문하고 있잖아.”

    “예, 전하. 검문을 더 강화할까요? 삼중으로 검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나가야 할 사람들도 못 나갈 거 아니야……. 그런 거 말고. 몇 명씩 조를 짜서 특정 구역을 수색할 수 있어?”

    “물론입니다, 전하. 어디를 수색할까요?”

    “이곳과 이곳?”

    난 지도를 펼치고 몇 군데를 짚었다. 수도는 왕성 앞 광장을 중심으로 거리가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구조였는데, 큰 광장을 제외하고도 몇 군데, 사람들이 모일 만한 장소가 있었다. 그런 곳은 물론 상점이 형성되어 있다. 상점가가 있다는 말은, 말 옮길 만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라는 말도 된다.

    물론 시장도 빼놓을 수 없었다.

    “병사들이 노골적으로 돌아다녔으면 좋겠어. 공포 분위기도 조성하면서 말이야. 백성들이 겁을 먹으면, 왕족 시해죄를 저지른 죄인들을 수색하고 있다는 말도 꼭 전해 주고.”

    “시해죄! 감히 어떤 자들이 그러한 중죄를 저질렀습니까?”

    “아. 시해가 아니라 시해 미수다. 피해자는 나야.”

    “전하께서?”

    경비대장은 얼굴이 붉어져서 맹세했다.

    “반드시 이 대역 죄인들을 잡아 오겠습니다, 전하.”

    “그래. 안심이 되네.”

    못 잡을 것 같은데. 잡아 오라고 보내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경비대장을 내보내자 파이 공작이 물었다.

    “전하. 장소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소문내기 좋은 장소잖아요. 스승님도 그래서 하인 보내지 않으셨어요?”

    “…….”

    파이 공작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숨어 있는 자들이 제시간 안에 나오겠습니까?”

    제시간? 이거 제한 시간도 있는 일이었나?

    “안 나오면 말고요.”

    “…….”

    그렇게 난처하게 쳐다봐도 할 말이 없었다. 난 애초에 대단한 전략가인 적이 없는데 갑자기 기책을 쏟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실패하면 에드워드는 자기 방식대로 하려고 하겠지.

    난 그냥 내가 덜 스트레스 받는 방향으로 사태가 돌아갔으면 할 뿐이다.

    용병들을 불러 같은 지시를 내리자, 그들은 역시 분개했다.

    “그자들을 잡아 전하 앞에 무릎 꿇리겠습니다!”

    “감히 다른 분도 아니고 전하를…….”

    보통 남의 일에 저렇게까지 화내나?

    몽블랑 상단의 용병들답게 왕자 상대도 잘했다.

    난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서 그들을 잡았다.

    “다 가지는 말고, 반은 내 부탁 좀 들어줄래?”

    “물론입니다, 전하. 시키실 일이 있다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내 궁으로 가서, 지키고 있는 병사들한테 ‘미안한데 여기는 이제 우리가 접수한다.’고 말 좀 해 줘.”

    “예?”

    “잘 못 들었습니다?”

    * * *

    그레이는 몽블랑 상단 건물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따르는 머랭 경은 소공작이 드물게 머리끝까지 화난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머랭 경은 왕자를 수도로 호위한 뒤 모든 일에 회의감을 느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왕자는 눈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머랭 경은 수도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왕자가 눈을 뜬 뒤에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신단이 출발하는 것까지 보고 떠나자는 생각이 들었다.

    “로웰 몽블랑이 이곳에 있나?”

    그레이는 상단 직원에게 물었다. 상단 직원도 눈앞의 귀족이 몹시 화난 상태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도련님이 또 사고 치셨나? 놀라운 일도 아니다. 직원은 대답했다.

    “아니요. 도련님은 방문하시지 않았습니다. 도련님과 약속이 되어 계신가요?”

    “몽블랑은 어디 갔지?”

    그레이는 대답 없이 물었다. 귀족을 상대하는 데 익숙한 직원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도련님이 어디로 외출하셨는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몽블랑에게 전해. 그쪽이 제대로 일하지 않아서 내가 해결한다고.”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레이는 신문을 던져 놓고 뒤돌았다. 절차나 과정은 됐다. 그에게 조프리의 일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건 알지만, 이건 왕실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은가! 기자들을 추포해야 한다!

