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더 울프 오브 강남스트리트
나는 팝콘 위에 손을 가져갔다. 내 앞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열변을 토하고 있다.
“가난은 결코 고결하지 않아요! 난 부자 가난뱅이로 다 살아봤는데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난 언제나 부자를 택할 겁니다. 그러면 최소한, 살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최소한 리무진에 2천 달러 양복을 입고 4만 달러 시계를 찬 채로 문제를 대면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콜라에 입을 가져갔다. 달콤한 콜라가 짜릿한 탄산과 함께 내 목구멍을 때린다.
“카드 값이 밀려서 살기 힘들어요? 그럼 고객에게 전화해서 주식을 팔아요. 집주인이 나가래요? 잘됐군요. 전화를 들고 다이얼 돌려요. 여자 친구가 당신을 루저라고 무시해요? 잘됐군요! 그럼 다이얼 돌려요. 모든 문제는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됩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열변을 토하고 있는 이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속물인 주인공이 월스트리트에서 주식사기를 쳐서 엄청난 부자가 됐다가, 몰락하는 전기를 그린 작품이다. 예전에 이미 한 번 본 작품인데, 이번에 본격적으로 투자회사를 세우기로 하면서 문득 생각이나, 다시 한 번 재탕을 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손에 마이크를 쥔 채 크게 소리쳤다.
“이 주식으로 장외홈런을 날려봅시다!”
나는 팝콘을 씹으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크... 다시 봐도 이 연설 씬은... 엄청나다니까...’
나는 리모콘으로 뒤로가기를 눌렀다. 영화는 시간을 역행해 레오나르도가 다시 연설을 하는 곳으로 돌렸다. 내 뒤에 있는 빔 프로젝트는 다시 한 번 그 명장면을 생생하게 재생해 냈다.
“가난은 결코 고결하지 않아요!”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곳은 내 오피스텔. 안쪽에 있는 방 중 하나였다. 바깥 풍경 때문에 이55평 오피스텔을 골랐지만, 대학 진학 이후, 서울상경 한 이후로 10평짜리 원룸에서만 살아온 내게 55평은 너무 컸다. 새로 쇼핑을 해서 가구를 채워 넣고 넣고 해도, 방이 하나 남았다.
그래서 나는 남는 방 중 하나에 소파 하나 그리고 빔프로젝트와 음향기기를 채워 넣고 개인용 영화관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꾸미는데 이천만 원 정도 들었는데 생생한 화질과 음향을 듣고 있노라면
‘돈이 아깝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다시 한 번 팝콘에 손을 가져갔다. 먹고 있는 팝콘과 콜라는 3분 거리 강남역에 있는 영화관 가서 사온 것이다. 영화는 보지 않고, 팝콘과 콜라만 샀다. 그래도 매출을 올려주긴 했으니 그리 나쁜 고객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 영화를 보던 중이었다.
‘위이잉’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저녁 8시 50분.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나는 일단 영화를 일시 멈춤 해두고 컴퓨터 앞으로 왔다. 5분을 기다렸다가 메일을 받아보았다.
‘P 12시간 뒤’
‘P 12일 뒤’
지금은 일요일 저녁. ‘12시간 뒤’는 그닥 효용이 없었지만, 12일 뒤는 의미가 있다. 12일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면, 주식은 다음 주 중에 언제고 나눠서 사면되니까.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단순히, 며칠 째 허탕을 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루에 두 번씩 매번 낚시줄을 드리우고 있는데 무는 물고기가 없다.
‘오늘은 좀 걸려라 좀...’
그런데, 진짜로 오늘 입질이 있었다. ‘12일 뒤’. ‘경제’ 면에서.
‘에센바이오 독일제약사에 8600억대 기술수출 계약’
‘에센바이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회사가 상장되어있냐 아니냐다. 아무리 호재가 있어도 상장된 주식이 아니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나는 바로 검색창에 에센바이오를 쳐보았다.
‘있다!’
에센바이오. 코스피에 상장된 시총 1조원 제약회사. 나는 이제 기사를 읽어보았다.
에센바이오는 독일제약사 레벤 사이언스에 자사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항체신약 후보물질 VL360'을 8억250만 달러(약 8654억원)에 기술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4일 공시했다. 에센바이오는 이 계약을 통해 계약금 3000만 달러, 연구비 2000만 달러,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 7억5250만 달러를 받게 된다.
‘시총 1조원 회사에서 8600억짜리 계약’
월척이다. 나는 기사를 밑으로 내려 보았다. 아쉽게도, 주가가 올랐다거나 내렸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없다. 그래도 괜찮다. 이정도면 충분히 상한가를 가고도 남을 호재니까.
