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완성
‘뭐라고, 이 미친 XX야!’
- 지금 아웃 판정이 나왔습니다.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은데요.
- 김민중 감독 나왔습니다. 배트를 보고 있어요. 무슨 상황이죠?
- 감독과 주심의 설전이 오가고 있습니다. 인정하네요. 김소전 선수를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아웃이라니. 내가 2루타를 쳤는데 아웃이라니……. 그것도 사이클링 히트를 쳤는데 아웃이라니!
- 상황 들어 왔습니다. 김소전 선수, 부정 배트 사용으로 아웃이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부정 배트가 나왔습니다.
- 부정 배트는 아니고 비공인 배트 사용이 맞겠죠. 김소전 선수가 오늘 사용한 배트가 KBO 인증을 받지 않은 배트라는 거예요.
- 화면 보시면 주심이 배트의 공인 마크 확인하는 게 보입니다만 공인이 안 됐다는 거예요.
- 그렇죠. 김소전 선수가 사용한 배트는 미국 ‘R’ 사의 유명한 배트이긴 한데 이번 시즌 사용하겠다는 선수가 없어서 인증을 안 받았다고 하네요. 저도 사용한 기억이 있는 배트인데 왜 안 받았나 모르겠어요.
- 드래곤스의 어필이 있었고 규정상 타격 기록은 삭제되고 타자는 아웃입니다.
- 규정이 그렇죠. 타자가 지난 타석에 안타를 쳤을 때부터 저 배트를 사용했거든요. 그때는 바로 지적을 안 했기 때문에 기록 인정이고, 지금은 타격이 끝나자마자 지적을 했기 때문에 기록도 지워져요. 안타깝네요. 김소전 선수 대기록이 날아가고 있어요.
멍청하다. 야구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했다. 선수가 장비를 항상 완벽하게 챙겨야 하는데 비공인 배트라니…….
이 미국놈들, 작년까지는 공인받다가 왜 공인을 안 받은 거야. 아니, 싸가지 놈은 작년까지 쓰던 배트를 왜 바꿔서 신청을 안 한 거냐고.
아니다. 남들 탓하면 뭐 하냐. 내가 잘못한 거지. 장비 못 챙긴 놈이 잘못이지.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다.
고개를 푹 숙이고 덕아웃 쪽으로 내려오는데 주장이 또 내 글러브를 받아들고는 내 쪽으로 다가온다.
“고개 들어.”
“죄송합니다.”
“팬들이 보고 있잖아. 고개 들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돈 내고 야구 보러온 팬들한테 이런 멍청한 꼴을 보여 주다니.
“다음에 안 하면 돼. 너 이제 시작이다. 어린 선수가 실수하고 잘못해도 씩씩하게 더 잘하는 모습 보여 주면 팬들은 그걸로 만족한다. 가서 보여 주고 와. 쓰러져도 더 당당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거 보여 주고 와.”
쪽팔리고 미안하고, 관중들이 전부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것 같다. 글러브를 건네받고는 외야로 뛰어가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지금껏 에러를 안 한 것도 아니고 수두룩한 결정적인 에러 장면을 떠올린다.
우리 엄마의 안부를 묻는 악플들. 2군의 다른 유망주를 올리라는 기사들. 그때마다 내 자리가 없어진다는 스트레스에 못 이겨 슬럼프에 빠졌던 지난날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그때의 나와 처지가 다르다. 이 정도 삽질이면 경기에서 빠졌던 그때와는 다르게 감독이 나를 교체하지도 않고 어쩐지 내일 경기에서 빠질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지금 걱정해야 할 건 이번 이닝. 이번 수비에 날아오는 공을 잡아내는 것. 그거 하나만 걱정하면 될 일이다.
욕이야 좀 먹겠지만 그깟 거 인터넷 안 보고 전화 안 받으면 그만이다.
집중한다. 이 거지 같은 기분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이 경기에 내 모든 걸 쏟아붓는다.
- 어수선한 가운데 경기가 재개됩니다. 드래곤스 하지훈 선수부터 시작되는 타선입니다.
