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20화 (20/178)

Chapter8. 고향에서(2)

부모님은 많이 화를 내셨다.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 두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연기를 한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부모님은 부모님이었다.

진호가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를 연기에 건다고 하니 더 이상은 만류하지 못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처럼.

“그러니까 드라마에 출연했다고?”

“네. 이번에 조연으로 발탁 돼서 꽤 비중 있게 나왔어요. 시청률도 잘 뽑았는데. 본 적 없어요?”

“아후, 우리야 그런 걸 잘 안 보니까. 그래도 조연이면 좋은 거잖아. 아니여?”

“그럼 좋죠. 출연 시간도 많은 편이고. 돈도 꽤 많이 받았어요.”

“그래? 회사 때보다 많이 받아?”

“에이. 아직 그건 아니고요. 하지만 그래도 시작이 좋잖아요. 감독님도 저보다 재능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려, 그려. 우리 진호가 예전부터 무슨 흉내 같은 거 잘 내고 그랬지.”

진호는 드라마 출연 씬도 보여 드렸다.

어디, 어디 하며 두 분은 머리를 맞대고 핸드폰 조그만 화면에 집중하셨다.

진호가 화면에 나와서 연기 할 때면 ‘오! 이야!’라며 감탄사도 아낌없이 날려 주었다.

몇 화 분이 넘어가고 나서는 라이벌임을 알았는지 상대역인 남 일수를 욕하기도 했다.

“우리 아들. 연기 정말 잘하네.”

“네. 병원이니 점집이니 문지방 닳게 찾아다니게 만들더니. 결국 이렇게 보답을 하네요.”

“그······이상한 거. 몸에는 괜찮은 거여?”

“괜찮아요. 연기를 하면서 풀어내서 그런지 전처럼 발작 같은 것도 없고. 훨씬 몸도 좋아졌어요.”

“그래, 그래. 원래 전부터 신기 있는 사람들이 연기를 많이 하곤 했어. 다 이게 재능이고 쓰임새지.”

그쪽과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진호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이 인정하고 안심하면 그만.

이렇게 마음 편이 ‘전생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기뻤다.

쿵쿵쿵.

그때였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응? 누가 왔나 보네?”

“이 시간에?”

꽤나 늦은 시간.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조명 없이 달빛으로 밝혀진 안뜰에 두 남자가 서 있었다.

“작은 어머니. 진호 왔다고 들었는데.”

“서울 촌놈 왔는가?”

큰아버지의 두 아들.

진호를 부단히도 괴롭히던 인간들이었다.

#

큰아버지는 지역의 지주 같은 존재다.

그 두 아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저런 일에 참여하면서 나름의 지위를 얻었다.

지금도 농사일을 제외하고도 마을의 큰 일이 있으면 두 사람이 앞장서서 나설 정도.

고향에서는 왕자님 같은 존재라 말 할 수 있다.

“오랜만이네? 그렇게 야반도주를 하고 몇 년이 지났지?”

“이야. 때깔 좋아진 거 봐라. 서울이 그렇게 좋나?”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예전부터 진호를 싫어했다.

진호가 가진 ‘전생 체험’을 신 내림이나 저주 비슷한 걸로 여겼기 때문이다.

저런 인간이 집안에 있으면 가세가 기운다.

흔히 있는 그런 속설에서 비롯한 미움이었다.

“······형들도 잘 지낸 거 같네.”

“잘 지냈지. 누가 싹 사라져 주니까 그냥 마을이 다 평화롭더라.”

“그러게. 농사도 풍년에 병충해도 없고. 세상 일 참 뻔하게도 돌아가.”

이런 비아냥거림도 익숙하다.

훨씬 더 어렸을 적에는 심한 일도 많았었다.

산속에서 귀신을 쫓아내준다며 매타작을 한 일.

땅에 묻고 반나절을 방치한 일 등.

