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3. 진흙에서 보물을(1)
스티로폼과 플라스틱으로 구성 된 장애물 코스였다.
뜀틀 비슷한 것도 있고 타이어를 통과하는 과정도 있었다.
슥, 보기로는 난이도가 제법이었다.
“집중해서 합시다. 하다가 다치면 저희만 혼나요.”
“아. 물론이죠.”
근육질의 남자, 박근수가 먼저 나섰다.
우락부락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민첩했다.
펄쩍펄쩍 장애물을 넘고 순식간에 끝에 도달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그 끝에서 진호에게 물었다.
기둥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서 말이다.
말투 자체는 평이했지만 제스처는 분명했다.
괜히 다치지 말고 포기해라.
“한 번 해 보죠.”
“쯧. 넘어 질 거 같으면 괜히 잡지 말고 그냥 떨어져요. 아래가 푹신하니까 잡다가 팔 빠지고 그러는 것보다는 날 겁니다.”
“충고 고맙네요.”
겁 한 번 주려 한 거 같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진호는 코스 스타트 라인에 서서 전체를 눈으로 쭉 훑었다.
그리고 가볍게 발을 떼어 하나씩 넘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조운과 부대껴 뒷산을 오르는 진호에게 이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능숙하게 밧줄을 타 오르고, 벽을 발로 차며 장애물을 건너뛰었다.
“어이 씨! 위험합니다!”
깜짝 놀란 박근수가 소리쳤지만 이미 넘어간 후였다.
날래기로는 원숭이 저리가라였다.
훌쩍훌쩍 뛰기를 몇 번 하더니 순식간에 박근수 옆에 당도해 있었다.
속도가 그보다도 빨랐다.
“······어. 잘 하시네요?”
“틈틈이 운동은 하고 있으니까요. 이 정도면 괜찮나요?”
“크흠. 흠. 생각보다 운동 신경이 있는 거 같네요. 몇 개만 더 해보죠.”
“앞장서시겠어요?”
박근수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연신 헛기침을 하며 다른 코스로 이동했다.
연신 진호 얼굴을 힐끔 거리며 바라보는 모양새가 ‘이게 아닌데?’라는 표정이었다.
“저, 코스. 중간에 공중제비 돌아도 돼요?”
“······혹시 기예단 출신이세요?”
물론, 그 표정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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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고 겪은 뒤에야 안다고 하지 않던가.
박근수를 포함해서 액션 스쿨 사람들은 진호가 어떤 인물인지를 이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그냥 단순한 연기자가 아니었다.
분명 어딘가 깊은 산골에서 고수를 만나서 영약 퍼먹으면서 무공을 단련한 기인이사임이 분명했다.
아니라면 이렇게 잘 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하하하. 놀랐습니다. 우리 애들보다 훨씬 낫던데요?”
“에이.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세요. 전 그냥 흉내만 겨우 낼 뿐이죠.”
“흐흐. 우리 애들 면은 살려 주시네요. 좋습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씬 소화하는 건 어렵지 않겠어요. 합을 준비해 둘 테니까 맞춰서 트레이닝하죠.”
정사웅은 크게 웃으며 허락했다.
진호의 운동 능력이면 충분히 소화 할 거라 판단한 것이다.
추후의 일에 대해 짧게 논의하고 헤어졌다.
“네, 형. 그 앞으로 오면 돼요.”
밖으로 나온 진호는 송학에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드라이브나 하라고 보낸 둔 거였다.
액션 스쿨은 교외에 있던 터라 갈 곳이 제법 있었다.
‘나도 산책이나 좀 할까?’
나온 김에 숨 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응?”
그렇게 건물 밖, 포장되지 않은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진호는 오래된 다리 아래에서 신기한 걸 발견했다.
이제 한 열 두어 살이나 되었을까?
어려 보이는 단발머리 여자 아이가 혼자 나뭇가지를 들고 뛰어다는 광경이었다.
소꿉장난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그렇다고 누군가와 다투는 것도 아니었다.
