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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25화 (25/204)
  • 25화. 연습

    * * *

    “자, 지금부터 천천히 해봅시다.”

    이번에도 실패했다.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낯선 미국 땅에 말도 못 하는 사람이 혼자 집으로 돌아가려면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 잡혀버리고 말았다.

    “자, 다시 타격 자세를 잡아봅시다.”

    미친놈의 요구에 반항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포기하고 다시 꼴사나운 예전의 타격 자세를 잡았다.

    “아까 그 어설픈 타격 자세보다 투수가 잘 보이지 않나요?”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아무래도 발을 일자로 놓는 클로즈드 스탠스보다 앞발을 뒤로 빼고 정면으로 투수를 바라보는 오픈 스탠스가 편하지.

    “잘 보이죠. 잘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맞히는 스윙이 아닌 장타를 때려 내는 스윙을 하려면 컨택이 돼야 하는데. 이 자세에서는 큰 스윙으로 공을 맞히기가 어렵습니다.”

    오픈 스탠스를 연습 안 해본 것도 아니다. 해봤는데 이게 나한테는 맞지 않는다. 안 그래도 부족한 컨택이 오픈 스탠스로 들어가면 더 안 된다.

    “컨택이 왜 안 될까요? 오픈 스탠스에서는 공을 더 편하게 봐서 컨택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게 기계적으로 되면 야구가 쉽지. 그게 공식처럼 안되니까 야구가 어려운 거지.

    “제가 바깥쪽 공, 그것도 바깥쪽 떨어지는 공에 약점이 좀 있는 데다가 오픈 스탠스에서는 강하게 쳐야 해서 배트가 빨리 빠져나오지 않습니다. 전에도 연습해 봤는데 저랑은 안 맞습니다.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통역을 거쳐 설명을 들은 코치가 빙긋 웃으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바깥쪽 떨어지는 공을 해결해 드리면 스탠스 바꾸는 건가요?”

    바깥쪽 떨어지는 공을 해결한다고? 그게 말처럼 쉬우면 아무나 야구 하지. 그게 마음대로 되냐?

    “해결책을 주시면 연습해 보겠습니다.”

    선수가 연습해 보겠다는 말에 코치가 선수를 데리고 모니터 앞으로 데려간다.

    모니터에서 방금 전의 스윙 모습들이 구분 동작으로 쪼개져서 재생된다.

    내가 봐도 참… 폼 안 예쁘네.

    “첫 번째 폼을 기준으로 얘기를 해봅시다.”

    코치가 내가 반년 동안 갈고 닦은 새 타격 폼을 놓고 해부를 시작한다.

    “폼을 왜 바꿨는지는 알겠는데 불필요한 동작이 너무 많아요. 스탠스야 선수가 편하고 불편함이 없으면 상관없는데 화면에서 보듯이 선수가 너무 불편해하고 있어요.”

    모니터에 포인트를 찍어가며 설명을 하는 라타 코치.

    “보이죠? 어깨를 닫는다는 생각에 턱을 어깨에 바짝 붙여서 머리가 기울어져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눈이 투수를 똑바로 보는 게 아니라 올려다보는 그런 자세가 나와요.”

    음… 그러고 보니 내 목이 투수 쪽으로 꺾여서 마중을 나가 있네. 내가 봐도 눈동자가 아파 보이긴 하구나.

    “그러면서 체중은 뒤에 두겠다고 하체가 뒤에 버티고 있는데, 공은 잘 안 보이니까 상체는 앞으로 나가 있고. 상, 하체의 연결이 불완전해요. 자, 타격하는 거 보면 하체와 상체가 따로 움직이죠? 타격에 전혀 하체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 있어요.”

    안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세세하게 쪼개서 타격 폼을 보니… 흠… 못났다.

