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18화 (118/204)
  • 118화. 날벼락

    - 승부가 길어집니다. 볼카운트 2-2. 6구째를 맞는 김소전입니다.

    - 타이탄스 배터리 고민이 많아지죠. 차대영 선수 직구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직구는 던지는 족족 커트를 당하고 있어요

    애매하다. 공 끝이 테일 링이 걸리며 살짝살짝 가라앉는다. 그래도 쳐서 그라운드 안으로 집어넣어야 하는데 애매하게 배트 중심에서 벗어난다.

    확실히 좋은 투수의 좋은 공은 정타를 맞추기가 힘들다.

    - 차대영 포수와 사인을 마치고 셋 포지션에 들어갑니다.

    - 승부를 해야하는 타이밍이에요

    멀리 광고판을 보면서 눈을 털어주고 슬슬 투수 쪽으로 시선을 끌어온다.

    마운드로 시선을 끌어오고 투수를 전체적으로 담아본다. 천천히 투수의 상체로 시선을 옮기고. 어… 이거… 글러브 위치가 다른데?

    마무리투수인 차대영의 투구폼은 두 개 대부분 사람들이 관심 없지만, 와인드업과 세트포지션을 나눠서 쓰는 선수다.

    둘 다 전체적인 투구 메커니즘 상 큰 차이를 보이진 않지만 와인드업할 때는 손의 위치가 가슴의 로고 쪽, 세트포지션일 때는 손의 위치가 벨트 위치에 내려온다.

    지금은 주자 없는 상황 계속해서 앞가슴에 모으고 던지던 차대영이 팔을 내린다. 그 팔을 보면서 머릿속이 미친 듯이 돌아간다.

    가슴높이에서 공을 던질 때 차대영의 직구와 커브의 구위가 좋아진다. 그리고 허리 위치일 때는 직구의 구속이 줄어드는 대신 슬라이더의 각이 살아난다.

    이유는 잘 몰라도 선수가 그렇게 던진다.

    그런데 지금 팔은 벨트 위치. 2스트라이크지만 직구와 커브를 머리에서 지우고 슬라이더 궤적만 눈앞에 그려놓는다.

    - 6구. 타격! 중견수 뒤로! 중견수 뒤로! 중견수! 중견수! 따라가기를 포기합니다! 끝내기! 끝내기 홈런! 랩터스의 김소전이 오늘 경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 좌타자에게 슬라이더를 던졌어요. 볼 배합에 정답은 없습니다만 우투수가 좌타자에게 슬라이더 잘 안 던진 거거든요. 허를 찌르려고 한 것 같은데 김소전선수가 그걸 받아치네요. 대단합니다. 김소전

    투수가 공을 던질 때 모든구종을 자기가 던지고 싶은데다가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틀렸다. 투수가 던지고 싶은데 던질 수 있는 건 직구 정도고 변화구를 원하는 데다 던지는 건 재능이다.

    더군다나 구위가 동반된 효과적인 공을 구석 구석 던지는 건 타고난 소수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구위가 동반된 쓸만한 공은 항상 같은 동작으로 같은 곳에 던져야 위력이 살아난다.

    차대영의 공이 무서운 건 빠른 직구가 무서운 거고 빠른 직구를 기다리다 변화구가 들어오니까 대처가 안 되는 건데 구종도 알고 로케이션이 어디로 잡히는지도 아는데 타이밍 잡아서 풀스윙으로 잡다 당겨야 한다.

    여지없이 무릎높이에서 좌타자 몸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 우타자 상대로 바깥쪽 직구. 직구 하다가 이게 들어오면 우타자의 배트가 안 따라 나올 수 없는 공. 하지만. 지금은 좌타자인데다가. 그 타자가… 나잖아.

    힘들었던 승부가 끝난 것도 있고, 순위싸움이 한창인 타이탄스의 마무리를 무너트렸다는 것도 있고.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야구장은 축제 분위기다.

    홈경기에서 터진 끝내기 홈런. 홈플레이트를 가운데 두고 선수단이 잔뜩 몰려나왔다. 무섭다.

