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정례 보고
‘띠리리리 띠리리리’
알람이 울린다. 나는 눈을 떴다. 나는 손을 펴서 알람이 울리고 있는 휴대폰을 잡아서 알람을 껐다. 알람을 끄면 오늘 날짜가 나온다. 2019년 7월 12일.
‘음... 오늘은 출근해야하지.’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정례보고.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내역들을 살펴보고 평가를 내리는 자리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불이 스르르 말아 올려 지는데, 저항감이 느껴진다. 옆을 보니 이아영이 애기처럼 내 이불을 쥐고 있다. 나는 이불을 들어서 그녀의 드러난 어깨를 덮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긋’
그 때, 예리한 통증이 허리를 지나쳐 간다.
“끄으”
나는 마치 90먹은 노인네처럼 허리를 두드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주일간 휴가에, 돌아와서 이틀. 요새 너무 무리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7시 40분. 그리고 여전히 내 침대에 누워 있는 이아영을 보았다. 아무리 연인 사이라고 해도, 8시 55분에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한다.
‘일찍 출근해서 회사에서 메일을 받아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화장실에 가 먼저 샤워를 하고 나왔다. 거실에 나와 보니 이아영이 눈을 비비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깼네?”
“으음... 오늘 오빠 출근이라고?”
“응.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으음 그래?”
“응 나 먼저 출근 할 테니까 더 자.”
“아침은?”
“회사 앞에 토스트집 있어 그거나 먹고 가려고.”
“토스트? 잠깐 기다려봐. 내가 해줄게.”
“뭘? 우리 집에 빵도 토스트기도 없는데.”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의 속옷을 챙기며 말했다.
“그거 다 우리 집에 있거든요.”
“...그래.”
나는 드레스룸으로 가서 옷을 챙겨 입고, 시계를 골라 차고 스킨로션을 바르고 대충 헤어 스타일링을 한 다음 가방에 내가 쓰는 와이패드, 노트북을 챙겼다. 출근 준비는 끝.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다. 회사 두 블록만 지나면 있으니까. 매우 가깝기는 하지만 이제 출발해야 여유롭게 메일을 받아볼 수 있다.
‘이제 슬슬 나가야되는데’
하는 순간,
‘띠띠띠띠띠띠’
우리 집 비밀번호가 눌린다. 곧 문이 열리고, 이아영이 접시에 먹기 좋게 잘려진 토스트와, 진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온다.
“안 늦었죠. 오빠.”
“아. 이거 먹고 가면 될 것 같아.”
그런데 토스트가 조금 특이하다. 빵은 똑같은 식빵인데, 한국 프랜차이즈에서 볼 수 없는 토핑. 견과류에 딸기, 블랙베리 같은 것들이 올려 있다.
“이거 뭐야? 특이하네.”
“오리지날 시카고 스타일이야.”
시카고는 그녀가 유학을 갔다 온 곳이다. 나는 그걸 들어서 한 입 베어 물어보았다. 맛있다. 빵에 베어져 있는 메이플시럽이 토핑과 잘 어울린다.
“음 맛있네.”
“그치?”
시카고 스타일이 내 입맛이랑 맞는 것인지, 아니면 식품회사 외동딸의 센스 때문인지. 어쨌든 정말 맛있다. 나는 토스트의 맛, 그리고 촉박한 시간 덕분에 순식간에 토스트를 해치워 버렸다.
“맛있다. 고마워. 차려줘서.”
“힝”
이아영은 살짝 몸을 움츠리며 귀엽게 웃는다. 나는 남아 있는 커피까지 모두 마신다음 그녀에게 말했다.
“갈게. 너는 오늘...?”
“방학입니다. 저는.”
“좋네 학생이어서. 나갈게.”
그녀는 내 뺨에 살짝 키스를 하고는 말했다.
“잘 다녀오세요. 오빠.”
마치, 우리집에서 나를 배웅하려는 것 마냥.
“...너 집에 안가니?”
“아.... 그렇지. 나도 모르게 신혼부부 드라마에서 본 것 같아서.”
그녀는 베시시 웃으며 나와 함께 문 밖을 나선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럼 진짜 잘 다녀와.”
나는 손을 내밀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
*
나는 오랜만에 우리 회사 사무실로 출근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서 비서가 사장실 문 앞을 지키고 있다. 그는 나를 보자 일어서며 말했다.
