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1화 (프롤로그) (1/204)
  • 100억 FA선수가 되다

    1화. 프롤로그

    “단장님! 저 계약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김소전 선수. 제가 바빠서요. 계약은 운영팀장이랑 나누세요.”

    회의실을 나와 총총히 걸어가던 단장이 속도를 늦추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간다.

    그래, 나 같은 선수를 단장이 신경이나 쓸까. 휴…….

    “팀장님. 저 FA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 FA? 김소전 미쳤어? 네가 무슨 FA야? 등록 일수는 채웠어?”

    “연차가 되다 보니까……. 헤헤.”

    운영팀장이 들고 있던 종이컵을 구기면서 한마디 한다.

    “이젠 개나 소나 다 FA고만. 가서 저기 김 과장한테 물어봐. 내년에 너 필요한지부터 물어보고 와.”

    개나 소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태 뛴 선수한테 개나 소나…….

    참자. 참아야지. 야구도 못하는 게 참아야지.

    “정 과장. 저 FA 때문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정 과장이 빼꼼히 머리를 내민다.

    “아, 진짜. 형, 나 바쁜 거 안 보여? 형은 뒷순위니까 가봐. 지금은 차례 아니야.”

    지 할 말만 한 정 과장이 다시 고개를 파묻는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나 FA 신청해도 되는지 그거 물어보려고…….”

    이제 이놈이 고개조차 들지 않고 지껄인다.

    “형, 내년 연봉 1억. FA 신청하면 계약금 2천에 연봉 8천. 단년 계약.”

    다른 건 들리지도 않았다. FA 신청하면……. FA 신청하면…….

    “고맙다.”

    시즌이 끝나고 FA 대상자가 발표되었다.

    아무도 관심 없는 FA 선수지만 그래도 지금껏 끈질기게 버티고 버텨 얻어낸 기회.

    남들 100억씩 받을 때 총액 1억짜리 단년 계약이지만 그래도 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FA 신청을 하고 작은 인터넷 신문과 인터뷰도 했다.

    “김소전 선수. 이번에 FA 신청을 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이 팀 저 팀 돌아다니면서 14년을 뛰었더니 얻게 된 감사한 기회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응원해 주신 팬들께 감사드립니다.”

    팬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에 앞에 있는 리포터가 풋 하고 코웃음을 쳤다.

    나도 안다. 나 팬 없는 거. 나도 아는데, 사람 앞에 두고 그따위로 웃어야겠냐?

    속에선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꾹 참고 웃는 낯으로 인터뷰를 이어 간다.

    “이번 시즌 연봉이 1억 2천만 원이었습니다. 백업으로는 아직도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지만 많은 금액을 받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요. 김소전 선수의 FA는 얼마일까요?”

    리포터의 물음에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고등학교 2학년에 전 경기 완투하며 우승. 2학년으로 대회 MVP. 대회 끝나고 어깨 부상, 수술.

    3학년에 재활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좌익수로 최다 안타. 대회 우승.

    2차 6라운드 프로 진출.

    1년 차 유니폼에 잉크 마르기도 전에 2 대 2 트레이드.

    신인 때 배워야 할 것들도 못 배우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 대로 버티고 또 버텨냈다.

    악착같은 승부 근성과 팀에 대한 헌신적인 워크에식으로 내야 외야 가리지 않고 전 포지션을 전전하며 팀의 제2의 백업으로 10개 팀 중 5개 팀을 돌아다니면서 프로 14년을 뛰었다.

    규정 타석을 채운 적도, 3할을 쳐본 적도 없지만 그 누구보다 팀 승리를 위해서 열심히 뛰었다.

    그렇게 잡초처럼 버티고 버텨 성공한 사람만 얻을 수 있다는 FA 자격을 따냈다.

    “100억.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구단이 얼마를 제시하든 저 스스로는 100억짜리 선수입니다.”

    편안하게 진행되던 인터뷰장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할 말을 잃은 리포터가 다음 질문을 하지 못하고 버벅거리고만 있다.

    “하하. 제가 생각하는 제 금액이 그렇다는 거고요. 협상은 해봐야지요. 파격 세일로 디스카운트 해드릴 수도 있어요.”

    그래. 99억은 빼줄 수도 있다.

    * * *

    FA 협상 당일.

    잘나가는 선수들은 12시 땡 하면 전화기에 불이 붙는다는 소리는 귀가 따갑게 들었다.