    3루를 돌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홈으로 다가간다. 하나하나 보이는 날 잡아먹으려는 선수들의 눈빛. 침까지 튀겨가며 나를 오라 하는 선수들… 호랑이 입에 머리를 밀어 넣는 심정으로 홈플레이트 위에 몸을 꽁꽁 말고 엎어졌다.

    쏟아지는 구타. 손바닥과 주먹에 이어 어떤 놈이 발로 밟는다. 아… 아… 징! 어떤 놈이 스파이크로 밟았어! 아! 악!

    분명 잘한 일인데 만신창이가 됐다. 옆에서 누가 일으켜주지 않았으면 그대로 119 실려 갈 뻔했다. 아까 스파이크 어떤 놈인지 나중에 비디오 돌려보고 고소할 거다. 아직도 아프네.

    아픈 몸을 이끌고 1루 쪽 관중석을 향해 허리를 폴더처럼 접어 인사를 하고는 덕아웃으로 들어간다.

    “소전아. 준비해”

    “네?”

    “너 끝내기 쳤잖아. 수훈 선수 인터뷰”

    언제는 나 카메라발 잘 안 받는다고 홈런 쳐도 다른 선수들 인터뷰하더니 오늘은 웬일이래?

    “오~ 형. 오늘 리포터로 형수님 오셨던데~ 데이트해요?”

    “야!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지금 누구 혼삿길을 막으려고”

    “형. 혼사길? 설마. 루다님이랑 막 결혼까지 생각하고 그런 거 아니죠? 꿈에서라도 그러지 마세요. 저 형 안보는 수가 있어요”

    저… 저 노경준. 정신없는 놈 입을 꿰매버리든지 해야지. 나는 진짜 얘한테 관심 없다고!

    “오늘의 수훈 선수 김소전 선수를 만나보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루다와 정상적인 이야기를 한 게 얼마 만인지 아니 아마도 처음인 듯싶다.

    “오늘 5타수 3안타. 마지막 타석에선 끝내기 홈런을 치셨습니다. 소감 한마디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경기장의 팬분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응원해주셔서 칠 수 있었습니다. 내일도 끝까지 응원해주세요”

    “오늘 경기 처음부터 복귀해보겠습니다. 오늘 랩터스의 선발 대체선발… 악~”

    루다의 이런 정돈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자꾸 몸이 근질근질하다. 너는 하이톤에 욕을 하거나 혀짧은 소리를 내거나 그런 게 어울리지 진지한 거 안 어울린다.

    자꾸 집중이 안 돼서 앞에 있는 카메라 렌즈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전에 루다가 나 말할 때 산만하다고 인터뷰할 때 빨간불 들어오는 카메라 좀 잘 보고 하라고 한 게 생각나서 눈 크게 뜨고 쳐다봤다.

    귓가에는 루다가 오늘 선발 종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카메라 렌즈로 뭔가 이상한 게 어른거린다.

    느낌이 싸하다. 인터뷰할 때 얌전히 카메라 보라는 루다의 말을 무시하고 살짝 뒤를 돌아봤다.

    저… 저 무식한 놈들….

    아까 홈런치고 홈에 들어올 때 때리기만 하더니… 이딴 짓을 준비하고 있었어….

    내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백보드 뒤에서 경준이와 규환이가 커다란 쓰레기통에 물을 잔뜩 받아 슬금슬금 다가온다.

    몰래 다가오다 나랑 눈이 딱 마주친 범죄자 두 놈. 내 머리 위로 쏟아버리려고 했던 것 같은데 실패한 계획을 버리고 플랜B. 쓰레기통을 들고 나한테 달려들면서 그대로 물을 뿌리려고 한다.

    미… 미친놈들…. 저걸 그냥 맞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몸이 저절로 돌아간다. 달려오는 미친놈들을 피해서 몸을 돌리니 내 앞에 아직은 쌀쌀한 5월의 밤인데도 나풀나풀 하늘거리는 얇은 옷을 입고 있는 루다가 보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마이크를 잡고 나를 보고 재잘대는 루다를 끌어안았다.

