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92화 (92/204)
  • 92화. 다시 한국 시리즈

    * * *

    남들이 어수선한 가운데 어부지리로 1등 했다고 욕하는 타 팀 팬들의 말을 들으며 한국 시리즈 캠프에 들어간다.

    보통은 한국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긴장감도 높이고 큰 경기에 한 번 써먹을 꼼수도 연습하고 해야 하는데 이놈의 팀은… 그런 거 없다.

    “형, 오늘 포메이션 훈련 취소래요.”

    “또?”

    “네. 그리고 선배님들 단체로 병원 가신다고 오늘 아프지도 말래요.”

    “야! 그게 말이 돼? 아프고 싶어서 아프냐? 왜 아프지도 못하게 해!”

    “형, 말조심해요. 요즘 트레이닝팀 예민해요. 단체로 파업한다고 그러고 있단 말이에요.”

    무슨 팀의 주축 선수들이 죄다 40을 바라보니 시즌 끝나자마자 전부 드러눕는다. 구단 지정 병원이 정형외과인데 고참들이 죄다 무릎이 쑤신다, 관절이 아프다 그러고 있으니 요양 병원으로 바꾼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럼 오늘 뭐 해?”

    “2군에서 규환이 올라왔는데 같이 펑고 받기로 했거든요. 형도 같이 받으실래요?”

    “너희 외야잖아.”

    “저랑 같이 안 받으시면 내야 펑고는 혼자 하셔야 할걸요? 라정안 선배도 병원 갔어요.”

    “야! 주장이 병원에 왜 가!”

    “오늘 지정 병원에서 SBC 스포츠 신인 아나운서 신체 검사한대요. 주장이 먼저 보고 관리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아… 이 정도 해야 주장하는구나. 스포츠 TV 아나운서 신체 검사 정도는 미리 알고 친분을 쌓아야 야구 팀 주장할 수 있는 거구나.

    야구 팀인지 병원인지 모를 랩터스의 훈련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막장 KBO팀들의 가을 야구가 착착 진행된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뒷목 잡는 경기들이 나오더니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3회에 게임을 던지지 않나, 3차전에서는 투수가 대주자로 나오지 않나. 자기들끼리는 처절한 경기를 펼친다.

    기다리는 입장에서야 저렇게 전력을 소모하고 올라오면 꿀잼이지만… 좋게 말해 투혼이지, 저건 경기력이 부족한 건데.

    만신창이 재규어스가 그간의 암흑기를 뒤로하고 플레이오프까지 기어 올라온다. 5차전 11회 말까지는 가는 혈전 끝에 소닉스를 만나는 재규어스. 두 팀의 미디어 데이가 있는 날 드디어 랩터스가 처음으로 단체 훈련이라는 걸 해본다.

    “재호야 아프면 빠져~”

    “그럴까요?”

    “하루에 펑고 10개씩만 받고 재활이나 더 해. 그게 낫겠다.”

    “네, 코치님.”

    “현기야! 됐다. 쉬어.”

    “그래야겠죠?”

    “어. 너도 펑고 10개씩만 받고 재활이나 더 해.”

    저, 저… 할배들……. 한 달째 쉬고 있으면서 어디서 앓는 소리야. 형들 빠지면 이제 내야에 몇 명 없는데…….

    “주장, 감독님이 부르십니다.”

    “코치님.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박시태! 김응규! 전력분석실로 오세요!”

    “네.”

    자, 잠깐……. 내야수 다 어디 갔어?

    “자, 다음!”

    “코, 코치님! 선수들이 다 어디 갔습니다. 오늘 펑고 그만해야겠는데요?”

    “어? 내 눈엔 한 명 있는데? 오늘은 내가 펑고 컨디션이 좋아. 열심히 하자!”

    눈앞에 한 명 있다고? 나? 나 말하는 거야? 훈련 이제 5분 했는데? 남은 시간 나랑 한다고?

    도망간 XX들 다 돌아와!

    어떤 놈들이 가을 야구가 축제라고 했냐. 가을 야구는 지옥이다. 그것도 펑고 지옥. 분명 한국 시리즈 캠프라고 했는데 스프링 캠프 때보다 펑고를 더 받았다. 팀 전술 훈련도 죄다 취소돼서 그 시간 동안에도 펑고를 받았다.

    미친 듯한 수비 시간이 끝나면 끝도 없는 라이브 배팅. 선배들이 또 우르르 빠져나가니 1인당 배팅 볼 개수도 팍팍 늘어난다.

    캠프 시작 전에는 컨디션 잘 조절하는 시간이라고 감독이 그랬는데……. 감독놈이 거짓말을 했어. 죽겠다, 죽겠어.

