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5. 배우의 종류(2)
국내의 평론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자면 박한일이 가장 처음으로 나올 것이다.
영화판에서 일한 연식이 오래 되기도 했고, 굵직한 영화들의 논평이 유명세를 탄 전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스타 평론가.
그의 한마디에 다른 평론가들의 평마저 이리저리 휩쓸리기 십상이었다.
“쯧쯧쯧. 저렇게 배우가 설쳐서 잘 되는 꼴을 못 봤는데.”
스타의 특권이라면 접근성을 들 수 있다.
그는 일개 평론가에 불과하지만 영화판 내에서의 영향력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렇기에 영화 관계자들이 흘리는 소스를 누구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 이무석이 제작에 들어간 영화에 대해서도 몇 가지 이야기를 주워 들었다.
“흥행하지 못할 거라고 보나요?”
다른 평론가가 넌지시 물었다.
박한일을 위시로 하는 평론가 모임이었다.
“뭐, 잠깐 흥행은 하겠지. 워낙 배우 이름값이 높으니까. 하지만 제작비를 뽑지는 못할 거야. 시작부터 이렇게 삐걱거리는 영화치고 완성도가 높은 걸 못 봤거든.”
“오. 그렇군요.”
“게다가 이무석이라면 다들 알잖아. 감독이 괴짜 평 듣는다고 해서 천재인 건 아니야. 홍진호가 한 번 크게 성공하자 나름대로 예술영화 하나 잡으려 한 거 같은데, 실수지.”
박한일의 눈에는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크게 성공한 배우와 괴짜로 유명한 감독의 만남.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르고 과한 자본이 들어가서 괜한 부담감만 가중되고 있다.
결과물이 엉망으로 나오리란 건 뻔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만평을 하나 낼까 해.”
“만평을요?”
“우리 저널에서 코너를 파 두었거든. 영화판 흐름을 알려주는 거지. 여기에 이무석과 홍진호를 걸고 넘어갈까 해.”
“오······괜찮을까요? 팬도 상당 할 텐데.”
“흐흐. 그러니까 더 도움이 되겠지. 남들이 못 할 때 미리 찔러두는 거야. 반발이 심한 만큼 주목하는 사람도 많아 질 거라고.”
박한일은 이런 면에서는 승부사였다.
팬덤을 고려하여 다들 쉬쉬하는 일에도 겁 없이 나서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만평을 내면 다들 한 마디씩 덧붙이라고.”
“저, 저희도 말입니까?”
“그래. 다들 언제까지 어설프게 평론 몇 줄로 살 거야? 이참에 힘 받아서 한 자리씩 해야지. 우리도 주목을 받아야 자리가 생긴다고.”
“그렇군요. 좋습니다. 박 평론가님만 믿겠습니다.”
“에이. 저도 한 손 거들죠!”
펜대의 힘은 무엇보다 강하다.
박한일은 믿고 있었다.
이번에도 자신이 성공 할 거라고.
#
진호는 하루를 이틀처럼 살았다.
영화 제작에 대해서 한 손 거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쉴 기회는 사라진 거였다.
막말로 이무석은 제작에는 취약했다.
촬영과 편집 등에 빼어난 사람일지는 모르나 그 외의 영역에서는 상당히 부족했다.
이를 보조한 것이 진호였다.
회사들을 연결하고 작업에 필요한 사람을 적재적소로 배치했다.
괴팍한 이무석과 실무와의 연결고리 역할도 한 것이다.
실제로 진호가 개입하고 난 뒤에야 배우 영입과 촬영지 섭외 등이 수월하게 돌아갔다.
그 전에는······말하기 싫은 수준.
“아. 힘들어 죽겠는데, 이건 또 무슨 소식이냐.”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누가 그랬는가.
일에 치여 골골대는 진호에게 안 좋은 소식이 또 하나 날아 들었다.
“박한일 평론가라고 하네. 영화 제작 과정에 있어서 오빠를 비난하는 어조야.”
은서가 이른 아침에 가지고 온 잡지 하나.
영화 칼럼 등을 기재하는 페이지에 만평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영화 제작에 대한 비화, 라는 느낌.
“평론가라는 사람이 아직 개봉도 안 한 영화를 까는 거냐?”
“거액의 투자자가 실제 배우로 활동 할 경우 감독의 역량이 감소하고 촬영 현장이 경직된다. 이는 현장에서 감독을 두 명 두는 경우로, 성공 사례를 확인하기 어렵다. 아주 단정적으로 썼네.”
