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일의 매니저-200화 (201/261)

#200화. 오늘부터 우리는

박선호를 본 지수연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박선호가 들어오자 임준학과 임지형이 한걸음에 그에게 달려갔다.

지수연도 가까이 다가가서 그를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박선호 배우님. 괜찮아요?”

임준학이 묻자 박선호는 그에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괜찮습니다.”

박선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힘없는 그의 목소리에 대기실에 모인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박선호 배우님도 어지간하시네요. 이건 상업 행사도 아니고 홍보대사로 참여하는 행사인데. 집안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참석 못 한다고 해도 다 이해했을 거라고요.”

임지형은 기어이 오늘 행사에 참석한 박선호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니에요. 집에만 있으면 뭘 하겠어요? 이렇게 일을 해야 밖에도 나오고 여러분들도 보죠. 어머니도 어제부터 레전드 필름으로 출근하셨는걸요.”

“일하겠다는 사람을 보고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대단하십니다.”

임준학과 임지형은 파리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박선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수연은 박선호의 슬픈 눈을 보며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 왜 이렇지? 부정맥인가?’

지수연은 미간을 찌푸렸고 그걸 본 그녀의 매니저는 깜짝 놀랐다.

“지수연 배우님. 당장 밖에 가서 발을 받칠 나무판자를 구해 올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매니저가 지수연을 보고 쩔쩔매자 임지형은 그걸 보고 혀를 찼다.

“또 시작이네. 이봐요, 지수연 씨. 매니저가 하인입니까?”

지수연은 이제는 대놓고 자신을 보고 뭐라는 임지형을 보며 눈을 흘겼다.

임지형은 지수연의 눈빛을 무시하고 그녀의 매니저에게 걸어갔다.

“뭐가 필요하시죠? 저희한테 있으면 드릴게요.”

“그게요.”

지수연의 매니저는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이봐요. 임지형 씨. 댁이 무슨 상관인데 끼어들어요?”

지수연이 뭐라고 하자 임지형은 눈을 크게 떴다.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았대? 뒤에서 욕하려고 알아본 건가?’

임지형은 놀라움을 뒤로한 채 지수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같은 매니저끼리 도와준다는 거잖아요. 상부상조 몰라요?”

“본인 일이나 잘하세요.”

“뭐라고요?”

임지형은 지수연이 그의 친동생이었으면 당장 이마에 딱밤을 때려 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박선호가 나섰다.

“그만들 싸우세요.”

박선호가 나서자 지수연은 놀라서 입을 꽉 다물었다.

박선호는 십 센티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의자에 앉아 있는 지수연을 살폈다.

하이힐의 굽이 흙바닥을 뚫고 들어가 있는 걸 본 그는 매니저에게 팸플릿을 달라고 했다.

지수연의 곁으로 다가간 박선호는 경주 엑스포 팸플릿을 지수연에게 건넸다.

“나무판자도 좋지만, 이거라도 깔고 있어요.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거예요.”

지수연은 가까이 다가온 박선호를 보며 토끼처럼 눈을 크게 떴다.

박선호가 팸플릿을 바닥에 깔고 눈짓하자 지수연은 천천히 그녀의 다리를 팸플릿 위로 옮겼다.

“생각보다 편하죠?”

박선호가 묻자 지수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선호가 일어서는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지수연의 가슴이 아까처럼 다시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정말로 부정맥인가 봐.’

* * *

나는 잠이 든 서이렌의 얼굴을 한참이나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사에서 돌아와 보니 그녀가 깨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잠이 들었고 나는 그녀를 깨우지 않고 곁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 손이 그녀의 작은 손을 감쌌다.

이제는 피가 돌고 따뜻해진 서이렌의 작은 주먹이 내 손안으로 폭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내가 입을 맞추자 그녀의 눈꺼풀이 가볍게 떨렸다.

나는 그녀의 작은 손을 내 가슴에 가져다 댔다.

“이렌 씨. 내 심장이 뛰고 있는 게 느껴지나요? 이렌 씨가 내게 테티스의 심장을 줬죠? 그래서 내 병이 낫고 있는 거고요.”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나만 이렇게 살려 놓고 이렌 씨가 먼저 떠나는 건 반칙입니다. 절대로 안 놔줄 겁니다. 이렌 씨가 가는 곳이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갈 테니까. 그만하고 눈을 떠 줘요.”

