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34화 (13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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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들의 연회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시골길. 예전 어렸을 적 할머니 집 가던 풍경과 비슷하다.

    ‘음... 이런 곳에 뭐가 있다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앞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서 비서에게 물었다.

    “거의 다 왔지?”

    “네 사장님.”

    “음...”

    11월 3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나는 이곳에 결국 오고야 말았다. 가든 로얄 초대에 응해서. 가든 엔비 때도 그랬지만 참 요상한 초대다. 곧 대기업을 물려받을 한국의 재벌 3세들이 이런 촌구석에서 모임을 한다니. 나로서는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뭐 그러나 저러나 서 비서가 모는 벤틀리는 동사무소 안으로 들어섰다. 동사무소 안에 들어서면서 서 비서가 말한다.

    “이상하네요. 사장님.”

    “뭐가?”

    “아니...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동사무소면 그래도 동네 중심지인데 한두 사람이도 나다녀야 정상 아닌가.”

    “음.”

    동사무소는 최근 새단장을 했는지 깔끔했지만 불도 꺼져 있고, 인기척이 없다. 지금 시간은 오후 6시 40분. 약속시간인 7시에 조금 일찍 온 것뿐인데, 이상하긴 하다.

    “일단 내리자.”

    나는 서 비서, 박 비서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그 때, 어두컴컴한 동사무소 안에서 양복을 입은 남자 둘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확하게는 내게. 그들은 내게 다가와 물었다.

    “한상훈 대표님 맞으십니까?”

    “네.”

    “다른 두 분은?”

    “비서들입니다. 혹시 모임에 동행 가능한가요?”

    “네. 한분만”

    나는 서 비서와 박 비서에게 각각 눈짓을 보냈다. 서 비서는 한 발 물러서고, 박 비서는 내게 다가와 선다. 이들이 내게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면, 그들은 1,2초 만에 아스팔트 바닥을 구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단지 내게 손을 내밀며

    “초대장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렇게만 물어왔을 뿐이다. 나는 품에서 준비된 초대장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걸 확인한 그는 옷깃을 들어 올리더니,

    “한상훈님 참석하셨습니다. 차 보내주세요.”

    어디론가로 무전을 했다. 곧 어디선가 벤틀리. 내가 타고 온 것과 똑같은 기종의 차가 주차장 안으로 미끌어져 들어왔다. 내가 그걸 멀뚱멀뚱하게 보고 있자, 그 중 한 사람이 뒷 자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타시죠.”

    “아 잠시만요.”

    나는 잠시 서서 휴대폰으로 내 메일함을 확인해보았다. 혹시나, ‘정정보도’가 왔는지 해서. 하지만 정정보도는 와 있지 않았다. 그 말인 즉, 나는 3주 뒤 건강하게, 소아암재단에 방문을 한다는 뜻이다.

    ‘뭐 별일 없겠지.’

    나는 박 비서와 함께 뒷자리에 탔다. 내가 차에 타자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기사는 뒤를 보며 인사를 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장님.”

    잘은 모르겠지만 고용된 운전기사 같다. 그는 차를 몰고 다시 시골길을 운전해 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숨겨진 별장?

    그런데, 그러던 중 강이 보였다. 강. 다름 아닌 북한강이다.

    ‘...설마...’

    그런데 그 설마가 사실이었다. 멀리 강 위에 휘황찬란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거대 유람선이 있다.

    ‘저거 한강에서 가끔 봤던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 큰 것 같다. 차는 강가 근처 나루터에서 섰다. 여기에도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

    “한상훈 대표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끼어 들 틈은 없다 이거로군.’

    나는 박 비서와 함께, 그들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보트에 올랐다. 곧 그 보트는 북한강 위에서 번쩍이는 빛을 내고 있는 그 유람선을 향해 나아갔다.

