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40화 (40/204)

40화. 인연

* * *

- 타이탄스와 랩터스의 시즌 9번째 맞대결을 고척에서 보내드립니다.

- 1위를 질주하던 랩터스의 기세를 꺾은 타이탄스가 내친김에 주중 시리즈 스윕을 노립니다.

- 하위권으로 떨어졌던 타이탄스가 1위 랩터스를 잡으면서 반등을 노리고 있죠. 타이탄스 입장에서는 한 경기도 포기할 수가 없어요.

- 팀의 순위 싸움과는 별개로 양 팀의 1번 타자들의 신경전도 치열합니다.

- 경기도 경기지만 최강훈, 김소전 두 선수의 맞대결이 더 흥미롭습니다. 스토리가 있는 두 선수가 지난 두 경기에서 서로의 출루를 악착같이 막아 내고 있어요. 이것도 경기를 보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첫 경기에 7번 타자로 나왔던 싸가지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1번 중견수로 나온다.

두 경기를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는데 저 XX. 두 달 쉬면서 아이언맨이 됐다. 저런 파워, 반사 신경, 그것도 모자라 집중력. 사람이 아니다.

멍청해서 야구를 못 읽는 게 다행이지, 어깨 위에 달린 머리라는 물건이 조금의 생각이라도 했으면… 어휴……. 상상하기도 무섭다.

- 1번 타자 김소전부터 경기가 시작됩니다.

- 이번 시리즈 내내 컨디션은 좋아 보이거든요. 타구가 전체적으로 외야로. 그것도 센터를 중심으로 분포가 되고 있어요.

문제는…….

- 문제는 타이탄스의 중견수에 있겠네요.

- 그 타이탄스의 중견수 최강훈 선수가 안타를 지워내고 있어요.

두 경기 동안 9타수 1안타. 볼넷 없이 삼진 두 개. 배트에 안 맞아서 성적이 저렇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바빕신이 나를 버리기로 하셨는지 잘 맞은 타구가 외야를 빠져나가는 족족 중견수에게 잡혀 버린다.

그래서 오늘은 그동안 치성드리던 바빕신을 버리고 새로운 신을 모시기로 했다.

안타 중에서 바빕신이 싫어하시는 안타. 홈런 신인 오늘의 하나님이자 부처님이다.

- 잘 맞은 타구 쭉쭉 뻗습니다. 중견수 뒤로. 중견수 뒤로. 중견수……. 점프해서 잡아냅니다. 중견수 최강훈 큰 타구를 잡아냈습니다.

- 맞는 순간 넘어가는 줄 알았거든요. 마지막에 힘이 좀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펜스 넘어가는 타구라고 봤거든요. 이 정도면 김소전 선수, 홈런을 도둑맞았다고 볼 수 있겠어요.

이젠 웃음밖에 안 나온다. 저걸 잡는다고? 저걸? 저 정도면 종목을 잘못 선택한 거 아니냐? 농구나 배구를 해야지 왜 야구를 하고 있어.

- 타이탄스의 공격, 1번 타자 최강훈부터 시작됩니다. 최강훈 선수, 시리즈 내내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 지난 두 경기 8타석 나와서 2루타 2개, 안타 두 개를 뽑아내고 있죠. 그나마 유격수로 나왔던 김소전 선수가 안타성 타구 두 개를 막아줬는데도 이 성적입니다. 오늘은 중견수로 출장한 김소전 선수를 상대로 어떤 성적을 보일지 궁금하네요.

1회부터 잘 맞은 타구가 잡혀서 기분이 더러운데 수비에 들어가자마자 내 공 훔쳐 간 싸가지가 나타난다.

내가 알고 있는 최강훈이라면 맞추는 재주는 있지만 파워는 부족한. 장타라고는 발로 만드는 장타밖에 없던 놈인데 지난 경기 동안 타구 날리는 거 보니 공에 힘이 실려 있다.

애매하다. 수비 위치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판단이 안 된다. 데이터가 없으면 옛날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눈을 부릅뜨고 타자의 타격 자세와 포수의 글러브 위치를 확인한다. 그리고 감으로 때려 잡는다.

- 최강훈 밀어친 타구. 좌중간으로 날아가는 공. 어느새 자리 잡고 있는 중견수. 잡아냅니다. 원 아웃.

- 중견수가 왜 저 자리에 가 있죠? 수비 시프튼가요. 초구 던질 땐 저 위치가 아니었거든요. 경기 끝나고 김민중 감독에게 물어봐야겠어요. 저 타구를 예상하고 시프트를 걸었다면 랩터스 전력 분석에 대해 칭찬을 안 할 수가 없겠어요.

지가 아무리 운동 능력이 좋아도 기껏해야 작년에 반쪽짜리 중견수. 올해 막 터지려는 어린애인데 뭘 하려는지 뻔하다.

