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23화 (23/204)
  • 23화. 출장

    * * *

    “조 단장, 수고했어요.”

    “구단주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잠실 모 커피숍에서 만난 구단주와 단장이 서로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나눈다.

    “기대했었는데 성적이 좀 아쉽네요.”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도 전년도 우승 팀이었는데, 전 한국 시리즈 진출까지는 기대했었습니다.”

    구단주의 질책에 단장이 예쁜 입술을 꼭 깨문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얘기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성적에 대한 책임은 단장입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책임지겠습니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일관하던 조수아 단장이 낮은 모습을 보이며 사과를 하자 앞에 있는 구단주가 끈적거리는 눈빛을 하며 젊은 여 단장을 바라본다.

    “어허, 그러면 내가 뭐가 돼.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잘 안 될 때도 있고 잘될 때도 있고 그런 거지. 나처럼 하는 일마다 다 성공하는 게 쉽나. 난 조 단장 다 이해해.”

    왜인지 모르겠지만 눈을 반쯤만 뜨고 자기를 훑어보는 시선을 느낀 단장은 속에서부터 몸서리가 쳐졌지만 아무래도 뒤에 나올 중요한 말을 들어야 할 것만 같아 꾹 참고 버텨본다.

    “그래서 말인데, 조 단장. 내가 조 단장하고 조용히 얘기를 좀 할 게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얼굴까지 가까이 들이밀고 느끼한 시선을 던지는 구단주.

    단장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참아본다.

    “우리, 시즌도 끝나고 그래서 내가 미국으로 여행을 좀 가려고 하거든…….”

    앞에 있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구단주. 느끼한 눈빛도 모자라 단장이 부들거리면 잡고 있는 커피잔에 자기 손을 덥석 올려놓으면서 목소리까지 끈적거리게 말을 이어 나간다.

    “내가 비행기 표를 예약했는데 빈자리가 하나 생겨서 말이지.”

    구단주의 끈적거리는 손에서 잽싸게 빠져나온 곱디고운 손을 탈탈 털어버린 단장이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말을 끊는다.

    “구단주님, 스프링캠프에 참관 오시겠다면 불편한 것이 없도록 자리 만들어 놓겠습니다.”

    단장의 반격에 흠칫 놀란 구단주가 정색한다.

    “아니, 조 단장. 나 스프링캠프 안 가. 내가 거길 왜 가? 어차피 집에서 CCTV로 볼 건데. 안 가도 돼.”

    단장은 미국에서 빌려 쓰는 시설의 CCTV를 집에서 어떻게 볼 수가 있는지 잠시 궁금증이 생겼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곧 대화에 집중한다.

    “조 단장~”

    여전히 굴하지 않고 더럽고 역한 표정과 목소리를 내는 구단주.

    돈 가진 놈이 왕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단장이 앞에서 꾹 참고 듣고만 있는다.

    “내가… 진짜 여행을 같이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알잖아. 내가 사람을 좀 타. 아무나 같이 가자고 얘기하지 않아. 조 단장. 아니, 조수아. 내가 이렇게까지 부탁은 안 하려고 했는데…….”

    더는 참고 들어줄 수가 없던 여자가 깊은 한숨을 내뱉고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죄송합니다, 구단주님. 저는 구단주님과 함께 여행을 갈 수가 없습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단장의 거절에 구단주가 정신 줄을 놓는다. 한참을 얼어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다. 현실과 욕망의 괴리감이 한 번에 좁혀지자 온몸을 부르르 떨며 화를 내기 시작한다.

    “야! 무슨 그딴 더러운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너랑 여행을 왜 가!”

    “뭐? 갑자기 더러워! 네가 지금 그딴 식으로 얘기했잖아. 나 지금 고소하려다 참는 거야!”

    “고소? 해! 고소! 내가 너랑 여행을 왜 가!”

    “나랑 여행 가는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그렇게 역겨운 표정을 짓고 있어!”

