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18화 (118/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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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re fired

    이주 전. 나는 안용균 대표를 비롯해서 사파이어TV의 이사 명단을 세워놓고 매일 인물검색에다가 그 이름들을 적어냈다.

    ‘안용균. 김정균, 박규석’

    하지만 영, 관련된 뉴스가 나오지 않았다. 단 하나, 안용균 대표에 관련해서

    ‘보유 지분 전량 매도’

    ‘블루E&M 창업자 안용균 대표. 블루 E&M떠난다.’

    그런 뉴스만 나왔을 뿐이다.

    ‘뭔가 터지는 것은 분명한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방향을 바꿔 생각해보았다.

    ‘블루E&M의 주 사업은 이러나 저러나 인터넷 방송... 인터넷 방송에서 문제가 터지려면?’

    그렇게 생각하니 곧 답은 나왔다. 나는 사파이어TV에서 가장 잘 나가는 BJ들 몇 명을 추렸다. 그런 다음 거기다가 BJ들의 본명을 집어넣어보았다. 가장 유명한 순으로.

    ‘BJ원규 이원규 BJ밤공주 한채영... 그리고 10등 언저리 즈음 BJ키파 정칠연’

    그러자 짠. 하고 답이 나왔다. 다음 달 초에 종합편성채널에서 ‘마이 빅 텔레비전’ 프로그램과의 콜라보. 평소 과격한 방송으로 인기를 끌었던 BJ키파는 초청된 걸그룹 앞에서 천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성희롱을 한다. 그것도 과격하게. 왜 그런지, 자세한 사정은 나와 있지 않았다. 기사에서도 단지 앞뒤 자르고.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면서...’

    대충 묘사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 당연히 난리가 난다. 예전에 모 밴드가 생방송 중 비슷한 짓을 해서 모든 생방송이 지연방송으로 바뀐 적이 있었는데, 인터넷방송에는 미처 그런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했느냐 하면 아마 이 녀석까지 탁준기-안용균과 함께 모의를 했다고 봐야한다.

    평소에도 누군가 인터넷으로 몇 만원을 주면 갑자기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지 않나, 길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지 않나, 워낙에 미친 짓으로 방송을 하는 녀석이어서, 몇 억 쥐어준다고 하면 충분히 그럴만한 녀석이었다. 업계 1등인 유러피안TV에서 10등 안에 드는 BJ이었다면

    ‘몇 억 그거 몇 달이면 버는데요?’

    하고 거절했을지도 모르지만 사파이어TV는 유러피안TV에 비해서 규모가 작아서 그 정도는 되지 못했다. 애초에 그러니까 이런 미친놈이 10등 안에 들 수 있는 것이지만.

    “이분은 목록에서 뺐으면 좋겠습니다. BJ키파. 그리고 이분 BJ체리향하고 BJ빡빡구 이 분까지요.”

    나는 그 명단을 든 상태로 BJ키파와 함께, 문제가 될 만한 혹은 BJ키파의 대안이 될 만한 BJ들까지 모두 태클을 걸었다. 안용균 사장을 비롯한 이사들 앞에서 내 말에 다소 놀란 듯 하다. 특히 안용균 사장은 살짝 얼굴이 파래질 정도다. 그도 그럴만하다. 자신의 카드가 막혔으니. 사정을 모르는 다른 이사는 내게 묻는다.

    “저 대표님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는지?”

    “저도 가끔 사파이어TV보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은... 조금 방송이 난잡하달까. BJ키파 이분은 평소 이상한 짓을 너무 많이 하시고요 체리향 이분은 너무 야해요 방송이. 그리고 빡빡구 이분은 너무 욕을 자주 하시고요. 그래서 좀 걸렀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종편 보시는 분들 많이 넘어 오실텐데... 뭔가 사고가 날지 두렵군요.”

    “아. 네 그런 그렇습니다만...”

    나는 고개를 돌려 안용균 사장을 보며 말했다.

    “안 대표님 어떻습니까? 이 사람들은 쳐 내는 걸로 하죠?”

    조금 잔인하지만, 나는 그렇게 대놓고 물어보고 그의 대답을 기다리기로 했다. 뭐라고 하나. 그런데.

    “아니... 괜찮을 거라고 봅니다. 이 분들이 평소 방송이 과격하긴 하지만... 사전에 충분히 이야기를 다 해놓았거든요.”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렇게 말을 해댔다. 그는 끝까지 자기 의지를 관철하기로 했나보다.