과거를 되짚어서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잘 살고 있다면 됐네. 난 아버지 어머니랑 밀린 이야기가 많아서. 그만 먼저 돌아가 보도록 할게.”

“어허. 형들 얘기하는데 싹수없이 먼저 돌아가는 거냐? 서울에서는 그렇게 하디?”

“쯧쯧. 하여튼 애새끼 변한 게 없어요.”

변한 게 없는 건 누구일까.

진호는 자신의 앞을 막아 선 두 형들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새끼, 눈깔 봐라. 서울 물 먹더니 아주 위아래도 없어졌네?”

“야. 그따위로 야반도주해 놓고서 그냥 이리 돌아오면 우리가 환영이라도 해 줄 줄 알았냐? 미친 새끼 밥 주고 재워주고 했으면 양심이라도 있어야지.”

“밥 주고 재워주고. 그래. 그래서 노예마냥 일했었잖아. 기억 안 나?”

“허. 새끼 봐라. 서울이 좋긴 좋은가 보네.”

“뭐, 딱히. 서울에도 형들처럼 생각 없이 들이대는 인간은 많아서. 농담에도 그런 게 있잖아. 병신보존의 법칙이라고.”

예전이라면 무서웠을 형들이다.

매일 맞고 매일 욕 듣고.

몸에 쌓인 두려움은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야심 있는 군주 조조에게 그들은 가소로웠고, 폭군 주왕에게 그들은 벌레였으며, 충성심 높은 조운에게는 그저 창에 꿰일 적에 불과했다.

많은 경험과 많은 기억은 보는 눈을 탈바꿈 시켰다.

그리 거대하던 큰아버지가 작아진 것처럼, 악마 같던 두 형은 그저 편협한 시골 농부에 불과했다.

“날 불러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는데, 난 신경 쓰고 싶지가 않아. 부모님과 밀린 이야기를 나눠야 하니까 먼저 들어갈게.”

“허. 허! 야, 잠깐 있어 봐. 서울에서 뭐 연기인가 뭔가 하더니 아주 그냥 건방이 하늘을 찌르네?”

“쥐뿔, 연기는. 저딴 놈이 무슨 재주로 그 빽빽한 서울 놈들 사이에서 연기를 하겠어? 보나마나 미친놈이나 귀신 들린 역 아니겠어?”

대체 여기 사람들은 티비를 안 보는 걸까.

비아냥거리는 말들에 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 8부작 조연으로 인기 좀 얻었나 싶었는데 고향에서의 취급은 여전했다.

“난······”

“진호 오빠 연기라면 제가 보증할게요.”

“응?”

“누구?”

진호가 답을 하려는 찰나.

제 3자의 목소리가 난입을 했다.

어딘가 익숙한, 하지만 여기서 들릴 리 없는 그런 종류의 목소리였다.

“은서?”

“헤헤. 진호 오빠, 안녕?”

“아니,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은서. 박 은서였다.

그녀를 확인한 진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워! 뭐여!? 박 은서? 에이 레드의 박 은서?”

“진짜? 진짜냐? 그 아이돌 박 은서?”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다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진호를 무시하던 두 형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전직 에이 레드. 현직 배우로 활동하는 박 은서라고 합니다.”

“와. 와. 지, 진짜에요? 진짜 에이 레드의 그 박 은서 씨?”

“네. 확실하답니다.”

“세상에. 진짜야, 진짜. 에이 레드를 내 눈으로 보게 되다니. 이게 꿈이냐 생기냐.”

“와. 진짜 예뻐. 실물이 훨씬 예뻐.”

은서의 그룹 에이 레드가 인기를 구가하던 건 대략 3~4년 전. 서울에서는 이제 잊힌 그룹 취급을 받는 이름이지만 이곳에는 대접이 달랐다.

두 사람은 현직 아이돌을 보는 얼굴이었다.

“하.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그건 말하자면 좀 길고. 그보다 그쪽 두 분. 진호 오빠랑 아는 사이인 거죠?”

