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9화 (19/198)
  • # 19

    재벌 집으로 입양된 고아(3)

    “자자 점심 먹고들 합시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오전 하루 종일일이 손에 잘 잡히질 않았다. 나는 바로 휴대폰을 들어 ‘현재가’를 보았다.

    ‘지우엔터테인먼트 3900(+30%)’

    오늘 아침 9시 10분경 상한가를 찍어버린 지우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상한가를 찍은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좌잔고로 넘어가보았다.

    보유 주식

    지우엔터테인먼트 19141주

    매수가 3030(+1%) 매입금액 57,997,230

    현재가 3900(+30%) 평가금액 74,649,900

    아침대비 손익 16,652,670

    오늘 수익만 1600만.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 상한가를 사려는 물량만 100만주가 넘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40억이 넘는 금액. 시가총액 300억짜리 주식에 이정도 물량이 쌓였다는 건 오늘은 당연히 상한가고, 며칠 더 상한가를 친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나는 대충 머릿속으로 암산을 해보았다.

    ‘지금 평가금액 7400만... 한 번 더 상한가를 가면 9700만 한 번 더 가면 1억2천 한 번 더 가면 1억6천...’

    만약 이렇게 연속으로 상한가를 가게 되면, 수익이 수익을 벌어드는 복리효과가 나타나 나중에는 그 수익이 어마어마해진다. 아인슈타인도 그런 말을 했었다.

    ‘인류 최고의 발명은 복리다. 복리야말로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라고. 인류 최고의 과학자로 꼽히는 그가 왜 뜬금없이 복리타령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복리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거 잘만하면 며칠 내로 2배... 아니면 그 이상 벌수도 있겠어.’

    나는 MTS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때였다. 오늘도 역시나 점심 친구, 최사원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뭐야 한 사원 오늘 뭐 좋은 일 있어?”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아니긴 뭐야 아니야. 좋아 죽겠다는 표정인데.”

    나름 표정관리를 하려고 했는데, 벌어지는 입꼬리를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최 사원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갑자기 표정을 굳히더니

    “너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만나는 여자 생겼구나.”

    진지하게 헛소리를 했다.

    ‘뭔 소리야...’

    나는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그가

    “진즉 말하지 그랬어. 내가 눈치 없이 맨날 점심 먹자고 했네. 그럼 가봐. 나는 필요할 때만 부르고. 대신 나중에 소개나 시켜줘 알았지?”

    그런 말을 하기에, 그냥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왜냐하면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근무를 하면서 대놓고 주식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점심시간 1시간이라도 온건히 다시 한 번 주식을 분석하고 싶다.

    “그럼 난 간다. 잘해봐. 지난번처럼 금방 헤어지지 말고.”

    최 사원은 그런 말을 남겨 두고 다른 패거리로 끼어 들어갔다.

    “어이 나도 같이 먹자.”

    친화력만큼은 좋은 녀석이다. 나는 그런 그를 두고 회사에서 홀로 빠져나왔다.

    ‘어디가 좋을까. 회사 사람 마주치지 않고, 혼자 밥 먹을 만한 곳이.’

    나는 회사에서 두 블록 떨어진 패스트푸드점을 떠올렸다. 그곳이라면 아는 사람을 만날 일이 없다. 근처에 더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이 있으니까. 나는 그곳을 향해 걸어가며 휴대폰을 보았다.

    ‘지금 인수합병 기사는 떴나?’

    나는 지우엔터테인먼트를 검색해보았다.

    ‘지우엔터 대표 걸 그룹 나인테일. 싱글 앨범으로 또 연기?’

    ‘하연서 잡지 뷰틸리언 화보 공개. 수려한 여신미모 뽐내 제공 지우엔터테인먼트’

    ‘지우엔터테인먼트를 보는 우려와 기대의 시선’

    주식은 상한가인데, 아직 인수합병에 관한 기사 따위는 나와 있지 않았다.

    ‘지우엔터테인먼트 현재가 3900원(+30%)상한가에서 거래 중’

    과 같은 기사도 있긴 했지만, 단순히 주식이 상한가에 가 있다는 사실을 전달 할 뿐 왜 그런 지에 대한 내용은 쓰여 있질 않았다. 나는 주식게시판에 가서 반응을 살폈다. 상한가에 간 주식게시판이 다 그렀듯 역시 이 게시판에도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와 이거 뭐냐 왜 상한가냐.

    호재도 없는데 묻지마 상한가네... 이런 거 사지마세요. 잘못 샀다가 크게 물립니다.

    상한가에 백만 주 쌓인 거 보면 모름? 뭔가 호재가 있으니까 간 거지. 주식 하루이틀하나...

    호재? 무슨 호재지? 나인테일 AV진출이라도 하나? 그거 말고는 터질만한 호재가 없는데

    뭔 개헛소리야 우리 소영이가 왜 AV를 찍어 너 어디 사냐? 죽여 버린다.