- 양 팀 모두 집중해야 합니다. 점수 차도 벌어지고 경기가 어수선할 때일수록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관중들은 야구는 안 보고 야식을 먹느라 바쁘고, 이제 5회인데 주심은 조기 퇴근을 하고 싶은지 스트라이크존을 태평양만 하게 바꾼다.
- 3구,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바깥쪽 꽉 찼습니다. 타자는 조금 멀어 보였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만 심판의 손이 올라갔습니다.
- 오늘 존이 넓네요. 선수들이 심판의 성향을 감안하고 경기에 임해야겠어요.
미쳤네. 저걸 잡아 주면 답이 없는데. 이러면 비슷하면 다 따라다녀야 하잖아.
- 박지훈. 오늘 두 번째 타석입니다.
- 양 팀 선수들, 조금 긴장감이 떨어져 보여요. 점수 차가 벌어져도 개인 기록을 생각해서라도 집중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드래곤스 타자들이 투수에 꾹꾹 눌리고 있는데 존마저 넓어지니 자기 스윙을 못 가져가고 팔로만 배트를 돌린다.
저래 봐야 좋은 타구 안 나올 텐데…….
- 스트라이크, 아웃. 투 아웃. 삼진 8개째를 만들어 내는 이시윤. 오늘 완벽한 경기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컨디션 정말 좋아 보이네요. 빗맞은 안타 하나 말고는 전혀 출루를 시켜주지 않고 있어요. 대단한 투구입니다.
- 드래곤스 여기서 대타를 냅니다. 대타 정한영.
- 힘 있는 타자죠. 분위기를 바꿔줄 필요가 있어요.
주전들의 삽질이 계속되자 드래곤스가 5회부터 대타를 내면서 분위기 반전을 시도한다.
질 때 지더라도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다 지면 내일 경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분위기도 바꿀 겸, 후보 선수들 기회도 줘볼 겸 잘하는 거다.
- 스윙. 정한영 선수 크게 휘두릅니다.
- 맞히진 못했어도 좋은 스윙이었어요. 이래야죠. 공이 좋아도 자기 스윙 가져가야 합니다.
- 드래곤스 오늘 처음으로 스윙다운 스윙이 나왔어요.
‘저, 저 무식한 놈.’
저놈 원래 공 안 보고 냅다 휘두르는 건 알고 있었지만, 스윙만 봐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빗맞아도 넘어가겠는데…….’
생각하고 움직인 건 아니지만 뒤로 발이 알아서 물러난다. 아무리 확률이 낮을지라도 저런 무식한 스윙을 보고 대비를 안 하기는 내 경험치가 너무 많다.
- 랩터스 수비 시프트가 공격적입니다. 중견수, 굉장히 깊게 수비 위치를 잡고 있습니다.
- 잘하는 거죠. 점수 차도 많이 나고 주자 없이 투 아웃이거든요. 펀치력 있는 타자를 상대로 단타를 줄지언정 장타는 안 맞겠다는 거거든요. 좋은 판단입니다.
내가 물러나자 양옆의 코너 외야수들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 나온다. 벤치에서 따로 시프트가 나온 것도 아닌데 선배들이 내 움직임만 보고 균형을 맞추러 움직인다.
저 양쪽 코너 외야수들 수비 범위가 좁고 수비를 못하는 거지, 야구를 모르는 게 아니었어. 난 랩터스의 외야수들이 빠따질만 할 줄 알고 야구는 모르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네.
- 3구 타격. 잘 맞은 타구 쭉쭉 뻗어 나갑니다. 펜스 직격. 타구 펜스 직격.
우리 선발 투수. 구위 하나는 메이저급이지만 제구 따위는 개나 줘버린 제구레기. 오늘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영점 조절된 날이지만 모든 공이 다 제구되기를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
5회 말, 투 아웃에 결국 직구가 한가운데 쏠렸고 타자가 놓치지 않고 때려 냈다.
맞아도 너무 잘 맞은 타구는 낮은 탄도로 펜스를 직격했다.
타자의 배트 움직임을 보고 우익수 쪽으로 발을 떼고 타격음을 들으면서 가속을 붙인다.
이건 무조건 우중간으로 날아올 타구. 따라붙는다.