    “자, 안 그래도 공을 잘 못 보고 타격에 들어가는데 강하게 치겠다고 테이크백이 너무 큽니다. 타격의 시작과 함께 팔이 뒤로 쭉 빠지면서 고개가 흔들리죠. 그러면서 손이 파워 포지션에 올라가면서 꼬이는 동작까지 있어요. 그러면서 머리가 또 흔들립니다. 이래서는 공을 맞히는 게 신기할 정도네요.”

    나쁜 코치 XX. 못하는 선수 토닥토닥해 줘도 모자랄 판에 팩트로 후드러 패다니. 못됐다.

    “시선 처리도 문제인데 타격 어프로치도 문제가 됩니다. 다운 스윙을 하겠다는 것도 이해합니다만, 타격하면서 앞쪽 어깨가 들리죠? 그러면서 헤드업. 이러고도 2할을 쳤다는 게……. 재능을 타고났네요.”

    ‘칭, 칭찬인 거죠.’

    “마지막으로 스윙을 하고 난 후에 중심을 계속 뒤에 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강하게 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배트를 끝까지 두 손으로 잡으면서 팔로 스로를 하고 있어요. 두 손으로 스윙을 하는 게 나쁜 건 아닌데 그 동작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보니까 어깨에 힘만 들어가고 실제 스윙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 모습이에요.”

    ‘도대체 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타자라는 거냐…….’

    “어떠세요?”

    “다 맞는 말씀이시긴 한데. 연습을 통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떤 부분이 좋아질까요?”

    “헤드업 좀 줄이고 공을 끝까지 보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나를 보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코치가 어려운 문제를 낸다.

    “왜 저런 폼이 필요한 거죠?”

    “아까도 설명해 드렸다시피, 공을 끝까지 보고 공에 파워를 실어서 날리려면…….”

    내가 또다시 진지하게 한참 동안 설명을 하는데도 무슨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듣듯 편안하게 듣는 코치 놈. 오기가 생겨서 세세하게 타격 메커니즘에 관해 설명을 이어간다.

    “결론은 세게 치고 싶어서 그렇다는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어렵게 치세요? 어렵게 치면서 힘도 안 실리는데 왜 그렇게 어렵게 치죠?”

    ‘장난 하냐. 야구가 어려운 거야! 쉬운 방법이 있으면 내가 벌써 했지.’

    “자, 그러면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봐볼까요?”

    말할 시간을 넘겨받은 코치가 다시 모니터에 내 예전 타격 폼을 띄우면서 공격을 시작한다.

    ‘아니… 그……. 괴랄한 폼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습니다만…….’

    “보세요, 이 자세. 투수를 정말 편하게 보고 있어요. 몸에 어색함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요. 이 폼은 10년은 야구를 한 선수처럼 편안합니다.”

    ‘당연하잖아, 그 폼으로 14년을 야구 했다고.’

    “배트를 짧게 잡고 있어서 그렇지, 저 자세 보이세요? 몸이 어느 쪽으로 쏠리지도 않고 중심을 5대5로 완벽하게 나눠서 잡고 있고 무릎도 살짝 구부러지면서 낮게 유지를 하고 있어요. 이상적입니다.”

    ‘그렇게 이상적인데 나는 왜 14년 동안 성적이 그 모양이냐.’

    “거기다 더 고무적인 건 다음 동작입니다. 타격 자체를 번트처럼 배트를 넓게 끌고 나와서 돌려주고 있어요. 테이크 백도 없어서 헤드업이 일어나지도 않고 억지로 배트에 힘을 주지도 않아서 어깨가 균형을 잃지도 않아요.”

    이제는 침까지 튀겨가며 말을 계속하는 라타 코치.

    “물론 힘 빼고 팔로만 때리기에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힘 빼고 저 정도로 맞는 면을 크게 만들어주는 선수를 본 적이 없습니다.”

    ‘뭐? 맞는 면적? 번트 대려고 어디든 가져다 대는 거야. 내 타격이 거기서 나온 거라고!’