    사람들은 이번 상한가를 가지고 이런저런 추측을 해댔지만, 진짜 정보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만 하다. ‘12시간 뒤’에 따르면 지우엔터 소속사 가수들 직원들도 오후가 돼서야 알았다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불쌍한 개미들 같으니라고...’

    하지만 이들보다도 더 안타까운 사람들은 오늘 아침에 주식을 팔아버린 사람들이다. 몇 분 뒤면 상한가인데, 그걸 못 기다린 사람들. 나는 아래로 조금 더 스크롤을 내려 보았다. 오늘 장 열리기 전 9시 전후한 댓글들. 그 시간으로 가 보니 오늘 있었던 일들이 실시간으로 쓰여 있었다.

    아오 오늘도 내리네 이 개잡주. 상폐시켜라.

    이 주식은 끝장임... 솔직히 뭐 더 나올 데가 없음...

    내가 야금야금 몇 주씩 사던 때다. 이름 모를 불쌍한 개미들이 오늘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내게 싼값에 주식을 넘기던 때. 게시판 글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쓴 글들도 있다.

    동일이 개새끼 때문에 중형차 한 대 말아먹고 갑니다. 성투하세요.

    저도 손절합니다. 전세금 빼서 산건데... 눈물만 나네요...

    이 사람들은 진짜 안타까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냉정하게 생각하면 개미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 주식시장이라는 것은 애초에 제로섬 게임. 남의 돈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게임이다. 남의 돈을 먹으러 와서 자기 주머니가 털렸다고 불평해 봐야 들어줄 사람은 없다. 김용의 무협소설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던가.

    ‘검을 뽑지 않는 자는 살려주지만, 검을 뽑은 자는 벨 수밖에 없다.’

    라고 말이다. 주식시장은 현세의 무림이다. 무림에서 검을 차고 다니면 어디서 나타난 자객에 등이 찔린다고 해도 할 말은 없는 것이다. 남에게 찔릴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차라리 예금이나 적금을 드는 게 났다. 휴대폰을 보다보니 나는 내가 가려던 패스트푸드점에 도착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빅버거 셋트 하나 주세요.”

    “사이드는 프렌치프라이 음료는 콜라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딱 주문 한 개만 바꾸었다.

    “아. 콜라 대신 사이다로 바꿔주세요.”

    “네 곧 불러드리겠습니다.”

    나는 결제를 마친 뒤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사람들 반응을 살폈다. 암울했던 게시판 분위기는 주가가 오르면서 반전된다.

    뭐야 왜 갑자기 오름?

    두리금융 뭐냐? 한번에 6만주를 쓸어 담네?

    갑자기 메리트증권도 들어온다... 워... 뭐야 이거 뭐 있나?

    누가 입질 하나봄... 지금 +5%인데... 매수해도 될까요?

    헐 VI... 뭐야 이거 얘 왜 이래? 오늘 뭐 잘 못 먹었나?

    상한가다. 아 시발 방금 팔았는데

    헐 상한가. 뭐지? 세력이 들어왔나?

    이때는 이미 나는 주식 매수를 모두 마친 때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반응을 보니 재밌다. 그 때, 점원이 나를 불렀다.

    “빅버거 셋트 하나 주문하신 고객님”

    패스트푸드는 이름에 걸맞게 주문한 지 몇 초 지나지 않아 금방 나왔다. 나는 매대에 다가가 햄버거 셋트를 들고 와 자리에 앉았다. 금방 튀겨진 프렌치프라이를 하나 입속에 넣고 씹으니, 그 짭잘함과 바삭함이 어마어마하다. 나는 프렌치프라이를 씹으며 다시 스크롤을 위로 올려 보았다. 최근 댓글에서야 M&A이야기가 나온다.

    이건 루먼데... 중국 쪽에서 M&A가 들어왔다네요...

    중국 어디?

    루머는 BEU라는데... 어디지? 듣보잡인가?

    BEU 시총 20조짜리 존나 큰 기업이에요. 중국의 대표 엔터 회사인데...

    이제 정보가 풀리는 듯하다. 나는 조금만 더 댓글을 읽어보았다. 마침내 내가 원하는 댓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헐 그래서 오늘 상한가 간 거구나...

    오늘 상한가가 문제가 아니라... 이제 상한가 몇 방을 가느냐가 문제임...

    BEU면... 최소 3연상은 갈거 같은데.

    3번이 뭐임 5번은 가는 거 아님?

    거기까지 댓글을 읽던 나는 그제야

    ‘오케이 됐어.’

    휴대폰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잘 익은 패티에 치즈와 양상추가 올려 진 버거를 한 번 크게 물고, 쩝쩝 씹으며 같이 나온 사이다를 들어 빨대에 입을 대고 크게 한번 빨아 들였다. 시원한 사이다가 빨대를 통해 입으로 전해져 온다. 나는 그 탄산의 시원함을 느끼며 작고, 길게 탄성을 내질렀다.

    “크으...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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