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28화 (28/198)

# 28

4년 마다 개장하는 카지노(2)

‘유력 차기 서울 시장 후보 3명으로 압축.’

나는 그 기사를 읽어보았다. 내용은 평범했다. 방금 전 기성 언론에서 나온 보도를 통해 이미 나도 알고 있는 내용. 하지만 나는 그걸 보면서 살짝 미소 지었다. 오감을 통해 진하게, 찌인하게, 느낌이 전해져 온다. 여기 돈벌 구석이 있다. 서울시장 선거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판이라면, 진짜 판돈이 오가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정치테마주였다.

‘정치테마주에서 파도를 타면... 엄청나게 돈을 벌어들일 수도 있다... 이쪽은 상한가 하한가가 매일 있을 정도니까...’

문제가 있다면 나는 여태 정치테마주를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었다는 점. 애초에 비상식적인 투자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주식을 하던 시기에는 선거 자체가 없었다. 나는 메일 창을 닫으며 생각했다.

‘공부가 더 필요해.’

*

“어서 오십시오.”

나는 인사를 받으며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유명 전자제품 브랜드 와플의 직영점.

“뭐 찾으시는 물건 있으신가요?”

다가오는 직원에, 나는 말했다.

“그... 태블릿 PC중에 펜이랑 연동되는 거 있죠?”

“네 와이패드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거 사려고 하는데...”

“아 그건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일반판하고 프로판하고... 와서 보시겠어요?”

점원은 내게 두 종류의 모델을 보여준다. 크기는 조금 다른데 지금 봐서는 잘 모르겠다.

“두 갠 뭐가 다르지요?”

“아무래도 프로 버전이 화면도 더 크고 성능도 더 좋지요. 가격이 더 나가지만요.”

“그럼 프로 버전으로 주세요.”

“펜은 별도 판매인데...”

나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럼 펜도 껴 주세요.”

“그럼 와이파이 버전으로 하시겠어요? 아니면 LTE버전으로 하시겠어요. 그리고 버전마다 용량이 모두 다른데...”

뭔가 이렇게 복잡할까. 나는 더 질문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제일 좋은 걸로, 제일 비싼 걸로 주세요.”

내 말에 점원이 빙그레 웃는다. 가장 좋은 손님이란 이런 손님 아닐까.

“1,241,000원입니다.”

나는 가격을 듣고도 덤덤히 내 신용카드를 건넸다. 예전에는

‘120만원이요? 태블릿 하나가 그 정도나 해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을 텐데, 최근 주식을 시작한 이후로는 그다지 가격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이 태블릿 역시 주식을 더 잘하기 위해 산거니까. 일종의 재투자라면 재 투자다. 나는 이 태블릿 피시로 수백억을 벌어들일 것이다. 나는 새로 산 태블릿을 들고 근처 경치 좋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화면이 크고 밝다. 펜으로 화면을 슥슥 그어보니 진짜 연필로 노트를 하듯 그어진다.

‘좋아.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한다,’

나는 기계에 대고 인사를 건네고는 바로 첫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종일 짬짬이 시간을 내 공부했던 내용. 바로 정치테마주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가상 노트에 가장 먼저 쓴 말은

‘정치테마주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기이다.’

였다. 나는 그 옆에다가 한 줄을 더 써넣었다.

‘그것도 개연성이 부족한, 허술한 이야기를 가지고 치는 사기.’

대개 정치테마주의 기본 구조는 이렇다. 선거에 나온 A란 정치인이, B란 회사와 인연이 있다. 그 인연은 뭐 ‘A가 B회사의 CEO와 고등학교 동창’이라거나, ‘A란 정치인이 그쪽에서 일을 했다’던가, 조금 심하게 가면 ‘A의 친동생이 회사에서 이사로 지낸 적 있다’수준의 가느다란 인연. 때문에 A가 당선돼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면 B란 회사의 실적이 개선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스토리 자체가 대놓고 정경유착 사유기 때문이다. 지난 해 임기가 남은 대통령도 부패혐의로 내려 앉힌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이다.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모가지가 날아갔는데 서울시장이 혈연이든, 학연이든 지연이든 뭐든 때문에 특정 회사의 편의를 봐주었다던가, 이권에 개입한 게 밝혀지면 바로 강제 퇴직 절차를 밟는 게 당연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돈이 오가던 시절, 위에서 하라 하기 전에 아래서 알아서 기는 시절. 쌍팔년도 시절이라면 모를까. 요새는 공무원이 그런 짓을 했다간 바로 모가지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자신이 인맥이 닿는 곳은 꺼려하기 까지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판에서는 여전히 그 이야기가 통했다. 대선 때, 지방선거 때만 되면 주식시장은 요동친다. 어느 주식이 줄줄이 상한가에 가서 왜 그런지 알아보면 당선 유력 정치인 A의 친척이 B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식이다. 나는 태블릿에 한 줄을 더 써넣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기라고 해서... 마냥 부정할 필요는 아니다. 왜냐하면, 주식은 가격을 가지고 노는 일종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그래서 다들 하지 말라고들 하지만. 주식 시장에서는 그게 먹힌다. 왜냐하면 주식의 가격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코 푼 휴지를 가지고 백만 원에 거래를 하면, 그건 백만 원이 되고, 진주를 품은 조개를 백 원에 거래를 하면, 백 원짜리가 된다.