    “음... 그래요? 안용균 사장님 생각이 그러시다...”

    나는 살짝 말꼬리를 흐렸다. 여기서 강하게 나가도 다들 꼬리를 말고 말 테지만, 그래도 나는 한 번 여유를 두기로 했다. 아직 나는 ‘CEO 지분 판매’뉴스를 모르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다른 이사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그래도 안전하게 가고 싶은데”

    내 말에 이사들은 눈알을 빠르게 굴린다. 창업주냐, 대주주냐. CEO냐 투자자냐. 고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 뿐이다. 안용균 대표는 이미 가지고 있는 주식을 대부분 팔았다. 조금 뒤, 공시가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급격히 힘은 내게 쏠리게 되어 있다. 나는 일단 마무리 일격을 하지 않고 보류를 해두었다.

    “그러면 이사님들끼리 이야기 하시고 내일 다시 보고해 주세요. 저는 아무래도 명단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자극적인 방송하시는 분보다는 조금 얌전하고 편하신 분들로요.”

    나는 거기까지만 말을 해두고 서 비서 그리고 장근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명목이 ‘지나가던 길에 들린’ 지라 이사들도 자리에 몇 없었으니까.

    *

    오늘 오후. 블루E&M에는 두 번의 뉴스가 떴다. 첫번째는

    ‘안용균 사장 보유 지분 7% 매각.’

    원래 봤던 그 뉴스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 보유지분 6.7% 장상진 부사장 0.3%보유 중.’

    새로 나온 두 번째 뉴스가. 그걸 본 투자자들 반응은 대체로 이러했다.

    대주주 지분이 늘었네요? 근데 안용균 사장은 왜 판 거지? 개인적인 사정 때문인가?

    안용균 사장이 한상훈 대표랑 장상진 부사장에게 주식을 넘겼나본데요... 악재인가 호재인가

    이러나저러나 투자 천재 한상훈 대표가 개인 지분을 늘렸으니. 호재 아닐까요?

    개인투자자들은 이번 일이 단지 회사 내 지분조정으로 보이는 듯 했다. 그가 파는 만큼 나와 장 부사장이 주워 담았을 뿐이지만. 개중에는 이런 의견도 있었다.

    어쩌면 한상훈 대표가 안용균 내쫒으려다가 이렇게 된 거 아닐까요?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만, 아주 틀린 상황은 아니다. 아무리 창업주고, CEO라고 할지라도, 보유 지분이 없으면 그 발언력은 훨씬 떨어진다. 언제고 나에 의해 자리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반응이 오기도 했다. 블루 E&M쪽에서.

    “저 사장님. 전화입니다.”

    “누구?”

    “블루 E&M 김정균 부사장님이신데요. 대표님하고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고.”

    “그래? 그런 연결시켜줘.”

    전화를 받으니, 그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해온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저 블루E&M 김정균입니다.”

    목소리가 익숙하다, 얼굴하고 매칭도 된다.

    “아 네 오늘 낮에 뵈셨죠?”

    “네네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오늘 하신 말씀 제 생각하고도 일치해서...”

    그는 빠르게 내게 붙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일종의 충성맹세라고 해야 할까. 안용균 사장이 지분을 팔았으니. 그는 이제 CEO이상 이하로 아니다. 내 말을 거역하면 언제고 갈아 끼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눈치가 빠른 아저씨구만.’

    눈치 빠른 게 나쁜 것은 아니다. 적절한 판단력만 곁들여 진다면.

    “제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이사들도 비슷한 생각이더군요. 다들 대표님 말씀이 맞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안용균 사장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몸이 편찮으시다고 일찍 퇴근하셨거든요.”

    ‘흥 탁준기한테 쪼르르 가서 보고라고 했나보지?’

    “네. 알겠습니다. 뭐 그건 그렇고 이러나저러나 저는 꼭 BJ 명단이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분들은 저희 회사를 대표해서 종편에 나간다는 게... 저는 조금...”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장님. 꼭 그렇게 되도록 제가 노력해보겠습니다.”

    “네 그래주시면 고맙고요.”

    “네 사장님.”

    이러나저러나 그 BJ키파는 종편에 나오지 못할 것이다. 김정균 부사장이 못하면, 내가 직접 나설 테니까. 그 뿐만 아니라, 이번 건만 대충 마무리되면 아예 평생 밴을 시킬 것이다. 사파이어TV에서는 다시는 방송을 하지 못하도록.