    “너 말고! 김소전! 김소전 데려가려고! 너 말고!”

    “김소전! 기껏 변명이 김소전이야!”

    주먹으로 싸우지만 않았지, 눈과 말로 치고받은 두 사람이 주변의 눈치를 보고는 톤 다운을 하고 대화를 정리한다.

    “그러니까, 김소전을 데려다 과외를 시키겠다?”

    “그렇지.”

    “그걸 2군 감독 김민중한테 얘기했더니 반대를 하더라?”

    “그렇지. 우리 선생님들이 충분한데 왜 과외를 시키냐고 하더라고.”

    “그래서 몰래 빼갈 건데 눈감아 줘라?”

    “그렇지.”

    “그것도 비활동 기간뿐만 아니라 스프링캠프까지 통으로 빼달라?”

    “역시. 조 단장 빨라. 그거지.”

    “그게 말이야, 방귀야! 신인이 스프링캠프 안 가고 혼자 무슨 운동을 해! 그것도 모자라서 팀 훈련도 안 하고 무슨 훈련을 혼자 하느냐고! 정신이 있어, 없어!”

    단장에게 귀따갑게 욕을 들어먹은 구단주가 지지 않고 반항을 시작한다.

    “김소전이 무슨 팀 훈련이 필요해! 얘 수비하는 거 못 봤어? 얘가 부족한 건 타격밖에 없어. 내가 타격 해결해 줄 테니까 나만 믿어. 얘 없이 내년에 외야 어쩔 건데?”

    정신 줄 놓고 혼자 떠드는 구단주를 바라보던 단장이 나지막이 한 사람을 입에 올린다.

    “최강훈.”

    “뭐?”

    “최강훈. 얘도 멘탈만 잡히면 될 애야. 애도 해결해 줘.”

    갑자기 등장한 이름. 구단주가 들으면 안 될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학을 뗀다.

    “그 XX, 고칠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구단주가 고질병을 고칠 방법을 알고 있다는 말에 단장의 눈이 두 배로 커진다.

    “뭔데?”

    “매! 미친개는 매가 약이지. 기생오라비같이 생겨가지고 하는 짓이 하나도 마음에 안 들어.”

    선수를 패서 키우겠다고 얘기하는 구단주를 바라보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단장. 그러다 구단주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생각해 내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빈정거린다.

    “꼭 지보다 잘생긴 애들한테는 이런 반응이더라. 아, 그래서 김소전, 김소전 노래를 부르는구나. 너 닮아서?”

    단장의 수준 높은 도발에 걸려든 구단주.

    “누가! 누가 누굴 닮아! 어디 그런 생기다 만 놈을 나 같은 귀공자에 들이대! 미쳤어!”

    “귀공자가 무슨 뜻인지 몰라! 국어사전 찾아줘? 어디 그런 X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커피숍 알바가 두 번이나 와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나서야 진상 손님의 말싸움이 조금 잦아들었다.

    “김소전 빼줄게. 대신 나도 조건이 있어요.”

    “뭔데?”

    “감독. 감독 교체.”

    “뭐? 양상도 감독님을 바꾸겠다고?”

    “바꿔줘요.”

    “왜? 성적 안 나서? 그거야 우리 팀 뎁스가 안 좋아서 그런 거지, 운영에 납득이 되잖아.”

    “그러니까 바꿔줘요.”

    “왜! 왜 그래야 하냐고!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감독이 몇이나 되는 줄 알아?”

    “너무 정상적이니까. 세 보이지만 사람이 너무 좋아요. 애들 독하게 몰아붙일 땐 몰아붙이고 고참들 찍어 누를 땐 찍어 눌러야 하는데 선수들을 너무 자식들처럼 바라봐요. 팀을 추스르는 거면 좋은 감독인데 우승하려면 부족해요. 바꿔줘요.”

    시즌 끝나자마자 가을 야구 진출한 감독을 바꿔 달라는 단장의 요청에 구단주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혹시 너……. 성적 안 나온 거 감독한테 떠밀려는 거 아니야?”

