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75화 (75/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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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과 소설의 공통점

    “오셨습니까?”

    나는 줄지어 인사를 받으며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청바지에 니트를 입은 채로. 사원들은 그것에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가끔 그렇게 입고 출근을 했으니까. 하지만 지훈이. 서 비서마저 사복을 입고 출근을 한 것에는 조금 놀랐을 것이다. 지훈이는 언제나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으니까. 그래도 캐리어를 그대로 끌고 온 탓에

    ‘어디 놀라갔다가 급하게 왔나보다.’

    정도는 예상했을 것이다. 나는 사장실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곧 서 비서가 장 부사장과 함께 사장실로 들어왔다.

    “휴가는 잘 보내시고 오셨는지요.”

    “네. 좋더군요. 아 참. 장 부사장님 선물도 사왔습니다. 서 비서.”

    내 말에 서 비서는 품고 있었던 시계함을 꺼내 장 부사장에게 건넸다.

    “아니 이러실 필요는 없는데...”

    “장 부사장님 일 할 때 우리만 신나게 노는 것 같아서요.”

    장 부사장은 시계함을 받아 열어보았다.

    “오오 정말 아름답군요.”

    평소 덤덤한 성격의 그도 시계의 화려함에 조금 놀란 눈치다.

    “감사드립니다. 사장님”

    아마 시계 가격을 알면 더 놀랄 테지만, 그건 내가 직접 알려주는 것보다는 자신이 찾아보고 아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세요. 그리고 전에 말씀드렸던...”

    “아 네 준비해두었습니다.

    장 부사장은 허리춤에 끼고 있던 보고서를 내게 건네주었다.

    ‘카이게임즈 분석 보고서’

    나는 그걸 받아 하나하나 넘겨보았다. 시총은 1200억. 매출은 늘었다가 줄었다가 늘쭉날쭉했다. CEO는 젊은 축이다. 신동우 44세. JC등 거대 게임사의 게임개발자로 시작해 큰 프로젝트를 맡다가, 34살에 퇴사에 카이게임즈를 창립했다. 당시 유행하던 풀3D MMORPG 뉴어스 온라인를 개발해 중박을 터트렸고, 그걸로 상장을 했다.

    상장을 한 이후로는 성적이 그저 그래서 신작이 나올 때면 기대감에 주가가 올랐다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그저 그래서 주가가 내리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히려 잘됐군. 이번 신작은 진짜 중의 진짜인데, 다들 이번에도 별게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이건 쌀보리 게임과 비슷하다.

    ‘보리, 보리, 보리, 보리, 보리’

    보리를 다섯 번 내면 잡는 사람은 대개 다음번에도 보리가 나오리라고 예측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엔 진짜 쌀이다. 잡는 사람이 임자인 쌀. 나는 가장 중요한 지분상황을 보았다.

    ‘Zhiyuan Limited 24%’

    1대 주주는 발음도 하기 힘든 중국계 회사다. 나는 그걸 보며 말했다.

    “1대 주주가 중국계네요?”

    장 부사장이 설명을 해주었다.

    “네. 3년 전에 뉴어스 MMORPG를 수입하면서 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했습니다. 로열티를 주면서도 그걸 다시 되받을 수 있는 방법이지요.”

    엔터 쪽이든 게임 쪽이든 중국자본이 들어온 경우가 꽤 많다. 카이게임즈 역시 그런 케이스인 듯하다.

    ‘지배하는 것을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1대주주가 되어야 하는데... 24%라...’

    이번 건 진짜 대박 호재다. 단순히 차익을 내는 수준으로 투자를 하기 보다는 아예 내 자회사로 편입시키고 싶다. 그러면 일석이조로 마스터 등급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는데 도움이 될 테니까. 나는 시선을 내려보았다.

    ‘신동우 18%’

    회사 창립자인 신동우 CEO가 2대 주주다. 창립자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않지는 않다.

    “창립자 주식은 그리 많지 않네요. 그때, 중국 회사가 들어오면서 희석된 탓이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사장님.”

    ‘CEO 지분은 남겨두는 편이 좋겠지... 그래야 본인도 일할 맛일 날 테니까. 지금 지분을 팔면 개발에도 차질이 생길수도 있고...’

