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세기 반로환동전-76화 (76/103)
  • 산적 구자성 - [3]

    주변에도 어둠이 둘러싼 가운데,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이 필요했다.

    김용성은 자신이 지휘하는 녹림도들을 바라보았다.

    그 수가 서른, 전국에 있는 녹림도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적은 수지만 오늘 여기 동원된 숫자를 생각하면 많은 수였다.

    녹림에서는 무림맹의 시선을 피하고서 함정을 파기 위해, 엄선된 인원 백 명가량을 여기 불러 모았다.

    김용성은 그중 삼 할을 거느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책임이 막중하다.

    절대 실수해선 안 돼.

    스마트폰을 보니 또 한 명의 신호가 끊겼다. 이쯤 되면 무리에서 떨어져 독자적으로 매복하고 있던 인원은 전멸한 셈이다.

    끔찍한 스트레스에 신경이 곤두섰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압박감에 김용성은 멀쩡히 있던 부하들에게 쏘아붙였다.

    “사주경계 똑바로 해.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그 새끼 접근하게 내버려 뒀다간······”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사각이 없도록 여럿이서 각자 맡은 범위를 경계해라.

    너희가 고수든 아니든 절세고수의 반응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러니 뭔가 접근했다 싶으면 대뜸 총질해라. 동료들에게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나중에 하고······

    여기 오기 전에 브리핑해둔 것의 반복이었다.

    그때 저쪽에서 소리가 났다. 발소리 같지는 않았지만 정말 누군가 접근해온 게 아니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절세고수의 경공이라면 평범한 인간의 발걸음과는 다른 소리가 날 것 아닌가.

    방금 윽박지르다시피 지시를 반복한 보람이 있었다. 쏴, 하고 명령하기도 전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한두 명이 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 소리는 정말 지상에서 울려 퍼지는 우레 같았다. 주민들이 신고하여 경찰이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지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쏴도 되나? 죽일 각오로 싸우라는 지시를 듣긴 했지만, 정말 죽이지는 말라고 들었는데.

    얼마나 쏘아댔을까. 김용성이 손을 들며 제지에 나섰다.

    “그만.”

    정말 누가 다가왔던 게 맞는가, 적이 총에 맞았는가 확인하기 위해 녹림도들은 총구가 향했던 방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구멍이 잔뜩 생겨난 그 자리에 무적무적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는데 괜히 총질한 것인가. 직접 보니 그것은 또 아니었다.

    “검?”

    바닥에 꽂힌 칼 한 자루를 보고 모두 눈을 크게 떴다.

    동양적인 검, 태극검으로 보였다. 저게 왜―

    칼 위로 벼락이 쳤다.

    어둠 속에 내리친 벼락은 마치 주변의 시간과 빛을 삼키고서 내리치는 것 같았다.

    벼락이 떨어지는 속도는 지나치게 빠르다. 그래서 낙뢰를 볼 때, 그것은 시간의 연속에서 번개가 내려오는 게 아니라 갑작스럽게 번개가 담긴 전혀 다른 사진을 오려 붙인 것처럼 불연속적인 한 장면으로 느껴진다.

    어둠 속의 번개, 흔해빠진 공포 영화의 연출.

    그리고 섬광이 모두의 망막에 강렬하게 파고들고 나면, 그 빛이 사라진 뒤 세상은 그 전보다 훨씬 깜깜해지고 만다.

    이게 무슨······.

    김용성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다른 부하들은 훨씬 더 당황한 모양이었다.

    “안 보여, 누가 쫌······”

    도움을 구하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가까이서 울린 천둥 탓에 고막 또한 멀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용성은 애써 호흡을 고르고는 외쳤다.

    “모두 가만히 있어! 모두 가만히······”

    다행히 여기 모인 모두가 정예였다.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상황이지만 당황해서 아무 데나 난사하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아군 오사로 사망자가 여럿 나왔을 텐데,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다들 안 보여서 당황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다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여기저기 부딪치는 걸까. 쿵, 쾅, 우지끈. 아직도 멍한 고막 속으로 괴상한 소리가 연신 파고들었다.

    김용성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도 방금 섬광의 빛이 잔상으로 망막에 남아있었다.

    젠장, 대체 뭐가 뭔지······.

    김용성은 약 십 초 정도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제야 눈앞의 장면이 그럭저럭 눈에 들어왔다.

    이미 잔뜩 수축했던 김용성의 동공은 공포로 인해 더욱 작게 수축했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무적무적자가 보였다. 어둠 속에는 그 남자 한 명뿐이었다.