    물론 나같이 별 볼 일 없는 선수들은 S급, A급, B급, C급까지 협상을 마치고 S급, A급, B급, C급 선수들 연봉 협상까지 끝나고도 연락이 안 온다는 소리도 귀 따갑게 들었다.

    그래도 사람인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염없이 전화기만 바라본다.

    11시 50분. 11시 55분. 11시 59분. 11시 59분 30초…….

    심장이 콩닥콩닥거린다.

    우리 팀 전력상 아직은 내가 필요하다. 작년보다 2천 깎아서 1억에 연락해도 바로 도장 찍는다.

    다 좋으니 나 기분 좋으라고 전화만 해줘라. 그러면 바로 찍는다.

    12시…….

    고요하다.

    12시 1분. 12시 2분. 12시 3분.

    아파트 전체가 고요하다. 매일같이 뛰어다니던 윗집 애들도 조용하고 매일같이 부부 싸움하던 옆집 신혼부부도 조용하다.

    그래. S급들부터 챙겨야지. 그래……. 다 이해한다. 비즈니스인데……. 다 이해해.

    1시. 2시. 3시…….

    그래. 구단도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하기 미안하니까 밤엔 안 하겠지. 내가 S급도 아닌데. 그래, 다 이해한다.

    배려심 깊은 것들. 다 이해해. 아침에나 전화하겠네.

    4시. 5시…….

    눈을 감고 침대에 몸을 뉘어도 정신이 멀쩡하다. 한참 동안 누워 있다 핸드폰을 들여다봐도 5분이 채 안 지나있다.

    나쁜 놈들. 연봉도 깎겠다는 놈들이 전화도 안 하다니…….

    제발……. 아침 9시에는 전화 꼭 해라…….

    9시. 여전히 전화가 조용하다.

    10시. 전화기가 꺼질까 봐 충전기를 꽂아본다.

    12시. 1시. 2시…….

    대형 계약이라도 터지나……. 그래, S급 계약이면 어쩔 수 없지. 내가 홈런 40개씩 치는 타자는 아니니까. 다 이해한다.

    하루, 이틀, 사흘…….

    다크서클이 내려가다 못해 어깨까지 닿았다.

    머리 뒤쪽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게 원형 탈모라도 오는 느낌이다.

    나흘……. 닷새……. 엿새…….

    이대로 있다간 내가 먼저 말라 죽겠다. 물어라도 보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지 일주일 만에 구단 사무실에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언제나처럼 나에게 관심 갖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

    쳇……. 인정머리 없는 놈들…….

    “김 과장, 바쁜가 봐. FA 선수가 왔는데 커피라도 한 잔 줘 봐~”

    그나마 말 통하는 김 과장을 찾아가 너스레를 떨어본다.

    “하……. 저랑 얘기하지 마시고 우리 팀장님 찾아가 보세요. 저는 권한이 없어요.”

    이 싸가지. 사람이 왔는데 눈도 안 마주치고 틱틱거린다.

    그래도 아쉬운 건 나니까. 뭐 어쩌겠어.

    아쉬운 놈이 우물을 파야지…….

    책상에 등 돌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계신 운영팀장님 앞에 섰다.

    “팀장님. 김소전입니다. 재계약 상의 좀 드리려고요.”

    꾸벅꾸벅 졸던 운영팀장이 침을 닦으며 돌아본다.

    “쓰으읍. 아이고, 이게 누구셔. 100억 선수 아니셔. 어쩐 일이야. 우리가 모시러 가도 모자라는데 여기까지 오셨어, 그래. 허허허.”

    뭐, 뭐지. 이 반응은?

    “팀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 내년에 1억이라고 들었는데요. 계약금 2천에 연봉 8천, 단년 계약. 계약서 주시면 바로 사인하겠습니다.”

    방금까지 정신 못 차리고 주무시던 운영팀장이 자세를 고쳐 앉고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김소전 선수. 우리는 김소전 선수와 계약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른 팀 알아보시고 그쪽이랑 계약하세요.”

    뭐? 갑자기? 갑자기 계약할 생각이 없다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연봉까지 결정되어 있던 거였잖아! 이게 무슨 일이야!

    “팀장님. 갑자기 이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김 과장하고 계속 얘기했었는데요. 연봉 2천 깎여도 괜찮습니다. 제가 아직 은퇴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올해 맡은 역할,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운영팀장이 날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말한다.

    “김소전. 실력으로 보면 아직 우리가 잡아야 할 선수지. 대수비, 대주자로도 충분하고 애들한테 본보기 될 만한 선배기도 하고…….”

    뭐냐? 왜 그래? 말이 좀 이상하잖아.

