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71화 (71/178)

Chapter32. 이상한 접근(2)

야마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야마코 물산.

일본 전역에서 활동하는 물류 회사로, 그 규모가 업계에서 한 손에 꼽힌다.

게다가 이들의 뒤를 파고 들어가면 더 대단한 이름이 나온다.

“야쿠자?”

“어. 소문에 의하면 일본 야쿠자와 선이 닿아 있다네. 야쿠자가 신분세탁을 위해서 호텔업, 빠칭코, 술집 등으로 많이 손을 뻗었잖아. 그 중에 야마코 물산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야.”

“그럼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일본 전체를 놓고 봐도 상당한 비율이라는 말이 있어. 어지간히 힘이 센 집단이라 이거지.”

진호는 혀를 내둘렀다.

어찌 보면 야마코라는 이름을 몰랐던 것이 되레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알았다면 술자리에서 그리 강하게 나가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하여튼, 조심해. 요즘 들어 분위기가 뒤숭숭하니까.”

“분위기가?”

“난 아직도 아이돌 애들하고 연락이 되잖아. 그쪽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가 봐. 건수 보이는 어린 애들을 낚아가는 거 같아.”

“그걸 그냥 두고 봐?”

“자본이 다르니까. 그리고 이상한 소문도 하나 있고.”

“이상한 소문이라니?”

은서가 입술을 달싹이다 말았다.

“아니야. 이건 너무 뜬소문이다. 그냥 질 나쁜 놈들이 상륙 한 거 같으니까 오빠도 휘말리지 않게 조심하고.”

“그 자리에서 못 박아 두었으니까 괜찮아.”

“아니야. 겨우 한 번 거절했다고 그치들이 포기하겠어? 원래 이런 인간들이 집요하다고.”

“다시 오면 또 거절하면 그만이야. 그런 식으로 영업하는 인간들이라면 사전에 거절하겠어.”

정식으로 계약 제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찔러보는 태도다.

“양아치라면 딱 질색이야.”

진호는 그런 식의 꼼수를 싫어한다.

#

광고는 계약되어 있으니 마무리 지어야 한다.

불편했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어색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하며 3번에 나눠서 촬영을 진행했다.

“그렇게 그냥 가 버리셔서 곤란했습니다.”

그리고 은서의 말이 옳았다는 걸 확인했다.

촬영이 있을 때마다 이강민은 현장을 찾아와 진호에게 치근댔다.

마음 같아서야 된소리 한 번 쏴주고 싶지만 당장은 고용주였다.

“그만 합시다. 계약할 마음 없다고 분명하게 못 박았을 텐데요?”

“하. 진짜 아쉽네요. 왜 그렇게 큰 그림을 못 보실까. 블루 아이가 좋은 회사인 건 알지만, 그래봐야 규모가 얼마 안 돼요. 푸시를 못 받은 연예인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두 번 말하고 싶지 않네요. 전 지금 회사에 만족합니다. 게다가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계약 문제를 들고 나오는 사람과는 일 얘기 하고 싶지 않군요.”

“진호 씨. 좋은 기회를 저버리는 겁니다.”

“그건 제가 판단할 일입니다. 대표님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죠.”

거듭 거절했다.

조건 따위는 보지 않았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과는 일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진호는 이미 왕호룽의 제안도 거절했던 사람이다.

조건이 좋아봐야 그만할까 싶었다.

“계속 이런 식으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젠 뭐 협박이라도 하려는 겁니까?”

“글쎄요. 어쩌면 진호 씨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서 제게 도움을 청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요. 그때가 되면 우리 입장이 바뀔 수도 있고요.”

“······일 절만 합시다.”

마지막에는 이런 협박 식의 말까지 쏟아냈다.

야쿠자가 얽혔다는 건 확실하지 않지만 이런 모습만 봐도 썩 좋은 회사는 아니었다.

대표라는 이강민도 마찬가지.

“광고 촬영만 끝나면 다신 볼 일 없었으면 좋겠군요.”

“글쎄요. 과연 그럴 수 있으려나.”

마지막 날 까지 불쾌한 사람이었다.

#

광고 촬영까지 마무리되었다.

더 이상 접점이 없어진 만큼 혹시 이강민이 회사까지 오는 건가 싶었는데 그러진 않았다.

