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51화 (151/198)
  • # 151

    본 게임을 위한 대비(3)

    나는 내 앞에 제안서를 둔 채로, 습관처럼 책상 위를 툭툭 쳤다.

    “음...”

    그러다가, 나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내 앞에는 장 부사장과 함께, 권 이사, 김 이사, 그리고 그 옆에 키가 크고, 머리는 노랗고, 눈은 파란 외국인이 서 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제안서는 잘 받아보았습니다.”

    내 말에, 해외파 김 이사가 그걸 바로 번역해 말해준다.

    “I received your proposal well.”

    “저와 임원들이 더 숙고해보고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I and the executives will think for a few more days and answer.”

    이어진 김 이사의 말에 그 백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일어서서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호텔은 어디다가 잡으셨나요?”

    “What hotel are you staying at?”

    백인은 바로 대답한다.

    “Intercontinental seoul. Next to COEX”

    그리고 다시 김 이사가 바로 번역을 해준다.

    “코엑스 옆 인터컨티넨탈이랍니다.”

    ‘그건 나도 들었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에게 말했다.

    “그렇군요. 한국은 처음이시라고 하니, 쉬시면서 이곳저곳 관광이라도 하고 계세요. 종로가 좋고, 가까이에 있는 선릉, 정릉도 볼만 합니다.”

    김 이사의 통역을 들은 그는 맞잡은 손을 자신의 손으로 덮은 다음 내게 말했다.

    “Thank you for welcoming me. I appreciate it”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김 이사에게 말했다.

    “나가실 때, 택시까지 잡아드리세요.”

    “네 사장님.”

    네 남자가 사장실 밖으로 나간 뒤 나는 다시 돌아와 제안서를 들어보았다. 늘 그렇지만 제안서의 핵심은 맨 뒤에 쓰여 있다.

    ‘1,350,000,000. US Dollar’

    13억5천만 달러. 환율을 따져보면 현영제약 매각금액으로 걸어두었던 1조 5천억을 조금 넘는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거물이 걸려들었어.’

    제안서를 덮어 맨 앞 쪽을 보면, 좌상단에 하늘색 원 안에‘Pfizer’라고 쓰여 있는 로고가 보인다. 비아그라로 유명한 화이자. 시가총액 300조가 넘는 글로벌 제약사 중 하나. 이 사실 알게 된 것은 나도 몇 주 밖에 되지 않았다.

    ‘한상훈 대표 다시 한 번 대박? 화이자 현영제약 매수 위해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에 접촉.’

    현영제약의 관절염 치료제 신약이 미국 내에서 점차 매출이 올라가는 데, 그 와중 내가 매물로 내놓으니 화이자 역시 탐이 난 듯하다. 텐센트에, 화이자에 앞으로 있을 아마존까지. 하여간 요새 상대하는 기업 규모가 커져서 천장을 찍어버렸다. 애초에 1조원씩 툭툭 내던지듯 회사를 사갈 기업이 많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 얼마를 더 불러볼까. 1조 5천억도 조금 많이 불렀다고 생각했는데 13억5천만 달러라...’

    나는 보고서 맨 위에다가 펜으로

    ‘14억5천 달러.’

    라고 써보았다. 13억5천으로 왔으니 1억 올려본 다음. 미래뉴스에서

    ‘한상훈 대표 대박! 14억5천 달러애 현영제약 매각.’

    그런 뉴스가 뜨면 그대로 진행하고

    ‘현영제약 매각 무산. 한상훈 대표의 역 제안에 화이자 난색’

    그런 뉴스가 뜨면 14억 정도에서 절충안을 내놓아보거나, 13억5천에 승낙을 할 생각이다. 늘 그렇지만 이런 글로벌 기업 구매자들 설득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시가총액이 수 백조가 되도, 1억 더 내는 걸 싫어한다. 애초에 그러니까 수 백조짜리 회사가 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옛말에는

    ‘가진 놈이 더 한다.’

    라는 말이 있지만, 투자를 하면 할수록 그 말 앞뒤를 바꾸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더한 놈이 가진다.’