    루다도 작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보단 한참 작은지라. 최대한 내품에 넣어 꽁꽁 싸맸다.

    루다가 품 안에 꽉 들어오고 나자 쏟아지는 물벼락. 운동선수 두 놈이 커다란 쓰레기통 가득 담아온 물이 내 등 뒤에서 쏟아져 내린다.

    물에 흠뻑 젖은 내 등 뒤는 살랑거리는 바람까지 불어 한기가 느껴지고 루다가 안겨있는 내 가슴은 따뜻하다. 너무나도 이질적인 두 느낌. 이 두 개가 다시 균형을 찾을 때까지 몸이 움직이지 않아 가만히 그대로 멈췄다.

    아직 정신이 다 돌아오지 않는데 가슴속의 루다가 나를 살짝 밀쳐낸다. 그제야 돌아오는 정신. 루다를 곱게 풀어주고 흠뻑 젖은 머리를 도리도리 털면서 물기를 닦아낸다.

    “김소전 선수 괜찮으세요?”

    괜찮겠냐? 너는 내가 막아줘서 뽀송뽀송하지. 난 이거 빨리 끝내고 저 XX들 잡으러 가야 한다.

    “안 괜찮습니다. 인터뷰 끝나고 저 장난 심한 선수들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겠습니다.”

    “전. 괜찮은데. 김소전 선수 마른 몸으로 알려져 있는데 직접 안겨보니까 어깨가 아주 넓으시네요. 설렜습니다.”

    “야! 이거 지금 생방송 아니냐? 정줄 놨구나! 너”

    “들어가서 이런 장난 못 치게 하겠습니다.”

    내 귀에 꽂혀있는 헤드폰은 지직거리는 게 물먹어서 안 되는 거 같고 루다의 표정을 보니 방송국 놈들이 루다에게 뭐라고 막 하는 거 같은데, 저 여우가 웃으면서 다 씹어 버린다.

    “다시 경기 얘기를 해볼까요? 선발투수 백종오 선수가….”

    물까지 맞았는데 대충하지. 너는 물 안 맞아서 괜찮지만 나는 한기가 올라오거든? 이러다 감기든다고!

    “마지막 질문입니다.”

    야 이거 없는 거 만든 거 같은데? 지금 헤드폰 쓰고 있는 카메라 감독부터 앞에 작가들까지 벙찐 얼굴인데? 너 또 뭔짓을 하려고….

    “여자친구 있으세요? 제가 스프링캠프 때부터 쫓아다니는데 왜 거부하시는 거죠? 팬들이 김소전선수의 이상형에 대해 궁금해 하고 계시는데 이번 기회에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얘기해 주실래요?”

    병원. 정신병원. 잠실에서 가장 가까운 정신병원이 어디 있는 거야….

    “전 그냥 저랑 수준이 맞고 착한 분 만나고 싶은데. 지금은 연애에 관심이 없습니다. 야구만 하기도 바쁘고….”

    여기까지 말을 하면서 루다를 바라보니 눈에 웃음이 가득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절레절레… 얜 답이 없다. 답이 없어.

    “루다야. 넌 아니야.”

    내 마음속 진심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내 진심을 듣고도 여전히 웃고만 있는 루다.

    “인터뷰 여기서 그만해야 될 거 같네요. 오늘도 김소전선수에게 거절당한 이루다였습니다.”

    카메라 감독이 철수하는 걸 보면서 루다에게 쏘아붙였다.

    “야! 미쳤어? 뭔 이상형이야!”

    “요즘 팬들 야구보다 그런 걸 더 좋아해. 어~ 김소전. 오늘 쪼끔 멋있었어. 제법이야. 반할뻔했어”

    “그런 무서운 소리는 하지도 마. 누구 혼삿길을 막으려고 이러냐?”

    “혼삿길은 무슨. 내가 이렇게 해주니까 네 옆에 이상한 애들 안 붙는 거야. 나 아니 여봐 벌써 날파리들 엄청나게 꼬였다.”

