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2화 (2/204)
  • 2화. 2:2 트레이드

    “김소전 선수! 괜찮아요?”

    누가 나를 흔들어 깨우길래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슬쩍 눈을 떴다.

    “괜, 괜찮습니다. 무, 무슨 일이시죠?”

    눈앞에 들어온 광경에 깜짝 놀랐다.

    사무실 한가운데 꼴사납게 누워 있는 나를 내려다보는 낯선 사람들. 아니네……. 이 중 몇몇은 내가 아는 사람인데…….

    그런데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젊지?

    “눈 떠보세요.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입단하자마자 이런 소식 전해서 미안한데 프로라는 게 이런 거야. 가서 잘하면 돼.”

    “쯧쯧. 허우대는 멀쩡한 게 이래서야 원……. 랩터스는 뭘 보고 얘 찍은 거야?”

    랩터스? 내가? 이게 뭐야? 난 지금 엘리펀트 소속인데? 아니지 나 FA지. 나 랩터스에서 데려가나? 거긴 내가 안 필요한데……. 뭐지?

    정신을 못 차리고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나를 익숙한 사람이 부축한다.

    “상철이 형, 고마워. 그런데 형이 여기 왜 있어?”

    왠지 젊은 모습의 상철이 형이 도와주다 말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김소전 선수. 우리가 언제 말 텄나? 어디 1년 차 나부랭이가 매니저님한테 말을 까고 그래? 트레이드됐다고 정신 줄을 놓은 거야? 아, 됐다. 이제 우리 팀도 아닌데. 인성 글러 먹은 놈들은 빨리 내보내는 게 답이지. 랩터스 사무실은 알지? 가서는 개념 좀 잡고 살자.”

    뭐, 뭐라는 거야? 이 형이 갑자기 왜 이래?

    트레이드는 뭐고, 1년 차는 뭐야?

    영문도 모른 채 사무실 밖으로 쫓겨났다.

    이게 진짜 무슨 일이지? 누가 알아듣게 설명이라도 해주라고!

    이게 무슨 일이지 생각을 하면서 잠실야구장을 돌다 보니 익숙한 로고가 보인다.

    [서울 대한 랩터스]

    뭐, 뭐지? 이 로고 바뀌지 않았었나? 이게 뭐야! 뭐냐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머리만 쥐어뜯고 있는데 갑자기 못생긴 사람이 내 허리를 감싼다.

    “하하, 김소전 선수. 김소전 선수가 먼저 오셨네요. 하하. 들어갑시다, 들어가요! 하하! 내가 김소전 선수 모셔오느라고 고생했어요. 하하!”

    뭐, 뭐야……. 이 못생긴 아저씨는?

    나 이 사람 확실히 아는데. 랩터스 전 단장이자 구단주인 한… 한 뭐시기라고 하던 사람인데…….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데 못생긴 아저씨에게 이끌려 랩터스 사무실에 끌려 들어갔다.

    “여러분~ 김소전 선수가 왔습니다~ 하하. 앞으로 우리 팀 에이스가 될 김소전 선수입니다~”

    뭐야? 이 미치광이는. 나 어깨 다쳐서 투수 접은 것도 모르는 거야?

    못생긴 아저씨가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고개도 안 들고 일하는 직원들 사이로 귀여움과 섹시함을 동시에 지닌 아름다운 얼굴의 여인이 다가온다.

    나이 서른에 랩터스 단장을 꿰차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랩터스 시스템을 구축한, 크보 역사상 최고의 단장이라는 평을 듣는 불꽃 파이리. 조수아 단장.

    늑대 같은 남자들 가득한 세상에서 늑대들보다 더한 공격력으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KBO 판을 쥐락펴락한 철의 여인. 그 사람이 나에게 다가온다.

    “구단주라고 내가 봐줄 줄 알아요! 이 계약 무효예요! 무효라고!”

    말로만 들었지 눈앞에서 불꽃 샤우팅을 들으니 심장이 쪼그라들고 손발이 덜덜 떨린다.

    “단장 도장 도용해서 선수 트레이드하는 무개념 구단주가 어딨어요! 지금 법무팀이 고소장 쓰고 있으니까 기대하세요!”

    무슨 소리지? 단장도장을 구단주가 도용했다고?

    “단장이 선수 보는 눈이 없으니까 내가 나서지! 내가 김소전 초딩 때부터 봐서 잘 안다고! 1선발감이야! 1선발! 야잘잘 몰라? 얘는 망할 수가 없어!”

