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82화 (82/178)

Chapter37. 영화에 미치다(1)

촬영이 진행될수록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어느 정도 형태가 잡히며 전체적인 완성도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대본이나 시나리오로는 알 수 없는 부분.

가시적인 성과에 흥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단한 영화가 나올 거라고.”

윤창수는 확신했다.

영화바닥만 벌써 몇 년인가.

감독의 촬영 장면이나 배우의 연기만 봐도 대략적인 각은 나왔다.

이번 영화는 지금껏 봐 왔던 영화중에서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씬마다 이어지는 긴장감이 대단했다.

“역시, 진호 그 친구의 힘이 크죠?”

“그 정도 되면 어리다가 함부로 못하지. 연기력이 어마어마해. 같이 씬에서 나오면 삼켜질까봐 긴장을 못 놓친다니까.”

“내가 우리나라 베테랑 배우들하고 전부 작업을 해 봤잖아. 근데, 안 밀려. 오히려 강하면 강하지. 저 나이에 나올 수 있는 연기가 아니라고.”

촬영이 길어지며 다른 배우들도 인정했다.

진호는 진짜배기란 점.

운 좋게 몸에 맞는 배역으로 히트를 터뜨린 반짝 배우가 절대로 아니었다.

빼어난 감독에 훌륭한 배우.

성공을 위한 조건은 확실하게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다음 씬인가. 감독이 공을 많이 들이던데.”

“세트를 보고 왔는데, 규모가 상당해요. 그래서 좀 걱정이 되네요. 괜히 사고가 생기는 건 아닐까 하고.”

“그래도 전문가들 많이 불러왔잖아. 저기 어디냐, 액션 스쿨 사람들도 왔던데.”

“그런 개별 액션은 괜찮죠. 그거 말고 폭발 씬이랑 추격 씬이랑 상당해요.”

이무석은 확보한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이것에 투자했다.

주인공인 남태선이 배신을 당한 뒤 도망치는 장면.

차도 여러 대 터지고 도심에서 총격씬도 있다.

규모 있는 제작사도 어려워하는 액션 씬을 몰아붙인 것이다.

“감독이 어련히 준비를 잘 했겠지. 스턴트 쓰고 이어붙이면 되잖아.”

“그러면 좋을 텐데. 역시 큰 씬은 불안하네요.”

“자식이 불안하게. 헛소리 말고 네 씬이나 준비 잘 해 둬.”

씬 준비만 벌써 나흘째.

긴장감을 느끼는 건 비단 윤창수만이 아니었다.

#

이무석은 씬을 위해서 많은 걸 투자했다.

폭파와 총격씬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해외 팀을 섭외하고 야외 세트를 공들여서 만들었다.

세트 하나만 해도 순수하게 10억이 넘게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과한 투자’라고 만류했지만 그의 고집은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그는 이번 씬을 핵심으로 여겼다.

“이런 면에서는 상업영화에 도가 튼 사람 같네요.”

준비 과정을 쭉 살피던 진호가 품평했다.

괴짜 감독, 예술성 지향 감독.

기존의 평가와는 다르게 이번 영화는 상업적인 면이 강했다.

“예술성이라는 건 관점에 따라서 다른 거니까요.”

“폭발이 예술이다?”

“예술은 결국 끝에서 만나게 돼 있으니까요.”

“두루뭉술하네요, 그건.”

평가는 어찌 되었든 씬에 대한 이무석의 열정은 진짜였다.

그리고 그렇기에 진호도 피할 수 없었다.

“진호야.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되냐? 아무리 봐도 위험 할 거 같은데.”

“다 안전장치 돼 있어요. 걱정 마요.”

“그래도. 저번에 너 프랑스에서 사고 기억 안 나?”

“그때야 미친놈이 깽판쳐서 그런 거고요. 지금은 주변에 전부 전문가잖아요.”

이번 씬에는 대역 없이 가기로 했다.

준비는 이미 마쳐 둔 상태.

동선, 타이밍, 방향 등.

모든 걸 몸에 숙지해 두었다.

“에휴. 고집하고는.”

“가서 쉬고 있어요. 촬영 끝나면 부를게요.”

“됐다, 인마. 두 눈 부릅뜨고 봐야지.”

“흐흐. 그러다가 졸면서.”

걱정 가득한 송학을 뒤로 한 채 촬영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폭발 씬을 위해서 특수 제작된 세트가 으리으리한 자태로 환영을 하고 있었다.

한 번 쓰고 버리기에는 아까울 정도였다.

“진호 씨. 확실하게 숙지하고 있죠? 한 번에 끝냅시다.”

“이거 한 번 터뜨리는데 얼마라더라? 돈 아끼려면 한 방에 가야죠.”