    “마지막 의식적으로 하는 건지, 무의식중에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타격을 하면서 1루에 세이프티 번트를 대듯이 투수 쪽으로 중심을 옮겨가면서 타격이 이뤄지고 있어요. 이걸 우리가 가장 힘들게 연습해야 하는 부분인데 이게 자연적으로 체화가 돼 있어요. 우리,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뭔 X소리지. 쉽긴 뭐가 쉬워.’

    “코치님, 제 폼을 어떻게 바꾸자고 하시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학생의 질문을 받은 선생님이 인자한 표정으로 가르침을 사사하기 시작한다.

    “넓게 오픈 스탠스를 취하고 테이크 백 없이 투수에게 달려나가면서 몸통 회전으로 공이 날아오는 궤적에 맞혀서 스윙합니다. 이미 김소전 선수가 하던 타격이에요. 마지막에 번트를 대던 거에서 스윙으로만 바꾸면 되는 겁니다. 오래 걸리지 않겠어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게 아니다. 이건 절대 먹어선 안 되는 게 확실하다. 먹는 순간 바보 인증이다. 사기꾼 XX야. 나를 바보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 되는 얘길 해야지.’

    * * *

    “아니, 그게 아니고. 공을 내려찍지 말고 몸통이 돌아가는 대로 그대로 치는 겁니다.”

    “골프 안 쳐봤어요? 자연스러운 어퍼 스윙을 하는 겁니다.”

    “아니요. 그건 물건을 하늘로 던지는 거고요. 자연스럽게 공 궤적을 쫓아서 올려치는 거라고요.”

    “손목으로 치는 게 아니고 손은 몸의 회전을 그대로 전달만…….”

    “아니, 이해가 안 되면 물어보고……. 아니, 그게 아니고.”

    “다시, 아니요……. 앞으로 나가도 된다고. 뒷다리에 드래그 라인이 생겨도 된다고요.”

    “다시… 다시요……. 던져. 배트를 투수 쪽으로 던져……. 아니, 사람한테 던지면 안 되고…….”

    한 달……. 한 달째 이 말도 안 되는 타격 자세를 익혀 보겠다고 매일같이 녹초가 돼간다.

    나는 한다고 하는데 전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코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이길 때까지 해보자.

    오늘 하루도 시간이 어찌 갔는지 모를 정도로 미친 듯한 훈련을 하고 있는데 코치가 다가온다.

    “김소전 선수. 이제 갑시다. 문 닫을 시간입니다.”

    이 양키놈들, 근성이 없다. 딱 정해진 운영 시간이 끝나면 나가라고 독촉이다. 아직도 몸에 익지 않은 타격 폼.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코치님. 조금 더 연습하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연습장 키 주시면 제가 연습하다 정리하고 새벽에 문 열어 놓겠습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죽도 밥도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어 코치에게 연습장 키를 요청했다.

    “안 됩니다.”

    이렇게 단호할 줄이야. 아무리 나를 못 믿어도 그렇지. 여기 있는 집기들 훔쳐 갈까 봐 키도 못 준다는 건 너무 실망인데.

    “저 나쁜 짓 안 합니다. 혼자 연습하다 가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제자의 진심 어린 부탁에도 선생님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김소전 선수. 연습이 부족하면 내가 먼저 연습하라고 시킬 겁니다. 김소전 선수 연습량이 부족하지 않아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연습량 자체는 충분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많아요. 난 김소전 선수에게 연습장에서 스윙을 더하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코치님 전 성공하고 싶습니다. 더 좋은 타자가 되고 싶어요. 할 수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학생을 딱하게 바라보는 선생님. 한참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선생님이 애정이 어린 목소리로 조언을 건넨다.

    “훈련을 천 번, 이천 번 하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게 왜 내가 이 훈련을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해요.”

    진정성 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코치.

    “이제는 훈련의 질에 대해서 신경을 써주세요. 한 번을 치더라도 내가 왜 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치면 효과가 훨씬 더 좋아질 겁니다.”

