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재벌 집으로 입양된 고아(2)
지우엔터테인먼트 매수를 앞두고, 이제 걱정이 되는 건 하나였다.
‘혹시나... 시초가가 너무 올라서 시작하면 어떻게 하지?’
누군가 이 인수합병 정보에 접촉을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주식 정보만 찾아다니는 브로커, 기관투자자들은 이런 정보에 민감하다. 바로바로 큰돈이 되니까. 그전에 대주주 회장과 그의 지인, 고위직 간부등도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매매하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는 말할 것 없이 불법이고 공정거래위원회에 걸리면 다이렉트로 쇠고랑을 차게 되지만, 그런 일은 적다. 먼 친척이나 지인 등의 차명계좌를 사용하기 때문. 차명계좌 사용은 코스닥뿐만 아니라 코스피에서도 공공연히 있는 일이다. 장 열리기 30초전. 나는 시초가 잡히는 것을 확인했다.
‘혹시 시작부터 개 달리는 거 아냐?’
불안감이 든다. 어제까지는 별 움직임이 없었지만, 인수합병 정보가 퍼졌다면, 당장 상한가인 30% 근처에서 매매가 시작될 수도 있다. 그러면 끝이다. 나는 주식 한 개도 사지 못하고, 닭 쫒던 개 마냥 상한가에 가 있는 주식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제발 10%이상 안 올라서 시작했으면...’
그런데, 내 걱정은 완전한 기우였다. 매매 시초가는 2940원. –2%대에서 거래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뭐야 이거...?’
이러다보니 오히려 올라서 걱정을 할 게 아니라 내릴까봐 못 사는 처지에 빠졌다.
‘아니 오늘 분명 피인수 당한다고 되어 있는데...’
지난번 유환증권 사태처럼
‘-30%찍었다가 –3%에서 끝난다.’
라는 식의 족집게 과외를 받은 게 아니었으므로. 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매매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12시간 뒤 기사를 확인했다. 아까 읽었던 부분 말고, 스크롤을 내려 아래 부분을 빠르게 스캔했다.
*
...최근 연이은 무리한 투자 실패로 급격히 재무제표가 나빠져 관리종목으로 선정되었던 지우엔터테인먼트는 BEU그룹의 자금을 수혈 받음으로서 급한 불을 끄게 되었다. 회사 내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M&A는 회장 김동일과 몇 명의 이사진들만 아는 극비 사항으로 진행되었으며, 유명 걸그룹 나인테일 멤버들을 비롯한 회사 내 직원들 역시 오후에서야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당황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혼란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대주주가 된 BEU그룹의 왕 웨이 대표이사는 오늘 오후 6시 경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지우엔터테인먼가 중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할 예정이다. 지우엔터테인먼트의 훌륭한 인적자원과 BEU그룹의 중국 내 네트워크의 결합이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해, 지우엔터테인먼트 주주들과 지우엔터테인먼트의 아티스트, 그리고 아티스트의 팬들을 안심시켰다.
*
‘극비사항으로 진행되었다...’
회사 내 사람들도 몰랐다고 하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긴 한다. 이 정도라면 아직 기관투자자들에게 밝혀지지는 않았을 공산이 크다. 애초에 기관투자자들, 그리고 외국인들은 관리종목으로 선정된 주식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고객의 돈으로 산 주식이 상장폐지를 당했다간 그대로 시말서를 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 빠지는 건 그냥 단순 조정인가? 관리종목에 빠진 상태로 우하향을 그리는 주식이라면... 하루 –2%빠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긴 하지... 그렇다면 절호의 기회다.’
내가 결론을 내린 순간, 9:00이 되면서 주식 장이 시작되었다. 시초가는 그대로 –2% 2940원. 안타깝게도, 오늘 퍼런색으로 물든(계좌가 마이너스 나면 파란색이 된다.)자신의 주식을 울면서 파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하루만 더 버티면 수익이 날지도 모르지만, 하루 앞도 못 보는 게 개미인생이니까.
나는 내가 가진 돈 5800만원을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 거기서부터 매수를 하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위잉.
‘매수 체결’
‘매수 체결’
‘매수 체결’
내 핸드폰이 진동을 시작한다. 지난 번 회의 때 있었던 바로 그 ‘돈을 버는 진동소리’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관리종목이어서 지난번처럼 ‘미수’를 쓸 수 없다는 것. 증권회사는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목 하에 그런 정책을 시행했지만 사실은 자신들도 투자자에게 미수를 빌려줬다가 관리종목이 상장폐지를 당하면 떼일까 그러는 게 분명했다.