    2등으로 기다리고 있던 소닉스가 불굴의 의지로 올라온 재규어스를 툭 쳐서 떨어트린다. 단 3경기로 셧아웃시켜버린 소닉스. 랩터스랑은 다르게 리빌딩을 착실하게 마친 소닉스가 완벽한 전력으로 한국 시리즈에 올라왔다.

    “형, 한국 시리즈는 무슨 기분이에요?”

    “한국 시리즈는 뭐…….”

    뭐라고 해야 하지? 훈련장에 사람 없어서 그런지 후배들이 자꾸 내 옆에만 붙어서 이것저것 물어본다. 내가 작년에 한국 시리즈를 해보긴 했지만 사실 기분을 생각하고 하는 것보다 그저 내 것 하기 바빠서 잘 모르겠다.

    “너무 어렵게들 생각하지 마. 그냥 고딩 때 전국 대회 결승전이라고 생각해.”

    음… 멋진 대답이었어. 내가 대답을 하고도 뿌듯해하고 있는데…….

    “형. 전 토너먼트 대회 나가본 적이 없는데요.”

    뭐? 뭐지? 저, 저… 노경준이 저 덜떨어진 놈. 네가 그딴 기분 알아서 뭐하게! 어차피 아무 생각 없이 야구 하는 놈이 왜 끼어들어!

    그냥 무시하고 싶었지만, 주변의 후배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고 아무 생각은 안 나고……. 그냥 입에 연결된 이성의 끈을 끊어버렸다.

    “경준아. 상관없어. 형 하는 거 보고 따라 해.”

    * * *

    - 2027시즌의 마지막을 기록할 한국 시리즈가 잠실에서 펼쳐집니다.

    - 다시 열리는 한 지붕 시리즈죠. 잠실에서만 7경기를 덕아웃만 바꿔가면서 진행합니다.

    - 시즌 우승을 확정 짓고 편안하게 기다린 랩터스와 재규어스를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만에 물리치고 올라온 소닉스. 장단점이 확실한 두 팀이 한국 시리즈에 붙었습니다.

    - 노장이 많은 랩터스는 휴식기 동안 체력을 많이 보충했을 겁니다. 다만 떨어지는 경기 감각을 어떻게 돌려놓느냐가 관건이고 소닉스는… 약점이 없네요.

    한 달 만에 만원 관중이 가득 찬 경기장에 들어오니 기분이 새롭다. 정규 시즌에도 꽉 찬 관중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지만, 한국 시리즈에는 관중석 가득 채운 대형 깃발과 응원 문구가 더욱 사람을 흥분시킨다.

    딱 7경기 남았다. 이겨야 한다. 이길 수 있다. 우리가 디펜딩 챔피언이고, 이번 정규 시즌 우승 팀인데 이겨야 한다.

    - 랩터스의 선발 이시윤입니다.

    - 말이 필요 없는 이번 시즌 최고의 투수죠. 지난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하고 메이저 가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했어요. 갈 수 있는지 확인할 시간이에요.

    - 소닉스의 공격. 1번 타자 이병삼부터 시작합니다.

    야구를 처음 만들 때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용어를 잘못 붙였다. 1회 초 랩터스의 수비. 이거 틀린 말이다. 저런 투수가 있는 한 마운드에 투수가 올라와 있을 때가 팀이 공격하는 시간이다.

    - 헛스윙 삼진! 159! 159의 빠른 공에 헛스윙하고 마는 이병삼!

    - 구속도 구속인데 구위가 무서워요. 느린 화면 보이는데… 마지막에 공이 떠오르는 거 보이시죠. 공이 끝까지 살아 들어가요. 무지막지하네요.

    - 언제나 전력투구하는 투수지만 오늘은 더 강한 공을 던지는 랩터스의 선발 투수입니다.

    첫 경기 전략적으로 오정찬 선배가 마스크를 썼는데… 보기에도 안쓰럽다. 공이 차고 나오다 못해 미트를 부숴버릴 듯이 솟아오르면 손이 얼마나 아플까…….

    다시 태어나도 포수는 안 한다.

    - 2번 여민석, 배트를 짧게 잡고 들어옵니다.

    - 첫 타자가 꼼짝 못 하고 당하는 걸 봤거든요. 여민석, 컨택에 집중하겠다는 거예요.

    타격에서는 어디 가도 방귀 좀 뀌는 여민석이 배트를 반만 잡고 들어온다. 하긴 나 같아도 저 공을 타석에서 보면 다리가 후들후들할 것 같은데 뭐라도 하려면 배트라도 짧게 잡아야지.

    공 구위에 살짝 겁을 먹은 듯한 타자가 타석 맨 끝에 붙어 투수를 노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동도 없는 투수. 간단한 포수의 사인에 가타부타 표현도 없이 그대로 미트에 공을 꽂아 넣는다.

    - 삼진! 두 타자 연속 삼진을 잡으며 깔끔한 출발을 보이는 이시윤!