“아, 네! 네! 큰형입니다! 큰형!”

“네! 형제죠, 형제.”

“아. 그렇구나. 진호 오빠의 형. 근데 왜 진호 오빠가 연기를 하는 걸 한 번도 안 봤을까. 진짜 연기 끝내주는데.”

두 형들은 진호 쪽으로 고개를 부러져라 돌렸다.

그 시선은 ‘네가 어떻게 은서를 알고 있느냐!’라는 강한 의문과 놀람이었다.

“이번 드라마 여주인공이 은서. 나는 조연이었어.”

“······네가 은서 씨랑 연기를 했다고? 진심?”

“서로 러브라인이었지.”

“왐마. 세상에. 진짜냐? 에이 레드 출신의 은서 씨랑 네가 러브 라인으로 연기를 했다고?”

“왜 이렇게 못 믿으실까. 진호 오빠랑 나랑 연기 호흡이 얼마나 좋았는데.”

은서가 사뿐사뿐 걸어와 진호의 팔짱을 꼈다.

두 형들은 눈알이 빠질 듯 놀라서는 입만 뻐끔거렸다.

티비에서나 보던 아이돌이 눈앞에 있는 것도 놀라운데, 어릴 적 그렇게 놀리던 모자란 동생과 러브라인이란다.

머리가 핑핑 돌아갈 뿐이었다.

“너······인마. 와. 진짜 연기를 하고 있구나.”

“그러게. 그냥 헛소리인줄 알았는데. 와. 부럽다.”

두 형들의 시선은 완전히 바뀌었다.

마냥 가지고 놀기 쉽던 동생이 이제는 훌쩍 커버린 것이다.

동경의 대상인 아이돌과 연기를 하는 존재라니.

마치 거인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이 커보였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어. 그리고 난 이제 이쪽 난입객 분과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 형들은 그만 돌아가 주지 않겠어?”

“어, 어. 그래.”

“그, 그래. 뭐, 필요 한 거 있으면 말하고. 아이돌 분께서 시골 음식이 입에 맞을까 모르겄네.”

짧은 진호의 축객령에 두 사람은 고분고분한 소가 되어 물러났다.

진호는 그 모습에 고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악마 같던 두 인간인데 지금은 귀 접힌 강아지 새끼다. 겨우 이런 인간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나 싶을 정도.

후련하다기 보다는 그냥 우스웠다.

“그래서. 은서야?”

그럼 이제 다음 문제.

대체 이 아이돌 출신 스캔들 전문 배우께서는 이 야밤한 시간이 이 낯선 공간에 무슨 일로 와 있는 걸까.

온갖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서 물었다.

#

“하하. 처음에는 말렸는데 말이지.”

어색한 웃음의 서훈부터 휘파람 불며 딴청 피우는 아영까지. 진호는 은서를 따라 숨어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진짜. 다 큰 양반들이 왜 이러실까.”

“우린 은서의 꾐에 빠졌을 뿐이라고.”

“아, 뭐에요 서훈 선배! 선배도 나중에는 그냥 가 보자고 그랬으면서.”

“크흠. 그랬나? 요즘 들어 기억력이 좀.”

투닥거리는 세 사람을 보며 진호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향 일은 제 사생활이에요. 그건 알고 계시죠?”

“아, 그럼. 알지. 그래서 우리도 그냥 멀찍이서 따로 놀 생각이었어. 근데 저기 은서가······”

“아, 선배! 내가 뭐요!?”

“뭐긴. 오는 길에 진호 본 거 같다고 이 야밤에 산 탄 게 누군데. 아주 그냥 지극정성이야.”

“선배!”

빽 지르는 소리에 서훈이 귀를 막고 물러났다.

이 상황에서도 짓궂음은 여전했다.

“됐어요, 됐어. 진짜 애들도 아니고. 놀러 왔으면 그냥 그대로 놀다가 가요. 저기 위쪽으로 가면 계곡도 있고 나들이하기에는 딱 좋으니까.”