잘 맞은 타구가 속도를 줄일 생각도 않고 쭉쭉 뻗어 나온다. 어차피 잡는 건 포기. 넘어가지 않으면 펜스 플레이를 해야 할 타구다. 뛰어가는 방향을 바꿔 공이 튀어나올 지점을 선점한다.
- 타구, 펜스 맞고 떨어지고 중견수 바로 잡아 들었습니다. 잡자마자 2루. 2루 송구. 2루~
- 아웃이죠. 무모했어요. 타자가 자기 발만 믿고 타구 판단을 안 했어요. 타구를 봐야죠. 이거 실책이에요.
중견수가 원 바운드 펜스 플레이를 완벽하게 해냈거든요. 타자는 중견수가 누군지를 생각해야 했어요.
타구가 너무 잘 맞았다. 펜스를 부숴버릴 듯 날아온 타구가 바닥에 떨어지고 기다리고 있다 집고는 타자 주자를 살폈다.
내가 공을 집어 들었을 때 막 1루를 밟으려고 하는 주자. 상황을 보고 적당히 오버런을 해야 하는 타자가 1루를 크게 밟으려고 엄청나게 큰 원을 그린다.
저 XX가 나를 무슨 귀염귀염한 소녀 어깨로 보나.
그냥 봐도 시간도 충분하겠다. 스텝을 밟으면서 글러브에서 공을 돌려 직구 그립을 잡는다.
투 스텝에 완벽한 투구 동작을 마치고 글러브를 낀 앞 손을 끌어당기면서 오른손을 탑 포지션에 가져다 놓는다.
시간이 없었으면 백스윙부터 짧게 끊어서 가져갔을 동작을 투수가 마운드에서 투구하듯 큰 동작으로 만들어서 2루 베이스 위로 쏘아냈다.
2루 베이스 앞으로 타깃을 잡고 던진 공이 낮게 깔려 2루수 글러브로 들어간다. 베이스 위에서 자세를 잡고 유유히 주자를 기다리는 2루수.
우당탕탕 뛰어오던 타자 주자가 2루수의 글러브를 보고 속도를 줄이고는 걸어온다.
서서 들어오는 타자 주자를 가볍게 터치하는 랩터스의 2루수.
닭 다리를 들고 홈 팀의 장타를 기대하던 1루 관중들이 할 말을 잃고 입에 맥주를 털어 넣는다.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외야에서 주자를 잡아내는 어시스트는 홈런 치는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짜릿하다. 수비수를 만만하게 보고 무리하는 주자를 잡아낼 때마다 복수하는 기분이 들고 상대를 약 올리는 것 같고 여러 가지 기분이 한 번에 올라온다.
주자가 아웃되는 모습을 보면서 주먹을 꽉 쥐어보고는 덕아웃을 돌아온다. 내 뒤로 백업 들어왔던 강정상 선배가 내 궁디를 툭툭 쳐주면서 잘했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수비에서 밥값을 했더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그래. 야구 선수는 사죄도 야구로 하는 거다.
경기 초반 정신없던 경기가 잠잠해진다. 6, 7회를 삼자범퇴로 마무리하고 랩터스의 8회 초 공격이 시작된다.
- 투 아웃. 타석에 오늘 4타수 3안타의 김소전이 다시 타석에 들어섭니다. 기록이 4타수 3안타가 되는 게 맞습니다. 지난 타석에 2루타가 있었지만 부정 배트 타격으로 아웃 처리가 되었습니다.
- 부정 배트는 아니고 비공인 배트 사용이죠. 야구 규칙상 비공인 배트 사용 시 바로 어필하면 기록은 무효가 되고 아웃 처리가 되고 바로 어필이 안 되면 기록은 인정되고 나중에 징계를 받게 돼 있어요.
- 그럼 오늘 기록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 김소전 선수가 비공인 배트로 3회에 안타, 5회에 2루타를 쳤거든요. 그래서 3회 안타는 인정이 되고 5회 2루타는 무효가 된 거거든요. 그래서 4타수 3안타가 되면서 이번 타석이 5번째 타석이 되겠죠.
- 그러면 사이클링 히트 기록이 사라진 꼴이 되겠습니다.
- 그렇죠. 사이클링 히트가 사라졌네요.
“김소전! 김소전!”
