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35화 (135/198)

# 135

용들의 연회(2)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응.”

나는 차 뒷좌석에 탄 채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깥 풍경은 다시 시골 동사무소에서 시골길로 옮겨 간다. 나는 그걸 보며 묵묵히 그 선상에서 있었던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참... 괴상한 일이로군.’

그런데, 그러던 그 때

“저 사장님.”

앞에 있던 서 비서가 입을 연다.

“응?”

“저...”

서 비서는 백미러로 나를 힐끗 보더니 주저주저 하다 내게 말했다.

“썰 좀 풀어주세요. 어땠습니까? 부자들이 모이는 호화 별장은?”

나는 손을 들어 손목을 바라보았다. 지금 보니 11시 반이다. 서 비서는 여기서 네 시간 넘게 기다린 것이다. 지루했을 법 하다.

“일단. 호화 별장이 아니야.”

“그럼요?”

“호화 크루즈였어. 북한강 위에 떠 있는.”

“아아...”

“좋더라. 술은 비싸고 음식은 맛있고, 유명한 사람들도 많고.”

그 때 묵묵히 있던 박 비서가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나연도 있던데요.”

서 비서는 놀라 외친다.

“진짜로?”

이나연이라니, 우리 회사 소속은 아니지만, 그녀 역시 오현주에 버금가는 탑스타 중 하나였다. 나도 놀라서 말했다.

“그래? 나는 못 봤는데”

“네. 사장님 그 선실 안에 들어가셨을 때 바깥에서 대기 타고 있었는데... 어떤 미녀가 휘익 지나가기에 돌아봤는데 그분이시더라고요. 이나연 씨.”

그런 탑 여배우도 그 호화 객선에 타 있었나보다.

‘여배우가 거길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서 비서 말했다.

“와 부럽다아... 사장님 다음번엔 박 비서 말고 저 데려가 주세요. 저.”

서 비서는 진심인 듯하다.

‘박 비서를 데려간 건 다 이유가 있는데...’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글쎄. 나는 여기 다시 오려나 모르겠다.”

“왜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어요?”

“아니.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아냐. 단지... 그냥 내가 저기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아서.”

“음... 돈으로 따지면 사장님도 저 사람들 못 지 않으시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나는 거기까지만 말한 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입을 닫자, 서 비서도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이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가 듣고 싶어할만 한 이야기는 나 없을 때, 박 비서가 다 해줄 것이다. 나는 다시 그 방금 있었던 그 모임에 대해 생각했다.

‘참 특이하단 말이지.’

*

자기소개를 하고 들어간 그 모임에서, 나는 다소 놀라운 환대를 받았다.

“아아 이분이 그 돌풍의 주역인 한상훈 씨군요?”

“손을 대는 회사마다 그렇게 성공을 하신다고?”

“저희 쪽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시장에 천재가 나타났다고.”

“맞아요. 천재.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천재라고.”

그 사람들은 내 얼굴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내 이름과, 내 회사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급성장한 우리 회사의 성과도. 다들 정보를 물어주는 새가 있는 듯 했다. 40대 나이지만, 무슨 관리를 받는지 거의 20대 가까운 피부를 가지고 있는 지성패션 회장 고진희가 장한설에게 묻는다.

“장 회장님은 한상훈 대표를 어떻게 아시고 초청을 하신 거예요?”

장한설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건너 건너 소식 듣고 호기심이 생겨서 초청을 한 거지요. 앉으시지요.”

장한설은 내게 자리를 권했다. 나는 그 자리를 앉으면서 반대편에 앉은 탁문수를 보았다. 건너서 소식을 알려준 사람은 바로 그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보는 듯 보지 않는 듯, 그렇게 무관심하게 앉아 있었다.

‘음... 나를 부른 건 저 녀석 일 텐데...’

나는 자리에 앉아서 그들에게 물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

“여러분은 자주 이렇게 모이시나보지요?”

내 말에, 수성기획 사장 김신이 대답한다.

“일 년에 한번정도.”

짧게.

“아아 그러셨군요. 그러면 저 빼고는 다들 구면이신 거군요?”

김신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요. 처음은 이 모임에서 만난 건 아니지만.”

내 말에, 미래자동차 부회장 정성수가 말한다.

“뭐 다들 여기저기서 만나지 않았나?”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예전에 이원재 이사가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대기업 자제들 끼리 모여서 이야기 할 때가 있다고. 어쩌다가 그런 일이 생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각자 혼맥으로 얽히고설키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무리도 아니지 싶다. 이 일곱 명은 각자 성도, 가지고 있는 회사도 달랐지만 위로 가지를 쫒아가든, 아니면 옆으로 결혼을 했든, 찾아보면 다 가깝거나 먼 친척일 것이었다.

‘나만 외부인이로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자수성가해서 1조원 이상의 재력을 가지게 된 사람은 몇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이 회장님들은 내게 관심을 보였다. 호텔백제 이사 하지연이 내게 물었다.

“한 대표님은 어디서 공부하셨나요?”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나왔습니다.”

“아아 그래요. 그런데 투자회사를 차리셨다고?”

“네 학창시절부터 창업이 꿈이었거든요. 약간 방향은 달라졌지만요.”

LC건설 사장 허준익이 끼어든다.