“돈은 됐습니다. 다치지 말고 한 번에.”

“하하. 걱정마세요. 준비는 착실하게 해 뒀어요.”

지겹도록 반복 연습을 했다.

액션의 흐름이라면 머리에 박힐 정도.

숨을 고르고 세트 중앙에 선 뒤 신호를 기다렸다.

“······액션.”

이무석의 신호.

끼익, 하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

남태선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등에 닿은 건 차가운 콘크리트 벽.

땀방울이 맺혀서 떨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후우······후우. 빌어먹을.”

배신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정도는 있다고 여겼다.

설마하니 같은 소속 요원을 대놓고 배신자로 처분한 줄이야.

고작 ‘현재 분위기를 깨기 싫다.’라는 이유 때문에.

빠드득, 이가 갈리고 피가 끓었다.

“후. 침착하자.”

숨을 고르고 머리를 차갑게 했다.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분노만으로는 부족했다.

냉정한 판단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타앙—!!

그 순간.

찢어지는 듯 한 총성과 함께 콘트리트벽이 부서졌다.

남태선은 생각 할 것 없이 몸을 숙이며 소리가 들린 방향을 유추했다.

차를 세워둔 곳 부근이었다.

“벌써 추격자인가.”

제대로 벼르고 사람을 움직인 모양이다.

아무리 사람이 없는 폐건물이라 해도 대놓고 총질이라니.

으득, 이를 악물고 총을 쥐었다.

타앙! 타앙! 탕!

연사에 부서지는 콘크리트.

파편이 튀어 얼굴을 긁었다.

하나, 둘, 셋······

간격은 짧지만 리듬은 일정했다.

한 명이 사격하고 있는 것.

그렇다면 탄을 셈하고 움직이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타앙!

지금.

부서지는 콘트리트를 얼굴로 받으며 바닥을 굴렀다.

시야에 잡히는 것은 차를 엄폐물로 삼은 요원 둘.

하나는 겁에 질려있고 다른 하나는 총을 들어 자신을 겨누고 있다.

“저기 나왔다!”

“멍청한 놈.”

철컥, 하고 헛 도는 공이.

탄수도 헤아리지 못하는 놈은 상대가 아니다.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두 놈의 머리통을 연달아 날렸다.

한 때 같은 곳에 몸 담았던 동료이나 총질하기 시작한 이상 볼 일은 없다.

“저기다!! 놈을 잡아!”

“절대로 도망가지 못하게 해라!”

뒤이어 다른 요원들이 현장으로 속속 들어왔다.

총성이 쉼 없이 터져 나왔다.

다섯. 아니, 여섯.

정면에서 싸우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숫자였다.

남태선은 정면승부를 포기하고 자동차 뒤로 몸을 숨겼다.

“반역자 놈! 여기서 네놈의 목숨을 끊어주마!”

“대체 누가 반역자라는 거냐!? 내가 준 자료를 보고도 그딴 소리가 나와!?”“시끄럽다! 반역자 따위와는 말을 섞지 않는다!”

“쥐새끼 같은 놈들! 자리보전하겠다는 권력자의 앞에서 꼬리나 흔드는 거냐!?”

총격을 주고받았다.

불꽃이 튀고 차창이 깨어졌다.

피격당한 놈들은 비명을 토하며 쓰러지고 연신 고함이 오고갔다.

“······탄이.”

제아무리 남태선이 뛰어나도 탄이 떨어지면 끝이다.

지속적인 대치는 무리.

숨으로 고르고 판단을 내렸다.

“항복하겠다!”

“뭐?”

멈칫, 하고 총격이 멈추는 순간.

뒤로 몸을 날리며 차의 엔진에 총격을 가했다.

팍, 하고 피어나는 불꽃과 함께 폭발하는 차.

굉음과 함께 열기가 몰아쳤다.

이 틈에 피하면 되는 것이다.

퍽······!

“아.”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

다리에서 갑자기 힘이 풀리고 시야가 흔들렸다.

한 술 더 떠서 눈앞도 빨갛게 물들었다.

“······!!!”

“!!”

사람들이 무어라 외치며 달려오는 것도 보였다.

아직, 촬영 중인데 뭐하는 짓이냐.

외치고 싶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구급팀!!!”

사고가 난 것이다.

#

최현석은 촬영중에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던 일 다 멈추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아니, 중간에 현장이 아닌 병원으로 방향을 바꿨다.

현장에서 응급치료하고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안 그대로 촬영 스케일이 큰 터라 걱정이 많았다.

혹시나 다치면 어쩔까, 몇 번이나 안전 점검을 했다.

근데 꼴이 이게 뭔가.

회사에게 있어서 진호는 비할 바 없는 보물이다.