    구단주의 소심한 물음에 단장이 한심하게 바라본다.

    “쯧쯧. 그래서 사회생활을 어찌할꼬. 싫으면 나 자르고. 내 사표 놓고 갈 테니까 결정하세요.”

    단장이 길고 예쁜 손으로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내려놓는다.

    자기가 뽑은 단장의 사표를 직접 본 구단주의 눈빛이 흔들린다.

    “너 진심이야? 나 이거 진짜 수리한다.”

    “하세요. 성적 안 나오면 단장이 책임져야지요. 날 자르시든지 아니면 다음 시즌 확실히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시든지. 결정하세요.”

    씩씩거리기만 하고 뭐라 말도 못 하던 구단주가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힘겹게 입을 뗀다.

    “감독 누구?”

    “2군 감독 김민중.”

    “한대?”

    “안 한다 그래도 시켜야지요. 김민중 아니면 나이 먹은 FA를 찍어 누를 사람 없어요. 양상도 감독도 힘들어한 일이에요. 그 정도 급은 돼야 해요.”

    * * *

    이건 말도 안 된다.

    내가 전생에 무슨 그리 큰 잘못을 하고 살았다고. 이게 무슨 만행인가.

    이놈의 구단 어떻게든 복수할 거다.

    * * *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에서 패배하고 침울한 팀 분위기 속에서 시즌이 끝났다.

    언제나 시즌 마지막 경기는 이겨야 한다고 들었는데 마지막 경기를 지고 나니 팀도 그렇고 선수 개인도 그렇고 힘들다.

    힘들어도 해는 뜨고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패배하고 서울로 올라와 집에 가서 엄마를 보고는 다음 날 다시 이천 숙소로 들어갔다.

    2군 선수들 위주로 이미 시작된 마무리 캠프. 어차피 1군보다 여기서 머문 시간이 더 길었던지라 위화감 없이 녹아들었다.

    “김소전, 너 여기 왜 왔어? 1군은 일주일 쉬고 합류하라고 전달 못 받았어?”

    은근슬쩍 벤치프레스에 몸을 넣으려고 하는데 매니저가 와서 말을 건넨다.

    “들었는데, 제가 어디 1군인가요. 확대 엔트리에 재수로 들어갔지. 저는 2군 선수잖아요.”

    “너는 진짜 잘될 거다.”

    “감사해요, 형.”

    뭐가 됐든 잘된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안 그래도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잘됐네.”

    “네? 무슨 일 있어요?”

    “어. 너 출장.”

    “출장이요?”

    “어, 미국 출장.”

    미국 출장? 프로 야구 선수가 출장을 간다고? 내가? 나 법적으로 개인 사업자 아니었어?

    “선수가 출장도 가고 그래요? 그게 말이 돼요?”

    “나도 몰라. 되니까 가라고 하겠지. 다음 주에 가니까 준비해.”

    뭐지? 미국 출장? 선수가 무슨 출장을 가?

    이게 무슨 일인가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할 말을 다 한 매니저가 총총총 사라진다.

    “어… 형, 잠깐. 나 어디로 가요? 나 뭐 해야 해요?”

    “나도 몰라. 여행사에서 해피콜 갈 거야~ 거기랑 얘기해.”

    이게… 뭐야…….

    * * *

    대한여행사라는 곳에서 전화가 와서는 다짜고짜 신분증을 보내래서 보내줬다. 신분증을 보내주자 이틀 만에 여권이 나오더니 무슨 수를 썼는지 다음 날 미국 대사관으로 끌려가 면접을 봤다.

    날 두고 뭐 하는 짓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2군 감독인 김민중 감독이 오더니 미국 가서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확실히 버리고 오라고 얘기를 한다.

    감독님께 뭘 배우고 뭘 버리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전력 분석팀에서 날 잡아가더니 또다시 분석기에 넣고 이것저것 찍어대기 시작한다.