    그 외에 서 있는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 어떤 부하도 이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 김용성은 기절할 듯이 놀라 총구를 천천히 들어올리며 생각했다.

    이건 말이 안 되는데. 방금 그 순간이 길게 체감되긴 했지만 실제로는 수십 초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그 모두를 쓰러뜨리는 건 말이 안 된다. 수학적으로도 말이 안 돼. 한 번 주먹질에 일 초가 걸리고 그때마다 한 명씩 쓰러뜨렸다 한들 불가능한 일 아닌가.

    김용성은 영상 속 저 절세고수의 기예를 떠올렸다. 기관단총의 연사를 막아내는 장면이었다. 그 또한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짓이 가능하다면 이것도······.

    김용성이 잠시 멍하니 있던 사이에 무적무적자는 바로 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미 총을 쏘거나 달리 반응하기엔 너무 늦었다.

    보이지 않는 속도로 뻗어온 오른손이 김용성의 입을 틀어막았다.

    무적무적자의 왼손도 뻗어왔다. 그 손은 김용성의 오른팔을 붙잡더니, 반 회전 했다.

    그와 함께 반 회전해 버린 김용성의 오른팔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김용성은 비명을 내지르고 싶지만 입이 막혀있었으므로 그럴 수 없었다.

    이윽고 무적무적자의 양손이 교차하더니 왼손으로 김용성의 입을, 오른손으로 김용성의 왼팔을 붙잡았다.

    또다시 반 회전, 김용성은 남은 팔마저 꺾였다.

    틀어막힌 입을 대신하여 뒤틀린 양팔의 감각이 비명 지르고 있었다. 끔찍한, 아주 끔찍한 통증 속에서 김용성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허풍개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에는 쓰러지고 사지가 꺾인 산적들이 남아있었다. 그 누구도 죽지 않았지만 언뜻 보기에는 그 모두가 시체로만 보였다.

    이 무리의 전멸이 사령탑에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삼 분 후였다.

    그들로부터의 연락이 끊기자 구자성은 서른 명이 전멸했음을 깨달았다.

    “씹새끼가······”

    총채주가 이를 악무는 가운데 모두가 몸을 떨었다. 그 시선이 그들을 향했을 때는 더욱더.

    구자성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다들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마라.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서 행동해.”

    그때 머리 위에서 나뭇잎이 떨어졌다. 모두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뭔가가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밤에 새가 돌아다니나?”

    누군가 중얼거리는 가운데 구자성이 말했다.

    “새 아니라 칼이다.”

    “예?”

    “그놈도 어검술 쓰잖나.”

    “어, 그렇다면 어째야······”

    “날아다니게 내버려 둬. 칼에 총 쏜다고 칼이 죽나? 쓸데없는 짓이다. 신경 쓰이게 하다가 긴장 풀린 틈에 덮치려나 본데, 다가오면 그때나 붙잡을 준비해.”

    월녀의 어검술을 상대해본 자로서 내린 적절한 지시였지만, 무적무적자를 잘 모르는 자로서 내린 부적절한 지시이기도 했다.

    지금 저 위에서 날아다니는 태극검의 칼자루 끝에는 낚싯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구자성은 그 사실을 몰랐다.

    태극검이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동안 거기 연결된 낚싯줄은 나뭇가지에 고정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저 나무들 사이에 곡예사가 밟고 다닐 가느다란 발판이 연결되고 있단 사실 또한 구자성은 알지 못했다.

    밤중에 반짝거리지 않도록 낚싯줄을 검게 칠해둔 보람이 있었다.

    이렇듯 허풍개가 나무들 위에 줄을 연결하는 것은 어검술을 쓸 수 있게 된 요즘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즐겨 쓰던 방법이었다.

    허풍개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자갈 따위에 낚싯줄을 묶어서 나뭇가지에 얽히도록 던지곤 했다. 무적비비탄일 적에는 BB탄에다 줄을 꿰어서 여기저기 발판을 마련했다. 어검술로 그러는 것은 그저 소리 내지 않고 더 멀리에 그럴 수 있게 됐을 뿐이다.

    그리고 허풍개가 즐겨 쓰던 방식이 하나 더.

    투욱, 하고. 저 너머에서 뭔가 소리가 났다.

    누군가 급히 뛰는 듯한 발소리가 어둠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쫓아!”

    지시에 따라 모두들 소리가 난 쪽으로 부리나케 달렸다. 모두 산에서 달리는 데 조예가 있었다. 소리의 근원을 금세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저거?”

    큼지막한 돌이 바닥을 튕기며 내려가고 있었다. 투욱, 투욱. 그 소리가 마치 사람 걸음 같았다.

