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28화 (28/204)

28화. 개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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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당 10경기를 치르는 시범 경기.

KBO가 생긴 이래로 시범 경기 한정 절대적 1탑을 찍고 있는 봄터스가 무너졌다.

비가 와서 7경기밖에 못했음에도 달랑 1승. 그것도 상대 유망주들이 줄줄이 에러를 하면서 떠먹여 준 1승. 그게 전부다.

투타 밸런스를 논할 가치도 없게 선발진은 선발진대로 무너지고 중간 투수들은 봄날의 갑작스러운 추운 날씨에 구속마저 얼어붙었다.

팀의 주축이 되는 나이 많은 FA들은 슬로우 스타터가 이런 거라는 걸 보여 주려는 듯 지하 1층도 모자라 지하 10층을 파고들 기세고, 더 이상 어리다고 얘기할 수 없는 젊은 선수들은 여전히 투박한 모습을 보여 주며 1군에서 경쟁할 수준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무너지는 팀에 한 줄기 빛이 있었으니 빠른 발로 광활한 잠실의 센터를 책임지며 번뜩이는 타격으로 랩터스 공격을 이끌고 가는 돌격대장. 최강훈이다.

* * *

개막을 앞둔 미디어 데이. 10개 구단 감독과 주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시즌 10위부터 돌아가며 이번 시즌 각오를 밝히는 시간. 겨우내 착실히 준비한 팀들이 저마다 대권 도전을 외치며 전의를 다진다.

“이제 랩터스를 만나볼 시간입니다. 우승-우승-우승 이후 지난 시즌 아쉽게 5위로 마친 랩터스. 이번 시즌을 준비하며 변화가 많습니다. 그중 팬들의 관심이 이분께 쏠려 있습니다. 존재 자체가 랩터스이신 이분. 신임 감독 김민중 감독을 만나보겠습니다.”

진행자의 과한 소개에도 전혀 거부감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감독이 다짜고짜 헛소리를 지껄인다.

“랩터스를 다시 우승시키기 위해 돌아온 김민중입니다.”

파바밧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억지로 끌어내지도 않았는데 물 밖으로 올라온 물고기를 본 방송국 놈들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시작부터 자신감 넘치는 선전포고를 하셨습니다. 다음 질문이 이번 시즌 랩터스 목표였는데, 우승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인 이어를 통해 PD 놈이 ‘더, 더 자극적으로’라는 주문을 쏟아내자 귀가 아파 눈꼬리를 씰룩이면서도 웃는 얼굴을 감추지 않고 노련하게 질문을 던지는 진행자.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야구 전문 아나운서도 여기서 시청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랩터스의 목표가 우승이 아닌 적이 없었습니다. 올해도 목표는 우승입니다.”

감독의 단호만 말에 또다시 플래시가 터져 나온다.

지도자 경험이라고는 2군 감독 1년 해본 것 말고는 없는 초짜 감독이 덥석 우승을 공약하자 노련한 진행자가 아픈 곳을 찌르고 들어온다.

“랩터스의 전력이 예년보다 떨어진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습니다. 특히 FA 노장 선수들의 체력 관리에 따라 팀 성적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있는데요. 이건 해결 방안이 있으신지요?”

“랩터스의 비밀 무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즌이 시작되면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헛소리를 늘어놓는 감독에게 더 자극적으로 하라는 PD의 핀잔을 먹고 있는 진행자가 대놓고 디스를 시작한다.

“랩터스의 아이돌, 최강훈 선수에게 기대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박동수 선수와의 공존이 가능하시겠습니까?”

화기애애하면서 덕담만 던져야 하는 미디어 데이에 팀의 약점을 찌르고 들어오는 진행자에게 감독이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을 이어 나간다.

“최강훈이건 박동수건 잘하는 선수가 나갈 겁니다. 항간에 감독이 최강훈을 양아들로 삼았다는 소문이 있는데 박동수가 잘하면 김동수 되는 거고, 최강훈이 잘하면 김강훈이 되는 겁니다. 1군은 실험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증명하는 자립니다.”

진행자가 다른 쓸데없는 질문을 하려고 하기 전에 마이크를 잡고 있던 감독이 치고 나간다.

“이번 시즌 감독이 팬들께 욕을 많이 먹겠습니다. 하지만 랩터스는 우승해야 하는 팀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전력을 최대한 쥐어짜서 성적을 내겠습니다.”