    나도 좀 꼬여보자. 하물며 경준이도 소개팅이 들어온다는데 나도 정상적인 여자 사람 좀 만나고 하면 안 되냐

    인터뷰를 마치고 락커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참 재미있다. 두 멍청이를 욕하고 있는 주장과 그 옆에서 나말고 루다에게 뿌렸어야 한다고 킥킥대는 말년 병장들… 경기 후 인터뷰는 신경도 안 쓰고 오늘도 갈려 나간 팔에 아이싱하고 마사지 받으러 들어가는 투수들….

    그래도 이기니까 웃고 떠들고 즐기는 분위기지 졌어. 봐. 그 적막함 속에 눈치 보고… 됐다. 이겼으면 다 된 거다. 내일도 또 이기고 재미있게 잘 지내면 된다.

    * * *

    “단장님. SBC에서 정식으로 항의가 들어왔어요.”

    “뭐래?”

    “단장이 사과하라는데요.”

    “내가 왜 해. 그러면 그쪽도 사장이 사과한대?”

    “그럴 리가요”

    경기가 끝나고 오늘도 TV가 부서진 랩터스 단장실에서 실세 둘의 언론 대응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

    “걔는 왜 자꾸 김소전한테 그러는 거야?”

    “캐릭터는 확실히 잡혔잖아요. 이루다가 좀 센 이미지가 있는데 김소전하고 계속 연결되면서 편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요. 머리 잘 썼어요.”

    “김소전은? 경기력에 영향 있고 그런 건 아니지?”

    “둘이 그냥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자주 통화도 하고 비시즌 때 밥도 먹고 하는 거 같은데. 김소전이 진짜 이루다에 호감이 없어 보여요”

    “아니야. 몰라.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어. 몰라.”

    모쏠 단장의 말에 폭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운영팀장이 고개를 갸웃하지만 그게 반발하지 않고 화제를 돌린다.

    “SBC에서 자꾸 뭐라고 하면 하나 던져줘야 할 거 같아서 말인데요.”

    “뭐 하려고?”

    “가을에 올림픽 해야 하잖아요.”

    “그거 왜? KBO에서 라정안, 김소전, 박요훈 보내주면 미필 쿼터 2명 준다는 거잖아.”

    “우리가 미필 쿼터가 필요한가 해서요”

    “뭐?”

    “우리 팀에 군대 가서 아쉬운 선수는 노경준 정도인데. 외야수 미필 쿼터라고 들이밀어도 잘릴 가능성이 커요”

    운영팀장의 말에 단장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그러면 군대 해결되지 않는 게 민수경정도인데 민수경도 공익 장기대기로 빠질 것 같거든요.”

    “군대 빼줄애도 없네! ”

    “네”

    두 사람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간다. 현역도 불사하며 군대를 보내는 랩터스에 주전급 미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외라면 김소전이나 신인 때부터 주전을 꿰찬 노경준 정도인데 김소전은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해결. 노경준은 국가대표를 보내려고 해도… 쟁쟁한 외야가 많은 국가대표팀에서 눈치가 보여 받아줄 수가 없다.

    노경준도 이런데 다른 미필 선수들은 민망해서 국가대표에 밀어 넣을 수도 없고. 그 말은 국가대표에 선수를 보내도 구단의 실익이 없다는 얘기다.

    “어떻게 하려고?”

    “구단 관계자라고 하면서 인터뷰 한번 하려고요.”

    “뭐라고 하게?”

    “올림픽 브레이크도 있는데 팀 간 불균형 얘기하지 말고 군필 위주로 실력대로 뽑아라. 랩터스는 적극 협조하겠다 이렇게요.”

    “적극 협조?”

    “실력대로 뽑으면 우리는 라정안하고 김소전이에요. 대신에 소닉스는 주전들 줄줄이 다 끌려가야 하고요. 올림픽 끝나면 소닉스 후유증 있지 않겠어요?”

    단장의 계산이 복잡해진다. 과연 국가대표를 구단 눈치 안 보고 실력대로 뽑을 수 있을까 확신이 안 선다.

    “우선 시나리오 준비해봐. 뒤에서 손써줄 사람 좀 찾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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