순간 서이렌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그제야 서이렌이 깨어 있음을 깨달았다.

서이렌이 눈을 뜨더니 나를 보며 작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만 해요. 나 벌써 반은 죽은 사람 같은데요?”

“이렌 씨.”

“그렉이 말 안 해 줬어요? 이제 다 나았어요. 상처도 사라졌고요.”

“들었어요. 정말로 괜찮은 거죠?”

“그렉이 어떤 의사인데요? 안 믿어져요?”

“아뇨. 믿어요.”

“근데 왜 내가 곧 죽을 사람처럼 그렇게 절절하게 고백하는 건가요?”

“대체 언제부터 깨어 있던 겁니까?”

“이 방에 대표님이 들어오실 때부터요.”

“하. 이렌 씨.”

서이렌이 고개를 돌려 내 눈을 응시했다.

아마 내 뺨이 홍조로 물들어 있을 거다.

귀도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겠지.

나는 서이렌이 잠든 줄 알고 쉴 새 없이 그녀에게 내 속마음을 고백했다.

내가 이렇게 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나도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

부끄럽고 얼굴을 들고 있기 힘들었지만 나는 서이렌의 눈을 피하지 않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그랬죠. 대표님은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요.”

“맞아요. 그랬죠.”

“이제 인정하시는 건가요?”

“인정해요.”

순간 서이렌의 동공이 커졌다.

내가 이렇게 쉽게 그렇다고 할 줄은 몰랐나 보다.

하지만 말을 내뱉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제대로 고백해 줘요. 맨날 나만 했잖아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면 진짜로 나쁜…….”

“사랑해요.”

“…….”

서이렌이 놀라서 내 눈을 응시했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랑해요. 이렌 씨 혼자만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나도 이렌 씨와 같은 마음이에요. 그동안 이렌 씨의 마음을 모른 척한 거 미안해요.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죠?”

“아뇨. 대표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난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요. 내 눈에는 다 보이니까.”

“이제는 숨기지 않을게요.”

“정말 숨기지 않으실 거죠?”

침대 위에 앉아 있던 서이렌이 상체를 기울였다.

내게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이제 대표님한테 키스할 겁니다.”

“……이렌 씨.”

“피해요. 싫으면.”

그녀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고 나는 피하지 않았다.

지금 내 가슴이 떨리는 건 내 심장과 서이렌의 심장이 반응해서일까?

우리는 테티스의 심장으로 이어진 관계다.

테티스는 토성의 위성이라고 했다.

그녀는 토성이고 나는 영원히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위성이 되고 싶다.

나는 영원히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다.

이내 그녀의 입술이 내게서 떨어졌고 서이렌이 눈을 떴다.

나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 미소를 본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부터 1일입니다.”

* * *

경주 엑스포 행사를 마치고 나오자 지수연의 매니저가 곧바로 두꺼운 코트를 그녀에게 건넸다.

“차에 시동을 걸어 놨습니다. 이제 서울로 가셔야죠.”

“벌써요?”

“이따 저녁에 대탈출의 VIP 시사회가 있어요. 지금 가야 늦지 않습니다.”

“잠깐만요.”

지수연은 매니저를 뒤로 물리고 개회식장을 바라봤다.

임준학과 박선호가 서로 대화를 나누며 무대 뒤쪽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지수연은 그들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임준학에게 다가온 임지형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형. 지금 가면 블랙 마치 VIP 시사회에 늦지 않을 거야. 그런데 박선호 배우님도 블랙 마치 시사회에 참석하시나요?”

“그러려고요.”

“안 가셔도 되는데요.”

“몇 달 전부터 윤서혁 감독님께 꼭 보러 갈 거라고 약속을 해 놔서요.”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임준학이 끼어들었다.

“박선호 배우님. 시사회라서 기자들이 많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VIP 시사회라서 다른 유명한 분들이 많을 텐데요. 저한테는 관심이 없으실 겁니다.”

