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29화 (29/198)

# 29

4년 마다 개장하는 카지노(3)

이어진 화요일. 나는 12시간 뒤 메일을 받았다. 먼저, 남은 구독기간이 눈에 띈다. 7일. 일주일. 이게 끝나면, 나는 다시 한 번 더 천만 원을 넣어야한다.

‘그 전에 많이 불려놓고 싶은데...’

지금 천만 원은 나중에 일억, 십억, 백억이 될 돈이다. 그런데 그렇게 몇 배로 불리기 전에 순전히 비용으로 천만 원이 나가버리면 조금 아쉽다. 구독기간이 끝나기 전에, 일주일 내로 뭔가가 떴으면 좋겠다. 나는 먼저 경제와 연예 쪽을 먼저 클릭했다.

‘알파고가 주식시장을 지배한다.’

‘ZM 대형 신인 아이돌 그레잇 데뷔 초읽기’

꽝, 그리고 꽝. 연이은 꽝. 뭐 이제 익숙하다. 나는 제목만 눈으로 확인 하고 슥슥 마우스 커서를 옮겼다. 아무래도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정치’다.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정치를 클릭했다.

‘서울 시장 선거. 지역구별 지지율 분포도.’

뉴스 제목을 본 나는,

“음...”

반은 실망하고, 반은 만족했다. 실망한 점은 일단 당장 돈 되는 뉴스가 아니라는 점. 만족한 점은 예측한대로 서울시장 선거가 뉴스에 나왔다는 점이었다. 오늘은 아니지만, 곧 돈 되는 뉴스가 뜰 거 같다는 기대감이 나를 들뜨게 만든다. 주식장이 열리는 9시. 나는 이어서 MTS를 켜서 세 종목을 검색했다.

‘동보건설, 엔도바이로닉스, 유림건설’

동보건설 4600원 +1.2%

엔도바이로닉스 64200 -0.5%

유림건설 54100 +0.2%

서울 시장 후보의 정치 테마주들은 한 달 전 후보등록을 할 때 즈음 급등을 한 다음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성원 50%, 이희철 35%, 정관수 15%의 지지율이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현 상황이 뒤집힐만한 사건이 있어야 지지율도 오르내리고, 주가도 변하든가 할 텐데, 아직 그런 것은 나오질 않고 있었다.

나는 일단 관심종목에 ‘정치테마주’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그 세 종목을 집어넣었다. 사바나의 사자처럼 수풀 속에 숨어있다가 뭔가 뜨기만 하면, 맹렬하게 달려들어 물어뜯으리라. 하지만 수요일 이어진 기사는 나를 살짝 실망하게 만들었다.

‘경기도지사후보 김희창 70% 압도적 지지율로 독주. 대항마 없어.’

경기도지사 뉴스. 뭐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서울시장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판이니까. 하지만 살짝 긴장이 된다. 앞으로 구독기간은 6일. 선거는 28여 남아 있었다.

‘그 전에 뭔가가 승부가 나야할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메일을 닫았다. 다행이도 내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

목요일. 오늘도 아침 일찍 내 자리에 앉아 있던 내게 최 사원이 다가와 촐싹댔다.

“어이 한상훈. 오늘 월급날이네. 약속대로 내가 한 번 쏠게!”

나는 눈을 깜빡였다.

“어 벌써 그렇게 됐나?”

“뭘 벌써 그렇게 됐나? 야. 평소 월급날만 기다렸으면서.”

지옥 같은 직장에서 단 하루, 성녀의 축복이 내려오는 날이 있다면, 바로 월급날이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월급날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잊고 메일 받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

늦었다. 이번 월급날이 되기 전에 퇴사하려고 했는데. 최 사원은 나의 낯빛을 살피더니,

“어 너... 뭐야... 여자친구랑 싸웠어?”

조심스레 말했다. 월급날에 덤덤한 나의 표정을 처음 본 모양이다. 나는 손짓을 해 그를 쫒아냈다.

“됐어. 네 자리로나 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그깟 몇 푼 월급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주식 계좌에 있는 돈은 정확히 217,156,665원. 지난 번 지우엔터테인먼트 인수합병 건으로 번 돈에 OH엔터테인먼트 권 사장한테 받은 돈을 합친 금액이다. 단 하루 주가가 2%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내가 받는 월급보다 많은 금액이 오가는 상황인 것이다.

‘그보다... 뭔가 떠야 말이지...’

나는 속으로 투덜투덜 대면서 ‘정치’를 클릭했다. 그런데, 오늘 나온 뉴스는 나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주성원 시장 전 비서 미투 선언. 7년 전 주성원 시장에게 성추행 당했다.’

나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 충격적인 뉴스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 점잖게 생긴 사람이?’

