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54화 (54/198)

# 54

절대 지지 않는 투자회사(3)

수정 중에 업데이트 실수가 있었습니다. 시스템상 어제 연재분은 알람이 안 가서 못 보신 분이 많으실 겁니다. 뒤로 가셔서 한화 보시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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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나는 내 소파에서 일어났다.

‘소파?’

지금 보니

‘드르렁 드르렁’

지훈이가 내 침대에서 자고 있다. 저 녀석을 보니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 소주에, 막걸리에, 맥주에, 신나게 마시다가

‘형 이거 한 병에 80만원인데 괜찮아요?’

‘야 다시는 내 앞에서 가격 이야기 하지 마. 마셔 마셔’

평소 마시지도 않던 양주까지 마셨다. 그러니 머리가 아플 만도 하다.

‘지금... 몇 시지?’

나는 내 휴대폰을 찾았다. 8시 40분이다. 습관이란 무섭다. 그렇게 술을 마셨어도 8시 40분이 되면 땡 하고 눈이 떠지니까. 나는 냉수 한잔을 들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오늘이 토요일이란 점이다. 오늘은 주식시장이 열리지 않는다. 급하게 뉴스를 확인하고 컴퓨터에 앉을 필요는 없다. 그래도 나는 메일함에 들어 가보았다. 메일함에는

‘P 12시간 뒤’

‘P 12일 뒤’

어제 밤에 받았던 메일이 그대로 있다. 온 시각은 ‘오후’ 8시 55분.

‘패시브는 서로 중첩됩니다.’

라는 말대로 ‘추가뉴스’패시브 스킬을 찍은 이후로 이렇게 저녁 8시 55분에 12시간 뒤, 12일 뒤 메일이 두 개 온다. 나는 그걸 클릭해서 보려고 했다. 아무리 금요일 밤에 보내준 뉴스긴 해도, 12일 뒤 뉴스는 효용성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메일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메일 옆에는 ‘읽음’표시가 있다. 어제 그렇게 술을 마시다가도 메일을 보기는 봤나보다.

‘...열혈 구독자 다 됐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봤던 메일들을 다시 한 번씩 다 보았다. 어제 기억에 남는 게 없더니 진짜 알맹이 없는 뉴스만 있다. 나는 다시 시계를 보았다. 8시 53분이다.

‘이제 없어질 때가 됐군.’

이 12시간 뒤 뉴스는 딱 12시간 뒤가 지나면 저절로 사라진다. 어떻게 그렇게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건 비밀’일 것이다. 나는 들고 온 냉수를 한 잔 들이켰다. 그때,

“다시... 다시 한 번 만 기회를 주세요...”

지훈이가 침대 위를 구르며 잠꼬대를 한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고 피식 웃었다.

‘짜식 고생하긴 했나보구나.’

저 모습을 보니 짠하다. 사실 지훈이 정도 스펙이면 대기업 입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문과 탑인 경영학과에서 늘 과탑을 지켰고 어렸을 적에 몇 년 미국에서 자라서 영어도 곧잘했다. 원하는 곳 골라서 가는 수준은 못 되더라도, 일 년 정도 구직하면 어딘가는 갈만한 수준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점이 더 대단했다. 쉬운 길 내버려 두고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을.

‘결국 실패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걸 통해 더 강해졌겠지. 잘 됐어 여기서 다시 만난게.’

세상에 능력 좋은 동료는 찾기 힘들고, 믿을만한 동료는 더더욱 찾기 힘들다. 그 때는 피차의 사정 때문에 헤어졌지만 이제 다시 힘을 합칠 때가 된 것이다. 물론 예전처럼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 동업자 관계가 아닌 고용주와 피고용주관계가 되버렸지만 말이다. 시간이 꽤 지났다. 다시 내 메일함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역시나 전에 있던 메일은 사라져 있고

‘P 12시간 뒤’

‘P 12일 뒤’

새 메일이 와 있다. 평소대로 ‘오전’ 8시 55분에 오는 메일이다. 브론즈 등급 시절 카테고리를 고르지도 못하고 하루에 뉴스 딱 한 개만 받아 보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무려 7개씩 4배 28개의 뉴스를 받아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28배만큼 효용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뭔가 돈이 될 만한 뉴스를 받을 확률도 높아진 것 확실했다. 나는 빠르게 뉴스를 눈으로 훑었다.