“형. 박선호 배우님 말이 맞아. 아마 이락 배우랑 정희진 배우한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걸?”

“맞다. 그 두 사람이 스캔들이 났었지.”

“반나절 동안이었지만 아주 짧고 굵게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지.”

세 사람의 대화를 듣던 지수연은 생각했다.

‘한지욱 대표가 퍼트린 스캔들 이야기를 하나 보네.’

지수연은 그 소식을 듣고 한동안 LOK에서 나와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한지욱이 멀쩡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한 사람 같았다.

“지수연 배우님. 이제는 진짜로 가야 하는데요.”

“잠깐만요.”

지수연은 자신을 데리러 온 매니저를 밀쳐 내고 박선호에게 걸어갔다.

지수연이 다가오자 임지형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임지형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박선호 배우님. 아까는 고마웠어요.”

“아닙니다.”

“시사회에 참석하시나 봐요.”

“예.”

박선호는 여전히 슬픈 눈을 하고 있었고 지수연은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임지형이 박선호의 등을 떠밀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제 갑시다. 늦으면 차 막혀요.”

임 씨 형제와 박선호 일행이 지수연을 뒤로 한 채 그곳을 빠져나왔다.

“지수연 배우님. 우리도 이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간다고요.”

지수연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 * *

대탈출 VIP 시사회에 온 한지욱은 TOP 미디어 직원들의 말을 듣고 화를 냈다.

“나보고 참석하지 말라고요?”

김승민 대표는 한지욱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간신히 기사를 다 틀어막았어요. 한지욱 대표가 오늘 시사회에 오면 또 난리가 날 겁니다.”

“정말로 그 게시글을 올린 게 내가 아니라니까요. 왜 사람 말을 안 믿는 겁니까?”

“나는 믿어요. 그런데 대중은 한 대표가 그랬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생각하세요.”

“하. 기분이 정말 더럽군요.”

김승민 대표는 그 이후로도 계속 한지욱을 달랬고 간신히 그의 시사회 참석을 막았다.

“그럼, 저는 시사회가 시작돼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가 보세요.”

김승민 대표가 떠나고 한지욱이 홀로 남았다.

한지욱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선글라스를 쓰고 시사회가 열리는 극장을 빠져나갔다.

LOK 사무실에 도착한 한지욱은 열은 받지만, 시사회 분위기가 궁금했는지 곧바로 노트북을 열었다.

포털에는 VIP 시사회에 참석한 유명 배우들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같은 날 VIP 시사회 격돌…… 스타탄생 vs LOK]

[블랙 마치와 대탈출. 같은 날 VIP 시사회로 첫 대결 시작.]

자극적인 비교 기사를 본 한지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기사를 클릭했다.

블랙 마치와 대탈출의 시사회에 온 연예인들을 비교하는 기사였다.

블랙 마치는 미국에 있는 서이렌을 제외한 스타탄생 배우들이 총출동했고, 스타탄생과 인연이 있는 이자현, 박선호까지 참석했다.

대탈출 역시 LOK와 TOP의 배우들이 모두 찾아왔다.

그런데 기사의 마지막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한지욱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환하게 웃는 지수연의 아래 작게 써진 글귀를 본 한지욱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대탈출이 아닌 블랙 마치 시사회에 나타난 LOK 여신 지수연]

싸가지의 첫사랑

극장 안으로 들어간 지수연은 박선호가 어디에 있는지 먼저 살폈다.

박선호는 스타탄생의 배우들과 함께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락, 윤이슬, 김이솔, 스타탄생 소속은 아니었지만, 임준학 배우까지.

수많은 사람 중 한가운데 앉아 있는 박선호를 발견한 지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앞쪽은 물론이고 뒤쪽도 자리가 꽉 차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지수연은 어쩔 수 없이 가장 뒤의 왼쪽 구석에 남아 있는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누가 알아볼까 봐 선글라스까지 낀 그녀는 영화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앞에 있는 기자들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박선호 배우는 그 일이 있고 처음으로 공식 행사에 나오는 거죠?”

“그렇죠. 겉으로는 유약해 보이는데 속은 그렇지 않나 봐요. 멘탈이 꽤 세네요. 아까도 기자들이 박선호 배우를 찍느라 난리가 났는데도 웃으면서 다 받아 줬잖아요.”

