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반로환동전-77화 (77/103)
  • 산적 구자성 - [4]

    겨우 정신을 차린 김용성은 두 팔이 분질러져 덜렁거렸다. 거기서 전해지는 통증을 지금 신경 쓸 수는 없었다.

    덜덜 떨리는 두 손을 바닥에 짚은 채, 김용성은 총채주 앞에 절했다. 사죄의 절이었다.

    “정말이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지휘하던 놈들을 죄다 잃어 먹어서······”

    사실이 그렇다. 소총으로 무장한 서른 명의 전멸이 대체 어찌 가능한 일이었는지 다른 녹림도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탓에 양쪽에서 포위하는 것도 불가능했던 것 아닌가.

    다른 녹림도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실려 간 가운데, 김용성은 그 책임을 지기 위해 여기 남았다.

    한편 구자성은 가늘게 뜬 눈으로 김용성을 바라보았다.

    다른 녹림도들이 그렇듯 구자성도 잔뜩 지쳐있었다. 피로함과 짜증이 깃든 구자성의 얼굴을 보며 여기 모인 녹림도들은 그가 김용성을 도끼로 찍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부하들에게 손대는 법이 없는 총채주였지만,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그리고 구자성이 말했다.

    “자네가 미안할 게 뭔가. 그놈 하는 짓, 두 눈 뜨고 있으면서도 못 막은 건 나도 마찬가진데. 지휘관의 책임이라면 내가 더 크게 져야겠지. 그래서 나부터 벌할 건가?”

    김용성은 고통 속에서도 멍청한 얼굴로 눈을 껌벅였다.

    “예?”

    “날 벌 안 할 거라면 자네도 벌 못 하겠네. 다들 이번 일엔 합죽이가 되는 걸로 하지. 쪽팔리니까.”

    녹림도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구자성은 피곤한 얼굴로도 애써 웃어 보였다. 김용성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는 중얼거림이 그 입에서 연신 흘러나왔다.

    부하의 사죄를 들으며 구자성은 생각했다.

    죄송하긴. 내가 더 미안하지.

    마교 수괴가 수명의 연장을 대가로 녹림을 바치라 했을 때, 구자성은 그 요구에 제대로 응해주지 않았다.

    구자성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욕심쟁이여서 평생 키워온 조직을 포기하는 것은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어이 목숨과 조직을 저울질해야 한다면, 둘 중 하나를 정말로 포기해야 한다면······.

    구자성은 어느 쪽을 고를지 정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줄도 알 수 있었다.

    *******

    다음 날 밤에도 허풍개는 무림맹 인원들을 이끈 채 산채를 습격하러 나섰다.

    그리고 녹림의 산 앞에 다다랐을 때, 허풍개는 그럴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산채의 경비가 삼엄한 탓은 아니었다. 산의 입구를 지키는 것은 고작 두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그 두 남자는 제복을 입고 있었고, 그러니까 경찰이었다.

    “어······”

    무림맹 요원은 허풍개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녹림에서 경찰을 움직였나 본데요? 요새 습격을 받아 실종자가 여럿 생겼다는 이유로 보호 요청이라도 했나······”

    허풍개는 불만스레 경찰들을 노려보았다.

    경찰들이 썩 열성적인 태도로 경계 근무에 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찰들을 무시하고 산에 숨어들어 그곳의 산적들을 납치하거나 그 사지를 죄다 분지를 수야 없는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경찰의 체면을 구겼다간 분노한 경찰들이 뭔 보복을 해올지 모르는 일 아닌가.

    “돌아갑시다.”

    허풍개의 말에 무림맹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습격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길, 무림맹 요원의 얼굴에서 낭패감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차 안에서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하여간 구자성 그 양반, 꼴이 참 우습게 됐습니다. 다 늙어서 패장이 되다니, 이게 무슨 꼴이랍니까?”

    허풍개도 이게 사실상의 항복선언이라는 걸 알았다.

