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8화 (18/178)

Chapter7. 한층 더 깊이(4)

1화 1.4%로 시작한 드라마는 회차를 쌓아 갈수록 급격하게 시청률이 상승했다.

주연인 남일수와 은서의 인지도가 한 몫 한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미호 남호. 호호커플 케미 폭발. 커플 호감도 조사에서 70%의 득표율로 1등. 대세는 역시 호호커플.”

“······70%?”

“어. 정확하게는 72.5%.”

남일수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시청률 정보와 함께 딸려온 기사 소식은 기분을 망치기에 충분했다.

“진짜 장난해? 아니, 주연은 나잖아. 왜 조연하고 여주가 붙어먹는 쪽에 투표율이 더 높은데?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4화 부터 역전 되더라. 그 전 까지는 너랑 미호의 케미를 더 밀어줬었는데.”

“진짜, 뭔데. 그 인간 분량도 얼마 없잖아요. 왜 갑자기 두 사람을 밀어주는 건데? 혹시 뭐 언론에 작업치고 그러나?”

작업이라는 말에 남일수의 매니저는 그냥 외면했다.

이유라면 특별한 것이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남호와 미호가 더 어울렸을 뿐이다.

특히 4화 마지막 부분.

미호를 도와주는 착한 남호의 모습과 진수를 대하는 나쁜 남호의 모습이 대비를 이루면서 굉장한 매력을 뿜어냈다.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그 연기 하나로 40페이지가 넘는 갑론을박이 이루어졌다.

‘나도 호호커플에 투표했지만.’

굳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회사에서는 뭐래요? 이거 그냥 가요? 그 새끼 분량 좀 더 잘라내고 그렇게 안 되나?”

“그게 쉽겠냐. 지금 드라마 탄력 받아서 잘 나가는데 무리수 둘 수는 없지. 위에서도 고민이 많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남호 쪽 분량을 늘리는 것이 낫지 않냐는 말도 나오고.”

“뭐!? 지금 장난해요!? 내가 주인공인데 조연 새끼 분량을 왜 늘려요!?”

“야, 야. 진정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설마 네 분량을 빼서 그쪽으로 돌리겠냐? 넌 누가 뭐래도 AJ의 아들이잖아. 응?”

사실 이건 어느 정도 모순이 있다.

남일수가 물론 AJ의 강력한 푸시를 받는 건 사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유착관계가 엄청나게 끈끈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AJ는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

투자에 대한 결과가 불투명하면 얼마든지 노선을 갈아 탈 수 있다.

“시팔. 이럴 수는 없어. 내가 어떻게 따낸 주연 자리인데. 그 새끼가 날름 다 뺏어 먹게 할 수는 없다고.”

“······”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란 예감이 든다. 어차피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한 순간에 뜨다가도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운명.

거품.

딱 그러했다.

#

드라마는 막바지로 향해갔다.

7화 시청률은 8.5%.

케이블 8부작 치고는 굉장히 높은 시청률을 찍었다.

게다가 화제성도 굉장했다.

연일 신기록을 갱신하는 게시판 글 수도 그렇고 실검도 밥 먹듯이 장악을 했다.

향간에서는 연장을 하는 것이 아닐까?

쉼 없이 말이 나올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오늘이 마지막 촬영인데. 기분이 어때?”

“복잡미묘하네.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알지, 그 기분.”

은서와 차를 나눠 마시며 진호가 미소 지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

이제 시작이다 싶었는데 벌써 마지막이 보이고 있다.

어떻게 연기를 해 왔는지 감도 잘 안 잡힐 정도였다.

“근데 진호 오빠. 아쉽지는 않아?”

“응?”

“결말 말이야.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우리 둘 이어 주라고 그렇게 말이 많다며. 감독님이 고집을 꺾지 않았으면 엔딩 씬으로 우리 둘이 들어 갈 수 있었을 텐데.”

