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42. 배우의 하루는(2)
정상을 넘어선 진호는 공터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기구들은 허름했지만 그럭저럭 구색은 갖추고 있었다.
고정된 중량으로 벤치프레스를 하고 다리에 가방을 감아서 턱걸이를 했다.
슥슥, 가볍게 움직이는 몸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보고만 있으니까 힘든지 모르겠네요. 우리 스텝 중 한 명이 도전해 봐도 될까요?”
“도전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편하게 와서 운동하세요.”
“제가 한 번 해 볼게요.”
그나마 평소에 운동 좀 하는 스텝이 나섰다.
바벨을 숙숙 밀어내고 턱걸이도 제법 힘차게 했다.
하지만 그건 초반 뿐.
운동이 30분을 넘어가자 금세 헉헉거리며 한계를 드러냈다.
“허억. 헉. 이 상태로 10시까지 계속 하는 겁니까?”
“컨디션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그렇죠. 무거운 중량 빼고 하세요. 괜히 다치면 손해에요.”
“와. 체력 진짜 죽이네요. 저도 헬스 좀 해서 아는데 운동 강도가 전혀 녹록하지 않아요. 완전 고중량 운동인 건 아니지만 지구력이 와······”
땀만 조금 묻힌 채로 슥슥 턱걸이 하는 진호를 보며 스텝이 혀를 내둘렀다.
운동 좀 한다하는 연예인들을 여럿 만나 봤지만 이정도로 수행능력이 좋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진호의 체중이 많아봐야 70kg 정도일까.
다리에 15kg 정도의 가방을 매단 채 턱걸이를 20개 이상씩 연달아 하고 있다.
이건 굉장한 수준이었다.
“이왕 카메라 돌아가는 거 재밌게 해 볼까요?”
“뭐가 있어요?”
“그냥 운동을 하다보니까 되는 동작인데······”
진호가 가방을 벗어 던지고는 한 손으로 매달렸다.
그리고는 힘을 딱 주어 몸을 당겼다.
한 손으로 턱걸이를 한 것이다.
“와. 그게 한손으로 되는 운동입니까?”
“대충 요령이 잡히면 할 수 있어요. 등 근육 쓰는 법만 알면 되거든요. 이런 것도 하다보면 되는 거고.”
이번에는 양 손으로 철봉을 잡고 하늘을 걸었다.
손은 고정되어 있고 다리만 움직이는 거라 무중력에서 걷는 느낌이 났다.
스텝들은 신기한 광경에 연신 박수만 쳤다.
“이런 걸 매일 한다는 거죠?”
“최대한 기능성 운동 쪽으로 하죠. 액션을 소화하려면 유연성과 민첩성도 받쳐줘야 하는 거고.”
“연기를 위해서. 이거 보통 노력이 아니네요.”
“하하. 하다보면 재미있어요. PD님도 같이 해 보실래요? 이번에는 민첩성 훈련인데.”
진호가 바닥에 선을 두 개 그리며 물었다.
턱걸이나 벤치프레스보다는 쉽지 않을까?
PD가 까짓것 한 번 해보자고 미끼를 덥석 물었다.
그리고 그 날.
PD는 처음으로 남자에게 업혀서 산을 내려왔다.
#
2사옥에 도착하니 이미 하윤이와 세미는 연습 중이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아닌 자유 연습이었다.
대사를 웅얼거리고 거울을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계속해서 체크했다.
“둘 다 오늘은 일찍 나왔네?”
“아! 선생님.”
“벌써 오셨어요?”
쪼르륵 와서 예의바르게 꾸벅.
안 봐도 촬영이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모양새다.
‘이것들아, 평소처럼 해.’라고 진호가 타박했지만 예쁜 얼굴 착한 얼굴 보이기 바쁘다.
“스텝분들 쉬게 도와드리고. 씻고 나올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네.”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열의가 넘쳐흐른다.
푹 퍼진 PD는 하윤이가 부축하고 세미는 미리 준비해둔 음료를 나눠 주었다.
확실히 촬영임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었다.
[미스터 홍. 오늘은 꽤 부산하군요]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던 진호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외국인과 맞닥뜨렸다.
2사옥에서 교육 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포울이었다.
[포울. 미안합니다. 촬영이 있는 걸 알고 애들이 들뜬 모양이네요]
[아. 저게 최 대표가 말한 촬영팀입니까? 나도 나오는 건가요?]