보호구를 갖추고 대기 타석에 나가려는 저 뒤에서 강정상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 바라보았다.
“배트 내 거 가져가. 가서 2루타 치고 와.”
“형. 아까는 안 된다며? 부러져서 안 된다며?”
“시끄러. 너는 후배가 기록을 세우겠다는데 꼭 그렇게 초 칠래!”
“아까 안 된다고 한 게 형이거든요? 부러지면 안 된다며? 이제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시끄러! 김소전! 무조건 2루타 치고 와. 못 치면 얘 밑으로 네 위로 다 집합이야.”
“아니, 못 친 건 김소전인데 왜 내 밑으로 집합이야?”
“민정규! 넌 말이 너무 많아서 그냥 맘에 안 들어. 그러니까 김소정이 잘못하면 다 네 책임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거 직장 내 괴롭힘이야! 나 고소할 거야!”
“어쭈, 까불지? 직장 내 괴롭힘? 애들한테 물어봐라. 내가 괴롭히나, 네가 날 괴롭히나. 내가 맞고소할 거야!”
할아버지 둘의 헛소리를 듣고 있기 너무 괴롭다. 다 무시하고 그냥 내 새 배트 꺼내서 나가려다 강정상 선배 배트는 어떤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 꺼내 들었다.
이거, 이거……. 손에 딱 잡히는 게……. 그립감이 좋은데?
- 김소전, 타석에 바짝 붙습니다.
- 어린 선수가 기죽지 않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죠. 이런 모습을 팬들이 원할 겁니다. 실수했다고 실패한 게 아니거든요. 이번 타석에 다시 2루타 치면 돼요.
배트가 짧다. 이 배트, 그립감만 좋고 쓰레기다. 나한테는 전혀 안 맞는다. 안 그래도 난 긴 배트 쓰는데 강정상 선배 배트가 짧다.
평소처럼 홈 플레이트에서 한 발 정도 떨어졌다간 바깥쪽 대처가 힘들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한 발 더 붙는다.
- 초구, 볼. 타자 몸쪽을 파고드는 볼입니다. 위험했어요.
- 타자가 바짝 붙어 있으니까 떨어지라고 던진 공이거든요. 점수 차가 많이 났어도 마운드의 이준모 선수나 타석의 김소전 선수나 개의치 않고 야구를 하고 있어요. 어린 선수들이 적극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야구를 해주니 고맙네요. 이번 승부 기대가 됩니다.
저눔 시키. 팀은 달라도 나랑 같이 프로 데뷔한 동기 놈인데, 제구도 안 좋은 놈이 동기한테 흉기를 집어 던진다.
이 XX, 사람 오기 생기게 만드네.
- 2구. 또다시 몸쪽 공. 빠졌음에도 타자,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지켜봅니다.
- 양 선수, 신경전 치열하네요.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개XX야. 놀래서 몸이 움직여지지도 않았잖아! 개XX. 무슨 돌덩이 같은 공을 사람보고 집어 던져. 무섭잖아.
XX. 눈물이 다 나오네…….
- 김소전 선수, 타임을 부르네요.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봅니다.
- 벌써 날이 더워지나요. 저럴 때 보면 날파리 같은 게 눈에 들어가거나 하거든요. 아직 그럴 날씨는 아닌데 성격 급한 날파리가 있었나 봐요.
타임을 부르고 숨을 좀 고르고 투수를 노려봤다. 나쁜 놈. 누굴 죽이려고. 나 오늘 경기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 정도로 물러날 것 같으냐! 내가 오늘 너는 꼭 털어 준다!
- 2볼. 투수는 카운트를 잡아야 할 타이밍입니다.
- 그렇죠. 스코어 차도 많이 나는데 괜히 승부를 더 어렵게 갈 필요가 없어요. 맞혀도 좋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붙을 필요가 있어요.
- 김소전 타격. 우중간, 우중간에 떨어집니다.
또다시 몸쪽으로 붙어 오는 공. 세 번을 당할 거 같으냐!
투수가 릴리스 포인트에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 앞발을 더 열면서 몸을 뒤로 눕혔다. 몸이 누이는 느낌 그대로 걷어 올린 타구가 우익수와 중견수 애매한 위치로 발사된다.