    코치의 단호한 조치에 아무 말 못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코치가 무슨 소리를 하는 줄은 알겠는데 아직 내 것으로 확실히 만들지 못했기에 불안하다.

    안 되겠다. 주차장에 가서 나 혼자라도 빠따를 돌려봐야겠다.

    * * *

    “조 단장, 스프링 캠프 간다고 보고하려고 전화한 거야?”

    - 아니.

    오랜만에 롱디 전화 데이트를 하는 남녀가 처음부터 냉랭하다.

    “이봐. 단장이 구단주에게 보고를 잘해야지. 다 자기 맘대로 한다니까.”

    - 됐고. 그 XX 전화 좀 받으라고 해요.

    “응? 누구?”

    다른 남자를 찾는 여자의 목소리에 남자의 심기가 불편해진다.

    - 박현민이 XXX. 그 XX 사무실로 튀어오라고 하세요. 안 들어오면 나한테 죽는다고도 전해 주고요.

    “왜? 내 친구에 왜 관심이 그렇게 많아?”

    여자가 남자의 친구에게 관심을 두자 질투심이 폭발한 남자의 목소리가 사나워진다.

    - 그 XX가 김소전 에이전트 계약한 건 알아요? 김소전 만나서 연봉 협상해야 하는데, 이 XX가 1억 밑으로는 계약 안 한다고 내용 증명 보냈다고요!

    수화기 밖에서 뭔가가 구겨지는 소리가 들린다.

    - 작년에 규정 타석도 못 채운 신인 나부랭탱이가 1억을 달라는 게 말이 돼요? 지금 같이 있는 거 아니까 내일까지 안 들어오면 김소전 임의 탈퇴시켜 버린다고 확실히 전해요.

    여자가 남자의 기분은 살피지도 않고 다른 남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하자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선수를 무슨 단장 마음대로 임탈을 시켜! 선수 동의받아야지! 그건 그거고, 김소전이 에이전트 계약했다고? 누가 그래?”

    - 옆에 물어보라고요. 나 진짜야. 김소전 임탈시킬 거예요.

    롱디 연애에 지친 여자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당황한 남자가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기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야! 너 김소전이랑 계약했냐?”

    “아, 그게 김소전이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더라고. 그래서 내가 케어해 주려고.”

    “너 나랑 여기서 동영상만 보고 있는데 걔를 언제 만났어?”

    “아, 통역. 김소전 통역하는 애 내가 소개해 줬잖아. 걔가 계약서 받아 왔어.”

    벙찐 남자가 사실 관계 파악에 들어간다.

    “네가 죽고 싶구나. 내 선수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이것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거 있으니까 다음 거부터 확인하자. 연봉 협상이 안 된다는데 그건 뭔 X소리야?”

    남자의 물음에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친구.

    “야, 조수아가 최강훈은 7천5백 주면서 김소전은 3천5백 준다잖아. 선수가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냐? 내가 1억 달라고 하면서 안 주면 연봉 조정 신청한다고 구단에 내용 증명 보냈다. 봐라. 내가 이번엔 조수아 이긴다. 진짜야!”

    사건을 전말을 파악한 남자가 분노를 표출한다.

    “이 미친 XX야! 3년 차 미만은 연봉 조정 신청 안 되는 거 모르냐! 얘 이제 1년 뛰고 무슨 연봉 조정 신청이야! 이 멍청한 XX야! 넌 에이전트 자격을 어떻게 딴 거야!”

    “야! 신청이 되든 안 되든 그게 뭔 상관이야. 내 의지를 표현한 거지! 구단이 이따위로 나오면 나 선수 권익을 위해서 드러누울 거야! 조심해!”

    “조심하긴 뭘 조심해! 아주 처맞는 소리만 하고 있어!”

    다음날 지역 신문에 작은 기사가 하나 실렸다.

    [지역 내 허름한 호텔에서 남자 둘이 기괴한 장비를 끼고 가학적 행위를 한 것에 대해 경찰이 조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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