‘파이어 볼과 아이스 랜스가 만나면 파이어 볼이 이긴다. 왜냐하면 파이어 볼은 6서클 마법이고, 아이스 랜스는 4서클 마법이기 때문이다.’

판타지 세계에서 그런 설정이 있다면 판타지 세계가 그렇게 굴러 가듯

‘화경에 이른 고수는 현경에 이른 고수를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화경에 이른 고수는 검기만을 다룰 수 있지만, 현경에 다른 고수는 강기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협 세계에서 그런 설정이 있다면 무협 세계가 그렇게 굴러 가듯

‘정치인 A가 당선되면 B의 주가가 오른다.’

주식 시장에는 그런 설정이 있고, 그렇게 세계가 굴러간다. 놀랍지만, 사실이고,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나는 이어서 한 줄을 더 썼다.

‘정치테마주는 대장주를 해야 한다.’

여기서 대장주란 호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순히 말해 오를 때 가장 크게 오르고, 내릴 때 가장 많이 내리는 종목을 뜻한다. 어차피 정치테마주가 거짓의 설정을 두고 노는 앗싸리 판이다. 앗싸리 판에서 놀 거라면 가장 큰 판에서 노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주가를 조작하는 세력들은 대장주에 자신들의 총알을 집중적으로 퍼붓기 때문이다. 주가조작을 하는 세력들 사기꾼들도, 돈이 무한정 있는 건 아니다. 그들도 종로 사채시장에서 고액의 이자를 떼 가며 남의 돈으로 주가를 조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작전이 실패하면 자기들 목숨도 위험해지므로 오를 때만큼은 제대로 올려서 테마가 죽지 않게 만든다.

둘째로 대장주가 아닌 다른 주식은 대개 ‘정치인A’와 ‘회사B’의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에, 랠리 도중 탈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B에서 직접 관련주가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그럴 경우 테마주로 분류되어 오른 상승분 만큼 바로 하락이 나버린다.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시세가 먼저 끝나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중요한 이유. 대장주가 가장 많이 오르니까. 도박을 할 거라면 동네 야바위 꾼보다 큰 카지노에서 하는 게 낫다는 말이다. 사기도박란 점은 본질적으로 똑같지만.

나는 현재 가장 핫한 종목들, 테마주중 대장주로 분류되는 녀석들을 찾아내 ‘정치인A – 회사B’형식으로 태블릿에 끄적였다. 짧은 배경 스토리와 함께.

주성원 – 동보건설

주성원 시장이 동보산업 사외이사로 활동한 적 있음. 주성원 시장의 새도시 건설 정책이 동보건설에게 대호재로 작용할 전망

이희철 - 엔도바이로닉스

이희철이 CEO로 있던 막스메딕 출신 이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음. 이희철이 약사고, 제약회사CEO이기 때문에 엔도바이로닉스도 덕을 볼 가능성.

정관수 – 유림산업

유림산업 CEO 박명원 사장이 정관수와 구기고, 세운대학교 동창. 정관수는 국회의원시절 박명원 사장과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됨.

동보건설, 엔도바이로닉스, 유림산업 모두 벌써 주가가 들썩이고 있다. 세 사람의 현재 지지율은 현직 시장 주성원이 50%로 단연 톱. 뒤따르는 이희철의 지지율은 35%.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관수의 지지율은 15%였다. 만약에 무슨 변수가 생겨 이 순위가 뒤집히거나 한다면, 각 대표테마주는 서로 격렬하게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다. 나는 태블릿에 한 줄을 더 썼다.

‘나는 그 사기판에 들어가, 최고의 사기꾼이 된다.’

나는 이날 이후로, 매일 ‘정치’를 클릭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도 빨리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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