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정례 보고(2)
“그래서... 결과적으로 올해 1,2분기를 통틀어 카이게임즈 360%, 블루E&M 80%, OH엔터테인먼트 30%수익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장 부사장은 포인트 빔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설명을 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 다섯 회사의 사장들은 한시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실상 장 부사장은 나 못지않은 회사의 실세였으니까. 황제의 2인자가 다른 왕국의 왕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직함은 ‘부사장’이지만 다른 사장들보다 사실상 위에 있다고 봐야 했다.
“결과적으로 인빅투스인베스트먼트 자산 역시 260%가량 상승했습니다. 모두 대표님들이 각자 회사에서 노력해주신 바라고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짝’
각 사장들은 손뼉을 모아 박수를 쳤다. 다들 회사 내에서는 박수를 받는 입장이었겠지만, 여기서는 박수를 치는 쪽이다. 박수소리가 잦아들 때 즈음 내가 말을 꺼냈다.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두 회사가 더 저희 쪽 자회사로 편입되게 되었습니다. 먼저 현영제약. 현영제약은 아시다시피 한국시장에서 오랫동안 성과를 내온 역사와 전통의 제약회사입니다. 최근 신약개발을 통해서 국제제약시장에도 노크를 하고 있고요. 저는 그 성장성을 높이 사서 이번에 투자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백발의 신재은 회장은 살짝 일어나 자기보다 연하인 나, 그리고 다른 대표들에게 인사를 했다. 기품 있고 절도 있는 모습이다.
“반갑습니다. 한상훈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저희 현영은 한국으로부터 국제시장으로 발돋움 하려는 차 성공적인 투자를 이어오고 있는 한상훈 대표님과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와 함께 하기로 하였습니다.”
‘짝짝짝짝짝짝’
다시 박수가 이어진다. 와중 특히 블루E&M, 사파이어TV의 안용균 사장은 살짝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짝!짝!짝!짝!짝!짝!’
오버해서 박수를 쳤다. 인터넷방송 CEO답게 약간 푼수끼가 있는 것 같다. 내내 얼굴을 굳히고 있던 신재은 회장은 이제야 살짝 웃었다. 그는 내게 몸을 돌리더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투자 제의를 받았을 때 조금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대표님들을 보니 저도 한결 마음이 놓이는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목례를 하며 손을 건넸다. 나는 급히 일어서서 그 인사를 받았다. 다시 한 번
‘짝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
그 두 종류의 박수가 울려 퍼진다. 그의 말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그 역시 자신들의 신약개발이 어떻게 될지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는 있겠지만, 상대는 심사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FDA였으니까.
‘하긴 알았으면 없는 돈 털어서라도 자사주 매입했겠지.’
카이게임즈 때도 그랬지만 나는 투자받는 회사의 오너들보다도 더 크게 회사의 성공을 믿는 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믿는다.’라기 보다는 ‘알고 있다.’에 더 가까웠지만.
“이어서 발표할 곳은 인터넷 뉴스계의 새로운 강자 오라클뉴스입니다. 정 대표님.”
곧 정소영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시에 다른 사장들 눈길도 그녀에게 향한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원숙한 섹시함이 시선을 끄는 것 같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들. 오라클뉴스의 정소영입니다. 저희는 지난달 한상훈 대표님에게서 대규모 투자를 받아 자회사로 편입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짧은 인사였지만, 중년의 세 남자에게는 아무래도 시선을 더 끄는 것 같다. 나는 뒤이어 말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제가 투자한 회사들 간에 시너지를 창출하길 원합니다. 기왕 투자하고, 투자받는 입장에서 서로서로 도와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블루E&M이 지금 그 가교 역할을 잘 해주고 있는데...”
내 말에 안용균 사장은 깊이 머리를 숙인다.
“카이게임즈의 게임과 인터넷방송, 그리고 인터넷방송과 OH엔터테인먼트의 매니지먼트가 이어지는 식으로. 그렇게 제 자회사들끼리 같이 시너지를 냈으면 합니다. 그런 면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는 그렇지만 제가 오라클뉴스에 투자를 한 이유는... 잘 아실 겁니다.”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요새는 뭘 하든 뉴스가 곧 홍보다. 게임 나왔다고 홍보, 신약 나왔다고 홍보, 새 드라마 나온다고 홍보.