“사장님 휴가는 잘 갔다 오셨습니까?”
“응. 조금 탔지?”
“네. 그리고...”
그는 나를 위아래로 살짝 훑어보더니
“쉬러 가신다더니 왠지... 평소보다 더 피곤해 보이시네요.”
“응? 그래?”
내 물음에, 그는 살짝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그 정기가 빨린 것 같은...”
이럴 때보면, 서 비서가 아니라 딱 대학후배 서지훈 같다.
“너 이씨”
나는 주먹으로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녀석은 살짝 도망가며 말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나 역시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너는? 너는 휴가 어디로 갔다 왔어?”
“방콕.”
“방콕? 태국?”
“아니요. 그냥 방에 콕. 그냥 집에 있었습니다.”
“왜. 나 나갈 때 맞춰서 해외 좀 갔다오지. 내가 보너스도 충분히 줬잖아?”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이번 휴가철에 맞춰서 전 직원들에게 휴가 보너스를 주었다. 장 부사장과 서 비서는 특별히 많이. 3천만 원씩.
“아아 그건 잘 쟁여놨습니다. 제 미래를 위해서요.”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왜 그래. 좀 쓰고 살아. 혹시... 너 집에 무슨 일 있어? 부모님이 누구 보증을 서줬다던가”
내 말에 서 비서는 고개를 흔든다.
“아니요오.”
“혹시라도 그런 일 있으면 말해. 내가 다 해결해 줄게. 돈으로 되는 일이면.”
“아니요. 그런 일 없습니다. 아시잖아요. 저 어디 놀러가는 것보다 집에서 노는 거 더 좋아하는 거.”
하긴, 이 녀석은 예전부터 집돌이긴 했다. 애초에 월급도 실수령 오백에서 천만 원까지 올려줘서. 연봉이 이미 억 단위를 넘었다. 연말 보너스 휴가 보너스 엄청나게 챙겨준 것은 물론이고. 돈 때문에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를 해주었다.
“...그래. 그래도 너무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 나가서 놀아야. 뭔가 더 새로운 경험도 하고 하지.”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 사장님.”
“그래서 오늘 사장들 모이는 시간이?”
“11시입니다.”
“음. 그래. 먼저 오신 사장님들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마시고... 그냥 사장실로 불러. 두런두런 근황 토크라도 하게.”
“네 사장님.”
나는 사장실로 들어가서 평소처럼 메일을 받아보고, 밀렸던 매매도 직접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약속시간인 11시가 되기 전에, 자회사 사장들이 하나씩 하나씩 우리 사장실을 찾았다. 가장 먼저 온 것은 블루E&M의 안용균 사장이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우리 회사를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그간 안녕하셨지요?”
“아 네. 사장님도 잘 지내셨지요?”
인사를 주고받는데. 그보다도 그가 들고 있는 작은 상자가 눈에 띈다.
“네. 저... 이거... 홍삼입니다. 혹시나 여름 더위에 건강 해치시지 않을까 염려돼서.”
“아아... 네.”
그는 내가 투자한 회사 사장들 중에서 가장 내게 저자세였다. 아무래도 가장 돈이 궁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나는 손짓을 해서
“서 비서.”
그 홍삼선물셋트를 받아두었다. 나는 이런 것에 관심이 별로 없지만, 부모님 드리면 좋아할 것이다.
“요즘 잘 되고 계시지요?”
“네 판타지 워 그라운드를 집중적으로 밀은 결과 저희 회사 점유율이 7%에서 12%로 뛰었습니다.”
“아아 잘 됐군요.”
인터넷 방송 시장은 매해 커져가고 있었다. 1등 회사인 유러피안TV도 최근 주가가 많이 올랐다. 블루E&M도 그 파도를 탄 데다가 최근 점유율을 치고 나가면서 주가가 급상승했다.
“앉으시죠.”
내가 그에게 자리를 권하는데, 두 번째 방문객이 왔다. 카이게임즈의 신동우 CEO다.
“대표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네 대표님. 요새 바쁘시지요.”
그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네 조금...”