    “그런데 말이지. 우리가 야구단을 왜 하는 줄 알아?”

    팀장이 가빠오는 호흡을 견디지 못하고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구단이 그룹 홍보하려고! 그룹 홍보하려고 하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뭐? 100억? 1년에 홈런도 아니고 안타 50개나 칠까 말까 한 선수가 100억? 지금 인터넷에서 우리가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줄 알아? 우리 회장님이 지금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줄 아느냔 말이야! 동바 형! 동네 바보 형! 너 같으면 이딴 소리 듣고 일 년에 200억, 300억씩 쓰고 싶겠어!”

    소리를 지르다 못해 팀장이 이제는 눈까지 빨개져서 내 귀에 쇠 긁는 소리를 때려 박는다.

    “그룹도 경영 실적이 박살이라 야구단 해체를 하느니 마느니 하는데, 은퇴시켜도 모자랄 퇴물 백업을 100억에 FA 계약해 주는, 초딩도 안 할 구단 운영을 한다는데 어쩔 거야? 이거 어찌 감당할 거야!”

    저 사람……. 저 눈빛 진심이다.

    “우리 사장님이 그룹에 끌려가서 무슨 소리를 듣고 왔는지 알아! 돈이 남아돌아서 운영을 그따위로 하냐고, 지원금 깎겠다는 소리를 들었어! 알아? 지금 너 때문에 다른 선수들 연봉 총액이 깎였어!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그런데 뭐? FA? 장난하냐? 지금 나 놀리려고 그래? 100억이고 뭐고 다른 팀에서 받으시고 그 팀으로 가세요.”

    벙쪄 있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팀장이 물 한 컵을 벌컥 들이켜더니 쐐기를 박아버린다.

    “어떤 덜떨어진 놈이 데려갈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상 선수까지 알뜰하게 챙겨 받을 테니까 그리 아세요.”

    내 앞날까지 설계해 준 팀장이 잠깐 허공을 보면 뭔가 기억을 정리한다.

    “김소전이 에이전트도 없지? 그러니까 어디 이상한 기자 새끼들한테 낚여서 그딴 인터뷰나 하고 있지. 괜히 나 더 열 받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 아니다, 나가는 길에 락커 가서 짐도 싹 빼서 가!”

    단 한마디도 대꾸할 수가 없었다.

    100억…….

    내가 100억을 받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나 스스로에게 가치를 매겨보면 100억짜리 선수라고 자평을 한 것뿐인데…….

    그게 뭐가 그렇게 잘못한 거라고…….

    내가 술을 먹고 운전을 하기를 했어, 도박을 하기를 했어. 그저 나 스스로의 자존감을 표현한 것뿐인데 그게 무슨 세상 무너지는 잘못이라고 다른 선수들 연봉까지 깎아 먹는 쓰레기가 돼야 한단 말인가.

    사무실을 떠나 락커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두 눈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고등학교 우승할 때도, 어깨 수술할 때도, 트레이드를 세 번, 네 번 당할 때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흐른다.

    억울하다. 그저 억울하다.

    100억 받기나 하고 먹튀라도 돼보고 모욕당하면 돈이라도 남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욕만 먹으니 더 억울하다.

    텅 빈 락커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멈출 것 같아 고개를 들면 다시 눈물이 흐르는 게 멈출 생각을 않는다.

    고개 드는 걸 포기한 채 얼굴에 눈물을 다 묻히고 락커를 정리한다.

    첫 안타, 첫 홈런, 끝내기 안타, 20도루 베이스…….

    남들 몰래 구석에 꼭꼭 숨겨 놓은 나만의 마일스톤들부터 가방에 꾹꾹 눌러 담는다.

    남들은 트로피가 몇 개씩인데……. 나한테는 이게 전부네…….

    내야, 외야, 1루 미트를 챙기고 스파이크, 배트도 챙기고, 유니폼도 챙긴다.

    14년 동안의 기억을 하나씩 되짚어 보며 물건을 집어넣으니 어느새 날이 저물고 밤이 되었다.

    큰 가방을 둘러매고 양손 가득 가방을 들고 밖에 나오니 오늘따라 유난히 더 춥기만 하다.

    10년 된 중형차에 짐들을 쑤셔 넣는다.

    락커에서 짐을 빼고 차에 쑤셔 넣은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오늘은 마지막, 정말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기분이 더욱 처진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시동을 걸 기운도 안 생긴다.

    그대로 누워 잠깐, 아주 잠깐 눈을 붙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