감독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큐시트를 들고 있던 진행자가 한 템포 숨을 죽이고 감독에게 집중한다.

“팬들의 기준과 감독의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선수 편애, 선수 혹사. 아마도 이번 시즌 내내 랩터스에 따라다닐 겁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바로 10년간 꼴찌 하던 팀에서 기적적으로 우승을 해본 선수였습니다. 10년을 지면서 사느니 단 한 번이라도 이기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몸으로 겪어 본 선수입니다.”

감독이 잠깐 숨을 고르고는 빨간 불이 들어온 카메라를 정확히 바라보며 선언을 한다.

“랩터스, 다시는 밑으로 내려가면 안 되는 팀입니다. 어떻게 만든 팀인데요. 다시 암흑기로 갈 수 없습니다. 팬들께서 욕하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성적은 확실히 내겠습니다. 그 생각으로 이번 시즌 운영하겠습니다.”

감독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미디어 데이에 나와 있던 기자들의 손이 키보드 위를 미친 듯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성적이랑 상관없이 이번 시즌의 주인공은 랩터스다.

[랩터스 선수 혹사 예고]

[랩터스 김민중 감독, 팬들에게 욕먹겠다]

[미래를 포기한 랩터스, 성적 올인]

* * *

감독의 헛소리가 팀에 녹아들었다.

기자들이 잔뜩 모인 미디어 데이에 그 넙데데한 얼굴을 들이밀고 선수들 혹사시켜 성적 내겠다고 선언을 해버리니 재활 중인 선수들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훈련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랩터스가 합리적인 운영을 하는 팀이었는데 내가 돌아온 게 나비 효과를 불러오는 건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인다.

이러다 내가 알고 있는 선수들도 바뀌는 거 아니야? 무섭다.

미디어 데이까지 마치고 수원에서 개막전이 열렸다.

우승팀이었던지라 작년에는 잠실에서 개막전을 치렀던 랩터스가 5등을 했음에도 원정을 떠났다.

겨우내 야구만 기다리던 홈팬들을 뒤로하고 떠나는 원정길. 야구를 잘해야 하는 이유가 더 많아진다.

경기 전 개막전 라인업이 공개되고 선수단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리고 그 험악한 분위기를 만든 당사자는 코치들에게 끌려갔다.

“김소전. 오늘 2번에 1루수다.”

“네? 1루수요?”

지난 시즌 2할 타자가 2번을 치라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 1루수? 내가 1루수를 보라고? 시범 경기 내내 유격수와 2루수만 봤는데? 갑자기 1루?

“메이슨이 갑자기 등에 담이 왔어. 오늘 못 나간다. 준비해.”

“네.”

준비하라면야 하겠지만 1루에 들어갈 선수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나를 1루로 가라니…….

“김소전.”

“네, 감독님.”

수석 코치와 대화 중에 뒤에서 감독이 부른다.

“2번 타자의 역할이 뭐냐?”

이 사람이.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뭔 질문을 하고 있어.

“2번 타자는 1번이 출루하면 2루수 뒤쪽으로 진루타를 쳐 줘서 주자를 3루에 보내고…….”

“무슨 개똥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선수가 학교 다니면서 배운 교과서적인 대답을 하고 있는데 감독이 말을 자른다.

“너 그럴까 봐 불렀다. 주자 생각하지 말고 공 보고 공 쳐. 미국에서 배워 온 것처럼 강하게 때려. 그게 내가 널 2번에 넣은 이유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감독 딴에는 최신 유행인 강한 2번, 뭐 이런 걸 하고 싶은 거 같은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거든요. 2번에 들어가서 풀 스윙만 어떻게 돌리냐고요.

- 썬더스와 랩터스, 랩터스와 썬더스의 개막전 경기가 시작됩니다.

- 1번 타자 최강훈 선수죠. 시범 경기에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요. 컨디션이 아주 좋아요. 이번 시즌 기대가 됩니다.

감독놈, 잘하는 순으로 타선을 짠다더니 진짜로 시범 경기 성적이 제일 좋았던 최강훈을 1번에 올렸다.

시범 경기 21타석 7안타 3할 3푼 3리. 홈런 1개, 2루타 2개. 도루 3개.

아무리 시범 경기가 서로 탐색전을 하는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 하면 주전으로 쓰긴 해야지.

- 최강훈 선수,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공략에 들어갑니다.

