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53화 돌발 변수 (3)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부작용으로 사망한 병사들의 장례식이 끝나고 닷새가 지나면서 임정과 국군은 다시금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상으로 돌아온 임정과 국군의 상층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피드백이었다.
“코람 캐피탈의 남아있는 돈을 모두 끌어모아서라도 제약회사에 대한 투자를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겠습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느끼셨겠지만, 질병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특히나, 장차 수복해야 할 본토의 위생상황을 생각하면 말입니다.”
정 수석차관의 보고에 비상 국무회의에 참석한 주석과 각료들, 그리고 고 제독과 송 소장을 비롯한 군의 장성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투자라고 한다면 어느 회사를 인수를 할 생각인가 ”
“지금 9전단의 군의관들이 관련 자료를 추리고 있습니다.”
정 수석차관의 보고에 고 제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군의관들이 ”
“약에 관한 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이들이 그들입니다.”
“흐음….”
정 수석차관의 설명에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앞으로 수복해야 할 본토의 낙후된 위생상황을 잘 알고 있고, 지금도 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천연두 사건 이후, 9전단의 군의관들은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서적과 LA병원들의 진료 기록을 뒤져 앞으로 걸릴지 모를 전염병들의 유형을 조사하고 백신의 보유여부를 파악하고는 강제접종을 실행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휴식기를 거치고는 구충제를 강제적으로 복용시켰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임정의 일과는 멈춰 섰고, 견디다 못한 고 제독이 군의관들에게 따지고 들었다.
“이건 과민반응 아닌가 ”
고 제독의 물음에 차석군의관은 전혀 아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는 미국입니다. 하지만 21세기와 비교하자면 21세기 일반가정의 위생상태가 이 시기 미국 병원의 위생상태보다 우수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본토라면 거기에 과도하다 싶을 청도로 청결과 위생이 강조된 환경에서 나고 자란 21세기 사람들이라면 심하게 표현하자면 발가벗고 똥통에 뛰어드는 꼴일 겁니다.”
“그래도 다들 건강하니 괜찮지 않을까 ”
“그러다 둘이 죽었고 78명이 죽다 살았습니다. 제독님. 지금 이건 21세기의 우리들이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것입니다.”
차석 군의관의 단호한 대답에 고 제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네. 이쪽은 자네들이 전문이니 잘 하겠지… 그래서 말인데 제약업체 건은 잘 진행되고 있나 ”
“이미 추천업체 정해서 정 수석팀… 아니 정 수석차관에게 전달했습니다.”
차석 군의관의 대답에 고 제독은 반색을 하며 물었다.
“그래 어느 제약사인가 괜찮은 회사인가 ”
“21세기에는 거대 제약사입니다만… 지금은 중소 화공기업입니다.”
“응 ”
군의관들의 추천을 받은 회사는 화이자(Pfizer)였다.
* * *
“화이자입니까 ”
“그렇습니다.”
“왜 화이자죠 다른 제약사들도 많은데 ”
추천회사의 이름을 받아든 정 수석차관은 군의관들에게 그 이유를 따지고 들었다.
“페니실린의 대량생산에 성공한, 아니 성공할 회사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생산 중심의 제약사가 아니라 연구 중심의 제약사입니다.”
“흐음….”
정 수석차관은 콧소리를 내면서 군의관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정보를 아신 겁니까 ”
“군의관도 의사고, 영업사원들이 참 자주 찾아오죠. 설명회나 간담회도 자주 초대되고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빠짐없이 들려주는 게 회사 연혁이 들어 있는 브로슈어죠.”
“아….”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파이자는 출발이 연구 중심 제약사입니다. 그렇다면 독립 후, 한국에 적어도 아시아 지역을 책임질 수 있는 합자회사를 만들 수도 있겠죠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군의관들의 설명을 들은 정 수석차관이 서류를 챙기자, 차석 군의관이 다른 보고서를 내밀었다.