“정소영 대표님과는 투자할 때 이미 이점을 말해두었으니. 오늘 연락처 공유하시고, 사업을 하는데 꼭 도움이 되시도록.”
나는 끝끝내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다 알아듣게 이야기 해놓았다.
‘무슨 일 있으면 오라클뉴스에 뉴스부터 내라고.’
이건 미래뉴스를 보는 내게도 좋은 일이었다. 우리 회사 뉴스가 더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미래뉴스에도 등장할 확률이 높아진다. 무슨 일이든 미래뉴스에 나오게 되면, 그에 대한 대처가 가능해 진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러면, 오늘 정례 보고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요. 같이 식사하러 가시지요.”
*
이어지는 식사시간, 나는 다른 사장님들보다는 신재은 회장님과 붙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사장님들은 이미 꽤 구면이어서, 새로 오신 신재은 회장님과 친해져놔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음 그러시군요. 아버님은 유도 도장을 운영하셨군요.”
“네 저는 봐서 은퇴하시라고 권했는데... 환갑이 다되신 지금도 의욕적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
“아하 그러시군요.”
“네 그래서 최근에는 제가 세 들어있던 건물도 사 드렸습니다... 평생 건물주들에게 시달리셨는데 이제 본인이 건물주가 되셨습니다.”
“효자시로군요. 한 대표님.”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 게 있으니 답해야 하는 게 아들의 도리지요.”
“아 그러시군요. 한상훈 대표님 나이가 올해...”
“서른입니다.”
“참 젊으신데 대단한 성공을 하셨습니다.”
“별 말씀을.”
그런데 그 때, 신 회장은 눈빛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개인적인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혹시 결혼은 하셨습니까?”
“아니요. 아직 미혼입니다.”
“그러면 만나시는 여자 분은...?”
이게 진짜 개인적인 질문이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생겼습니다. 최근에”
“아... 그러시군요.”
신재은 회장은 살짝 아쉽다는 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없습니다.’
라고 했다면 휴대폰에서 누구 사진이라도 꺼내서 보여줬을 것만 같다. 딸이랄지, 조카랄지. 지금은 현영제약에 내가 3천억을 투자하지만, 내가 그의 사위로 들어가면, 그는 그 이상의 이득을 보게 된다. 나는 슬쩍, 국을 떠 마시는 그를 지켜보았다.
‘그냥 친분 삼아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역시... 그냥 노인네는 아니란 말이지...’
나는 이 쪽 이야기가 더 나올까봐, 맞은편에 있는 권오혁 사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권 사장님”
“네 사장님.”
권오혁 사장은 사실 오늘 살짝 기가 죽어있었다. 왜냐하면 세 회사 중 가장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1, 2분기 동안 30% 오른 것도 꽤 오른 것인데, 카이게임즈는 말할 것도 없이, 블루E&M까지 폭풍성장을 해서 상대적으로 덜 올라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조금 있으면 달라질 것이다.
“그... 아이돌 매니지먼트108 이제 곧 촬영 시작 아닙니까? 연습생들 연습은...?”
“이 프로그램 맞춰서 맹연습 시켰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곧 있을 아이돌 매니지먼트 108은 인터넷투표를 통해서 아이돌그룹을 만드는 TV쇼로 올해 연예계 최고의 화제가 된다.
“그래요. 최종 데뷔조 12명 중에 2명 혹은 3명만 들어가도 대박이니까... 최대한 그 쪽 신경 써 주세요.”
“네 사장님.”
특히 이번 프로그램은 한중일 세 나라 국적 연습생들을 동시에 모아놓고 하는 동아시아 각축전 구도가 되어 있어서 선발 과정부터 한국 시장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시장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여기서 성공한다면 아이돌 쪽에서 몇 년 째 물 먹고 있던 OH엔터테인먼트에게 극적인 반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이게 대중들이 뽑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안용균 사장님하고도...”