하지만 충격적인 뉴스일수록, 그 파급력은 더 강한 법이다. 나는 그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_

주성원 서울시장의 전 비서인 김수향 씨가 한 언론사를 통해 Me too(나도 당했다)를 선언.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주성원 서울시장이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던 당시, 그의 비서로 일했던 김수향 씨는 주성원 시장이 국회의 개인 의원실에서 자신의 몸을 더듬고, 강제로 입맞춤을 하려 했다며, 주성원 시장에게 이에 대한 공식적 사과를 요청했습니다.

_

입이 떡 벌어지는 기사다.

‘아니 이게 진짜인가?’

하지만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일단 주식. 주식부터 사야한다. 나는 빠르게 MTS를 켰다. 그런 다음 주성원 시장의 대장주인 동보건설의 주가를 확인했다.

동보건설 추정예상가 4700 +0.2%

동보건설은 오히려 소폭 상승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어느 곳보다도 정보에 민감한 곳이 바로 이 주식시장이다. 어떤 루머가 퍼지기 시작하면 어느 언론보다도, 어느 인터넷 사이트보다도, 주식 시장이 먼저 알아듣고 먼저 반응한다. 그말 인즉 이 정보는 아직 시장에 풀린 정보가 아니었다.

‘이거 엄청나게 쓸어 담을 기회다.’

확신이 든 나는 슬쩍 눈짓으로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현재 8시 57분. 아직 장이 열리기까진 3분이 남았다. 나는 다시 12시간 뒤로 돌아와 계속해서 뉴스를 읽어보았다.

_

이에 주성원 시장은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으로 재직할 때, 김수향 씨가 우리 의원실에서 잠깐 말단비서 일을 한 것은 맞지만, 저는 그녀에게 어떤 성적 모욕감을 줄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김수향 전 비서의 주장과 주성원 시장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상황. 현재 시장 재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주성원 시장이기에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_

‘혐의를 부인했다...라...’

하지만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미투 논란에 휘말리고 나면, 논란의 대상은 이미지가 곤두 박칠 치기 마련이다. 주성원 시장의 지지율을 떨어 질 수밖에 없다.

‘7년 전 일이야... 게다가 누구 목격자도 있을 수 없는 개인 의원실... 그렇다면... 이건 하루이틀 내로 진실이 규명될 일이 아니다.’

진실이 어찌되었든 간에 이런 추문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못하는 법이다. 주성원 시장을 흔들기에 확실한 카드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주성원 시장이 몰락하면 가장 크게 덕을 볼 사람은.’

단연 2등인 이희철 후보다. 그의 유력한 대항마. 주성원 시장이 이번 논란으로 지지율을 잃게 되면 이희철 후보가 1위로 올라설 것은 당연하다.

‘엔도바이로닉스를 사야한다.’

나는 관심종목으로 들어가 바로 엔도바이로닉스를 현재가에 띄워놓았다.

엔도바이로닉스 64000 추정예상가 0.0%

엔도바이로닉스 역시 보합권에서 놀고 있다. 호재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 매수 적기. 사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엔도바이로닉스는 매출도 매년 늘고 있고, 이익도 나고, 배당도 주는 건실한 회사였다. 중소형주여서 신용은 40%밖에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올인을 해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9시 땡 하면서, 장이 열렸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티가 안 나게, 주섬주섬 엔도바이로닉스를 사기 시작했다. 이번엔 지우 엔터테인먼트 때와는 다르게 누군가 경쟁적으로 주식을 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질 않았다. 이번 미투 사건이 그만큼 누구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듯하다. 잘됐다. 정보는 희귀할수록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

여유가 생긴 나는 한 시간 정도를 들여서 천천히 가격을 올리지 않고 주식을 담았다. 장이 열린 지 한 시간 뒤 10시 경. 매수가 끝난 내 계좌에 있는 주식은 다음과 같았다.

엔도바이로닉스 8840주

매수가 64300 매입금액 542,692,000

내가 가진 돈은 2억1천만원 정도였지만, 신용 40%를 적용한 상태로는 그 금액의 2.5배에 당하는 5억4천어치를 살 수 있었다.

‘어후 5억4천이라니... 5천4백만원도 쥐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호가창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때, 어떤 바보 같은 누군가, 주식을 시장가에 내다 팔아버렸다. 주가는 300원 하락한 64000. 8840주를 가지고 있던 내 계좌는 순식간에 265만2천원이 날아갔다. 오늘 내가 받는 월급보다도 큰 금액이 일시에 날아간 것이다.

‘아우... 이건 보고 있으면 좀 힘들겠다.’

아직 놀리는 돈에 비해 아직 담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일부러 MTS를 껐다. 일희일비 할 필요 없다. 그건 전 재산이 주식에 달려 있는, 한 치 앞길 보지 못하는 개미들이나 하는 것이다. 나는 다르다. 나는 미래를 보고 왔으니까. 오늘은 종가가 어떻게 끝나든, 내일 이맘 때 즈음 나는 웃고 있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