“그러고 보면 박선호 배우가 정말 괜찮은 사람인가 봐요. 뒷말이 나쁘게 나온 적이 없잖아요. 연기도 잘하고, 성격도 괜찮고.”

“이제 진설이라는 후광까지 얻었으니 아마 이제부터는 커리어에 날개를 달 겁니다.”

“그러게요. 내년은 박선호의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지수연은 기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곳까지 따라와서 박선호의 얼굴도 제대로 못 봤지만, 그의 칭찬을 들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그때 기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 들었어요? 박선호 배우가 서이렌을 좋아한대요.”

“아, 그 이야기요. 저도 알죠. 유명한 이야기잖아요. 박선호 팬들한테도 소문이 났었잖아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지수연의 눈이 커졌다.

지수연은 두 주먹을 움켜쥐고 기자들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그들은 누군가 뒤에서 매의 눈으로 쳐다본다는 사실도 모르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구원의 밤 촬영장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대요. 박선호 배우가 함께 연기하는 서이렌 씨한테 완전히 빠져서 컷 소리만 나면 얼굴이 빨개졌다고 하던데요.”

“그거 짝사랑이죠?”

“당연하죠. 서이렌은 지금 국민 배우 수준으로 인기가 있는데,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면 이렇게 잠잠할 리가 없겠죠.”

“몰래 연애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박선호 배우의 성격을 생각해 보세요. 짝사랑하는 것도 못 숨기고 동네방네에 소문을 다 내고 다닌 사람인데 말해 뭐 하겠어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하하하.”

“지금 상황으로 봐서, 서이렌 씨가 사귀는 남자가 있다고 발표하면 아마 한국이 뒤집힐 겁니다. 상대방 남자는 아마 국민 역적이 될걸요?”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요? 근데 저도 서이렌 씨 애인이 제 성에 안 차면 기사로 마구 깎아내릴 겁니다. 저도 서이렌 배우님 팬이거든요.”

“하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 * *

인터넷 포털에는 같은 날, 같은 시각 시사회를 하는 블랙 마치와 대탈출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 스본 식구들 총출동이네.

- 서이렌만 안 보이니까 섭섭하다. ㅠㅠ

- 박선호도 왔어. ㅠㅠㅠㅠㅠ

- 안 왔으면 했는데 내심 오길 바랐다. 선호야. ㅠㅠㅠㅠ

- 이락이랑 정희진 기사 사진 존나 귀여워.

- 기사 제목이 ‘함께 스캔들 날 만하죠?’래. ㅋㅋㅋㅋ

- 대탈출은 LOK, TOP 배우들 총출동이네.

- LOK도 이자현 나가고 나니까 예전의 탑 느낌이 별로 없다.

- 한지욱 체제 된 다음부터 왠지 망해 가는 느낌임.

- 근데 지수연은 왜 블랙 마치 시사회에 갔냐? 쟤가 자칭 LOK 여신이잖아.

└자칭 여신 ㅋㅋㅋ

└ㅋㅋㅋㅋㅋ

- 정말로 LOK 배우 중에 지수연만 블랙 마치 보러 갔네??

- 지수연이 연예계 금수저라서 원래 제멋대로 하는 경향이 있음. 그게 지수연의 유일한 매력임. ㅋㅋㅋ

- 얘들아! 블랙 마치 평론가 평점 떴어.

- 대탈출도 떴다!!!

- 시사회도 같은 날 하더니 평점도 동시에 떴네. ㅋㅋㅋㅋ

[블랙 마치 평점]

- 제대로 된 오락성과 신선함까지 동시에 선사해 준 영화. (8점) - 잠들어 있던 좀비들이 오늘 밤 되살아난다. (7점) - 한국형 좀비 영화의 신기원. (9점)

- 천재 윤서혁의 발산하는 에너지를 온전히 담은 영화. (8점) - 좀비 서스펜스의 영리한 활용. [7점]

[대탈출 평점]

- 절제할 줄 모르는 CG의 향연. (6점)

- 액션과 CG에 집중한 영화.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너무 가볍다. (4점)

- 소재와 잠재력이 드러나지 않는 좀비 영화 최약체. (5점)

- 널뛰는 감정선. 뭉텅이로 잘려 나간 편집점. (3점) 두 영화의 상반된 평점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 역시 윤서혁. 오락성도 잡았나 봄. ㅋㅋㅋ

- 블랙 마치 평점 좋은 거지??