주야장천 바깥쪽을 노리는 투수의 공에 잡아당기다 안되니 결국 밀어버리는 타격. 힘이 좋아 생각보다 멀리 뻗었지만 그래 봐야 공 날아올 곳이 뻔한데. 미리 가 있으면 이지 플라이다.

내 거 잡아간 만큼 너도 내 땅엔 공 떨굴 생각하지 말아라.

- 경기 종료! 타이탄스가 2 대 3 한 점 차 승리를 지켜내며 랩터스에게 스윕 승을 만들어 냅니다. 이번 시즌 랩터스 시즌 첫 스윕 패입니다.

- 타이탄스의 명정욱 선수가 정말 잘해 줬죠. 최강훈이 출루하면 명정욱이 불러들이는 공식을 만들어 냈어요. 하위권에 처져 있던 타이탄스가 상위권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빌어먹을 홈런 신. 오늘 좀 도와 달라고 그렇게 빌었더니 그걸 안 도와주네……. 내일부터는 부산인데 부산 가서도 이러면 곤란한데.

* * *

“조 단장. 봤어? 봤지? 확실하지?”

- 내가 확실히 봤지. 지금 사무실 앞에 랩터스 아재들 20명 와있거든. 너 안 내놓으면 프런트 직원 아무도 퇴근 못 한대. 내가 가서 직접 모가지 따줄 테니까 깨끗하게 닦고 기다리고 있어.

여자의 씻고 기다리라는 말에 묘한 흥분감을 느낀 남자가 잠깐 해서는 안 될 상상을 해봤지만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건 목적을 이야기한다.

“사무실은 사무실에서.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몰라? 그건 그거고 저 XX 확실하지? 집어넣자.”

- 확실하긴 뭐가 확실한데?

“보면 몰라? 최강훈이! 내가 세 경기 다 꼼꼼히 돌려봤어. 저 XX 2달 동안 풀로 약을 빨았어. 확실해. 그러니까 아시안 게임도 안 나가겠다고 하는 거야. 그렇지 않고는 설명이 안 돼. 저딴 타격 어프로치로 공에 힘을 실어서 뻥뻥 날린다고? 말이 안 돼. 저거 100%야.”

전화기 밖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 여자가 화를 눌러 참으며 이야기를 해준다.

- 약이면 어쩌려고? 승인 다 났는데. 안 그래도 아픈 어린애 쓰레기 만들었다고 구단이 욕을 그렇게 먹고 있는데. 욕이 부족해? 내가 해줘?

“그럼 우리가 아니라 다른 구단을 꼬셔서라도 해야지.”

- 지금 여론이 안 좋아. 여론은 아파서 불쌍하게 쫓겨난 최강훈 편이라고. 방출의 충격으로 국가 대표도 고사한 어린애를 공격한다고? 다른 구단들이 랩터스처럼 여론 무시하고 구단 운영 할 수 있을 거 같아? 못해요, 구단주님. 랩터스나 이렇게 무식하게 구단 운영하는 겁니다.

여자의 말을 칭찬으로 알아들은 남자가 대안을 요구한다.

“그렇지. 역시 내가 최고의 구단주지. 그건 그렇고, 그럼 얘 그냥 놔도? 그냥 놔두게?”

- 놔둬야지. 방법이 없는데 놔둬야지. 그러기에 왜 팔았어? 내가 팔지 말랬잖아! 올해 뽑을 애도 없는데 쓸데없이 신인 지명권이나 두 장 가져오고! 아, 몰라. 나 퇴근할 거야. 홍지야! 아저씨들 보내! 그래. 알아서 보내! 어! 보내!

“야! 내가 우리 홍지 괴롭히지 말랬지! 그 여린 애한테 무슨 험한 일을 시키는 거야!”

- 여리긴. 홍지가 우리 구단에서 제일 독한 앤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됐고. 앞으로 구단주님은 아무 일도 하지 맙시다. 제발 아무 일도 하지 맙시다. 끊어!

여자의 일하지 말라는 반어법에 문득 해야 할 일이 생각난 남자가 미뤄 두었던 일을 시작한다.

* * *

“선배님, 원래 운동선수도 이렇게 하는 겁니까?”

“너 처음이지? 처음엔 나도 몰랐다. 그래도 해봐. 이따 깜짝 놀랄 거다.”

“글쎄… 난… 좀 생각이 다른데……. 얘는… 해도……. 음… 소전아……. 미안하다. 형이 거짓말은 못 해서.”

“형, 너무하잖아요. 애한테 너무 팩폭하는 거 아니에요?”

“영근이 형도 저렇게 잘생겨지는데 너도 일반인처럼은 보일 수 있을 거야.”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휴일인 월요일. 국가 대표로 뽑힌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 모임의 목적은 아시안 게임 국가 대표 야구팀 공식 후원사인 세계 그룹 스폰서 광고 촬영. 일주일에 한 번 쉬는 꿀 같은 월요일에 강남의 커다란 스튜디오로 끌려온 선수단이 얼굴에 분칠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야… 저기다, 저기. 저기 세계 그룹 회장 아니냐?”