    문으로 향하던 그는 계단에서 내려오는 이델라 에클레어를 발견했다. 그가 이델라를 노려봤다. 그 표독스러운 눈빛을 받은 이델라는 깜짝 놀라서 멈춰 섰다.

    저 성격 나쁜 소공작이 왜 날 노려보고 있지?

    * * *

    로웰은 검문소 병사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뭘 이런 걸 또. 저희가 설마 몽블랑의 마차를 털어 보겠습니까?”

    “몽블랑은 검문 대상도 아닌걸요! 도련님도 참, 걱정이 팔자십니다.”

    병사들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 품으로 돈주머니가 사라졌다.

    “세상이 워낙 흉흉해서 말이에요. 걸고자 하면 걸리는 게 또 장사 아니겠어요. 갑자기 수도 통행이 어려워졌대서 직원들도 곤란해하더라고요.”

    “직원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주십쇼. 어이, 들었지? 융통성 있게 가자고. 몽블랑 상단이야 얼마나 믿음직한 곳인지 우리 다 알잖아?”

    “그럼, 그럼.”

    “여러분만 믿습니다.”

    로웰이 미소로 화답했다. 참 저 도련님은 인사성도 밝고 사람이 된 분이라고 병사들은 생각했다.

    이걸로 동서남북 모든 문에 윤활제를 쳤다. 언제고 왕자를 들고 달아날 수 있게 준비됐다.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로웰이 눈썹을 긁적일 때였다.

    “이런 법이 어디 있나? 성문을 통과하는 데 돈을 내야 한다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로웰은 고개를 돌렸다.

    성문 앞에 사람이 몰려 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성문을 통과하려는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 있었으니까.

    그러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남자는 줄을 서고 있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성안으로 들어온 사람인 듯했다. 그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경비대원들에게 화내고 있었다.

    “나라의 일을 집행한다는 사람들이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려고 해? 지금 성문을 통과한 사람들을 모두 이런 식으로 내보냈나? 검문을 하는 이유는 수상한 자, 위법을 행하는 자를 잡기 위함일 텐데, 그대들이 먼저 위법을 조장해!”

    “잠시만요, 귀족 도련님. 목소리 좀……. 다 듣지 않습니까.”

    “혹시 관리십니까?”

    병사들이 남자를 달랬다. 로웰은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고야 말았다. 기숙사장이잖아?

    “그게 중요한가? 이 일을 전하께 알려야겠네.”

    “도련님! 도련님!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아니, 근데 도련님께 돈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이 사람들과는 대체 무슨 관련이 있으셔서…….”

    기숙사장 뒤에는 말과 가벼운 짐만을 지닌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로웰은 그들이 누구인지도 한눈에 알 것 같았다.

    기숙사장이 대답했다.

    “동종 업계네.”

    “예?”

    “이 사람 귀족 맞아?”

    “기자 놈 아니야?”

    병사들은 수군거리더니 기숙사장을 밀쳤다.

    “됐으니까 가시죠. 험한 꼴 보시기 전에.”

    “이 사람도 다시 검문해야 하지 않나? 수상쩍은데.”

    “아니, 이자들이! 다들 듣지 않았나? 이 부정한 자들에게 왜 분노하지 않는가?”

    기숙사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그러나 검문하는 병사들에게 밉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없었다. 오히려 기숙사장을 향해 볼멘소리가 나오자, 기숙사장은 더욱 화나서 펄쩍 뛰었다. 그러다 기숙사장과 로웰의 눈이 마주쳤다.

    “로웰! 로웰 몽블랑! 여기서 만나다니!”

    기숙사장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로웰은 반갑지 않았다.

    “네, 선배.”

    “안 그래도 널 만나고 싶었는데! 아, 그렇지. 날 좀 도와줘. 지금 같이 온 분들이 있어서 시간을 더 낼 수도 없는데, 이 사람들 사정이 남 일 같지 않아서…….”

    기숙사장이 난처한 듯 말했다. 기자들이 구세주를 보듯 로웰을 쳐다봤다. 로웰은 내키지 않았다. 모른 척할 핑계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물었다.

    “같이 온 분들이요?”

    “그래. 장례식 때문에 말이야. 플랑베 백작 부인과 그 따님을 모시고 왔는데, 알다시피 백작 부인은 왕비님을 모시던 시녀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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