└엄청 좋아.

└12월 개봉작 중에 제일 좋아.

- 좀비 영화는 싫어하는데 블랙 마치 보러 가야 하나??? 평점 보니까 갑자기 훅 땡기네.

- 블랙 마치는 평점을 찢었는데 대탈출은 왜 저 지경이냐?

- 대탈출은 액션이랑 CG는 괜찮은가 보네.

- 김중성 감독이면 액션은 잘하겠지. 본인 주특기인데.

- 대탈출은 예고편이 다인가 보네.

- 시나리오 작가에 한지욱이라는 이름이 올라왔을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

- 대탈출은 쫄딱 망했으면. 한지욱 때문이라도 망했으면 좋겠다.

- 이미 망하고 있어. 예매율 안습. ㅋㅋㅋㅋ

* * *

트로이 영화사에 다녀온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곧바로 그렉의 집으로 갔다.

서이렌이 침대에 앉아 그렉의 진찰을 받고 있었다.

서이렌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대표님. 왔어요?”

“이렌 씨. 일어나 있었네요.”

나는 한걸음에 그녀에게 달려갔다.

침대 옆에 있었던 그렉은 내가 오자 자리를 비켜 주고 반대편에 가서 의자를 놓고 앉았다.

나는 서이렌의 얼굴을 먼저 확인했다.

이제는 완벽하게 컨디션을 회복해서 그런지 얼굴에서 빛이 났다.

나는 그렉을 보며 물었다.

“그렉. 이제 이렌 씨는 괜찮은 거죠?”

“보시다시피요. 당장 오늘이라도 촬영장에 나가도 될 정돕니다.”

그렉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뛰어왔어요? 왜 그렇게 숨차 해요?”

“괜찮아요.”

나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연달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보니 마침 엘리베이터 점검 시간이었다.

오 분만 기다리면 된다는데 나는 그새를 못 참고 계단으로 뛰어 올라왔다.

나는 서이렌이 걱정할까 봐 숨을 몰아쉬고는 물었다.

“이렇게 앉아 있어도 돼요? 안 불편해요?”

서이렌은 등 뒤를 받치고 있던 쿠션을 빼서 그렉에게 던지더니 눈을 아련하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힘들어요.”

“그래요? 그럼, 누울래요?”

“응. 싫어. 너무 많이 누워 있었어요. 눕기 싫어.”

“그럼, 내가 편하게 있으라고 뒤에서 안아 줄까요?”

서이렌이 큰 눈을 깜박이며 내게 답했다.

“응. 대표님.”

나는 외투를 벗고 곧바로 서이렌의 뒤로 가서 그녀의 몸을 내게 기대게 했다.

서이렌은 내 등에 몸을 맡기더니 이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어때요? 안 불편하겠어요?”

“아뇨. 대표님 어깨가 넓어서 제 몸이 폭 들어가요. 너무 편해요.”

서이렌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 이렇게 계속 있어도 돼요?”

“이렌 씨가 원하는 만큼 있어요. 내가 계속 이렌 씨 뒤에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 없이 예스라고 하면 안 돼요. 내가 정말로 온종일 대표님을 괴롭히면 어쩌려고요?”

“이게 괴롭히는 거예요? 그럼, 맨날 괴롭힘당하고 싶은데요?”

서이렌이 던진 쿠션을 들고 있던 그렉은 두 눈을 감았다.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그는 지금 처음으로 일생일대의 큰 위기를 느꼈다.

그렉이 쿠션을 의자에 던져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두 연인은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렉은 한숨을 푹 내쉬며 침실을 빠져나갔다.

* * *

트로이 종합 촬영장에 동양인으로 이뤄진 스태프들이 들어왔다.

트로이에 투자한 중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펑황 소속의 배우인 샤오엔과 그녀의 스태프들이었다.