    “야잘잘은 무슨! 얘 어깨 박살 난 거 몰라요? 어깨는 회복률이 10%도 안 돼요! 그것도 모자라서 고3 때 재활도 안 하고 경기 뛰는 바람에 투수 끝이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했어요!”

    “그 10%가 터지면 국대 1선발이라고! 나도 얘 수술 사진 구해서 봤거든! 수술 잘됐다니까! 내가 미국이든 일본이든 보내서 고칠 거야! 고칠 수 있다고!”

    못생긴 구단주가 확신에 가득 찬 모습으로 반박을 하자 파이리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비웃는다.

    저 비웃음…도 예쁘네…….

    “아~ 예~ 그렇지요. 아무렴 그러셨겠지요~ 예~ 그런데요! 그게 됐으면 우리가 신인 선발 때 1번으로 뽑았지! 최근 사진 안 봤지? 얘 재활을 못 해서 근육이 안 돌아온다고! 얘 안 된다고! 투수 안 된다고!”

    얼굴하고는 전혀 매치가 안 되게 쏘아붙이는데도 이 옆에 있는 못생긴 아저씨는 무섭지도 않은지 꿈쩍도 안 하고 받아친다.

    “누가 그래! 근육이야 본인의 의지가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고! 물어볼까?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뭐냐, 너희? 나 세워 놓고 왜 너희가 싸우냐?

    “김소전 선수. 투수할 생각 있어요?”

    단장이 한여름에 서릿발 내릴 듯한 표정으로 나를 가리킨다.

    사람이 저렇게 예쁜 얼굴로 어떻게 상대방을 얼어붙게 만드는 기운을 내뿜는지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저… 어깨가 투수할 어깨가 아니라서요. 멀티 백업 말고 투수는 좀…….”

    우물쭈물하는 나를 두고 단장이 소리를 지른다.

    “무슨 신인이 이렇게 패기가 없어! 크게 얘기해! 투수할 수 있어, 없어?”

    사무실이 떠나갈 듯한 고함에 나도 모르게 각을 잡고 대답을 했다.

    “없습니다. 투수 못합니다.”

    씩씩거리던 단장의 눈이 구단주를 향한다.

    “못한다는데?”

    이번엔 못생긴 아저씨가 나를 가리키며 묻는다.

    “못해? 진짜 공 못 던져?”

    “저… 이제는 송구도 좀 힘든데요……. 시키면 하겠지만 1루수라고 생각하셔도…….”

    나한테 왜 그래. 나 경기하는 모습도 안 봤나?

    “얘 투수 안 된다는데?”

    “그러니까요! 안 된다잖아요! 어쩔 거예요! 어쩌냐고!”

    “투수 안 되는 애매한 똑딱이를 어디다 쓰지?”

    “그걸 왜 저한테 얘기하시냐고요! 너님이 데려왔잖아요!”

    저희끼리 소리를 지르더니 애꿎은 나를 쏘아본다.

    저 둘, 눈초리 겁나 무섭네…….

    한참을 쏘아보더니 못생긴 아저씨가 슬쩍 물어본다.

    “저… 김소전 선수……. 소닉스에서 왜 뽑았대요?”

    “네? 저야… 뭐……. 땜빵 백업으로…….”

    “자, 됐네. 2군에 전화해서 슈퍼 백업감 데려왔다고, 잘 키우라고 합시다. 그럼 됐죠? 나 갑니다.”

    “가긴 어딜 가! 구단주라고 이따위로 구단 운영에 개입할 거예요? 이러면 나 여기 다 뒤집어! 가서 계약 무르고 와요! 우리 필승조에 추격조 내주고 데려왔다고! 거기서! 거기 안 서! 서라고! 이 호구 XX야!”

    * * *

    “나 웃으라고 하는 얘기지?”

    웃기냐? 이게? 난 심각한데?

    벙쪄 있는 나를 랩터스의 매니저가 2군으로 모셔다 주었다.

    2군이 있는 이천으로 내려가면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25시즌……. 내가 신인으로 프로에 들어온 그때로 돌아온 나는 2군 엔트리에도 등록되기 전에 같이 잠실을 공유하는 소닉스와 랩터스의 2 대 2 트레이드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현장은커녕 프런트와도 전혀 상의 되지 않은 구단주 독단의 트레이드로 랩터스에서 필승조와 추격조를 내줬고 반대급부로 우타 선풍기와 2025시즌 2차 6번 신인을 받았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랩터스는 계약 무효를 외쳤으나 꽁으로 1군 엔트리 투수 둘을 얻어낸 소닉스가 ‘계약 끝 퉤! 퉤! 퉤!’를 외치자 울며 겨자 먹기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랩터스 2차 10번. 내야수 이수영과 짝을 이뤄 아무의 기대도 못 받는 2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수영이 누구야? 내 기억에 없는 거 보니 너도 얼마 못 가서 야구 접겠구나.