소녀는 나뭇가지를 들고 진지한 얼굴로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뭘 하는 거지?’
진호는 아예 경사로 턱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혼자서 펄펄 대고 날뛰는 소녀의 모습은 어디서도 못 볼 광경이었다.
“합! 합!!”
기합 소리도 제법 그럴듯했다.
내지르고 회수하는 것에 절도가 있고 발놀림도 제법 경쾌했다.
그냥 아무렇게나 날뛰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검도는 아닌데.’
흔히 보는 현대 검도와는 궤를 달리했다.
차라리 무협 영화에서 볼법한 검술과 닮아 있었다.
“악!”
그렇게 한참이나 날뛰던 소녀는 다리가 꼬여서 앞으로 넘어졌다.
팔꿈치가 까지고 피가 송글송글 배어나왔다.
하지만 이내 다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서는 또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씩씩하기가 또래 소년들보다 나았다.
“이런······”
다만, 나아지지 않았다.
소녀는 계속 같은 곳에서 다리가 엉켰다.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그때마다 씩씩하게 일어나기는 했지만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에 걸렸다.
“진호야!”
“어, 어? 송학 형.”
“전화는 왜 또 안 받고 그래?”
소녀를 보는데 너무 집중했던 모양이다.
송학이 바로 뒤에까지 와서 어깨를 짚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어어! 영화배우다!”
그리고 그 소리는 소녀에게도 닿은 모양이다.
한참이나 휘두르던 나뭇가지를 번쩍 들어서는 진호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얼굴은 흙투성이였지만 표정 하나는 밝았다.
“아저씨, 영화배우 맞죠!?”
한 술 더 떠서 소녀는 언덕길을 한 달음에 달려왔다.
숨을 헉헉 몰아쉬고는 진호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고작 두 작품이지만, 배우라면 배우지.”
“와. 맞구나. 신기해라. 나 이렇게 가까이서 배우 얼굴 보는 거 처음이에요!”
“그러냐?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왜 실망해요!? 완전 대단한데! 배우잖아요! 배우! 진짜 멋있어! 아저씨, 근데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소녀의 얼굴은 완전히 천진함 그 자체였다.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이 얼굴에 그대로 그려져 있다면 설명이 되려나.
보고 있는 진호가 다 기분이 설렐 절도였다.
“배우가 되고 싶어?”
“네! 그것도 멋진 액션 배우요!”
“아. 그럼 너도 여기에서 배우고 있는 거니?”
진호가 저 뒤쪽에서 보이는 액션 스쿨을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소녀는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돈이 없어서 못 들어갔어요! 아빠한테 물어봤는데, 그럴 돈 없데요. 그래서 나 여기 와서 아저씨들 연습하는 거 보고 따라 해요!”
“아······그러니? 혼자서 하려면 어려울텐데.”
“헤헤. 괜찮아요. 혼자서 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소녀는 흙먼지로 더러워진 손을 움켜쥐었다.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는 모양새가 하루 이틀 나와서 연습 한 것이 아니었다.
기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 흙 속에서 진주를 찾았구나.
“응?”
“왜요? 뭐, 이상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또 누구의 목소리일까.
더 깊이 전생으로 들어가나 싶었지만 딱히 더 이상의 목소리나 환상은 없었다.
“그럼 저 가서 더 연습할게요. 배우 아저씨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소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떠나려 했다.
“아, 잠깐만. 너, 그거 연습하던 동작. 여기서 한 번만 더 보여 줄 수 있을까?”
그런 소녀를 진호가 붙잡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에헤헤. 부끄러운데.”
“그냥, 하던 대로 보여 줘. 그래 줄 수 있을까?”
“네! 저, 배우 앞에서 하는 거 처음이에요. 잘 봐주세요!”
소녀는 힘을 잔뜩 주고는 예의 동작을 선보였다.
펄펄 뛰는 모습은 가까이서 보니 더욱 힘이 넘쳤다.
또래의 소년.
아니, 평범한 성인 남자보다도 더 강한 움직임이었다.
“아야야······”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부분에서 발이 꼬였다.