“이건 뭐죠 ”
“조금은 정치적인 문제가 걸린 것인데, 혹시 친한 미국 정치인이 있으시고, 그 정치인이 괜찮은 양반이라면 좋은 카드가 될 것입니다.”
차석 군의관의 설명에 보고서의 커버를 열고 내용을 확인한 정 수석차관이 놀란 얼굴로 차석 군의관을 바라봤다.
“터스키기 매독실험 이건 어디서 얻으신 정보입니까 ”
“의료 윤리학 시간입니다.”
“잘 써먹겠습니다.”
* * *
정 수석차관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풀어 파이자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던 정 수석차관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쯧! 한발 늦었다! 쉽게 갈 수 있었는데!”
그가 본 것은 화이자의 상장 안내문이었다. 화이자의 주식 상장일은 1942년 6월 2일. 지금은 7월 중순이었다.
“쯧. 결국은 웃돈 주고 사야겠군.”
가볍게 혀를 찬 정 수석차관은 주석에게 보고할 기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동포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면 억만금이 아깝겠나, 시행하게.”
보고서를 받은 김 주석이 시원하게 결재를 하자마자 정 수석차관은 바로 코람 캐피탈의 자금을 동원해 파이자의 주식을 손에 넣기 시작했다.
경영권을 손에 넣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경영에 관여가 가능한 수준의 주식을 손에 넣은 정 수석차관은 바로 파이자를 방문했다.
정 수석차관은 화이자의 임원들을 설득해 아직은 기획안 단계에 불과했던 제스퍼 케인의 ㅤㄷㅣㅍ 탱크(Deep Tank)발효법을 이용한 대량생산 방식을 이용하도록 했다.
“잘못하면 회사가 날아갑니다. 너무 모험적이에요.”
“코람 캐피탈이 투자를 하죠. 그러면 되겠죠 ”
“…잠시 시간을 좀….”
결국, 화이자의 임원진들은 정 수석차관의 제의를 수락했다.
투자와 생산 관련 협약 조인식이 끝나고 화이자의 임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나온 정 수석차관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제 돈 긁어모을 일만 남았군.”
큰 고비 하나를 넘은 덕에 어깨가 가벼워진 정 수석차관은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워싱턴에서 만난 사람은 트루먼이었다.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이군요.”
“LA에서 워싱턴이 멀기는 멀더군요.”
가벼운 안부인사가 오간 다음에 트루먼은 맞은편에 앉은 정 수석차관을 바라봤다.
“그래, 무슨 일인가요 내 알기로는 지난 번 ‘Tokyo Hot'이후로 일본군의 행보가 예상과 달라 다들 골치가 아픈 것 같던데 ”
트루먼의 물음에 정 수석차관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전 후방에서 먹여 살리기 바쁜데 말입니다.”
“먹여 살리기 바쁘다 하하하! 맞는 말이지, 맞는 말이야!”
파안대소를 하던 트루먼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내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오랜만에 웃었군요. 그래 무슨 일인가요 ”
“공중보건국(Public Health Service)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
“공중보건국 흐음… 제 상임위 소관은 아니라 잘 모르겠군요.”
“의원님은 미국이 자랑스러우십니까 ”
정 수석차관의 뜬금없는 물음에 트루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랑스럽다라… 제가 연방 상원의원이라는 것으로 답이 될까요 오히려 그렇게 물은 저의가 궁금하군요 ”
“그럼 흑인들(African American)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Negro말입니까 당연히 미국 국민이지요.”
“그럼 이것을 좀 보시지요. 터스키기 지역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트루먼의 대답을 들은 정 수석차관은 서류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트루먼에게 내밀었다.
서류의 내용을 읽어나가던 트루먼은 냅다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개새끼들(Sons of bitches)!"
갑자기 열이 오르는지 냉수를 들이키며 속을 가라앉힌 트루먼은 정 수석차관을 노려봤다.
“이게 그러니까 1930년대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까지 벌어진 거다 이 말이지요 합중국의 국민을 속여서 생체실험을 해 그러다 내부자 고발로 들통이 나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식사과를 해야 했다 이런 빌어먹을 개새끼들이 있나!”