    관에 보호받는 무림 조직이라니? 사실상의 봉문 선언 아닌가. 무림 조직으로서의 체면을 완전히 벗어던진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곧 구자성에게서 전의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무림맹 요원은 신나는 목소리로 앞으로 있을 일을 떠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조금 시간이 흐르면, 무림맹 위원 중 하나가 녹림에 가서 화해를 청할 겁니다. 이쪽에서 먼저 굽혀주는 척하면서 체면을 조금이나마 세워주는 거죠. 그럼 저쪽은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일 테고 녹림은 무림맹에 다시 속하게 될 겁니다.

    그러고도 녹림은 여전히 한국 무림 최대의 단일 문파겠지만, 예전만큼의 위세를 부릴 수는 없게 될 테지요!”

    허풍개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별로 관심 없는 얘기입니다.”

    “아? 예, 하긴 그렇겠습니다. 곧 모산파에 가실 분이시니 한국 무림과는 더 상관이 없겠군요······.”

    “그보다 전 이대로 흐지부지 넘어가는 게 맘에 안 듭니다. 구자성 그놈 맘대로 전의 상실하면 다 끝나는 겁니까?”

    “예? 그럼······”

    “사과라도 한마디 들어야겠습니다. 구자성 그놈 입에서 직접 말입니다.”

    무림맹 요원은 그 요구에 당황한 눈치였지만 그렇다고 거절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이 짧은 기간, 녹림과의 전쟁을 홀로 벌인 것은 이 절세고수였지 않은가. 그렇다면 전쟁을 끝낼 권리도 그에게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 분 후,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었던 무림맹 요원은 아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자성이, 요구에 응하겠다더군요······.”

    *******

    구자성과의 독대가 성사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허풍개는 맞은편에 앉은 구자성을 바라보았다.

    구자성은 호기롭게 굴고 싶은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야, 청출어람이라더니 그것참. 무공이 참 놀랍습디다. 내가 옆에 있으면서도 부하들 조져지는 걸 지켜만 봐야 하는 게, 어찌나 무력감이 느껴지는지······”

    허풍개는 그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백기 들 겁니까.”

    구자성의 얼굴에 일순 분노가 스치고 지나간 것을 허풍개는 보았다. 구자성이 불만스레 대꾸했다.

    “그래야지요 뭐. 달리 어쩌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저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저번과 같은 일이라니?”

    “납치. 그런 수작 또 안 부릴 거라 어떻게 장담하느냐고.”

    “아, 그거······ 지금 대화 녹음 중이던가요?”

    “예.”

    구자성은 뻔뻔할 만치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그럼 내 여기서 인정하지요. 내가 그 기지배 납치하려 했습니다. 이름이 이바람인가 하는 그 애 말이요.”

    “왜?”

    “그야 뭐, 저번에 대결의 결과가 분했으니까 설욕하려 했지요? 이 나이 처먹고 참 주책이었습니다그려.”

    허풍개는 그것이 진짜 이유가 아닌 걸 알고 있었다. 납치와 인질극에 따른, 내력전수 요구를 통한 수명연장.

    그 진짜 목적을 떠올리고는 문득 생각했다. 만약 저놈이 그놈의 내력전수를 순수하게 요청했다면, 자신은 들어줬을까?

    자신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 일 년의 내력쯤은 전수해주었을지도. 그런 요구를 들어줄 정도로 자신은 정신병자가 아니던가.

    그러나 다행히도 구자성은 원하는 게 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부탁할 작자가 아니었다. 평생 빼앗으며 살아온 저 산적은 무리한 부탁을 하여 거절당하느니 먼저 약탈에 나서는 작자가 아닌가.

    애초에 구자성은 고작 일 년 치 진기를 전수해주었다고 만족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전부를 전수하길 요구했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요구다.

    ‘누구한테 수천만 원씩 빌려주는 호구라도, 전 재산은 도저히 못 빌려주는 법이지.’

    구자성이 계속 말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거 내가 벌인 짓이라 인정하고, 이제 절대 안 그러겠습니다. 혹시 그 기지배 나중에 납치당하면 바로 짭새들한테 달려가서 이 녹음 들려주고 내가 벌인 일이라며 꼰질러요. 그래도 내 불평 안 하지요. 여기까지 말했으면, 됐습니까?”

    허풍개는 그 약속을 믿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구자성이 몸을 사리리란 것은 믿었다. 울분에 미쳐 길길이 날뛸 때조차 최소한 몸 사릴 계산은 해온 것이 저 남자 아니던가.