    구자성의 눈썹이 분노로 떨렸다. 뭔가를 던져서 시선을 분산하는 것은 흔한 수법이다. 허풍개는 자갈을 던져서 저러는 걸 잘했지 아마.

    그걸 어찌나 잘하는지, 그 수법에 심지어 절세고수조차 넘어가곤 했음을 당해봐서 알고 있었다.

    “속았―”

    바로 그때, 다 함께 달려온 마당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뜀박질이 느려 맨 뒤에 있던 인원이 하나 있었다. 나무 위의 사냥꾼은 그 표적을 놓치지 않았다.

    어둠이 짙었으므로 사냥꾼의 하강에는 그림자가 깔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아나콘다가 지상을 습격하듯 저 나무 위에서 뭔가가 휙 하고 내려 오더니, 달리다 말고 녹림도가 실 풀린 꼭두각시 인형처럼 고꾸라졌다.

    방금 지상을 덮쳤던 무언가는 나무 위로 다시 올라가더니 사라졌다.

    털썩, 하고. 산적 하나가 쓰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제야 모두 뒤를 돌아보고는 기겁했다.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쓰러진 녹림도 하나만을 뒤늦게 발견했을 뿐이었다.

    “씨발······

    스트레스를 중화시키기 위한 욕설. 구자성은 쓰러진 녹림도를 구석에 눕혀두라 지시하고는 씹어 내뱉듯 말했다.

    “서로 붙어.”

    공포 속에서도 모두 지시에 착실히 따랐다. 빈틈없는 테르시오 방진을 구성하듯, 모두 총을 앞으로 겨눈 채 밀착했다.

    일사불란한 부하들의 모습을 보며 구자성은 속으로 욕설을 지껄였다. 여기 수류탄 하나 까던지면 다 뒤지겠군.

    상황 자체가 주는 불쾌감이 있다. 구자성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그렇다.

    패거리를 거느렸는데도 움츠러들어야 하는 이 상황이 구자성에게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한 마리 늑대 앞에서 뭉친 양 떼처럼 굴어야 하는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 일격 일탈을 하겠다 이거지.

    영리하다고 칭찬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 승천한 만력제가 돌아온들 총 든 수십 명에 절세고수까지 섞인 이 무리를 정면으로 당해내진 못할 것 아닌가. 정면으로 맞붙을 생각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리 앞에 기어이 접근해서는 사냥을 거듭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 와중에 또다시 무언가가 덮쳐왔다. 방금보다 더 가까이 뭉쳐있었기에 이번에는 몇 명이 그 순간을 보았다.

    머리 위 나무에서 아래로, 사람 하나가 거꾸로 떨어졌다. 떨어져내린 그는 손을 뻗어 아래에 있던 녹림도의 목을 조르더니, 녹림도가 쓰러지기도 전에 다시 나무 위로 상승했다.

    허풍개는 자신의 발목에 낚싯줄을 묶어두었고 강하게 하강하면 줄의 반동에 따라 다시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 몸이 나무 위로 상승하는 사이, 구자성은 인기척이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위로 올라가는 그림자를 본 구자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과연 절세고수라, 예상하지 못한 이 습격에도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뒤져―!”

    그가 들고 있던 손도끼가 회전하며 날아갔다. 그리고 손도끼가 바로 앞에 도달한 순간, 허풍개는 정확히 그 도낏자루를 붙잡더니 다른 누군가에게 던져 버렸다.

    “악······.”

    도끼날이 불운한 녹림도의 어깨에 꽂혔다. 그가 비명지르는 그때 허풍개는 다시 나뭇가지 위에 올라와 있었다.

    나무 위의 허풍개와 지상의 구자성이 눈을 마주쳤다.

    허풍개가 웃었고 구자성의 입이 떨렸다.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간 구자성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그 도끼질 한 번에 나무가 뒤로 넘어갔지만 이 초인적인 일에 감탄해줄 사람은 지금 없었다.

    놀라거나 당황할 사람조차 없었는데, 나무 위의 허풍개는 이미 줄 위를 달리고 있었다.

    나뭇잎들 사이로 허풍개의 모습이 사라졌다. 또 있을 습격에 대비해 수십 명의 녹림도들은 계속 뭉친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체감하기로는 천 년 같은 시간이 흘렀다.

    질척거리는 공포가 무게가 되어 산적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공포가 바로 옆에 선 총채주가 잔뜩 분노한 탓에 느껴지는 것인지, 언제 또 습격이 올지 알 수 없기에 느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허풍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녹림도들이 산을 내려간 것은 그로부터 수 시간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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