샤오엔의 매니저인 팡닌이 그들에게 배정된 트레일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팡닌은 삼십 대 후반의 여성 매니저로 샤오엔을 데뷔 때부터 키워 온 베테랑 매니저다.

“샤오엔. 트레일러가 너무 좁지?”

“어차피 촬영이 단 사흘 동안이잖아요. 괜찮아요.”

“트로이에 일할 줄 아는 사람이 없네. 우리 샤오엔을 이렇게 취급하다니. 손님 접대도 안 해 봤나?”

“이번 작품은 특별 출연이니까요. 다음 할리우드 작품은 내가 주인공일 테니 그때까지만 참죠.”

“역시 우리 샤오엔은 대스타의 기질을 타고났어. 대범해.”

팡닌은 샤오엔에게 촬영 일정표를 보여 줬다.

“팡닌. 지난주에 촬영장에 불이 났다는데. 이제 복구는 다 된 건가요?”

“큰 화재가 아니었나 봐. 내일부터 다시 촬영을 시작할 거라니까 걱정하지 마.”

샤오엔은 일정표를 치우고 대본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팡닌. 루나 역의 배우 말이에요. 한국 사람이라면서요?”

“맞아. 다른 스태프들이 말하는 걸 들어 보니 별명이 세이렌이라고 하더라고.”

“세이렌이요? 신기하네. 나랑 별명이 같네요.”

“우리 샤오엔은 인어잖아. 세이렌이랑은 다르지.”

“암튼 비슷한 과잖아요. 내 팬들은 나를 인어 말고도 세이렌이라고도 부르니까요.”

“우리 샤오엔이 같은 동양인 배우가 출연한다고 하니 걱정이 되나 봐?”

“그럴 리가요. 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내일 이 사람도 촬영장에서 볼 수 있는 거죠?”

“그럼, 당연하지. 근데 우리 샤오엔이랑은 비교가 되겠어?”

“됐어요. 그만 놀려요. 팡닌. 내일 만나 보면 알겠죠.”

* * *

오랜만에 촬영장에 복귀한 서이렌을 향해 배우들이 몰려들었다.

토니 역을 맡은 이안 밀러가 서이렌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서이렌 씨. 이제 괜찮아요?”

“그럼요.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에릭 역의 콜린 스미스도 서이렌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챙겼다.

“이렌 씨가 사고 당일에 쓰러졌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정말로 괜찮은 거죠?”

“다들 이렇게 걱정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서이렌은 자신을 진심으로 위해 주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보며 감동했다.

마침 촬영장에 도착한 샤오엔 일행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인 서이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샤오엔 주위의 스태프들도 서이렌이 왔다는 소식에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달려갔다.

“세이렌이 왔어. 가 보자.”

“어머 정말이네. 빨리 가 보자. 우리 세이렌 배우. 이제 괜찮은 거겠지?”

“얼굴은 너무 좋은데?”

“우리 서이렌은 원래도 엔젤이라고. 당연한 소리 하지 마.”

샤오엔은 앞다퉈 달려가는 스태프들을 보며 인상을 썼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샤오엔이지만, 분명히 세이렌, 뷰티풀, 엔젤 같은 단어가 들렸다.

샤오엔이 그녀의 매니저인 팡닌을 보며 물었다.

“팡닌. 저 사람이 세이렌이라는 배우야?”

“응. 그런 것 같아.”

“근데 다들 왜 저렇게 몰려가 있는 거야?”

“지난주 사고 이후에 다시 촬영장에 복귀해서 그럴걸?”

“겨우 일주일 못 본 걸로 저런다고?”

샤오엔은 곁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서이렌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서이렌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내밀던 샤오엔의 동공이 커졌다.

근처를 서성이는 한 남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팡닌도 같은 사람을 본 것인지 놀라 말했다.

“저 사람은 누구지? 배우인가?”

“팡닌. 이 영화에 동양인 남자 배우가 더 있었나?”

“대본에는 없어. 혹시 단역 배우가 아닐까?”

“저 사람이 단역 배우라고? 저렇게 멋있게 생겼는데?”

샤오엔은 눈앞에 나타난 원세강을 보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내 이상형의 남자가 실제로 존재하다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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