‘좋아 이번 주 내내 에센바이오 분할 매수하면 되겠군. 공시 날짜는 14일.’
14일은 다음 주 목요일이다. 오늘부터 정확히 12일 뒤는 금요일인데, 하루 지난 뉴스가 걸린 모양이다. 12시간 뒤도 ‘지금부터 12시간 뒤’까지의 뉴스가 다양하게 뜨는 것과 마찬가지로 12일 뒤도 ‘오늘부터 12일 뒤’까지의 뉴스가 뜨는 듯하다. 나는 내 관심종목에 ‘에센바이오’를 가장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 가진 돈은 89억원 정도. 시총 1조 회사라면 딱 좋은 먹잇감이다.
*
다음 날. 나는 주식시장이 열려 있는 동안 시간을 잘게 쪼개 에센바이오를 장내 매수했다. 9시 장 시작할 때 4억, 11시 게임하다가 4억, 1시 점심 먹으면서 4억, 3시 만화방에서 만화책 보다가 4억, 그리고 종가에 4억. 다섯 번에 걸쳐서 도합 20억.
‘12일 뒤’뉴스를 보고 주식을 사니 ‘12시간 뒤’ 뉴스를 보고 매수할 때보다 여유로워 좋다. 예전처럼 허겁지겁 주식을 매수하느라 가격을 올리지 않고 사서 더 좋다. 에센바이오는 심지어 오늘 하락했다. 내가 20억원 어치를 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에센바이오 13400 –0.74%’
내 평단에 비하면 –2%정도. 오늘 본 손실만 4000만원에 달했지만, 나는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오를 주식이니까.
‘좋은 주식 싸게 사서 더 좋지 뭐. 더 팔아라 짜식들아.’
오늘 매매동향을 보니, 외국인은 샀는데 기관투자자들이 팔았다. 그것도 국민의 돈을 가지고 노는 연기금이 오늘 대량 매도를 때렸다.
‘연기금 운용사들도 이런 정보는 먼저 못 얻나 보네...’
하긴 연기금이라고 해도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할 뿐이지, 미래에서 온 정보를 가지고 매매를 하지는 못하니까. 이어진 화요일 나는 똑같이 20억을 매수했다. 그런데, 주가는 계속해서 우하향을 했다. 오늘은 외국인들이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 13000. 오늘부로 순손실이 1억이 넘었지만,
‘괜찮아, 괜찮아.’
나는 그래도 넘어갔다. 늦어도 다음 주 금요일이면 어차피 오를 주식이니까. 이어진 수요일에도 나는 똑같이 매수를 했다. 그런데, 주가는 또 빠졌다. -3%. 나는 오늘만 2억의 손실을 보았다. 이쯤 되니 살짝 불안하다.
‘뭐지... 혹시 일주일 내로 엄청난 악재가 터지는 거 아니야? 계약 공시는 목요일에 나오는데?’
시간이 여유로워 좋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매매를 해보니 12일 뒤 뉴스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 12시간 뒤는 시간이 급박한 대신 다른 변수가 생길 시간도 없다. 그래서 그날 결과만 알면 리스크 거의 없이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12일 뒤 뉴스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다. 호재가 있는 12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음... 이건 참고를 해둬야겠군. 최대한 나눠서 사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예상 못한 악재에 휘말릴 수도 있다.’
89억 중에 3억원 정도다. 아직 크게 손실을 본 건 아니니 괜찮지만, 이번 주에 모두 매수를 해버리는 건 조금 조심해야할 것 같다.
‘정보가 빠른 사람이 아직 없어서 그런가?’
문득 든 생각에 나는 오랜만에 ‘가든 엔비’의 채팅창에 접속했다. 여기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채팅창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공지사항’이었다.
마스터T
-이번 주 모임은 없습니다. 다들 생업에 열중하시고 다음 주에 봅시다.
-이번 주는 토론 주제가 따로 없고, 자유토론입니다.
이 모임은 매번 열리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차피 그 이상한 모임에는 다시 갈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방 안에 있는 회원 수를 보았다. 회원 수는 88명. 예전보다 더 늘었다. 나를 이곳으로 초대한 이혜숙 과장처럼. 저 마스터T, 탁준기 이사의 부탁을 받은 사람들이 더 있는 듯하다.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채팅창을 보았다.
닥터J
-육일제약 다음 주 수요일 즈음에 호재 나올 듯 합니다. 매수매수.
루미너스
-닥터J님 뭐죠 그 호재가?