[물론이죠. 포울이 가르치는 장면도 전부 내보낼 겁니다]
[오. 오늘은 단단히 집중해서 해야겠군요]
[하하. 두 녀석한테 똑 부러지게 교육을 해 주세요]
포울은 벨로스의 소개로 한국으로 넘어왔다.
고국에서는 연극으로 상당히 유명했던 인물.
지금만 해도 그를 원하는 극단은 한 손으로 다 담지 않을 만큼 많다.
사실상 교육자로 남기에는 능력이 지나치게 좋은 사람.
다만, ‘짧은 가르침’이라는 벨로스의 말에 홀딱 넘어가서 왔다가 세미에게 빠지고 말았다.
그녀의 재능에 매료되어 완전히 정착하고 만 것이다.
“······어? 저 사람 혹시 벨 루안 포울 아닙니까?”
푹 퍼져있던 PD가 포울을 알아봤다.
나름대로 연화, 연극 쪽 경력이 많은 만큼 유명인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2사옥에서 애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벨로스 감독님 소개로 인연을 맺었죠.”
“포울이 여기서 애들을 가르치고 있다고요?”
“한 번 보실래요?”
“그럼요. 당연히 봐야죠. 세상에, 포울이라니.”
PD는 흥분한 꼬마의 얼굴이 되어서는 포울을 눈으로 쫓았다.
언제 늘어져 있었냐는 듯 스텝들도 채근했다.
확실히 프로는 프로였다.
“포울. 헉. 헉.”
아닐지도.
#
연기 연습은 굉장히 빡빡하게 흘러갔다.
포울의 교육 방식은 철저한 실전이었다.
주제를 하나 던져주면 그에 맞춰서 즉흥적으로 연기를 뽑아내야 했다.
어떨 때는 웃고, 어떨 때는 울고, 어떨 때는 화를 냈다.
빠르게 변하는 감정 선을 그때마다 잡아채는 건 프로 연기자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 더! 쥐어짜!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감정으로!”
“아니야! 아니야! 난 아니야!”
“모자라! 더 끌어올려! 속 안에 있는 감정을 전부 토해내라고!”
“아니야! 아니라고!”
여기에 진호는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상황에 맞는 배경 연기를 직접 해 주면서 두 아이의 연기력을 끌어 올렸다.
포울이 내주는 즉흥적인 상황마다 전부 다른 배경 연기를 해 주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설픈 배경연기는 되레 독일 될 뿐.
세미의 수준에 맞추려면 정극에서도 굉장히 깊은 수준까지 연기를 뽑아 올려야 했다.
그걸 몇 번이나 바꿔가는 연기하는 거니 달인 수준이 아니라면 흉내도 못 낼 경지였다.
“스톱. 스톱. 세미 감정선 다잡아. 흐트러지고 있어. 화는 머리에서 내는 게 아니야. 가슴으로 내는 거라고.”
“후우······후우.”
“생각하지 마. 떠올리지 마. 그냥 느낌만 잡아. 네가 화를 낼 때의 감정. 그 흐름만 잡아서 꺼내 올리는 거야.”
“아아악!!”
“그렇지. 뽑아내. 터뜨려. 머리를 거치지 않고 가슴에서 그대로.”
“아니야!!”
세미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토하며 푹 주저앉았다.
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진호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포울에서 손짓했다.
꿀이 담긴 차와 큰 수건을 곧바로 가져왔다.
“천천히 마셔. 감정 정리하고.”
“······방금 무슨 연습을 하신 거죠?”
그제야 겨우 끼어 들 타이밍이 잡혔다.
PD가 진호와 세미 등을 한 화면에 잡으며 물었다.
“감정의 밸런스를 잡기 위해서 연습 중입니다.”
“밸런스요? 방금 그게?”
“일종의 기준점이죠. 화를 낼 때 어느 선까지 올라가는가, 슬플 때는 어느 선까지 내려가는가. 그리고 평상시의 나는 어느 정도인가. 이런 걸 스스로 익혀 둬야 연기를 객관화 할 수 있죠.”
“그런 겁니까. 심오하군요.”
“하하. 그렇게 심오한 건 아닙니다. 연차가 쌓이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영역을 조금 체계적으로 연습 한 거죠.”
그 사이 세미는 꿀물을 다 마셨다.
그리고는 수건을 얼굴에 덮고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하윤이 ‘카메라, 카메라’라고 속삭였지만 꼼짝도 안했다.
“저거, 괜찮은 겁니까?”
“괜찮습니다. 그냥 회복 중 인거예요. 사람도 운동을 하고 나면 쉬어야 하잖아요. 감정도 마찬가지로 한 번 쏟아내고 나면 회복이 필요합니다.”