    *

    유람선 안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지키고 있는 남자는 미남이요, 음식과 술을 나르는 여자는 미녀였다. 바에는 돔 페리뇽, 아르망디와 같은 샴페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가구들은 모두 앤틱 제품으로 가격을 측정하기가 어려워 보이는 것들뿐이었다.

    ‘화려하긴 하군. 근데 이건 대체 누구 돈으로 하는 거지?’

    나는 그 화려함보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하려고 했다. 이 유람선 안에는 얼굴이 익숙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내 예상과 조금 달랐던 점은 여긴 재계 쪽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 언론 쪽 인사들도 몇몇 눈에 띈다.

    ‘저 사람 무슨 고려일보 주필이라고 하지 않았나?’

    ‘저 사람은... 전직 대통령 아들이잖아? 지금 뭘 하지?’

    아주 익숙한 얼굴도 있다. 바로 카이지 닮은 이원재 대표의 형. 이원상. 대원일보의 차기 탑으로 꼽히는 사람.

    ‘음... 이 사람도 여기 와 있네?’

    왠지 느낌이 비슷하다. 탁문수는 가든 로얄에 탁준기는 가든 엔비에. 이원상은 가든 로얄에 이원재는 가든 엔비에.

    ‘역시 이곳은... 대한민국의 차기 권력이 될 사람들만 초대받는 곳이로군.’

    그야말로 용들의 연회. 나는 돌아다니는 미녀에게서 샴페인 잔을 하나 받아 들고 그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엿 들었다.

    “그래서 개헌은 어떻게 될 거라고 합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통과 될 겁니다. 대통령제는 유지. 4년 중임제로. 대신 국회 쪽은 연동형 선거구제로 개편이 될 겁니다. 대통령이랑 손해진 당 대표가 물밑에서 이야기 다 했답니다. 본인도 임기를 4년으로 줄이면서 총선이랑 주기를 맞추기로요.”

    “음 그럼 이제부터 차기대권 이야기가 슬슬 나와야겠네요?”

    “그렇죠. 개헌이 통과되면 이제 대선이 1년 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정치 쪽 이야기도 나오고, 다른 한 쪽에서는 경제 쪽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서 오일 가격은 오른다 보시다는 거죠?”

    “네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를 견제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중동을 불안정하게 만들 겁니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마찬가지고요. 허리가 끊기면 실크로드도 없죠.”

    “아하. 그러면 셰일 석유도 비싸게 팔아먹고 일석 이조로군요. 트럼프는 유가가 너무 높다고 오펙에 경고를 했다던데”

    “그 사람은 그냥 대중들에게 인기 끌려고 그렇게 말 하는 겁니다. 기름 값 높아서 서민 살기 어렵다고 말 하면서도 실제로 유가를 띄우는 정책만 하고 있어요.”

    뭔가 들어두면 다 도움이 될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철새인지 뭔지, 새 몇 마리가 날아다닌다.

    ‘...새가 돌아다닌다... 그렇다면... 까마귀 한 마디 날아다닌다 한들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겠군.’

    나는 집에 고히 모셔져 있는 안대를 생각했다. 내가 만약에 여기서 보고 들은 게 부족하다고 한다면. 크로우에게 부탁해서. 한 번 정도 다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꿈을 통해서. 그런데 그러던 중에, 갑자기 내 귀를 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상훈은 어떻습니까?”

    갑자기 귀가 쫑긋 솟는다.

    ‘나를 찾아?’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런데 그 곳은 아까 정치 이야기가 나오던 테이블이다.

    “한상훈 나쁘지 않죠. 저는 가능성 있다고 봅니다.”

    “너무 가볍지는 않나요?”

    “가벼우니까.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요새는 정치인들도 권위주의랑은 거리가 있어야 인기가 있습니다.”

    ‘아아... 나 말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기서 회자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정치인 한상훈이다.

    “여당 쪽에서는 아마 주성원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주자들이 이미 실각해서. 다른 변수가 없다면. 주성원이 나올 겁니다. 야당 쪽이 흥미로운데. 여기가 판세 예측하기가 어렵죠. 앞서 말씀하셨던 한상훈도 있지만 이수원 의원도 있으시고. 아니면 정경화도 있고요.”