“아. 그건······”

시청자 의견에 휘둘려서 결말이 바뀌는 경우는 의외로 많이 있다. 주차별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경우 시청자 의견을 반영하지 않으면 항의가 쏟아지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까.

주연인 일수보다 진호 쪽이 더 은서와 어울린다.

흔히 말하는 ‘호호커플’이 대세가 되어서 게시판에서 줄곧 주장을 하고 있었다.

결말에서는 두 사람을 이어주어야 한다고.

“아쉽긴 하지만 나도 감독님 의견에 찬성이야. 이제 와서 결말을 바꾸는 건 옳지 않아.”

“흐응. 시청자들은 싫어 할 텐데?”

“잠깐은.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이쪽이 더 맞는 결론임을 알게 될 거야. 지금껏 쌓아 온 캐릭터가 있잖아. 이제 와서 남호가 마음을 바꾸는 것도 이상해.”

“쟁취한다, 식의 결론은 마음에 안 드나 봐?”

“난 여운이 있는 쪽을 선호하거든. 내 기억 속 남호는 자신보다 미호를 더 사랑하게 된 사람이야. 그녀가 더 행복 할 수 있도록 불완전한 자신에게서 떠나보내는 사람.”

완벽한 건 없다.

단지 그 드라마에서 보여주고 싶은 감정이 있을 뿐이다. 진호는 그것이 행복과 아련함. 두 가지의 상반된 결과라고 생각했다.

남호는 더욱 더 슬퍼야 했다.

“오빤 나중에 감독이 돼도 잘 할 거 같아. 어떻게 감독님하고 말하는 게 그리 똑같냐.”

“이미 물어보고 온 거였어?”

“감독님도 그러더라. 이게 처음부터 그려온 결말이라고. 일수 그 인간 때문에 힘이 좀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은 바꿀 수 없다더라.”

“힘 빠진 쪽이라서 아쉬운가 보네?”

“그야 그렇지. 난 솔직히 그 인간보다······”

은서가 입술을 달싹이다 말을 삼켰다.

연애 쑥맥도 아니고 좋다는 남자만 해도 한 트럭은 넘는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순수했던 시절의 어린 은서가 된 기분이었다.

차마 뒷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두 사람. 촬영 준비 하세요.”

그래서 스텝의 말이 반가웠다.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어색해진 표정을 바람에 날려 보냈다.

심장 뛰는 소리가 유별나게 컸다.

#

촬영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익숙한 얼굴로는 박종찬 감독과 서훈.

그 외 못 보던 사람도 여럿이었다.

아마도 제작사 쪽 사람들.

다만, 오늘 만큼은 그들도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다.

“한 번에 가자고. 진호 씨. 준비 다 끝났지?”

“네.”

앵글 안으로 자리를 잡은 진호가 짧게 답했다.

이미 남호의 캐릭터가 그의 몸 위로 덮어 씌워지고 있었다.

드라마 흐름에 따라 변화해 온 남호.

완전히 타인에게 무관심한 소시오패스 인간에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로.

감정의 굴곡과 금이 간 가면을 모조리 캐릭터에 이입시켜 두었다.

“오케이, 액션.”

감독의 사인과 함께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호는 숨을 들이마시며 낮게 가라앉은 시선을 던졌다.

언덕 아래.

불 켜진 빵집 안으로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스쳐가고 있었다.

그 그림자가 누구인지 남호는 알았다.

“미호······”

애절한 목소리가 그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끊어질 듯 간신히 이어지는.

마른 모래와 같은 음성이었다.

“이게 최선이겠지.”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 미호를 만나기 위해서 진수가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고 미호를 빼돌릴 수 있다는 사실도.

하지만 하지 않았다.

이게 최선이기 때문에.

“나 같은 결여된 인간 보다는 그가 너에게 더 어울려.”

이것은 변명이다.

자신에게 하는 변명.

사랑하니까 놓아 준다?

그런 건 그저 쓰레기의 궤변일 뿐이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다.

하지만.