    *

    다음 날 아침. 8시 55분에 뉴스를 받으러 온 내 앞으로 하나 ‘정정보도’가 와 있었다.

    ‘8월 7일 보내드렸던 BJ키파 성추행 파문! 기사는 구독자분의 개입으로 인해...’

    아예 방송에서 나오지 않는 것으로. 그 김정균 부사장이란 사람이 어떻게 이사들을 규합해서 못을 박아 버렸나보다. 내 말에 따르기로.

    ‘좋아 이쪽은 막았고...’

    나는 이어서 HTS를 켜서 블루E&M을 띄워놓았다. 아마 오늘은 주가가 하락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CEO의 뜬금없는 주식 매도에 놀란 개미들이 투매하는 것으로. 하지만 나와 장 부사장이 그 지분을 고스란히 빨아들이면서 그 우려를 상쇄시켰다. 호가창은

    ‘+4%’

    대에서 잡히려고 하고 있다.

    ‘평소대로라면 –4%에서 잡혔겠지. 탁준기는 엄청나게 공매도를 쳤을테고.’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는 주가가 내리면 내릴수록 이득이 크다. 최근 한 달 동안 쏟아진 공매도는 아마도 탁준기의 작품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부로 그는 더 이상 이득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계획된 악재가 둘 다 막혔으니까. 그 뿐만이 아니다. 주가가 오르면 또 그만큼 손실을 봐야한다. 장이 시작되고 블루E&M은 +4%에서 거래가 시작되었다.

    ‘한상훈이 이 주식 샀단다. 대박이다.’

    그 소식에 돈이 몰렸기 때문. 이제 탁준기는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비싸진 주식을 다시 되사야한다.

    ‘두 번이나 엿을 먹었으니 한참 열이 올라와 있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띠리리’

    전화기가 울렸다. 나는 그걸 들어보았다. 전화기 너머로 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장님. 안용균 사장님이 오셨습니다.”

    전화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직접 찾아왔나보다.

    ‘흠... 뭐라고 할라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에게 말했다.

    “들어오시라 그래.”

    곧 문이 열리고 안용균 사장과 함께 장근이가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누군가 외부인이 들어올 때는 이유 막론하고 그가 함께 들어오기로 되어 있다. 190cm 근육질 사내가 뒤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은 허튼 짓을 못할 것이다. 안용균 사장은 내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저... 대표님 말씀하신 사항은 대표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정정보도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아 네 잘 됐군요.”

    “그리고... 저 제 지분 매도한 것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그랬습니다. 대표님한테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하는데... 급전이 필요한 덕에 급하게 파느라.”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이 아저씨 끝까지 거짓말이네...’

    사실 나는 그가 대놓고 말할 줄 알았다. 내가 내막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갑자기 와서 정확하게 BJ키파를 막았고, 주식 쏟아 내놓은 것을 고대로 담았으니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든 정황이 내 이익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비상건설 때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도 이제 더 이상 모르쇠로 일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딱 하나만 묻죠.”

    “네?”

    “탁준기가 얼마나 준다고 했습니까?”

    그 이름이 나오자 그는 얼굴이 파래서 입을 떼지 못했다. 사실 상 이건 폭탄 투하나 다를 바 없었다. 이미 다 아니까. 닥치라는 뜻의 말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어서 말했다.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군요. 다음 주 내로 알아서 회사에서 나가세요. 아니면 다음 주에 긴급이사회 열어서 해고시켜버릴 테니까.”

    나는 어느 회사든 투자할 때 ‘경영이나 인사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약속했지만 딱 하나 예외로 둔 것이 있었다. 명백하게 우리 회사 투자에 손실을 가져올 행위를 할 때. 이번은 아예 대놓고 작전을 치다 걸렸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정곡을 찔린 안용균 사장은 몸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아니... 대체... 어떻게...”

    나는 장근이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장근아 안 사장님 밖으로 모셔다 드려. 나는 별로 더 보고 싶지 않다.”

    “네 사장님.”

    내 말에 장근이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겨드랑이를 잡고 거의 끌어 올리다시피 들어 그를 사장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걸로 수비는 끝났다. 이제는 공격을 할 차례다. 이날 오후, 딱 맞게 메시지가 왔다.

    ‘크로우가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보고 받을 장소와 시간을 정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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