‘근데... 오늘은 날이 아니네.’

아쉽지만 28배 강화된 확률에도 오늘은 뭔가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던져두고 다시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매일 돈을 벌야아 하는 상황도 아니지만, 왠지 돈 벌 재료가 없으니 속이 상한다.

‘랭킹뉴스도 살아있겠다. 로또 1등이나 한 번 더 할까?’

*

‘후르릅 후릅’

지훈이는 시원하게 짬뽕 국물을 들이켰다.

“어우 이제 살만하네. 어제는 우리 얼마나 마신 거예요 형?”

“나도 기억이 드문 드문 나. 술집이 집 근처여서 다행이지 아니면 길가에서 잘 뻔했어.”

“그러게요.”

지훈이는 짬뽕으로 해장을 마치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시간 상으로 이미 오후 1시가 다 된 시점이었다. 지훈이는 내 오피스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 근데 여기 정말 전망 좋긴 좋네요.”

나는 그를 따라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다.

“돈 값해야지. 월세만 600인데.”

“600이요?”

지훈이는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그럼 어제 본 그 건물주 미녀는... 매달 600씩 버는 거예요?”

“매달 600아냐. 그 사람 이 오피스텔에 자기 명의로 대여섯 채는 있는 거 같더라고. 그럼. 계산 나오지 달마다 3000~3600 다 월세는 아니겠지만 뭐... 그 정도 버는 효과는 있다고 봐야지”

“오와... 그렇게 예쁜데 돈도 많고... 인생 신나겠다. 그런 미녀가 한 달에 삼사천 벌면 다 어디다가 쓸까요? 유럽 이고 미국이고 아프리카고 매일 해외여행 가도 남을 거 같은데.”

“음...”

자꾸 쓸데없는 이야기로만 대화가 옮겨 간다. 나는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 어제 내가 말한 거 다 기억은 하냐?”

“어제 말한 거요?”

나는 이마를 짚었다. 혹시나 이 녀석 다 까먹은 게 아닐까.

“그래. 내가 오랜만에 같이 술 먹자고 널 부른 건 아니었잖아.”

“그럼요. 알죠. 형 저 의심하시는 거예요?”

지훈이는 호기롭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면접을 보듯 물었다.

“그럼 내가 널 어제 왜 불렀지?”

“투자 회사 세우시려고. 내가 그 쪽 분야를 잘 아니까.”

“그리고 또?”

“인수할 회사도 물색해보라고 하셨죠.”

“회사는 어떤 회사?”

“엔터테인먼트. 혹은 사람이 주가 되는 회사.”

“그래 좋았어.”

나는 지훈이 등을 한 대 두드려주었다. 역시 이 녀석은 명석하긴 하다. 지훈이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형님 걱정마세요. 제가 누굽니까? 예? 창업동아리 10년 역사 기재 중의 기재로 불리는 서지훈 아닙니까? 제가 이번에 스타트업 하면서 투자회사들 많이 만나봤어요. 그 분들하고 일 하면서 투자 하는 쪽 사정도 훤히 알게 되었습니다. 믿고 맡기세요.”

“그래. 너만 믿는다.”

“네 형도 대신... 형도 어제 했던 말 확실히 기억나시죠?”

“뭐가?”

“월 오백.”

“아 그건 걱정 마. 네가 일만 잘 하면 보너스도 두둑하게 줄게.”

“예 형님”

이 녀석 지금 보니 돈 이야기 나올 때마다 ‘형’에 ‘님’자를 붙인다.

‘이게 월 500의 힘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장을 마치고 지훈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이제 저 가볼게요. 저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뭘. 당연하지. 내가 일 시작하는데 너랑하지 누구랑 하겠냐”

“네.”

지훈이는 싱글싱글 웃으며 문 가까이 갔다.

“아 근데... 형 저희 회사 이름 뭐라고 하실 거예요?”

“음 글쎄... 아직 생각해 본적이 없네. ”

나는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무슨 이름이 좋을까. 단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지훈이에게 반대로 물었다.

“무슨 좋은 이름 없을까?”

“컨셉이나... 그런 건 없으세요?”