아니, 그전에 최현석에게 있어서 진호는 아끼는 동생이다.

걱정과 화가 뒤엉켜서 부글부글 끓었다.

“진호야!”

응급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에 쏠렸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훑은 뒤 치료받고 있는 진호를 발견했다.

“괜찮은 거냐? 얼마나 다쳤어?”

“아, 대표님. 그냥 살짝 긁힌 수준이에요. 뭘 또 달려오고 그래요.”

“그냥 긁힌 수준이라니! 너, 인마 쇳덩이에 머리 맞았다고!”

답에 화를 낸 건 송학이었다.

얼굴이 시뻘건 것이 그도 꽤 고생한 모습이었다.

“쇠, 쇳덩이에 맞았다고? 어쩌다가?”

“어휴. 촬영 중간에 차량 폭파 씬 있지 않습니까. 그거 터뜨리는데, 고정쇠인가? 그게 튕겨 나와서 진호 머리통을 가격한 거 아닙니까.”

“아니, 그게 왜 튀어나와!? 그 전에 안전검사랑 다 했잖아.”

“했는데 튕겨 나온거죠. 그쪽에서는 예상외로 폭발이 세서 그렇다고 하는데······”

송학의 입술이 살짝 들렸다.

세트를 설치한 팀의 변명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이런 썩을! 내가 그 인간들 싸그리 고소해 버린다!”

최현석도 비슷했다.

씩씩거리며 화내는 걸 감추지 않았다.

“대표님, 쉿. 응급실이에요.”

“어······그래. 내가 좀 흥분했네.”

“다행히 상처는 안 커서 몇 바늘 봉합하면 된데요. 촬영도 예정대로 진행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촬영은 무슨. 일단 그거 뭐냐. 머리 사진 좀 찍고 며칠은 쉬어. 머리는 다치면 큰일 나는 거라고. 확실해 질 때 까지는 꼼작 마라.”

“하지만 촬영이······”

“씁. 촬영이 먼저냐, 몸이 먼저냐? 의사가 오케이 할 때 까지는 촬영은 꿈도 꾸지 마.”

엄포 놓는 기세가 상당했다.

진호도 더 이상은 고집부리지 않고, 여기서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아, 최 대표님. 와 계셨군요.”

그때, 이무석을 비롯한 관계자 몇 명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촬영은 사고 이후로 접은 상황이었다.

“아니, 이 감독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안전하다고 저한테 보장하지 않았나요?”

“······할 말이 없습니다. 책임은 전부 제가 지겠습니다.”

“무슨 책임을 지는데요?”

“대표님.”

“넌 가만히 있어. 연기도 좋고 연출도 좋다 이거야. 하지만 안전부터 챙겨야지. 사람이 다치면 영화가 좋아봐야 어디에 쓰겠어.”

“죄송합니다. 제가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이무석은 변명 없이 고개만 숙였다.

세트의 장치 등은 별개의 팀이 구성한 것이었지만 결국 총 책임자는 감독인 그였다.

이런 책임에서 기피 할 생각이 없었다.

“하여튼, 일이 이렇게 됐으니까 촬영하는 장면은 더 안전한 거로 교체하도록 하세요.”

“안 됩니다.”

“안 돼요!”

답은 이무석과 진호가 동시에 했다.

“아니, 그럼 사고가 났는데도 그대로 하자는 겁니까? 진호, 너도 생각이 있으면 좀 사려.”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번 씬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맞아요. 이 씬이 빠지면 긴장감이 사라져요. 게다가 후에 있을 반전까지도 설득력이 죽죠. 대표님 걱정은 이해하지만 반드시 필요해요.”

“아니, 이 양반들이······”

한 목소리로 따박따박 말하는 모양새가 누가 나쁜 놈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안전 점검을 배로 하겠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사고는 안 생기도록 주의할게요. 하지만 씬은 반드시 찍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왕 상처 난 김에 장면에 추가하죠. 총격씬에서 파편이 튀니까, 상처가 현실감을 더 살려 줄 겁니다.”

“그거 좋은 아이디어군요. 그럼 폭발의 위력을 조금 더 올려서 극정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 어떨까요?”

“좋네요. 비장미 있게.”

그리고 이어지는 씬에 대한 이야기들.

최현석은 말을 잇지 못하고 두 사람만 멍하니 봤다.

이 둘은 어느새 상처에 대한 건 잊고 씬에 대한 것만 신경 쓰고 있었다.

최현석 자신도 연극판에 오래 몸을 담아 왔지만 이런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하하하하. 머리가 깨지면 훨씬 자극적이겠네요!”

“좋네요. 한 번 깨 봅시다.”

영화에 미친 인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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