“회장이 여길 왜 와? 어… 진짜네?”

“난 우리 구단주도 본 적이 없는데. 그룹 회장이 안 바쁘나?”

스폰서 광고 촬영장에 그룹 회장이 나타나자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촬영장에서 국가 대표 감독을 만나 한참 동안 담소를 나누는데 선수들이 그 모습 말고 다른데 관심을 보인다.

“저 옆에 누구냐? 연예인이냐? 누군지 모르겠는데?”

“저기 세계 그룹 회장 딸이잖아. 야구 좋아한다고 야구 기자 하겠다던데?”

“대기업 회장 딸이 무슨 기자를 해.”

“몰라? 세계 그룹, 10년 전부터 경영권 안 넘겨준다고 선언했어. 저 회장, 자식도 자기 원하는 대로 살게 해준다고 얘기하는 사람이야.”

“넌 그걸 어떻게 아냐?”

“내가 주식하잖아. 미리미리 공부해야 해.”

“오… 주식… 좀 땄어?”

“내가 지금 통장에 10억이 있지.”

“이야~ 비결이 뭐야? 주식해서 어떻게 돈 버는 거야?”

“30억을 투자했거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잠이 솔솔 오고. 좋다. 앞에 있는 조명도 따땃하고 기분이 매우 좋다.

“후… 후……. 잠시만… 지우고……. 다시 좀… 오래 걸려서 죄송해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편안하고 좋아요.”

“후… 후……. 20년 경력에 화장이 이렇게 안 먹히는 경우는 처음이라……. 아… 죄송해요. 잘해 드릴게요……. 후… 후…….”

난 좋은데 왜 자꾸 죄송하다고 하는 건지…….

“얼굴이 좀 개성적으로 생기셨어야죠. 방송 화장을 해도 못생긴 건 보다보다 처음이네. 이건 전적으로 얘가 원판이 안 좋은 거라 그렇지, 아티스트님 잘못이 아니에요. 죄송해하실 필요가 없어요.”

편안히 앉아서 나른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데 귓가에 마음에 안 드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긴 왜 오신 겁니까? 내 스토커세요? 보지 말자니까 왜 자꾸 따라옵니까?”

“너 보러온 거 아니거든. 우리 아빠가 오늘 광고주라 온 거거든. 착각하지 마.”

얘는 확실히 정상이 아니야. 오늘 광고주면 세계 그룹인데, 거기 광고주가 아빠면 제가 무슨 재벌 집 딸내미야.

“안녕들 하십니까.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리고 아시안 게임에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미친X과 화장대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뒤에서 광고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회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회장님을 직접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회장님, 실물이 더 잘생기셨습니다.”

야구 선수들이 야구 말고 모른다고 누가 얘기했었던가. 국가 대표 선배들이 줄줄이 일어나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김소전 선수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세계 그룹 이현석입니다.”

눈 화장을 반쪽만 한 채로 의자에 앉아 있다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저… 저… 랩터스……. 김소전… 김소전입니다……. 절 아세요?”

“알다마다요. 저희 딸이 김소전 선수 매일 노래를 부릅니다. 괜찮으시면 차 한잔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빠! 내가 언제! 나 얘 진짜 싫어한다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갑자기 잘살고 있는 나한테 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저… 여우가 진짜 나 담그기라도 하려는 거야?

화장을 대충 마치고 스튜디오 옆에 있는 카페에 부녀를 마주 보고 앉았다.

이거… 무슨 선보는 것도 아니고 기분이 요상스럽다.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정말 김소전 선수가 궁금해서 보자고 했습니다.”

“얘가 뭐가 궁금해요. 그냥 바보 멍청이! 똥 멍청이예요!”

아무리 봐도 둘은 닮은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 얼굴부터 성격까지. 저 인자한 사람에게서 어디 저런 요망한 게 나왔을까…….

“딸 하나 있는 거, 오냐오냐 키웠더니 이렇습니다. 우리 루다가 야구를 참 좋아해요. 나중에 야구 기자를 하겠다고 하길래 학교 다니면서 해보라고 학생 인턴으로 신문사에 넣어 놨더니 일주일 만에 잘려서 왔어요. 대기업 회장 이름 밑에서 곱게 크다 처음으로 인생의 쓴맛을 봤을 겁니다. 하하하!”

“2주 했어! 2주! 그리고 난 저놈의 모함을 받아서 잘린 거라고요!”

나한테 이런 굴욕을 준 건 처음이야. 뭐… 이런 전개야?

“루다가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들은 많았지만 사람에게 집착하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그래서 좀 알아봤더니… 김소전 선수, 대단하시더군요. 가정 형편은 어려웠어도 성실하고 참 좋은 사람이시더라고요.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리려고 딸 가진 아빠가 먼저 찾아왔습니다.”

뭐, 뭐냐……. 왜 아빠하고 딸하고 둘 다 이상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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