    나중에라도 보복하려 들지 모르지만, 최소한 저번과 같은 방식은 피하려 들 것이다. 그 정도면 허풍개로서는 지난 며칠 고생한 목적을 달성했노라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야.”

    허풍개가 고개를 끄덕였고 구자성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피로와 굴욕에 겨운 한숨.

    허풍개가 요정을 나섰다.

    녹림과 무림맹의 무림인들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녹림도들이 눈을 부라리면서도 주춤하는 가운데, 무림맹의 무림인들은 기세등등하게도 소리 높여 환호했다.

    “무적무적자!” “무적무적자!”

    허풍개는 자신을 향한 존경 혹은 경외의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부담스럽게 여기지는 않았다. 절세고수가 전쟁을 홀로 치러낸바 기어이 항복선언을 얻어낸 마당 아닌가.

    절세고수가 초인 중의 초인이라지만 그들이 직접 싸워서 문파 간의 항쟁을 승리로 이끄는 일도, 이만한 위용을 보이는 일도 드물다. 확실히, 이번 일은 무림의 전설이 될 만하다.

    “무적무적자!”

    쏟아지는 환호를 들으며 허풍개는 차에 몸을 실었다.

    운전석에서 이도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갈까요?”

    *******

    납치 사건 이후로 이도혁은 죄인처럼 굴었다.

    그것은 친구 정진영이 저지른 일이요, 그가 계속 사무소에 드나든 것에는 이도혁에게 책임이 있는 셈 아닌가.

    지금도 이도혁은 움츠러든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일은 잘 끝났습니까?”

    “그럭저럭.”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제 똥 치우시느라······.”

    허풍개가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정적이 흘렀다.

    한참을 뜸 들인 끝에 이도혁이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진영이는······?”

    그제야 허풍개가 말했다.

    “정진영? 그놈은 더 신경 쓰지 마요. 탄광에 끌려가든 뭔 꼴을 당하든 대가를 치러야 할 테니까.”

    “아, 용서해달란 게 아닙니다.”

    “그럼.”

    “저번에 저나 그놈이나 똑같은 놈이라 들었던 게 생각나서요. 이풍 사장님이 그러셨는데요. 유유상종이라고······, 정말 그럴까요?”

    “글쎄, 애초에 이풍 그 양반 말에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이도혁이 하소연했다.

    “확실히, 그놈이나 저나 이상한 로망에 집착하고 있었지요. 제가 무협지 읽을 때 그놈은 조폭 만화 읽었다는 게 다를 뿐이었지······ 그런데 막상 그놈이 조폭 만화 주인공처럼 구는 꼴을 보니 멋있단 생각보단 역겹단 생각이 앞서던데요.

    정말이지, 그놈이 그런 짓 할 줄은 몰랐는데······ 마교도에 그 수하라니? 그게 대체 무슨······”

    정진영의 형님, 김성진이 어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오은림이 그자를 오가장에 끌고 갔다. 이후로 어떻게 처리했는지 굳이 보고해오지는 않았다. 허풍개로서는 그저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든 아비의 원수를 갚았으리란 사실만 확신할 수 있었을 뿐이다.

    “마교도라 해서 무슨 대단한 악당은 아니었죠. 김성진인가 하는 놈, 한국 무림을 전복하겠다든가 위대한 천마의 정복에 앞장서겠다든가 하는 거창한 마음은 없었을걸.”

    “그럼요?”

    “그저 명령대로 애새끼들 조종하다가, 그 대가로 빡촌 하나를 영역권으로 받았을 뿐이겠지.”

    “겨우 그것 때문에 중고딩들 시켜서 사람들 쏴 죽이고 다녔다고요?”

    ‘죽이다’는 말에 허풍개의 표정이 굳어졌다.

    “깡패들 하는 일이 원래 다 그래. 좆만한 걸 얻겠다고 사람 담그는 게 일이지. 무림 깡패라고 다를 것 없고.”

    “하기야 저 보고 맨날 무림인은 깡패라고 말씀하셨죠. 좋은 일 하고 싶으면 협객이 아니라 소방관이나 하라고. 그 말씀······”

    이도혁은 뭔가 말하고 싶은지 입을 달싹였다.