    거참 투수 양반 한국 시리즈인데 이렇게 긴장감 없이 경기할 거요? 관중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나한테 공 보내는 건 부담스러우니 다른 쪽으로 하나 보내시오.

    어쩐지 오늘 할 일이 없을 것 같으니 혼잣말이는다.

    - 공이라도 좀 오래 봐야 할 텐데요. 두 타자 연속으로 삼구삼진을 당하는 소닉스입니다. 타석에 디아스.

    외국인 타자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동요가 없는 투수. 머릿속에 자기 공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듯하다.

    - 소닉스 선수들, 생각을 단순하게 가져가야 합니다. 투수가 힘으로 찍어누르고 있거든요.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고 직구 하나만 노려야 해요

    우와~ 시원하다. 키도 큰데 팔도 긴 타자가 풀스윙을 돌리니 궤적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스윙 속도만 빠르면 배트가 퍼져 나와도 멋있는 거였어. 볼수록 입이 떡 벌어지네.

    - 디아스, 크게 돌려봅니다. 스윙. 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가는 이시윤.

    - 스윙이 너무 커요. 저래서는 공을 맞힐 수가 없어요.

    투수가 혼자 저렇게 잘해 버리면 수비수들 긴장감도 떨어지고 움직임이 없어지니 몸도 굳기 마련이다. 공 날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나한테 날아올 일은 전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공을 주고받는 사이에 어깨도 돌려보고 허리도 살살 돌려본다.

    지금 같아서는 전혀 쓸데없는 행동이지만 평소에 습관을 잘 들어야 정말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는 법이다. 헛둘. 헛둘.

    - 빗맞은 타구~ 3루수 잡지 못하고 유격수! 유격수 잡아서 1루~ 1루~ 1루에서 아웃! 쓰리 아웃! 한국 시리즈 1차전 좋은 출발을 보이는 랩터스입니다.

    - 이 수비 크네요. 완벽하게 조여진 이시윤에게 균열이 갈 수도 있는 타구였거든요. 빗맞은 안타가 되는 타군데 그걸 잡아냈어요. 소닉스 힘든 출발이에요.

    배트가 밀리면서 빗맞았는데 공이 이상하게 굴러온다.

    3루와 유격수 사이를 정확히 찌르고 들어오는 타구. 3루수 라정안 선배와 동시에 달려들지만 3루수가 잡기는 조금 모자란 타구, 한쪽 무릎을 꿇으면 글러브를 쭉 펴본다.

    턱!

    글러브 끝에 묵직한 느낌이 올라온다. 글러브에서 멈춘 공을 살짝 튀겨 오른손으로 넘기면서 앞발을 세운다. 손에 딱 맞게 잡히는 공.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로 1루를 향해 공을 때린다.

    ‘아웃!’

    멀리서 봐도 아웃이다. 천천히 할걸. 괜히 힘만 뺏네.

    수비를 마치고 덕아웃에 들어오자 선수들의 구타가 시작된다. 내가 홈런을 친 것도 끝내기를 한 것도 아닌데 왜들 때리는 거야.

    - 1회 말 랩터스의 공격입니다.

    - 랩터스 선수들, 첫 타석이 중요합니다. 아무래도 한 달 동안 실전 경험이 떨어져서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얼마나 떨어졌는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감각을 올릴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덕아웃에 들어가면서 얼마나 맞았는지 얼얼한 등짝을 깔짝깔짝 문지르며 타르 스틱을 바르고 타석에 들어간다.

    타석에 들어선 나를 보는 투수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진 않지만 나는 기분이 좋다. 꽉 찬 관중들이 나를 봐주는 모습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

    - 소닉스의 선발, 예상을 깨고 임태수입니다.

    - 김을배 감독의 승부수에요. 이시윤과 에이스 대결에서 승산이 없다고 본 것 같아요. 에이스 브릿지 선수는 내일 나올 것으로 보여요.

    저 팀의 에이스는 분명 외국인 투수가 틀림없는데, 한국 시리즈 1차전 투수로 외국인은커녕 토종 1선발 최기훈도 아니고 5선발 임태수가 나왔다.

    견적을 내보면 5선발과 1선발 붙여서 밀리면 어쩔 수 없고 깜짝 호투하면 대박인 거고, 뭐 그런 생각인 것 같은데. 그거 잘못된 생각이다.

    단기전. 그것도 한국 시리즈같이 큰 경기에서 기선 제압이 얼마나 중요한데.

    처음부터 확실히 기세가 꺾이면 다시 살아나기 힘들다. 그리고 그걸 확실히 알고 있는 나는…….

    - 5구 타격! 2027시즌 우승을 가져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담은 김소전의 타구가 우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한국 시리즈에서 시간을 정지시키니까 기분이 더 좋구먼. 신난다! 반지 세 개가 아니라 여섯 개 채워서 절대자가 되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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