“진호 오빠는?”

“나야 뭐 부모님 보러 온 거니 계속······”

“아이고야. 이게 다 누구여?”

“어?”

진호가 두 형들을 만난 건 집 근처.

은서를 따라 나머지 일행과 만난 것도 마찬가지로 집 근처였다.

“진호야, 이분들은 다 누구시니?”

“아. 어머니.”

어머니가 진호를 찾아서 밖으로 나온 거다.

“어머. 안녕하세요, 진호 어머님. 전 은서라고 해요. 박 은서.”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예쁜 분이 다 있담. 우리 진호랑은 어찌 아는 사이세요?”

“드라마에서 같이 연기했어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해 주세요. 딸같이.”

“아······아! 그때 그 분? 어머, 어머. 진호야 그럼 이 분들이 전부 드라마에 나왔던 사람들이니?”

어머니는 눈까지 초롱초롱해져서 물었다.

진호에게 ‘친구’ 비슷한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 기쁜 것이다.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죠.”

이 마당에 어떻게 은서 등을 돌려보낼까.

진호가 새어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불청객들을 정식으로 초대했다.

#

“푸하하! 아홉 살까지 지도를 그렸다고요?”

“아이고, 그래놓고는 그냥 이불을 들고 방방 뛰어다니는데. 어릴 적에는 얼마나 개구졌는지 몰라요.”

은서 등 일행은 정식으로 손님이 됐다.

어머니는 주방으로 달려가서 과일을 깎아오고 아버지는 한 명씩 손을 잡으며 악수를 했다.

그리고 이어진 ‘친구 집에 초대된 친구의 만담’시간.

평소에 진호가 어떻느니, 어릴 적에는 어떤 애였는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도마 위에 올린 생선처럼 잘게 토막 쳤다.

“어머니. 그럼 진호 오빠 어릴 적에도 연기에 재능 있고 그랬어요?”

“그럼. 애가 남 따라하는 걸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예전에 개그프로그램 하면 길가에서 돌멩이 같은 거 주워서 따라하곤 했다니까.”

“이야. 어릴 적부터 끼가 있었구나. 아, 아쉽다. 일찍 연기 쪽으로 들어왔으면 지금 훨씬 더 대단한 배우가 됐을 지도 모르는데.”

“아이고. 그야 나이 좀 먹고 나서는······”

“여보.”

“아. 어머. 세상에 정신 좀 봐. 다들 출출하지?”

뒷말을 아버지가 막고, 어머니는 이마를 치며 주방으로 도망치셨다.

누가 봐도 뒷말을 흐리는 모양새였다.

“크흠. 그보다 그 자네들 잘 곳은 정해 두었나?”

분위기를 비집고 들어가는 건 아버지의 몫이었다.

“아. 숙소라면 오기 전에 대충 봐 뒀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펜션이 하나 있어서······”

“돈 아깝게 펜션은 무슨. 빈 방이 있으니 그쪽에서 몰아서 쉬게나. 손님이 왔는데 대접을 안 할 수야 없지.”

“그래도 돼요?”

“그럼. 우리 진호랑 친하게 지내 주는데. 소홀하게 대접 할 수는 없지.”

서훈이 반색했다.

안 그래도 펜션 숙박비용이 제법 비쌌던 터다.

공짜로 머물면서 진호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 갈 수 있다면 쌍수 들고 환영 할 일이었다.

“아버지. 저기, 그 방. 괜찮아요?”

“괜찮다. 손님 대접 정도는 해도 괜찮아.”

걱정을 하는 건 진호가 유일했다.

부모님이 거주하고 있는 집은 큰아버지 댁에 딸린 별채. 손님용으로 사용 할 방도 역시 큰아버지 집에 붙어있는 건물이었다.

친근한 가족이라면 손님용으로 방 한 빌리는 게 무슨 큰 문제일까 싶지만.

‘낮에 그 사단을 내 놓았는데.’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 진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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