    “그 말씀, 뭐?”

    허풍개가 재촉하고서야 이도혁은 겨우 물었다.

    “그 말씀들, 허풍개 의사님이 하신 말씀이라 생각해야 할까요?”

    허풍개는 자신의 원래 신분을 다시금 부정하려다 그만두었다. 깡패 지망생 하나를 줄일 수 있다면야 뭐.

    “아마도. 허풍개도 그리 말했을 테니까.”

    “예, 그렇다면야······.”

    이도혁은 조금 주저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무림에서, 은퇴하겠습니다. 이 일에 발 끊지요.”

    확실히 그 대답은 허풍개에게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림인 지망생 노릇 그만두면 달리 할 일은 있나?”

    “지금부터 생각해봐야겠죠?”

    “이풍 그 양반이 퇴직금 주면 그걸로 자그마한 사업이라도 시작해보든가.”

    이도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 퇴직금도 안 받기로 했습니다.”

    “그건 왜?”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무림인 그만두겠단 놈이 무림의 돈 받기도 뭐하고요.”

    허풍개는 그 결정을 말리려다 그만두었다. 그러는 대신, 문득 생각난 것을 말했다.

    “기껏 무공 익히고서 하는 일이 꼭 무림인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 혹시 황군 들어갈 생각은 없나?”

    “황군이요? 거긴 대졸자 이상이어야 한다던데.”

    “다른 방법도 있다더라고. 무공 어느 정도 익힌 사람이 특수부대에 십오 년 이상 복무하면 황군에 들어갈 자격이 생겨. 특수부대에 자원입대하면 군에서 영약도 지원해주니까, 대단한 벌이 없이도 고수가 될 수도 있겠고. 십 년 이상 전역 불가능한 계약으로 묶이긴 하겠지만.”

    “아, 그건 처음 듣는데······.”

    “그리 군인 노릇 하지 않더라도 그밖에 할 일은 더 있지. 경호라든가 뭐 그런 일, 원한다면 소개해 줄 수도 있는데.”

    이도혁은 문득 그 제안에 혹했다.

    자그마치 절세고수 무적무적자가 소개해 주는 일이다. 설령 조그만 경비업체에 알선해주더라도 그 일이 정말 보잘것없을 수는 없다. 소개받은 쪽에서는 소개해준 절세고수의 눈치를 살펴야 할 것 아닌가.

    그렇다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기는 민망한 일이었다. 이도혁이 물었다.

    “저한테 그렇게까지 해주실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허풍개가 대답했다.

    “무적비비탄은 말이요, 친구 하나 없는 인간이었어. 가족도 없으니 인간관계가 끔찍하게 협소했지. 이런 왕따 새끼들 특징이 뭔 줄 아나?”

    “잘······”

    “가족과 친구를 대체할 다른 관계에 집착하는 거지. 외톨이 아줌마들이 길고양이 챙기는 데 집착하는 것처럼. 허풍개는 사제관계에 집착했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유사 부모 관계로 여겨서는, 제자한테 이것저것 챙겨주는 데 아끼는 게 없었지.

    그러니까 제자의 제자 또한 챙겨줄 필요가 있어. 그리고 그건 자기 맘 편해지자고 챙겨주는 거니까, 딱히 부담스러워할 필요도 없고.”

    이도혁은 그 말에 어찌 반응해야 하나 고민했다. 아무리 그래도 거절해야 하나, 아니면?

    “그래 주신다면, 그저 감사히······.”

    허풍개가 퉁명스레 말했다.

    “감사하면 운전이나 똑바로 해요. 얼마나 남았어?”

    “아, 병원까지요. 앞으로 이십 분······”

    *******

    차에서 내린 허풍개는 병원에 들어섰다.

    월녀, 하아린이 지내는 병원이었다.

    자신은 어지간해선 잘 먹지도 않는 과일도 한 바구니 샀다. 사과를 직접 깎아주면 좋아할까? 모른다. 그래도 해봐야지.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녀에게 남은 수명은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그녀의 병실 앞에서 허풍개가 걸음을 멈추었다. 과일 바구니를 든 그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병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지만 허풍개는 그 너머를 볼 수 있었다.

    월녀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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