조금이 아니라 꽤 바쁠 것이다. 판타지 워 그라운드가 워낙에 대박을 쳐서 전 세계에서 붐이 일었으니까. 그는 회사 관리하랴, 해외 순방하랴 매우, 매우 바빴을 것이다. 주가는 말할 것이 없다. 내가 인수할 때 1200억에 지나지 않았던 시총은 지금 8000억. 무려 여섯 배 이상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나 그리고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최고의 투자가 되었다. 신동우 CEO는 먼저 와 있던 안용균 사장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오 사장님도 와 계셨군요. 잘 지내셨죠?”
“예예 대표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둘은 이미 구면이었다. 내가 지시한대로 하나는 게임을 만들고, 하나는 방송을 하는 쪽이어서 내가 일찍이 협업을 주선했기 때문이다.
“두 분 오셨고... 이제 세분 더 오시면 됩니다. 가시죠. 회장으로.”
나는 두 사람을 이끌고 준비가 되어 있는 대회의장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오셨습니까? 사장님들.”
장 부사장도 곁에 따라붙는다. 9시 45분. 세 번째 참석자가 온다. 나랑은 개인적으로 가장 친한, OH엔터테인먼트의 권오혁 사장이다.
“안녕하셨습니까?”
그는 다가와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인다. 그리고 먼저 와 있는 두 명의 사장을 보더니
“아이고 제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내게 한 번 더 인사를 했다.
“아니요. 일찍 오셨는데요 뭘.”
그가 늦은 게 아니라 다른 두 사장이 일찍 온 것이다. 나는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어떠십니까? 요새는?”
“아 아시죠 사장님. ‘내일 만나러 갑니다.’ 시사회 반응 매우 좋게 나왔습니다. 관객들도 좋아하고 평론가들도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아아 그래요?”
‘내일 만나러 갑니다.’는 OH엔터테인먼트의 간판스타 오현주 주연의 멜로 영화다. 작년 크랭크인 했던 영화가 이제 곧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됐군요. 현주 씨는 요즘 잘 지내시죠?”
“네 물론입니다. 본인도 이번 영화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기 필모그라피 중에 가장 흥행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고요.”
“아아 그래요? 저도 꼭 보겠습니다. 현주 씨 기대에 한명이라도 더 채워드리게.”
그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빤질빤질한 그의 머리를 내게 보여주었다.
“아아 그래주시면 정말 감사하지요 사장님. 현주 씨에게도 전해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래주세요.”
세 명. 기존의 사장들이 자리를 잡은 뒤, 나는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 여러분도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오실 분들이 두 분 더 계십니다. 먼저... 언론사 오라클뉴스의 정소영 대표님하고, 그리고 현영제약의 신재은 회장님이십니다.”
다들 ‘오라클 뉴스’가 나올 때는 별 반응 없다가, ‘현영제약’이야기가 나오니 살짝 눈빛이 변한다. 확실히 100억짜리 자그마한 인터넷신문사랑 1조짜리 중견제약사는 무게감이 다른 것 같다. 10시 50분 경. 내가 예고한대로 두 명의 CEO가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세 명의 중년 남자들과 대비되는, 40대 여자. 오라클 뉴스의 정소영 대표. 그녀는 활달한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그녀는 40대에 걸맞은 뭔가 완숙한 섹시함을 가지고 있었다. 붉은 색 립스틱에 붉은 색 정장도 정말 잘 어울린다. 먼저 와 있던 세 명의 CEO가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그럴만 하다.
‘아니 다들 처자식 있으신 분들이... 아니 생각해보니 권 사장님은 미혼이었지.’
그녀는 마침 딱 권오혁 사장 옆 자리에 앉는다. 이렇게 보니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정 대표님은 결혼 하셨던가...?’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55분. 완연한 백발을 가진 60대, 현영제약의 신재은 회장님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현영제약은 아직 계약이 끝난 게 아니었지만 이미 구두로는 협의가 다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를 비롯한 다른 사장들과 인사할 겸, 겸사겸사 오기로 했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한 대표님. 그리고 많은 사장님들.”
그가 오자, 블루E&M의 안용균 사장이 잽싸게 자리를 비켜주며 말했다.
“여기 앉으시지요. 회장님.”
그리고 그는 말석에 가서 앉았다. 신재은 회장은 말없이 그가 비켜준 자리에 앉았다. 이것으로 총 다섯 개의 상장사, 그리고 한 개의 언론사. 내가 투자한 회사의 CEO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한 번 손을 모으며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