닥터J
-신약 실험 미국에서 2상 임상실험 좋게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트리플K
-음 2상 성공해도 시판되려면 한참 걸리지 않나요?
써니사이드업
-그래도 주가는 뛰겠죠.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저도 들어갑니다.
이 채팅창에서는, 바이오 제약 계열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의사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제약 바이오 주가 핫해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채팅을 보다가 처음으로, 채팅을 쳐보았다.
듀로스
-회원님들 혹시 에센바이오 아십니까? 무슨 호재나 악재 있는지?
내 채팅에 의사들이 달라붙었다.
닥터J
-에센바이오 자기면역질환 치료제 개발하는 곳임 작년에 중국에 기술수출 한 번 하고 요새는 별 건 수가 없는 걸로.
이름만 듣고도 뭘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역시 잘 알긴 아나보다.
Dr.이상한
-그 계약 때문에 작년 매출 좋았죠. 기술력은 있는 회사인데, 지금 가격이 조금 거품이 낀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지금보다 –10%정도 싸지면 사보고 싶네요.
난 이미 60억치를 매수했다. -10%싸지면 6억이 날아간다. 아무리 그래도 아찔한 금액이다.
주식전문의
-저 그때 작년 호재 터졌을 때 사서 반년 째 들고 있는데 별 재미없네요. 봐서 손절하고 다른 거 사려고요.
‘음 그렇군.’
의사들도 이런 계약이 있다는 건 잘 모르는 듯하다. 하긴 이런 대박 공시는 진짜, 진짜 내부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드니까. 대충 분위기를 파악한 나는 당장 더 주식을 사지 않고 조금 더 주가를 지켜보기로 했다. 목요일. 주가는 등락을 거듭하다가 +0%보합으로 마무리되었다. 금요일 이날은 +3%가 올랐다. 60억원치를 홀딩하고 있던 나는 이날 2억원 정도를 복구했다.
‘역시 지난 번에 빠진 건 그냥 잔바람이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온 월요일. 나는 20억원을 추가로 매수했다. 주가는 +1%대에서 끝났다. 화요일. 나는 신용을 써서 20억을 더 샀다. 주가는 +1%. 요동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날 모든 손실을 복구했다. 지난번에 4%빠졌던 것은 단순 수급문제였던 것 같다. 수요일. 이제 하루가 지나면 호재가 터진다. 더 지체할 수는 없다.
나는 신용을 끌어 모아 추가로 60억원을 더 매수했다. 도합 160억 매수. 내 매수세 때문인지 주식은 올랐다. +4%. 4% 상승이라면 평소에도 있을 법하다. 어디서 정보가 퍼졌다고 하기는 조금 어렵다. 대주주들 중에는 호재가 있으면 차명계좌로 주식을 사고 파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 회사는 점잖은 사람들뿐인 것 같다.
‘아니면 나보다 더 빨리... 12일 전에 사놨을 수도 있고...’
생각해보니 그게 더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이런 대형 계약이라면 12일 전에 말이 나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결국 운명의 목요일이 되었다. 목요일 당일날에도 주식은 그저 그랬다. 장따라서 내렸다가, 올라다가, 그러던 오전 11시 경.
‘에센바이오 독일 레벤 사이언스에 기술수출 계약 8600억 원치 매출 올려’
공시가 뜸과 동시에 에센바이오는 상한가에 도달했다. 나는 도합 +50억원이 찍혀있는 내 계좌를 보며 생각했다.
‘흠 쉽구만 쉬워.’
그런데 문득, 나는 엔비 가든 사람들 반응이 궁금했다. 나는 채팅창에 들어 가보았다.
닥터J
-와 에센바이오 상한가네요? 얼마 전 이 채팅창에서 본 거 같은데
아이디오스
-그러게요. 저도 본거 같은데
Dr.이상한
-채팅창 올려보니 듀로스님이 언급하셨던 종목이네요. 듀로스님 뭐 정보 있으셨나요?
아니나다를까. 나를 언급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대충 둘러댔다.
듀로스
-아니요. 그냥 차트가 좋아보여서 조금 샀습니다. 1억 정도. 더 살걸 그랬네요.
아이디오스
-1억원치 사셨으면 오늘만 플러스 삼천이시네요. 굿굿.
Dr.이상한
-크 차트 잘 보시나보네요! 대단하십니다.
‘사실 160억원치 샀는데...’
나는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괜히 주목받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어진 금요일. 에센바이오는 장 초반 27%로 시작했다가, 1분 만에 30%. 상한가를 찍었다. 이틀 합쳐 나는 100억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것이었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역시 100억 단위는 쉽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