    ‘얘들아… 나 뭐 하는 거냐고.’

    정신없는 한 주. 엄마한테 나 미국 출장 다녀온다고 인사를 하자, 아들 성공했다고 좋아하신다.

    ‘가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열심히 하다 오지 뭐.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미국행 당일. 여행사에서 검은 양복쟁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나를 검은 승합차에 던져넣는다.

    어디를 가냐는 물음에 공항으로 간다는 대답만 하고는 아무 말도 안 한다.

    이놈의 구단, 보면 볼수록 미친 게 틀림없어. 너희 나한테 왜 이러냐.

    인천공항으로 갈 줄 알았던 차가 김포공항으로 들어간다. 분명 미국 출장이라고 했는데… 왜 김포로 가지? 불안한 마음이 잔뜩 드는데 공항으로 안 가고 어디 이상한 구석으로 차가 이동한다.

    “저, 저기요. 저 어디 새우잡이 같은 거 팔려 가나요?”

    내 물음에 대답도 안 하는 양복쟁이들. 내 물음을 가볍게 씹어 버리고는 공항 본동 옆 작은 건물로 차를 댄다.

    공항에서 이런 거 본 적이 없는데…….

    이건 완전히 신세곈데…….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전용기라는 걸 타본다.

    “김소전 선수 인사해. 여기는 미국에서 가장 핫한 에이전트 마이클 박. 한국 이름으로 박한민 에이전트야.”

    “아, 안녕하세요.”

    “하… 진짜 이 오징어 XX랑 비슷하게 생기셨네. 안녕하세요. 박한민입니다. 임수검 아시죠? 다저스 1선발. 제가 케어하는 선수예요. 우리 계약서부터 쓸까요?”

    “미친 XX야. 계약서를 왜 써. 내가 내 선수 침 바르지 말라고 했지?”

    “이봐, 이봐. 구단이 선수 권익 보호를 위해서 먼저 에이전트를 소개해 줄 생각을 해야지, 이렇게 앞길을 막아요? 안 되겠다. 소전아. 나랑 계약하고 미국으로 튀자. 이 XX랑 같이 있으면 너만 손해야.”

    저, 저기요……. 뭔 전개가 이 따위시죠?

    전 지금 전세기라는 거 처음 타서 정신도 없는데… 그것도 구단주랑 타는 건 더 당황스럽거든요.

    더군다나 구단주가 구단주 친구랑 쌈박질하는 걸 눈앞에서 보면 어째야 하나요?

    그리고 언제 봤다고 이름을 막 불러대고… 오징어? 오징어라니. 설마 이 앞에 있는 구단주 얘기하는 건 아니죠?

    “전 랩터스가 미국에서 새로운 장비 들여와 모델 하러 간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요?”

    내 대답에 벙쪄 버린 두 사람. 서로를 바라보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너 얘기 안 해줬냐? 크크크!”

    “영어로 했더니 전달이 잘 안 됐나 봐. 크크크!”

    “틀린 말은 아니네. 뉴 타입 새 장비 만들어서 들여와야지. 크크크!”

    “뉴소전! 트랜스 포메이션! 자, 따라 해봐! 트랜스 포메이션!”

    ‘위험하다. 미친놈들이다. 미쳐도 심각하게 미친놈들이다. 도망가야 하는데 비행기가 떠버렸으니 어떻게 도망가지. 여기 낙하산이라도 있는 걸까?’

    “김소전 선수. 우리는 지금 랩터스의 새 장비를 만들러 갑니다. 늙어버린 조영근을 대신해서 향후 10년간 랩터스의 타선을 이끌어 줄 선수. 뉴 타입 김소전을 만들러 갑니다.”

    도둑은 112, 간첩은 113, 불나거나 아프면 119.

    미친놈은? 학교에서 왜 이런 건 안 가르쳐 줬지?

    선생님, 하늘에서 미친놈을 만나면 어째야 하나요.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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