    “정경화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요? 전에 그 분이 여자정치인 이미지를 모두 배려놔서.”

    “아니 여자라고 안 될 건 없지요. 사람마다 다른 걸. 독일의 메르켈 총리 같은 분은 십년 넘게 연임중이신데요.”

    ‘거 참... 한상훈 그 분은 계속 쭈욱 잘나가시네...’

    동명이인 한상훈 의원은 이제 대권주자로까지 언급이 될 판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조금 내게는 아쉽다. 12시간 뒤 뉴스에서 내 이름 찾아서 미래를 들춰보려는 내 계획이 한 몇 년간 봉인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누구라도 한들, 심지어 탑 연예인이라고 해도, 대통령의 이름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잔에 차 있는 샴페인을 들이키며 생각했다.

    ‘혹시라도 대선 나오시게 되면... 아니 야당 내에서 회자라도 되면 크로우를 통해서 한 번 털어봐야겠군. 먼지가 얼마나 나오나.’

    우리나라에서 검찰과 언론이 권력이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어느 정치인이들 털다 보면 뭔가 나오니까. 그래서 검찰은 때때로 권력의 개가 되기도 하고, 때때로 그 권력을 무는 개가 되기도 한다.

    언론 역시 마찬 가지. 지지율이 높으면 용비어천가를 써주다가도, 낮아지면 논설로 때리고, 기사로 때리고 한다. 그래서 그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도 임기 말이면, 그 사람들에게 털려서 교도소 가고 하는 것이다. 나는 검찰을 휘두를 정치력은 없었지만, 언론만큼은 누구보다 잘 휘두를 자신이 있었다.

    ‘봐서 말이지 봐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한상훈 대표님 되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초대자이신 장한설 회장님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나는 그를 잠시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여기 온 목적이 그것이니까. 용들의 연회에서, 용에 삼켜져, 그 안에 뱃속에 뭐가 들어 있나 살펴보는 일말이다. 예전에 탁준기도 나를 통째로 삼키려다가, 안에서부터 파헤쳐져 죽었다.

    이들이 아무리 용이라고 한들. 나를 삼킬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박 비서와 함께 그를 향해 따라 유람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가 향한 곳은 유람선 안에 위치한 한 객실이었다. 그는 그 앞에서 박 비서를 보며 난색을 표했다.

    “저 죄송하지만 이 안쪽은 동행하실 수 없으십니다.”

    나는 박 비서를 돌아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정정보도’는 오지 않았다. 나는 이 배에 탄 이후로 두 세 번은 확인을 했다. 박 비서를 떼어 놓은 나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모두 일곱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한눈에 그 사람들을 모두 파악했다. 모두 한 눈에 알아 볼 수밖에 없는 얼굴들이다. KJ쇼핑 회장 장한설. 지성패션 회장 고진희, 수성기획 사장 김신, 미래자동차 부회장 정성수, 호텔백제 이사 하지연, LC건설 사장 허준익 그리고 수연전자 부회장 탁문수.

    ‘완전... 왕자님들 공주님들 모임이로군.’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재벌의 차기 총수가 될 만한 사람들이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여기 모여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를 초대한 초대자, 장한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건넨다.

    “아아. 한상훈 대표님 와주셨군요. 반갑습니다.”

    그 때, 옆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묻는다.

    “누구신가?”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탁문수다. 꿈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얼굴.

    ‘이미 알고 있으면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장한설이 다른 여섯 명이 듣도록 설명을 해주었다.

    “아아 이분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한상훈 대표님이십니다. 최근 굴리는 회사들 시가 총액 1조원 넘었다지요?”

    “아 네.”

    첫 만남부터 재산 이야기다.

    ‘하긴 그래야 이 테이블에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식으로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여러 회장님들, 사장님들. 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대표 한상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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