내가 그 말을 하는데
“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옆 테이블에 있던 안용균 사장이 달려와 찰싹 달라붙는다. 낮게 이야기했는데, 어떻게 들었나보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듣고 계셨군요. 이번에 하는 아이돌 매니지먼트 108 아시죠?”
“예 물론입니다. 대표님.”
“혹시 사파이어TV에서 어떻게 밀어줄 방법 없을까요?”
“아유 많지요. 메인배너나 유명BJ들로 하여금 이쪽 컨텐츠로 꾸미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러면 특히...”
나는 그 말을 하면서 슬쩍 권 사장을 보았다. 그러자 그러기 무섭게 안용균 사장이 말했다.
“아유 물론입니다. OH엔터테인먼트 소속사 연습생 밀어주도록 저희 쪽에서 노력 많이 하겠습니다. 저희 쪽 BJ들이 또 여론몰이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요.”
“네 그러시면...”
나는 슬쩍 정소영 사장을 보았다. 정소영 사장은 언론사 대표답게 똑순이 스타일이어서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눈을 깜빡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몇 주 내로
‘OH엔터테인먼트 소속사 허윤미 연습생 상큼한 외모’
라든가
‘사파이어TV 아이돌매니저108 특별 이벤트 런칭’
과 같은 뉴스를 알아서 뽑아내 줄 것이다. 내 말이 끝날 때 즈음 신재은 회장도 권오혁 사장에게 말을 건넸다.
“들어보니 오현주씨가 그... OH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고요?”
“네 회장님. 저희 회사 이름이 OH인게 제 이름 오혁을 따온 것도 있지만 오현주 씨의 오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대표 연예인이지요.”
“아아 그러시군요. 안 그래도 이번에 저희 회사 대표 안약 광고모델 계약이 끝나서 새 광고모델을 선정해야하는데 오현주씨가 이미지 밝고 긍정적인 것 같아서 잘 맞는 것 같더군요. 다음 주 오디션인데 혹시 스케줄 되시면 보러 오시지요. 제가 되도록... 잘 말해놓겠습니다.”
“아유 물론입니다. 꼭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회장님.”
그 말을 듣던 나는 다시 한 번 정소영 사장을 보았다. 정소영 사장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 광고는 찍혀 나오는 때부터 이제 오라클뉴스의 배너광고에 올라올 것이다.
‘회사가 많아지다 보니 이렇게든 저렇게든 시너지가 나는군. 앞으로 더 많아지면...’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이거 이게 커지면... 완전 재벌 시스템이잖아.’
우리나라 재벌들은 다 이런 식으로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여 있다. 그래서 다른 회사에 외주를 주는 것 같지만 자기 아들 회사에 외주를 주는 것이고, 다른 회사에 광고를 맡기는 것 같지만 자기 딸 회사에 광고를 맡기고 하는 식이다. 결국 투자는 하는 것 같아보여도 돈은 돌지 않고, 자기들만의 돌려먹기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게 된다.
우리 회사 다섯 개도 합치면 이 정돈데, 지분관계를 따지면 수십 수백 개가 자회사인 재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어쩌면,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미래가 그것일지도 모른다. 신흥 재벌.
‘...그나저나 마스터 등급이 되면 그 다음은 그랜드 마스터 등급... 그건 조건이 뭘까... 5개가 아니라 10개 지배하라고 한다면...’
그런 식으로 가다보면 우리 회사도 일반적인 투자회사에서 일종의 인빅투스 홀딩스. 지주회사로 변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회장님이 되고, 장 부사장님이 새로운 사장이 되어서 자회사들을 지휘하는 시스템으로.
‘음... 어찌되려나...’
다음 달이면 현영제약 투자가 마무리된다. 그리고 미래뉴스는 업그레이드가 돼서 마스터등급이 된다. 늘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지만, 등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내 힘이 강력해진다는 건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나는 힘을 쥐고 싶다. 더더욱 큰 힘을.
‘그랜드 마스터 등급... 그 다음이 xxx같이 엑스가 이어지는... 그런 등급이었지...’
고객센터의 말에 의하면, 그 xxx등급부터는 그 전 등급과 비교할 수 없는 훨씬 강한 스킬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꼭 가져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