‘하여간 어지간히 도움이 안 돼요...’
나는 투덜투덜대면서 계속해서 매수 주문을 넣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 남 눈치가 보인다. 나는 슬쩍 다른 회사원들을 살펴보았다. 다들 자기 업무에 바쁘다. 사사건건 방해꾼인 허 과장도 오늘은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나는 일단 업무 화면을 올려놓고, 계속해서 주식을 사들였다.
지우엔터테인먼트의 시가총액은 약 300억. 중소기업들이 몰려 있는 코스닥에서도 매우 작은 수준의 회사였으므로, 내 돈 5800만원 가지고도 0.1%, 0.2%주가가 조금씩 올라갔다.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조금씩 야금야금 매수를 계속했다. 그런데 그런 때였다. 9시 10분이 지나갈 때 즈음. 갑자기 누군가의 매수가 들어오며 갑자기 ‘팍’하고 주가가 튀어 올랐다. 방금 전까지도
‘-3% 2910’
마이너스 권에서 놀던 주가는 순식간에
‘+2% 3060’
플러스 권으로 바뀌었다. 나는 살짝 당황했다.
‘왜 갑자기 이러지?’
여태 산 주식은 5800만원의 2/3를 겨우 넘기는 4000만원 정도였다. 아직 1800만원을 더 사야 되는데, 누군가 주식을 사들여 가격이 올랐던 것이다. 나는 슬쩍 거래원별 매매를 보았다.
거래원별 매매 매수상위
두리금융 168500
진성증권 13100
메리트 4000
주인증권 2000
키워증권 500
내가 쓰는 계좌는 진성증권. 한마디로 저 표에 나온 두 번째 사람이 나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두리금융계좌로 주식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었다. 나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차명계좌?’
하지만 내가 의심을 한다한들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아까 전과 달리 가격을 보지 않고 매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3% 4% 5% 주가는 점점 더 올라갔다. 나는 레이싱 선수가 앞지르기를 하는 경쟁상대를 쳐다보듯 거래원별 매매를 보았다.
두리금융 215500
한신증권 137000
메리트 64100
PJ증권 40000
진성증권 15100
이제는 다른 증권계좌들도 이 주식을 앞 다투어 사고 있다. 이제 확신이 든다. 역시 인수합병 정보는 시장에 풀려 있었다. 단지 누군가가 티를 내는 걸 두려워 해 대놓고 사지 않았을 뿐.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딱 하나였다. ‘남은 액수 모두 시장가 매수’. 그것은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모두 꺼내 상인에게 쥐어 주며
‘있는 것 모두 주시오.’
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남들보다 더 싸게 사야만 한다.
‘시장가 매수. 전액.’
‘체결되었습니다.’
내 핸드폰은 한 번 더 내 손에서 울렸다. 매수가 끝나고 나는 내 계좌 잔고를 보았다.
보유 주식
지우엔터테인먼트 19141주
매수가 3030(+1%) 매입금액 57,997,230
현재가 3210(+7%) 평가금액 61,442,610
아침대비 손익 3,445,380
겨우 매수가 3030원을 맞추었다. -2%일 때부터 샀지만, 가격 오르는 것을 따라 사다보니 1%가 된 것.
‘허 참나... 역시 누군가 정보를 쥔 사람이 있었어...’
그런데 그 때였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현재가 3330(+11%)
지우 엔터테인먼트의 가격이 급등해 VI. 즉 변동성완화 장치가 발동되었다. 변동성완화 장치란 매수나 매도 수량이 너무 많을 때 일시적으로 거래를 중지하는 시스템이었다.
‘뭐야?’
나는 매매호가창을 보았다. 현재가는 +11%에서 멈춰있었다. 그런데, 매수잔량은 +30%. 상한가에 걸려 있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터졌구나!’
잠시 후, VI가 풀리면서 상한가 +30%에서 조금의 거래가 일어나고, 그 뒤로 주식을 하나라도 더 사려는 사람들의 물량이 앞 다투어 상한가에 쌓였다. 그것은 마치
‘제발! 제발! 저한테도 좀 팔아주세요!’
라고 외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