    거기에 나중에 주가가 오르면 더 속이 쓰릴 것이다. 게임에도 악영향이 갈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키우는 이유는 첫째가 사랑이긴 하지만, 둘째로 자식이 자신에게 효도를 하길 바라는 기대심리도 포함되어 있는 게 사실이니까.

    ‘아무래도 중국 쪽 사람들을 구워삶는 게 답이겠군.’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 회사 대주주가 되면서 게임 개발에 문제가 되지 않게 하려면 그 편이 좋을 것 같다.

    ‘됐어 그러면 장 부사장님에게 부탁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더 내려 보았다. 별 생각은 없었다. 이미 결론은 내렸으니까. 그런데 3대주주에

    ‘탁준기 5.6%’

    익숙한 이름이 있는 게 아닌가. 탁준기. 가든 엔비의 마스터T이자 탁진운 수연그룹 창업자의 손자. 나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탁준기...”

    그런데 그걸 들은 장 부사장이 바로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이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연그룹 후계자 중 한 분입니다. 본업은 여행사 이사이신데... 주식투자를 좋아하셔서 이곳저곳 여러 곳에 손을 대는 주식투자계의 큰 손입니다.”

    나도 대충 아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짐짓 모르는 척을 했다.

    “아... 그렇군요... 수연그룹의 후계자...”

    “네. 그런데 투자업계에서는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릴 만큼 수익률이 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감한 투자를 자주 하고, 또 대다수 수익을 내는 나온다고요.”

    “오호...”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 카이게임즈 역시 먼저 들어와 있는 걸 보면 대단히 잘한 것이다. 겨울만 되도 주가는 요동치기 시작할 것이니까. 그 때. 장 부사장은 슬며시 한마디를 더 했다.

    “이건 소문입니다만... 주가를 조작하는 세력과 결탁해서 수익률을 극대화한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주가를 조작하는 세력... 엔비 가든을 말하는 것일까?’

    그곳은 대놓고 작전을 하거나 하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세 몰이를 하는 건 맞았다.

    “참. 특이한 분이시군요.”

    “네 성격도 꽤 특이하시다 들었습니다. 저도.”

    “어떻게요?”

    “글쎄... 자세한 것은 저도 모릅니다만. 어쨌든 풍문에 의하면 그 분은 대기업 회장의 손자답지 않은 언행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연그룹 내에서도 조금 내놓은 자식 취급받고, 상속에서도 꽤 밀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

    이래저래 미스터리한 사람이다.

    ‘어쩌면 카이지처럼 현실세계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군. 5.6퍼센트 지분을 가지고 딜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보고서를 끝까지. 꼼꼼히 다 읽어보았다. 게임 이야기도 쓰여 있다.

    ‘배틀로얄 장르 판타지 워 그라운드 12월 중 출시 예정’

    ‘12월 중이라... 너무 가까운데.’

    지금은 9월 중순이다. 예정대로 12월에 출시를 한다고 하면 대략 세 달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은 개발단계여서 대박이 날지 안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카이게임즈 주가는 신작을 앞두고도 빌빌대고 있다. 대개 게임주는 신작 출시 전에 기대감으‘하지만 CBT나 OBT같은 걸 하면 게임이 재밌는지 아닌지 알아보는 사람들도 생길텐데...?’

    그렇게 되면 슬슬 주가는 오를 것이다. 그리고 출시가 되면 그 때부터는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판타지 워 그라운드는 전 세계적 대박이 날것이고, 카이 게임즈의 가치는 어제 오늘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 전까지 딜을 성사시켜야해 지금 1200억짜리 이 회사는 조 단위 회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지금 계좌에 있는 돈은 550억 정도...’

    그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든 생각에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태광방직 36500 +29.8%’

    홍콩 관광을 하며 분할 매수를 했던 태광방직은 상한가에 가 있었다. 나는 내 생각을 정정했다.

    ‘아니 지금 계좌에 있는 돈은 600억 정도. 그 때까지 최대한 불려서 적절한 시점에 회사를 인수한다.’

    결론을 내린 나는 보고서를 옆에다 두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지난 번 받았던 ‘블루 E&M’에 관한 보고서가 있었다. 나는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사파이어TV... 아니 블루E&M 쪽은 접촉해 보셨습니까?”