타격을 마치고 1루로 첫발을 떼면서 머리에 천사와 악마가 나타나 싸움을 시작한다.
‘욕심부리지 마. 단타 코스야!’
‘단타라니. 김소전의 발이라면 2루는 충분해!’
‘무슨 소리야! 타구 거리가 짧잖아. 2루 노리기는 짧아!’
‘야수의 송구가 항상 정확한 건 아니잖아. 슬라이딩만 잘하면 태그는 피할 수 있어.’
‘단타 코스라고. 점수 차도 큰데 상대를 자극하는 건 나쁜 일이야!’
‘프로에 그런 게 어딨어. 사이클링 히트가 매번 있는 기회일 거 같아? 할 수 있을 때 하는 거야!’
1루 베이스가 보일 때까지도 머릿속에서 말싸움이 길어진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분명 짧은 타구이긴 한데 이미 잡았던 기회를 놓쳤던지라 또 한 번 놓치고 싶지 않다.
1루를 밟는 순간 결국 욕심이 이성을 이겼다. 우익수가 공을 글러브에 집어넣는 게 보임에도 1루를 돌면서 발에 가속을 더 한다.
- 김소전 2루, 2루~
- 무모해요!
- 2루, 세잎! 2루에서 세잎입니다!
- 만들어 내네요. 마지막 2루타를 발로 만들어 내네요. 대단합니다.
- 하지훈 선수, 비디오 판독 요청을 합니다만 벤치에서 받아주지 않네요.
- 세잎이에요. 벤치에서도 대기록에 굳이 비디오 판독 안 하겠다는 것 같네요. 김소전 선수 대단합니다.
앞만 보고 달린다. 유격수가 2루 베이스 위에서 자리 잡는 걸 확인하고 반쯤 열어둔 베이스를 보면서 몸을 비틀어 손을 뻗는다.
간신히 손끝에 걸리는 베이스. 내 손이 닿고 난 뒤 등위로 글러브가 내리친다.
3루 쪽에서 들려오는 함성. 해냈다는 성취감이 온몸을 꿰뚫는다.
* * *
- 오늘의 수훈 선수 김소전 선수를 만나보겠습니다. 오늘 사이클링 히트,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기록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중간에 비공인 배트 때문에 기록을 못 세울 뻔했는데요. 어떠셨습니까?
“변명의 여지가 없이 제 잘못이고, 경기 준비를 소홀히 한 제 잘못입니다. 앞으로 경기 준비 잘하겠습니다.”
- 평소에 안 쓰던 배트를 쓰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경기 중에 배트가 계속 부러져서 바꾸는 과정에 연습 때 쓰던 배트를 들고 나왔는데 작년에 선물 받은 배트라 올해 공인을 안 받은 줄 몰랐습니다.”
- 선물해 준 사람에게 한마디 하셔야겠네요. 한 말씀 하시죠.
“강훈 선배, 죄송합니다. 주신 배트 잘 써야 했는데 이렇게 돼서 죄송합니다.”
- 최강훈 선수가 선물한 배트였군요. 말 나온 김에 최강훈 선수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아… 싸가지랑 엮이면 피곤한데…….
- 최근 최강훈 선수 트레이드 이슈가 있는데 구단에서 최강훈 선수를 트레이드할 수 있는 게 김소전 선수가 그 자리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최강훈 선수를 대체하실 수 있습니까?
방송국 놈들, 정도라는 게 없다.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해?
“위치가 다릅니다. 강훈 선배는 주전 중견수고 저는 백업입니다. 제 운동만 하기도 벅찹니다.”
몇 가지 쓸데없는 질문이 더 나왔지만 난 관심 없다고 대답을 하니 싸움을 붙이려는 캐스터의 기세가 꺾인다.
-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한마디 해주시죠.
“오늘 친 사고, 야구로 보답하겠습니다. 더 잘하겠습니다.”
오늘의 수훈 선수가 평범하게 한 인터뷰를 인터뷰한 당사자보다 더 감정 이입하여 내면의 상태를 분석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수훈 선수 인터뷰를 끝까지 확인하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조 단장. 내일 신문 기대해. 최강훈이 팔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