    는 말로. 글로벌 금융시장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곳이며 규모가 커질수록 더하다. 13억5천달러. 언뜻 보면 깔끔해 보이지만 화이자 역시 이 가격을 고심고심해서 내놓은 것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판매자 마음을 만족시키면서 한 푼이라도 싸게 사나 하고 말이다.

    ‘좋아 한번 양키들하고 한 번 협상을 해보자고. 어디까지 받아낼 수 있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협상에서 우위에 서 있는 것은 나다. 미래에서 나올 뉴스를 알고 있으니까. 나는 14억 5천에 동그라미를 빙글빙글 그렸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

    ‘띠링띠링~ 띠링띠링~’

    알람이 울렸다. 5시. 알람 내용은 ‘동창회 모임’. 그걸 본 나는 알람을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5시네.’

    생각한 나는 외투를 들고 사장실 밖으로 나왔다. 박 비서가 일어서서 고개를 숙인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오늘 동창회 모임인거 알지?”

    “아 네. 사장님.”

    “내려가서 준비해. 나 잠깐 올라갔다 올게.”

    “네 사장님.”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 집에는 아영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어땠어? 오빠?”

    “뭐가?”

    “미국 분이랑은 이야기 잘 했어?”

    요새 들어 나는 아영이는 우리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점차 알아가고 있었다. 나야 딱히 말할 생각을 없었는데 아영이가 ‘내조의 여왕’이 되겠다고 결심을 한 뒤로 내게 이것저것 물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김 이사님이 잘 해주셨는데 뭐.”

    “흐음 그래? 그래서 영어는 어떻게 배울 거야 말거야?”

    “고민 중이야.”

    “왜?”

    “배우는데 너무 시간이 걸릴 까봐. 솔직히 좋은 통역 쓰는 거 내게는 몇 푼 안들 거든. 김 이사님 같은 분도 있고.”

    “그래도 본인이 하면 더 좋잖아. 내가 잘 가르쳐 줄게 오빠.”

    “알았어 생각해볼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 키 함에서 대문자 R이 두 개 연속 겹쳐있는 롤스로이스 차키를 꺼냈다.

    “그나저나, 나 바로 내려갈게. 조금 늦었거든”

    “그 동창회?”

    “응.”

    “정말 혼자 가도 괜찮겠어?”

    “혼자 가도 괜찮은 게 아니고, 혼자 가야 돼.”

    아영이는 나를 보며 팔짱을 꼈다. 지난 번 말했을 때,

    ‘동창회면 나도 가야 하나? 예비 신부로?’

    그런 말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본인을 두고 가는 게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늘 가는 거 동창회 아니야. 동창회 비스무리한 모임이지.”

    “그래? 동창회가 아니라고?”

    “응. 그냥 그쪽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서 나도 그렇게 부르는 것 뿐이야. 동창회라고.”

    “그래? 이상하다 그 모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이상하지 모이는 사람들도 이상한 사람들 뿐이야.”

    그런데 그 말에, 아영이는 오히려 눈을 반짝였다.

    “그래? 그러면 재밌겠는데. 이상한 사람들이 원래 재밌잖아”

    나는 콧웃음을 쳤다.

    “재미있기는. 별로야 그 사람들. 재미없게 이상한 사람들이야”

    “그래? 근데 거긴 왜 가?”

    “비즈니스 때문이지 비즈니스. 나도 딱히 막 가고 싶어서 가는 거 아냐. 근데 그 사람들한테 듣는 이야기가 사업하는데 도움이 될 때가 있거든.”

    “흐음... 그래. 그럼 잘 갔다 와 오빠.”

    “응.”

    나는 그녀와 살짝 키스를 나눈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 주차장으로 왔다. 거기에는 박 비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에게 롤스로이스 차 키를 던지며 말했다.

    “가자.”

    “네.”

    운전대를 잡은 박 비서는 잠시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백미러로 박 비서의 얼굴을 보았다. 평소 경직된 얼굴의 소유자인 그지만, 오늘은 조금 더 굳어 있는 것 같다.

    “왜 긴장 돼?”

    박 비서는 솔직하게 말했다.

    “네. 저는 다를 때는 괜찮은데. 꼭 여기 갈 때만 긴장이 되더군요.”

    “음... 이번에 세 번째인데도 그래?”

    박 비서는

    “그러게 말입니다.”