진호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소녀 앞쪽으로 섰다.
“동작 말이야. 보고 연습한 거지?”
“네, 네. 멀리서 본 거라 좀 이상했나봐요. 여기만 이렇게 하면 자꾸 다리가 꼬이네요.”
“그럼 동작을······이렇게 해 봐.”
진호는 그대로 손을 뻗으며 움직였다.
보폭은 소녀에게 맞추고 동작은 한 점 틀린 것 없이 카피했다.
“어?”
하지만 마지막 부분, 소녀가 넘어지던 장면에서는 움직임이 달랐다.
항상 다리가 꼬이던 소녀와는 다르게 진호는 유려하게 동작을 이어갔다.
“봤어? 이렇게 하면 될 거 같은데.”
“와! 어떻게 한 거예요? 배우 아저씨도 이런 거 배웠어요?”
“그냥 짧게.”
“멋있다. 와.”
소녀는 다시 나뭇가지를 쥐고 움직였다.
고민이 풀려서인지 동작은 더욱 경쾌하고 힘이 넘쳤다. 게다가 매번 다리가 꼬이던 장면도 부드럽게 넘어갔다.
진호의 동작을 한 번 보고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제법인데?’
단순하지만 한 번에 따라 하기는 힘든 동작이었다.
진호야 조운으로 단련이 되어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지만.
“진호야, 안 갈 거냐?”
“갈게요, 형.”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진호가 신나서 방방 뛰는 소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몸을 돌렸다.
“배우 아저씨! 배우 아저씨! 이름이 뭐에요!?”
“진호. 홍 진호.”
“전 세미에요! 서 세미!”
“예쁜 이름이네. 열심히 해서 꼭 배우가 되렴.”
“네! 꼭 배우가 될게요!”
귀여운 소녀에게 덕담까지.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어느 날의 우연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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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트한 일정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서 미리 준비 할 시간은 지금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빡빡했다.
대본, 액션, 대본, 액션.
중간에 짧은 스케줄 소화까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빡빡하게 일정을 소화했다.
“오케이. 이 정도면 될 거 같네요.”
그 와중에서도 진호는 어떻게든 씬에 들어갈 액션 장면을 만족 할 만큼 만들어냈다.
몸을 날려서 피하는 장면.
부서지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파편에서 몸을 지키는 장면 등.
적어도 연습으로 시도 할 수 있는 건 전부 시도했고, 모조리 성공했다.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보던 사람들도 진호의 실력을 보고는 인정했다.
“진호 형님. 그냥 액션 배우 합시다.”
“그러게요. 내가 볼 때 형님이 몸 딱 만들고 액션 하면 아주 그냥 할리우드 원터치일 겁니다.”
이제는 그냥 형님, 형님 하면서 따라다니기 바쁘다.
물론, 진호가 소고기를 한 턱 쏜 것이 큰 몫을 하긴 했지만.
“에이 씨. 그 계집애 또 왔어.”
“또? 빨리 쫓아내. 손님도 와 계신데, 괜히 소란 피우지 마.”
그때였다.
진호의 귀에 밖에서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좋아지면서 청력도 좋아 진 건지 꽤나 멀리에서 얘기하는 소리인데도 잘 들렸다.
“야, 그걸 또 어떻게 매정하게 그러냐.”
“그럼 어쩌자고. 들어오라고 그래? 그럼 그 집 망나니 같은 인간이 와서 또 지랄 할 텐데.”
“에이 썅. 하여튼 하늘은 뭐하냐. 그런 인간 안 잡아가고.”
툴툴 거리는 목소리가 하루 이틀 있었던 일은 아닌 듯싶었다.
진호가 창에 몸을 바짝 대고 밖을 살폈다.
짜증나는 듯 머리를 긁으며 가는 직원의 어깨 너머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 아이······’
분명 다리 부근에서 보았던 그 여자아이다.
진호가 허리를 돌려 몸을 조금 더 창 쪽으로 붙였다.
“야이, 썩을 계집년아!!”
그리고 그 순간.
날 선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