“······”

욕심을 낼 수가 없다.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 다쳐도, 무엇이 망가져도 신경 쓰지 않던 자신이.

미호라는 한 여자만큼은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혹시나 다칠까봐, 자신에게 베일까봐.

그 사실이 너무 두려워서 욕심조차 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찢어 질 듯한 가슴 속의 울림마저 외면한 채 쓰레기 같은 영화 속 대사를 따라서 그녀를 보내주는 것이다.

‘눈물······’

남호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쳐냈다.

자신도 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런 순간에 자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기쁨이며 슬픔이었다.

어쩌면 자신도 남들과 같은 보통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기쁨.

그리고 그것을 일찍 깨닫지 못한 슬픔.

슬픔을 알아버린 심장의 아픔이었다.

“부디 그와는 행복하기를. 부디 날 잊고 살아가기를. 하지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나라는 인간을 기억해 주기를. 내 첫 사랑. 내 마지막 사랑.”

남호가 눈을 감고.

뚝, 하고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커어어어엇—! 오케이!!”

남호는. 진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

촬영장은 무언가 어수선했다.

바로 다음 촬영을 준비해야 함에도 사람들이 쉽사리 움직이지를 못했다.

“······5분만 쉬었다가 갈게요.”

그 이유는 단순했다.

촬영 장면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감정적 흔들림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컷 사인을 바로 보낸 지남운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심호흡을 하며 벅차오른 감정을 가다듬어야 했다.

“흐윽······! 흑. 그냥 남호랑 이어주면 안 되나?”

“훌쩍. 크응. 그러게. 너무하잖아, 저건.”

“진짜. 너무 슬퍼. 우리 남호.”

훌쩍이며 눈물 보이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촬영 스텝은 촬영 자체를 일로서 봐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들도 결국 사람이었다.

웃긴 장면에서는 웃고 감동적인 장면에서는 감동을 받는다.

“······”

“일수야. 너 괜찮은 거냐?”

그리고 그건 남일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언가 형용 할 수 없는 얼굴을 한 채 조금 전까지 촬영을 이어가던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

“응?”

“솔직히 얘기 해 줘요.”

“그래······뭔데?”

“방금. 저 연기. 저런 거. 나도 할 수 있을까요?”

“그, 그럼. 연습하면 다 돼. 그리고 넌 다른 장점이 있잖아.”

매니저의 답이 들려왔지만 남일수는 평소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이번에는 어려웠다.

심장을 관통 하는 것 같은 연기였다.

누군가의 연기를 보며 감탄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혼이 나가 본 적은 없었다.

“······자신이 없어요.”

“으, 응? 뭐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저렇게 연기 할 자신이 없어요. 아니, 저거랑 비슷하게나마 할 자신이 없어요. 대체 저건 뭐에요? 저런 게 어떻게 되죠?”

높은 산이면 오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위에 떠 있는 섬이라면?

대체 어떻게 그 위로 올라 갈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에 도전하는 모험심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한 톨의 가능성이라도 보여야 성립되는 말이었다.

“일수야. 연기라는 게······”

“나. 나, 이번 드라마 끝나면 그냥 연기 쪽 말고 다른 쪽으로 알아볼래요. 그냥 본래 하던 음악이나 계속 하게요.”

“진심이냐?”

“네. 네. 진짜로. 나, 저런 거 보고는 더 이상 연기 할 용기가 안 생겨요.”

매니저는 만류하려던 걸 멈췄다.

남일수 얼굴에 새겨진 감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건 말 몇 마디로 설득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압도당해서 기죽을 만큼 기가 죽어 있었다.

“······그래. 마지막 촬영까지는 힘내고.”

이래서야 마지막 촬영은 제대로 끝낼 수 있을까.

매니저는 코앞의 일부터가 걱정이었다.

‘담당을 바꿔야겠어.’

자신의 일자리 역시.

“촬영 5분 전.”

드라마는 마지막으로 향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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