“이것도 연습이라 이거죠?”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 연습하면 배우는 계속 상처만 입을 뿐이죠. 이를 다독이고 회복하는 방법도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 연기와 현실. 감정에 대한 밸런스를 맞출 수 있죠.”
“······아. 배우들이 겪는 우울증 같은 거에 대한 말이군요.”
“연예인들은 화려하지만 되레 고독해 지기 쉽습니다. 항상 누군가 곁에 있어 이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컨트롤 해야죠.”
특히 진호나 세미 같은 경우가 위험하다.
극도의 감정연기는 강한 리바운드를 맞기 쉽다.
이를 컨트롤 하여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자, 이번에는 하윤이 차례.”
“네!”
“바로 하는 겁니까? 안 쉬고?”
“전 익숙해서 괜찮아요.”
태연하게 답을 한 진호가 하윤을 향해 걸어갔다.
포울이 설정한 또 다른 캐릭터였다.
“사람이 아닌데.”
무심코 흘러나온 PD의 말 한 마디.
그것이 진심이었다.
#
연기 연습은 오후 1시가 조금 넘어서 끝났다.
간단하게 옷을 갈아입고 주린 배를 채웠다.
2사옥의 급식 시설은 1사옥보다도 좋았다.
애초에 2사옥에 등록 된 인원 자체가 극소수이기 때문에 맞춤형으로 식사가 가능했다.
“이제 한 숨 쉬고 이동합시다.”
“이제야 쉬는 겁니까? 어후. 따라가다가는 몸이 못 버티겠어요.”
“하하. 3시까지는 자유롭게 쉬니까 편하게 계세요. 위에 놀이시설도 있고, 간식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진호 씨는 쉴 때 보통 뭘 하나요?”
“저도 남들과 다르지 않아요. 게임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정 피곤하면 그냥 옥상에서 낮잠을 취하죠.”
2사옥 옥상은 녹지로 조성되어 있다.
날이 좋을 때는 한 숨 자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그럼 휴식이 끝나고는 어떻게 합니까?”
“보통, 스케줄이 없을 때는 공부를 하러 갑니다.”
“공부요?”
“연기 이론이나 역사? 혹은 다양한 문학을 접하려고 합니다.”
“진짜인가요? 카메라 있다고 갑자기 꾸미는 건 아니겠죠?”
“에이, 설마요.”
진호가 한 쪽으로 걸어가 박스를 꺼냈다.
‘진호’이름 석자가 테그로 걸려 있었다.
“그 동안 공부하던 것들입니다.”
“뭐가 이렇게 많아요?”
“알다시피 전 연기 경력이 짧잖아요. 남들보다 아는 것도 적고 경험도 부족하죠. 열심히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스 안에는 여로 종류의 서적들이 쌓여 있었다.
연기에 대한 것부터 문화, 음악, 춤 등 장르도 다양했다.
그렇다고 방금 사서 넣은 새것도 아니었다.
하나같이 손때가 묻은 중고품들이었다.
“하루를 굉장히 타이트하게 쓰시네요.”
“최대한 그러려고 해요. 지금 제가 누리는 것들은 어느 하나 가벼운 게 없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언젠가 훌쩍 사라져 버릴 겁니다.”
“와. 진호 씨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요?”
“그럼요. 어느 위치에 있든 반드시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공과 실패는 스스로 어찌 할 수 없다지만 노력만큼은 마음껏 할 수 있잖아요. 할 수 있는 걸 한다. 그게 나름의 좌우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거 화면 아래에 자막으로 넣어도 되죠?”
“그건 좀 낯부끄러운데요?”
짧게 웃는 진호를 보며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기획은 시청률을 노린 스타의 일상 방송.
하지만 하루를 함께 해 본 진호의 삶은 그저 그렇게 대충 다룰 만 한 것이 아니었다.
왜 젊은 청년이 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인지.
그 이유가 하루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런 걸 화사한 꽃무늬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공부하는 시간에 저희도 함께 해도 될까요?”
“그럼요. 저녁 먹고 나면 소화 겸 해서 저녁 운동도 있으니까 그것도 같이 하죠.”
“······아니, 그건 사양할게요.”
딱딱한 궁서체라도 좋다.
화사하지 않아서 팬들이 좋아하지 않아도 좋다.
그래도 이 사람의 밀착 카메라가 무언가를 전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일단 한 숨 자러 가볼까요?”
스타가 스타가 된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