“컨셉?”

“네. 그런 게 있으면 이름 짓는데 좋죠. 왜 우리 창업동아리에서도 그런 거 많이 했었잖아요. 브랜드 네이밍 어떻게 할 것인가.”

가물가물 기억이 난다.

“음... 좋아. 내 투자 회사 컨셉은... 절대지지 않는 투자회사.”

지훈이는 내 말을 잊지 않으려는 듯 그대로 다시 한 번 되뇌었다.

“절대지지 않는 투자회사...라...”

“그래. 절대로 단 한 번도 지지도 않고 손해도 보지 않는 무패의 투자회사. 그게 내 회사 컨셉이야. 구체적인 이름은 한 번도 생각 해 본적 없는데... 나도 이름 생각해볼게. 너도 생각해봐.”

“네 형. 그러면 일 진척되는 대로 바로바로 전화로 보고하겠습니다.”

“그래. 월급은... 그냥 오늘부로 줄게. 계좌번호 문자로 보내놔라.”

“어 형... 아니 형님 정말로요?”

“그래. 계좌번호나 남겨놔.”

“네 형님 감사드립니다. 형님”

지훈이는 몇 번이나 인사를 한 다음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우웅’

문자 하나가 왔다.

‘서지훈 민국은행 XXX-XXXXX-XXX’

빠르게도 보냈다.

‘녀석 궁하긴 궁했나보네.’

나는 녀석에게 바로 500만원을 송금했다. 그리고 휴대폰 앱을 닫으려다가

‘아 맞아’

문득 든 생각에, 계좌이체를 더하기를 눌렀다. 나는 지난달부터 아버지 어머니 계좌에 각각 300만원씩 넣어드리고 있었는데, 한 달이 지나 다시 용돈을 보낼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디보자... 아버지 계좌에 300만, 어머니 계좌에 300만.’

이체를 하고 잠시 후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얘 상훈아.”

“네 아버지”

“무슨 용돈을 삼백만원 씩 넣어줘. 지난달에 받은 거 다 쓰지도 못했다.”

“아니 그냥... 아들 키워준 것에 대한 보상금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 그래도 너무 많은데... 너는 괜찮니?”

“네 걱정마세요.”

“그래 알았다. 고맙다 아들.”

아버지와의 전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어머니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아고 상훈아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넣어줘. 우리도 괜찮다니까.”

“아니 그래도 거금이 생겼는데, 나만 잘 먹고 잘 살순 없잖아요. 이럴 때 효도해야죠 받으세요.”

“그래 고맙다 고마워. 새로 이사한 곳은 살만해?”

“네 좋아요. 언제 한 번 오세요.”

“그래. 알았다.”

부모님과의 통화가 끝나고 나는 잠시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빠?”

“응 수정아.”

“왜? 무슨 일이야? 나 지금 바쁜데.”

“...아 그래도 들어볼만한 이야긴데.”

“빨리 말해 친구들이랑 카페왔단 말이야.”

‘그게 바쁜 일이냐.’

“나 예전 동료랑 다시 창업을 하기로 했어.”

“진짜? 다시 하게? 오빠 그러다가 로또로 번 거 다 날리는 거 아냐?”

나는 살짝 올라오려는 혈압을 억지로 누르면서 동생에게 말했다.

“어쨌든 앞으로 내가 조금 바빠질 것 같아. 그래서 집에도 잘 못가고 그럴 수 있으니 네가 집에서 부모님한테 잘 해주길 바란다.”

“아니 그게 무슨소리야.”

다 알아 들었는 데도, 무슨소리냐고 한다. 나는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백 줄게.”

“백?”

“백만 원. 매달. 대신 부모님한테 물심양면으로 효도하도록 해. 나 대신에.”

수정이는 순식간에 태세를 바꾼다.

“말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오라버니.”

‘흥. 역시나.’

“그래. 그럼 부탁한다.”

“네 오라버니”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통화를 끊었다. 역시 돈은 마력이 담긴 물건이다. 그걸 보여주면 사람은 현혹되고 그걸 주면 사람은 복종한다. 내가 이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매번 돈에 현혹되고 복종하는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반대다. 나는 이제 투자회사의 CEO이자 오너로서 이 돈으로 남을 현혹하고 복종시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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