하루, 이틀.

시간이 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더 이상은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진호는 만족했다.

“경찰입니다.”

하지만 며칠 뒤.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일이 터졌다.

“현재 진호 씨에 대한 고소가 접수되어 있습니다.”

“······고소? 갑자기 무슨 소리죠?”

회사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서에서 전달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빠르게 서에 오셔서 진술을 해 주셨으면 하는데. 시간 가능하겠습니까?”

“아니, 잠깐만요. 누가 진호를 고소했다는 겁니까?”

“네. 성추행 건으로 고소가 접수되어 있습니다.”

“서, 성추행?”

진호에 대한 고소가 접수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황당하기 그지없는 성추행.

“진호야. 너 뭔가 짚이는 곳이라도 있니?”

“······있어요.”

“있어!? 뭔데?”

“저번에 광고주가 참여한 회식 있잖아요. 대표님께 스케줄까지 확인해서 저 불러냈던.”

“어. 근데? 그 회식이 왜?”

“사실은······”

근래에 술자리를 가진 건 그때밖에 없다.

진호가 그 날 있었던 일을 최현석에 털어 놓았다.

“아이고.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한테 미리 말을 했어야지. 지금껏 왜 아무 말 안하고 있었던 거야?”

“괜히 대표님이 신경쓸까봐 그랬죠.”

“답답아. 그래도 그렇지. 이 바닥에 양아치가 얼마나 많은데.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나한테 연락하고 그냥 빠져나오던가. 송학이를 부르지 그랬어.”

“처음에는 호인으로 보였으니까요. 술 몇 잔 들어가니까 그때부터 속내를 드러내더군요. 그렇다 쳐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물 먹이려고 하다니.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군요.”

방심했다면 방심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광고주가 직접 와서 술 한 잔 하자고 하는데 마냥 거절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가.

눈에 익은 연예인들도 자리에 상당히 많았고.

진호도 이런 건 상상하지 못했다.

“일단 서에 가서 확인부터 해 보자. 대체 누가 널 고소했는지부터 알아보고.”

“네. 죄송해요, 대표님. 괜히 이런 일이나 만들고.”

“네가 뭘 죄송하냐. 이런 짓 벌이는 새끼들이 쌩 양아치지. 넌 걱정 말고 있어. 내가 다 알아서 처리 할 테니까.”

최현석이 소매를 걷고 나섰다.

#

진호는 서에서 자신을 고소한 사람과 대면했다.

누군지는 한 눈에 알아봤다.

술자리에서 자신의 오른 쪽에 앉아있던 여성이다.

케이블 단역으로 잠깐 나온 적 있는 여민소라는 여자였다.

“자자.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해 보시죠.”

“그러니까 회식 때였어요. 대표님도 오시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죠.”

여민소는 회식 당일을 구술했다.

배치, 모인 사람, 마신 술의 종류.

빠진 것 하나 없이 전부 정확하게 말했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누가 허벅지를 만지는 거예요.”

하지만 한가지만큼은 달랐다.

“그 사람이 진호 씨다?”

“네. 제 바로 옆에 진호 씨가 앉아 있었거든요. 전 하지 말라고 손을 계속 치웠는데, 그래도 계속 만졌어요. 분위기 때문에 피할 수도 없고, 너무 부끄러워서······”

끝에는 울음으로 마무리.

연습이라도 하고 온 듯 기승전결이 완벽했다.

“진호 씨는 이게 대해서 할 말 있습니까?”

“하아. 한 가지만 빼고 정확하네요. 전 이쪽 분을 그 날 회식에서 처음 봤고 술을 마시는 내내 손은 테이블 위에 올려 뒀습니다. 추행이라니.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진호 씨! 어떻게 그런 뻔뻔한 거짓말을 할 수가 있어요!?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용서해 줄 마음이 있었는데······”

“그런다고 챙겨 줄 거 같습니까?”

“네?”

“무슨 약속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손 떼요. 어차피 그쪽도 쓰고 버리는 말입니다.”

진호는 답 대신 여민소를 노려봤다.

개인적으로 뭘 어떻게 해 볼 생각이었다면 미리 접촉을 해 왔어야 옳다.