    “네 사장님 홍콩에 가 계셨을 때 일단 운은 띄워 놨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저희 접촉을 매우 반갑게 여기더군요. 그 쪽은 신규 투자가 절실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일단 블루E&M에게는 검토 중이라고만 조금 애를 태우세요. 저희는 일단 카이게임즈 인수에 집중을 해보도록 하지요.”

    “그러시겠습니까?”

    “네 제 생각에는... 이 카이게임즈가 당장은 성장성이 더 커 보이거든요. 12월달에 호재도 있고요. 블루E&M은 카이게임즈 인수를 한 다음에 타깃으로 삼지요. 생각해보면 개인방송이라는 게 엔터테인먼트와의 연계도 좋지만 아무래도 게임과의 연계가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 렇습니까?”

    장 부사장은 나이가 나이다 보니 이쪽은 조금 약한 것 같다.

    “네. 대개 개인 방송이란 게임방송이 다수긴 하니까요.”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저는”

    “어찌되었든 일단 첫 순위로 이 카이게임즈로 삼고 인수전을 벌여보도록 하지요. 장 부사장님은 일단 그... 중국 회사와 컨택을 해보세요. 혹시 주식을 양도를 할 생각이 있는지부터요.”

    “예 알겠습니다. 혹시 양수금액으로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고 계신지.”

    중국 회사의 지분은 대략 288억 수준이다. 나는 손가락 네 개를 펴며 말했다.

    “400억까지.”

    장 부사장은 살짝 놀란다.

    “네? 그러면 프리미엄이 30%가 넘는데... 그건 조금 많지 않겠습니까?”

    물론 많다. 지금 가격에 비해서는. 하지만 게임이 나오고 나면 30%는 그냥 하루면 오르고 마는 수준이 될 것이다. 나는 말했다.

    “그만큼 확실히, 저는 이 회사. 이 게임의 성공을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장 부사장님도 이건 반드시 우리 회사로 끌어들인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장 부사장은 고개를 숙이고 문 밖을 나섰다. 곁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서 비서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사장님. 그런데 이 판타지 워 그라운드란 게임이 진짜 성공을 할까요?”

    “응 내가 봤을 땐 그럴 것 같던데?”

    “저도 오면서 유투브에서 동영상을 찾아봤는데... 막 엄청 뜰 것 같지는 않던데요... 요새 배틀로얄 장르가 너무 많기도 하고... 그런데 뜰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동영상만 봐서는 확신을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게임이든 소설이든 영화든 망작이나 범작 정도는 예상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번 것처럼 그야말로 시대를 지배하는 초대박작을 예상하는 건 신의 영역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도 나는 확신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좋아 보이던데. 판타지 세계에서 배틀로얄을 펼치면 재밌지 않겠어?”

    지훈이는 입술을 모은 채로 말했다.

    “저도 예전에 학생 때 이 카이게임즈 회사에서 나온 게임 해봤는데... 딱히 대단한건 못 느꼈는데요.”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예전에 떠오르던 일화가 있다. 나는 목소리를 살짝 깔고 말했다.

    “야 지훈아.”

    “네?”

    “예전에 네가 말하지 않았니? 외국 사람들은 한번 실패를 한 사람에게 저 사람은 지난번에 실패했으니 이번엔 잘할 거야 라고 하는 반면 한국 사람들은 한 번 실패 한 사람에게 저 사람은 지난번에 실패했으니 이번에도 실패할거야 라고 한다고.”

    “아... 네...”

    “너도 지금 그 꼴이잖아.”

    “그렇...네요.”

    지훈이는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내 생각에. 주식투자는 소설과 비슷한 면이 있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의자에 기대앉으며 말했다.

    “둘 다 반전이 있을 때, 가장 극적이라는 점.”

    지훈이는 무슨소린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해봐. 무협소설에서 가장 통쾌할 때가 언제지? 매일 무시만 받던 주인공이 절세 무공을 펼치게 된 때가 아닌가?”

    “그렇...지요.”

    “그러면 매번 범작만 내놓던 게임회사가 갑자기 초대박작을 내놓는다면.”

    “아...”

    지훈이는 살짝 입을 벌린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천장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때, 주가는 아주 드라마틱한 상승을 보여주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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