“누가 보면 촬영에 들어간 줄 알겠어.”
“밑에 다른 평론가들의 첨언도 있네.”
“그런 건 안 봐도 뻔해. 밑에서 딸랑거리는 거겠지.”
진호가 잡지를 집어던졌다.
굳이 이런 시기에 만평을 개재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뻔했다.
400억 블록버스터!
이런 식으로 홍보 때리는 영화처럼, 그 역시 자극적인 단어로 유명세를 타고자 하는 것이다.
애초에 실정이 어떤지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저 평론가라는 간판 하나가 그에게 타당성을 부여해 줄 뿐.
“이런 건 그냥 무시해.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내용에 신경 쓸 사람은 얼마 없어.”
“······아니. 생각보다 많을 거야.”
“누가 신경을 쓴다고 그래.”
“배 아픈 사람들.”
일확천금으로 돈을 벌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스타들도 영화 한 편에 백억이 넘는 돈을 버는 경우는 없다.
출연료 10억 내외에 광고, 행사, 강연료 등을 싹 더해야 연 수입이 가능할까?
진호의 돈벌이는 정말로 이례적인 경우다.
그렇기에 배가 아픈 것이다.
아직 서른도 안 된 놈이 영화 한 편에 부자가 된 격이니까.
만평의 진실성은 뒤로 한 채 일단 까고 싶은 거다.
“그럼 어떻게 해?”
“알려줘야지.”
그렇게 깎아내린다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호가 핸드폰을 쥐었다.
#
서훈은 심드렁하니 바라봤다.
오랜만에 찾아온 ‘아는 동생’놈이 빈손으로 온 탓이다.
“크흠. 우리 잘난 슈퍼 스타 진호 군 아닌가.”
“뭘 또 삐지고 그래요. 급해서 그냥 왔다니까.”
“크흠! 흠! 이 형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일하고 있는데 동생은 그냥 모른 척이나 하고 말이야.”
“어휴. 누가 형인지 모르겠네. 나중에 거하게 한 번 살게요.”
그제야 얼굴을 펴며 방긋 웃었다.
“짜식이, 그래야지. 사람이 오가는 정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그 오가는 정. 이번에 한 번 더 써봅시다.”
“뭘 또 하려고? 나한테 편성권이 있는 게 아니라고.”
“알아요. 아는데, 나보다는 형이 말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아서. 형도 평론가 만평 올라온 거 봤죠?”
“어. 뭔 시사만평도 아니고, 그 사람은 그런 걸 올렸다냐?”
서훈은 영화광이다.
각종 잡지 및 해외 평론 사이트도 다량 섭렵하고 있다.
그에게도 이번 만평은 이례적인 종류였다.
“사실 그 만평 아니더라도 좀 정리가 필요 할 거 같았어요. 일이 워낙 중구난방이라.”
“뭐, 메이킹 필름이라도 찍게?”
“그건 촬영 들어가고 할 일이죠. 하기 전에 견적서 좀 뽑아줘요. 액수랑 장비 전부 오픈하면서.”
“투자자들이 싫어 할 텐데?”
“그건 제가 설득하면 돼요.”
만평이 이례적이니 진호도 이례적으로 영화의 사전 준비부터 공개 할 생각이었다.
투자자들은 실 액수가 공개되는 걸 꺼려하지만 이건 설득의 문제.
준비에 신뢰를 주지 못하면 결과물도 외면 받을 수 있다.
“흐음. 나쁜 생각은 아닌데, 우리 쪽에서는 딱히 메리트가 없어. 국장님이 받아줄까?”
“독점 인터뷰 줄게요.”
“너? 촬영 전후로 전부?”
“네. 이거면 국장님도 거부하지는 못할 걸요?”
“그렇지. 너 정도 급을 독점으로 하려면 우리도 똥줄 빠져야 하니까. 굴러온 복을 걷어차지는 않을 거다. 근데 말이야.”
“또 뭐요?”
“이런 것까지 네가 하는 거냐?”
배우가 제작에 관여하는 건 심심치 않게 있다.
참여하는 배우 선정, 장소, 연출 방법 등.
배우의 권한이 크면 클수록 감독의 영역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제작 이전의 언론 문제까지 관여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이건 제작사의 역할.
“너 혹시 나중에 감독을 할 생각이냐?”
“딱히 그 정도까지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그냥 의외로 재미가 있어서요. 돈도 많이 들어갔고.”