    그 말을 하면서 롤스로이스를 몰고 나갔다.

    *

    청담동에 위치한 한 프라이빗 바. 주말에만 외국인, 연예인 대상으로만 여는 것으로 알려진 이곳. 하지만 오늘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었다. 지하에 있는 이곳을 포함해 건물 전체를 빌려서 말이다. 가든 로얄. 올해의 두 번째 모임. 나는 칵테일 하나를 두고 아주 조금, 조금씩만을 마셨다. 취하지 않도록. 여기서 나는 입은 별로 열지 않았지만, 귀는 열어 놓는 편이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KJ쪽에서는 어떻게 생각해?”

    “주성원 6, 소강섭3, 곽지원 1.”

    “그럼 대충 비슷하네? 주성원이 되는 걸로?”

    “어쩔 수 없지 한상훈이랑 이수원이 그렇게 가버렸는데 적수가 있어야지.”

    한상훈이랑 이수원을 보내버린 장본인인 나는, 별 말 없이 그걸 듣기만 했다.

    “딱히 변수 없으면 주성원 쪽에 줄 세워놔야겠네.”

    “근데 그 사람 자꾸 공약에다가 대기업 제제에 법인세 인상 이야기 하던데 괜찮겠어?”

    “아니 뭐 뽑아주고 못하게 하면 되지. 대통령이 별 거 있나? 게다가 이번에 4년으로 줄었잖아. 봐서 1,2년 봐주다가 재선 이야기 나올 때 즈음에 겁 좀 주면 알아서 길거야.”

    이 곳 사람들은 대통령도 그다지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은 4년짜리고, 돈은 영원하다.’

    라는 마인드다. 국민들이 뽑아놓은 대통령, 그리고 그의 공약조차 우습게 여기는 것을 보면 역시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들어놓을 필요는 있다. 여기서 나오는 정보자체는 대단히 고급이었으니까.

    미래뉴스를 알아도 여기서 검색어랄지 뭐랄지 키워드 한두 개는 챙겨놓을 필요가 있다. 나는 그들 이야기에 대충 맞장구를 쳐주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그나저나 한 대표.”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나를 부른 것은 지성패션 회장 고진희다.

    “최근 음식료는 왜 산거야?”

    그 말에 LC그룹의 허준익도 가담한다.

    “아 맞다 나도 들었어. 우리 마이다스께서 그건 왜 산거야? 그것 또 몇 배 가는 거야?”

    우리나라 대기업을 이끈 다는 사람들도, 다가올 위기에 대해서는 전혀 감지를 못하고 있다. 하긴 우리나라는 아무리 탑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글로벌 경제에 있어서는 아직 하수인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미래에 닥칠 일도 전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걸 미리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미국 정치의 수뇌부. 그것도 최정점에 있는 몇 사람, 그리고 그 정치가들에게 로비를 하는 사람들. 음모론에서나 나오는 유태계 자본 세력... 정도?’

    나는 단지 웃으며 말했다.

    “맛있어서요. 비벼라 만두. 드셔보셨어요?”

    고진희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당연하다.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으로 태어났는데, 냉동만두를 먹어봤을 리가 있겠는가.

    “맛있어요 가격대비 해서요. 조리도 간편하고. 그래서 대학생들이나 자취하는 사람들한테 인기에요. 아마 중국이나 동남아 쪽에 진출하면 더 많이 팔릴 걸요?”

    고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오호 그렇구나. 가정부 아줌마한테 연락해서 한번 먹어봐야겠네.”

    허준익은 감탄을 하며 말한다.

    “역시 한상훈 대표는 출신이 그래서 그런지 일반인들이 뭘 좋아하는 지 잘 아네. 역시 대단해!”

    그는 칭찬인지, 무시인지 잘 모를만한 말을 해댔다.

    ‘굳이 따지자면 칭찬 쪽이겠지만...’

    나도 이번이 세 번째 참석이어서 차기 CEO들의 성격을 대충 파악했다.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본인들이 일반인들과 다른 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게 문제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한테 출신 운운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잠시 후 누군가가 내 귀에다가 대고 말했다.

    “흘러 들어. 잘 몰라서 저러는 거니까.”

    나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탁준기의 사촌형, 수연그룹의 탁문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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