“오호 이과셨군요. 하긴 내가 다른 애들 시켜서 내 계좌 굴려 봐도. 하버드니 서울대니 경제학과 나온 애들이 제일 못하더라고. 주식은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장한설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그렇지.”

그들은 그런 식으로 한동안, 나와 문답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내게 무슨 청문회가 열린 것 마냥,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그래도 다들 CEO라서 그런지, 대체로 투자와 회사 경영에 관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최대한 ‘현재’기준으로 아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매 번 미래뉴스 매일 봐온 탓에 내 머리 속에 미래정보가 많이 들어있던 탓이다. 그래도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사드 보복은 올해를 기점으로 완전히 해제되리라고 봅니다. 아마도요.”

‘아마도요.’

라는 것 따위를 붙여놓았다. 미래를 안다는 게 들켜서는 안 되니까. 일부러 진짜 내 생각도 말해 놨다.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할 거라고 봅니다. 저는 회사 운영할 때 그렇게 가정하고 운영을 합니다. 미 대선 전후로 뭔가 급격한 변화 없이 가는 것으로요.”

“호오 그렇군요...”

재밌는 점은, 이 사람들은 내 말을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이뤄낸 성과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한상훈 대표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라... 우리 쪽 참모들 이야기랑은 조금 다른데.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겠군요.”

‘그냥 생각난 대로 말한 건데...’

내 말 한 마디 때문에 미래자동차의 전략이 바뀐다면 조금 웃긴 일이긴 할 것이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탁문수를 의식했다. 그는 다름 사람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거나 할 뿐, 직접 나와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음... 진짜 한 번 보고 싶었다 이건가.’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정말 훌륭한 식견이시로군요. 한상훈 대표님.”

그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받았다.

“과찬이십니다. 탁문수 부회장님.”

탁문수는 씨익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

‘그래서 뭐라고 했더라...’

나는 턱을 문지르며 그와의 대화를 다시 한 번 복기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특이할만한 게 없었다. 그는 단지 나와 투자와, 경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다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대화 도중 탁준기가 생각해두었다던 ‘핵폭탄’이 뭔지 끄집어내려고 했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하긴 그도 그럴만 하다. 다른 회사 대표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뭔가 민감한 이야기를 본인이 먼저 꺼낼 리가 없다. 나는 그래서 그와 정말 평범한 대화만 나누고 왔다. 놀라운 것은 나도 그와 대화를 나누고

‘이 사람... 사람 참 좋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그에게는 사람을 이끄는 본연의 매력 같은 것이 있었다. 내가 만약 꿈속에서 수도로 자신의 손목을 ‘탁탁’ 치던. 그의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살인 교사를 하는 사람과 좋은 사람을 같은 선상에다가 놓을 수는 없다. 아무리 탁준기가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특이해... 정말...’

그런데 지금와 생각해보면, 다른 여섯명의 CEO모두 사람의 이목을 끄는 무엇인가가 있긴 했다. 다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쥐고 태어나 인생 굴곡 없이, 정상을 향해 달려온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태생적인 여유로움. 그런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나와는 조금 다르다. 모임이 끝날 때 즈음 초대자 장한설은 내게 ‘KJ쇼핑 부회장 장한설’이라 쓰인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오늘 반가웠습니다. 한상훈 대표님. 다음번에는 전화로 직접 연락드리지요.’

그런 말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곳 역시 내가 어울리는 장소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는 결국 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참석할만한 가치가 있긴 했다. 워낙에 고위급 인사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크로우가 뭔가 정보를 수집 해올 만한 떡밥이 굴러다닐 수도 있었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4년 중임제 개헌에... 차기 대통령이 여당은 주성원 야당은 한상훈, 이수원, 정경화.’

나는 내 휴대폰을 들었다. 먼저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현재 뉴스를 검색해보았다.

‘개헌’

곧 뉴스 몇 개가 뜬다.

‘국회 개헌 논의 권력 구조 놓고 이견 차이로 지지부진’

‘국민은 뒷전인 개헌 논의 국회의원들의 파이 싸움이 되어버려’

‘4년 중임제? 내각제? 대통령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개헌은 작년부터 뉴스가 나와서 여태까지 진전이 되질 않고 있었다.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이야기가 나왔었나보다. 나는 이어서 미래뉴스에 가보았다. 오늘 두 번째 미래뉴스는 아직 보질 못했다. 뉴스가 온 8시 55분은, 한창 선상에 있었을 때니까. 나는 12달 뒤 미래 뉴스에 들어가 이름을 써넣었다. 현직 대통령 이름을.

‘박형준’

요새 다른 CEO 추적하고 연예인 추적한답시고, 대통령 추적을 멈추었었다. 곧 뉴스 하나가 나온다.

‘박형준 대통령 임기 1년 남겨두고 레임덕?’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기사는 9개월 뒤 뉴스다. 2020년 7월. 지난 대통령 선거는 2017년. 제대로라면 2022년까지 해야 한다. 그런데 임기가 겨우 1년 남았단다. 선상에서 이야기하던 사람들 말대로 된 것이다.

‘확실히 정계 내부 쪽에서는 이야기가 오고간 모양이로군.’

얼마 있지 않아 우리나라는 4년 중임제 대통령으로 개헌이 된다. 그러면 2년 뒤 면, 바로 대선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따라서, 4년 혹은 8년까지도 내게 영향을 줄 것이다.

‘이건 확실히... 내가 손을 대놔야겠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휴대폰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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