“흐음. 배우가 제작자로 변해서 커리어 망치는 거 여럿 봤다. 과하면 좋지 않아.”
“알아요, 알아.”
경계의 중요성은 진호도 잘 안다.
감독의 역량을 침범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건 현시점의 이야기.
후에 어찌 될지는 진호 스스로도 장담을 할 수 없었다.
“그럼 부탁할게요.”
배우가 되리라곤 생각 못했던 과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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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퓨에게서 답변이 왔다.
시나리오를 확인하고 진호의 연기를 확인했더니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평균 커리어에 맞춰서 계약을 마쳤다.
제작비 대비 상당한 금액이 빠져나갔지만 꼭 필요한 캐스팅이었음은 진호도 이무석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캐스팅은 상당히 의의가 있었다.
[플로렌 퓨, 이무석 감독 신작 영화에 캐스팅]
이름 꽤나 알려진 외국 배우가 국내 영화에 캐스팅 된 것이다. 이는 조회수 좋아하는 기자들의 좋은 먹이였다.
쿡쿡, 찍어서 기사를 내 주었다.
“뭐야. 유명 배우도 캐스팅 하는 거면 순항중인 거 아니야?”
“그러게. 돈 많이 들였다고 해서 회식으로 까먹나 했는데, 이런 캐스팅이면 문제없네.”
“역시 헛 돈 쓰지는 않네. 난 만평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만평이후로 살짝 기울어지던 여론이 회복했다.
사람들이 거액의 제작비에서 걱정하는 건 그 돈이 헛된 방향으로 쓰이는 것.
흔히 말하는 회식비니 여행비니 그런 종류다.
하지만 떡하니 외국 유명인을 캐스팅 한다고 하면 그런 여론이 한 풀 꺾이는 것이다.
“하하. 이무석 감독도 할 때는 하는구만.”
“괜히 걱정을 했어.”
“소문이 너무 과장되어 있었다고.”
게다가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이무석의 괴팍한 성격은 널리 알려져 있던 바.
나름 흥행을 생각하는 포석으로 비쳐진 것이다.
그는 순전하게 영화 자체를 보고 캐스팅 한 거지만.
[OST작업을 해 달라고?]
이에 진호는 한 걸음 더 나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는 엘빈의 얼굴은 전보다 더 예뻐져 있었다.
[응. 네 목소리라면 영화 분위기에 잘 어울릴 거야]
[헤에. 난 생각보다 몸값이 비싼데?]
[알지. 비싼 거. 그래도 비싼 만큼 제몫은 톡톡히 하잖아]
[아하하. 역시 진호는 화끈해서 좋아]
엘빈을 음향 작업에 섭외한 것이다.
그녀의 재능이야 세계가 인정하는 수준.
영화 내적인 효과뿐만이 아니라 강렬한 홍보 효과도 덤하고 있었다.
“엘빈이요?”
하지만 이를 알렸을 때 많은 이들이 걱정했다.
능력이야 문제 될 게 없지만 그녀의 몸값이 걸렸다.
빌보드 상위에 꾸준하게 랭크되는 천재 가수.
간단하게 말해서 그녀 투어 수익을 합산하기만 해도 영화 제작비가 나올 정도다.
짧게 쓰더라도 돈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흐흐. 제작비를 보면 날 꾸준하게 쓸 정도는 아니던데. 이번에는 특별하게 무료로 도와줄게]
[무리야. 회사에서 받아 줄 리가 없잖아]
[대신 다음 번 앨범 작업에 손을 빌려 줘]
[앨범에? 내가?]
[응. 진호라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회사는 맡겨 둬. 내 말이라면 껌뻑 죽으니까]
하지만 이런 제안에 그런 걱정은 사그라졌다.
엘빈이 무료로 영화 OST작업을 도와준다.
이 상황에 놀라고 이 상황을 가능하게 한 진호에게 놀랐다.
그리고 이건 여러 가지 반응을 낳았다.
“한국에서도 블록버스터가 나오는 거 아냐?”
“퓨에 엘빈이라고?”
“제작비 알뜰하게 쓰네.”
이런 긍정적인 반응.
“그 만평 쓴 사람이 누구라고?”
“하여튼 평론가 놈들이 다 똑같지. 뭐라도 하나 건져볼까 하고 마음대로 지껄인 거네.”
“쯧쯧. 박한일? 걸러야 할 사람 하나 추가됐네.”
이런 부정적인 반응.
영화 제작 초입부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