    “나야 구단주가 잘못 데려온 굴러온 돌이라 눈칫밥 먹어야 하지만 너는 왜 나랑 짝이냐?”

    “나도 맨 마지막에 문 닫고 프로 들어왔잖아. 팀에서 기대가 별로 없어. 정말 뽑을 애 없어서 체격만 보고 뽑았다더라. 어쨌든 들어왔으니 해볼 때까진 해봐야지.”

    내가 전생에 랩터스에서 안 뛰어 봐서 몰랐는데 무슨 놈의 구단이 선수에게 이리 솔직히 얘기를 하지? 그래도 신인인데 기도 좀 살려주고 해야지.

    하긴 뭐, 어차피 안 될 거 미리 아는 것도 나쁜 게 아니긴 한데. 그게 내가 할 말이 아니지. 우선 내가 먼저 살고 봐야지.

    랩터스에 오고 나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키 190센티미터 체중 73킬로그램.

    학창 시절 다친 어깨 수술은 잘됐으나 투수할 만큼 회복은 안 됐다는 진단이 나온 것도 모자라 기초 체력부터 시작해 몸 자체가 프로에서 한 시즌 버틸 몸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어쩜 그렇게 전생의 신인 때랑 똑같은 평가가 나오는지. 그때도 몸이 안 되는데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가 다치고 그랬는데. 이놈의 몸뚱이는 여전하구나.

    그래도 그때는 팀 뎁스가 약한 재규어스로 트레이드돼서 경기도 뛰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1군은커녕 2군에서도 경기나 나갈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옆에 있는 허우대만 멀쩡한 2차 10번, 전체 100번을 보니……. FA는 둘째치고 당장 내년 재계약이나 할 수 있을지.

    그때고 지금이고 내 뒷바라지만 하는 가족들은 이번에도 고생만 해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암울한 앞날을 그리고 있는데 멀리서부터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기 신인들, 몸 다 풀었으면 모여! 체력 훈련 시간이다!”

    덩치가 무슨 곰 같은 무서운 아저씨가 실실 쪼개면서 신인들을 불러모은다.

    저, 저 얼굴… 어쩐지 먹잇감을 노리는 야생 동물 같은데…….

    “와우! 친구들! 내 소개를 시작하지. 나는 오늘부터 신인들을 관리할 트레이너 박복휘다. 이름 부르기 어려우면 내 머리 보고 그냥 빡빡이 쌤이라고 부르면 된다.”

    헐……. 어디 계란 같은 머리를 해 가지고 왜 그렇게 느끼하게 바라보는 거야. 개기자니 저 팔뚝을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꺾여 개기지도 못하겠고……. 여긴 직원들이 왜 다 이 모양이야.

    “신인 친구들. 친구들 중에 1군에 등록될 친구들이 없다고 들었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친구들 몸을 만들어 주려고 해. 내가 지금부터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빡빡이 짐을 보여줄 테니까 같이 열심히 해보자!”

    알 수 없는 말을 던진 짐승이 신인들을 거대한 건물로 데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내 생전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뭐, 뭐냐……. 저 거대한 헬스장은……. 랩터스가 돈이 썩어나서 돈 지랄 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건 좀…….

    “친구들, 오늘은 친구들 첫날이니 아주~ 낮은 강도로 친구들 몸 상태를 확인할 거야. 오늘은 체크만 하는 거니까 너무 약해도 실망하지 말고 운동하도록 하자~”

    “선생님은 실망했다. 프로라는 사람들이 3대 500도 못 치고 언더아머를 입는 건 용납이 안 된다. 내일은 단 100그램이라도 더 들 수 있도록 근손실 안 나게 유의해라! 좋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그럼. 안녕!”

    케… 켈… 켁……. 쿨럭……. 수, 숨이 안 쉬어진다.

    미, 미친놈……. 여기 아무래도 이상하다.

    내가 야구 선수지, 헬스 선수냐!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원치 않는 단장이 나 엿 먹이려고 작정한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미친놈을 트레이너로 붙일 수가 없다.

    두고 봐라, 파이리. 내가 악착같이 1군 올라가고 FA 돼서 다른 팀으로 도망간다! 꼭 간다! 두 번 간다!

    뭐… 나보고 잘못했다고 웃어주면 예쁘니까 봐줄 수도 있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