- 김민중 감독이 공격 야구를 얘기했거든요. 최강훈 선수, 지난해까지는 강한 공에는 조금 밀리는 모습이 있었는데 올해는 다르네요. 자신감 있게 들이대고 있어요. 많이 좋아졌네요.

프로 데뷔 5년 차. 지난 시즌 부상 선수 백업으로 1군에 올라와 2할 4푼을 치면서 자리를 만들어 내더니 겨우내 말도 안 되는 성장세를 보이며 이번 시즌 개막전 선발 자리를 따냈다.

저놈 잘하는 게 보고 싶진 않지만, 지가 잘해서 올라온 건 인정해야지.

드디어 본인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려는 듯 랩터스의 중견수가 개막전부터 사고를 친다.

- 최강훈 선수 4구째를 맞겠습니다. 개막전 선발이 처음인데 기죽지 않고 자기 스윙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 그렇죠. 선두 타자로 나와서 밀리지 않고 있어요. 김민중 감독이 믿을 구석이 있다더니 그럴 만합니다.

- 4구, 쳤습니다.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담장~ 담장, 넘어갑니다. 2026시즌 공식 경기 첫 홈런! 랩터스의 최강훈입니다.

될놈될이라고 통산 홈런 세 개인 녀석이 개막전부터 선두 타자 홈런을 치면서 기세를 올린다.

유유히 그라운드를 돌아 들어오는 싸가지. 다음 타석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나에게 썩소를 보내고는 덕아웃으로 들어간다.

그나저나. 내가 걱정이네.

저기 투수, 저 밥맛없는 XX한테 홈런 맞더니 화난 거 같은데.

- 타석에 김소전 등장합니다. 랩터스, 계속해서 젊은 선수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 김민중 감독이 김소전 선수 쓰임에 대해서 만능 백업이라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등록 포지션은 내야수이지만 내야와 외야 모두 수비가 가능한 선수지요. 오늘은 1루수로 선발 출장했습니다.

무섭다. 저 투수 놈. 지가 실투해서 저 비리비리한 놈한테 홈런을 맞아놓고는 나한테 화풀이하려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직 마운드에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온몸에 근육이 바짝바짝 서는 게 보인다.

야… 살살해 줘.

- 김소전 선수, 수비는 잘하지만, 공격은 아쉽다는 평가가 있습니다만 오늘은 2번 타자로 나왔습니다.

- 야구 팬들이라면 잘 아시는 미국의 라타 코치에게 수업을 듣고 왔다고 하거든요. 성공 사례도 있고 실패 사례도 있는데 어느 쪽인지 궁금하네요.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시즌 첫 경긴데 예의 바르게 심판님과 포수님에게 인사를 올렸다.

후배가 정성을 다해 성심성의껏 인사를 하는데 홈런을 맞은 포수가 틱틱대기 시작한다.

“기분 안 좋으니까 적당히 서 있다 들어가라.”

서 있다 가라니요.

내가 겨울 동안 연습한 게 아까워서 그냥은 갈 수가 없어요. 삼진을 당해도 휘두르고 가야지요.

“예.”

타자의 공손한 대답에 포수도 투수의 공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 초구, 볼. 많이 빠졌습니다만 153, 153km가 나옵니다. 선두 타자에게 맞은 홈런 탓일까요. 투수가 기합이 상당합니다.

- 대단하네요. 아직 시즌 초반에 날씨가 쌀쌀해서 제구가 안 잡힐 수는 있거든요. 그런데 벌써부터 150을 넘는 빠른 볼을 던진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이에요. 썬더스 좋은 선수를 데려왔어요.

XX. 놀랬네. 갑자기 눈앞에다 던지면 사람이 놀라잖아.

그러다 맞으면 어쩌려고! 살살하자고! 살살!

그래도 구속도 뭐 그저 그렇고, 구위도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고.

어차피 1회에 주자도 없는데 하나, 하나만 노린다.

자 방금 같은 똥볼! 또 하나 던져 봐라!

- 2구, 쳤습니다. 쭉쭉 뻗는 타구. 그대로 담장을 넘어갑니다. 랩터스의 백 투 백! 개막전부터 백 투 백 홈런이 나옵니다!

가운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가운데를 놓칠까 봐! 나가 뒈져라. 스윙이다!

맘먹고 휘두르는 배트에 공이 제대로 걸렸다. 배트를 타고 흘러오는 감각이 머리끝까지 짜릿하게 올라온다.

와우! 연습 때보다 더 화끈하네. 내가 이거 때문에 야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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