대놓고 신고부터 하고 일을 벌이는 건 그녀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말.

나름대로 계산은 있겠지만,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진호 씨. 사건과 관계없는 말은 삼가 주세요.”

“네. 죄송합니다.”

“여민소 씨. 진술하신 내용에 대해서 뒷받침 할 증거 같은 건 있습니까? 증인이라든지.”

“그 날, 자리에 많은 사람이 있었어요. 분명 한 두 명은 봤을 겁니다.”

“이름과 연락처를 부탁드립니다.”

여민소는 망설임 없이 그 날 참석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진호야. 이거 안 좋게 흘러간다.”

“저렇게 당당하다는 건 참석한 사람들도 이미 포섭해 두었다는 거겠죠. 아니면, 그 자리 자체가 이걸 위한 연극이었는지도 모르겠고.”

“양아치 새끼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딴 수법이나 쓰고.”

최현석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 날 그렇게 혼자 보내는 것이 아닌데, 라는 후회에 속이 부글부글 끌었다.

전화 통화상으로 호인 같다 느낀 것이 실책이었다.

“자자. 진호 씨. 이건 수사 외적으로 제가 하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팬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이런 사건을 많이 본 사람의 조언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진술을 확보한 담당 수사관이 이번엔 진호를 따로 불렀다.

“이런 케이스는 끝까지 가면 별로 좋지 않아요. 증거가 없어도 증언이 이 정도로 구체적이면 처벌을 면하기 어렵죠.”

“증거가 없어도 말입니까?”

“룸 안에 CCTV가 있었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럼 진술로 정황을 따져야 하는데, 이런 경우 빠져나가기 어렵습니다.”

“그럼 형사님께서 말하고자 하는 건······?”

“어떻게든 합의를 해 보세요. 최대한 형량에 이득을 봐서 기소유예를 노리는 쪽이 현명합니다.”

기소유예라면 전과기록은 남지 않는다.

형사가 제안하는 건 죄를 인정하되 처벌은 받지 않는 방향이었다.

“지은 죄도 없는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 이거 참. 이대로 가면 많이 불리하실 텐데.”

“불리하다고 물러나면 저런 양아치들만 웃는 거 아닙니까. 일이 끊겨도 그런 꼴은 못 봅니다.”

진호가 이를 악물었다.

꽉 막힌 듯 상황은 답답했지만 지고 들어 갈 생각은 없었다.

“여민소 씨.”

“뭐죠? 지금이라도 죄를 인정하고 사과하실 건가요?”

“헛꿈은 그만 꾸시죠. 고소하려면 하세요. 저도 전력으로 맞받아쳐 드리죠.”

“뭐, 뭐에요?”

“하지만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할 겁니다. 인생이 아작 날 정도의 각오는 하고 덤비라 이겁니다.”

진호가 가슴 펴고 여민소를 쏘아봤다.

연기를 시작하고 이 바닥에 들어와 구르면서 한 번도 물러나 본 적 없는 진호다.

라스베가스로 구설수에 올랐을 때도, 정신병으로 공격을 받았을 때도 정면으로 맞섰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난 죽어도 혼자는 안 죽습니다. 그 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어디 진실을 입안에 물고 끝까지 한 마음일 수 있는지 지켜봅시다.”

“자, 잠깐만요. 고소는 당신이 당하는 거라고요!”

“얼마든지 하세요. 나도 당신을 무고죄로 고소 할 테니까.”

“이, 이봐요! 평판이 안 두려운 겁니까? 밖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물고 뜯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니 이 정도에서 항복을 하라? 그러면 넙죽 날 받아 갈 줄 알았나? 여민소 씨. 그쪽이야 말로 정신 똑바로 챙겨요. 진흙탕 싸움에서 누가 당신을 지켜 줄 수 있는지 생각이나 해 보고.”

물고 뜯기는 데에는 이력이 나 있다.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그 날, 그 방에는 혼자만이 있던 것이 아니다.

진흙탕으로 싹 다 끌어내서 발버둥치면 과연 모두가 한결 같은 마음으로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할 뿐.

“추가 조사가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스케줄 조정해서라도 올 테니까.”

“아, 네.”

담당형사에게 개인 명함을 건네고 돌아섰다.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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