죽 말을 늘어놓다 다시 열이 뻗친 트루먼은 다시금 냅다 욕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개새끼’부터 시작해 쉬지 않고 튀어나오는 욕설들의 수준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정 수석차관의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였다.
‘내가 미국 연방 상원의원과 앉아 있는 거냐, 공사판 십장과 앉아있는 거냐….’
“후아! 이제 좀 시원하군! 그래, 정 수석차관. 차관은 내가 이걸 멈춰 주길 바라는 것이지요 ”
장장 5분이 넘도록 욕설을 내뱉은 트루먼은 정 수석차관의 의중을 물었다. 트루먼의 물음에 정 수석차관은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반은 그렇습니다만, 절반은 그렇지 않습니다.”
“절반은 그렇지 않다 ”
“이런 말이 있지요. ‘숨기면 범죄지만 대놓고 하면 합법이다.’ 어떻습니까 ”
정 수석차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고개를 갸웃하던 트루먼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계산 빠른 정치인이었던지라 바로 의미를 깨닫고는 인상을 구겼다.
“그 말은… 내 생각이 맞는다면 좀 더러운 수 같소만 ”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십시오. 겨우 몇백 명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와 몇천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 어느 것이 더 도움이 될까요 ”
“그렇긴 하지만….”
말을 흐리며 갈등을 하던 트루먼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대통령께 바로 말씀을 드리겠소.”
“감사합니다. 첨언하자면 대통령의 사과나 위안이 덧붙여진다면 흑인들의 충성도와 지지도 또한 올라가겠지요 ”
“감안하지요.”
고개를 끄덕이던 트루먼은 정 수석차관을 노려봤다.
“그런데, 왜 나를 도와주는 것이지요 ”
“의원님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을 돕는 것이지요. 앞으로 제 조국이 독립을 하게 되고, 조국의 동포들이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서는 미국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서로 도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트루먼 의원님이 확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하다 ”
“Yes or No가 확실하시지 않습니까 거기에 더해 책임도 확실히 지시고 말입니다.”
정 수석팀장의 말에 피식 웃은 트루먼은 정 수석차관이 가져온 서류를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았다.
“이번 일, 내가 책임지지요.”
트루먼은 그의 장담대로 확실하게 일을 진행했다.
미국 전역의 일간지마다 ‘부도덕한(Immoral)’, ‘비인간적인(Inhuman)', '행정살인(Administrative murder)’이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달린 문장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라디오를 탄 것이 백미였다.
“이는 진실로 우리 미국 행정부의 수치스런 일입니다! 자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는 것은 불명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흑인 역시 우리 미합중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입니다! 링컨 대통령과 남북 전쟁에서 죽은 그 수많은 병사들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일인 것입니다! 본인은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이를 용서치 않겠습니다!”
루즈벨트는 그의 다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공중보건국의 최고 간부부터 말단까지 사건에 연관된 모든 이들이 그 자리에서 쫓겨나 취조실로 향해야 했다.
훗날 ‘6월의 대학살(June Massacre)’이라 불리게 된 사건이었다.
* * *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른바 ‘LA임정’ 당시, 임정과 미국 행정부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이는 ‘Mr.정' 정길수 수석차관이었다.
당시 양국 사이에 관련된 기록에서 그의 이름이 빠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한반도와 관련해 기밀 해제된 문서에 ‘Mr.정’으로 기록된 정길수와 가장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이는 당시 미국 연방 상원의원이자, 루즈벨트의 제3기정권에서 부통령직을 수행했던 해리 S. 트루먼이었다.
FBI의 기밀문서에는 트루먼 의원이 정치적으로 급부상한 뒷면에는 정 수석차관과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의혹이 적혀 있었다.
- 2005년. 2차 대전 종전 60주년 특집 BBC 다큐멘터리.
‘2차 대전 음모론의 총아. 대한민국 해군 9전단’ 6화 ‘또 다른 전선 외교전’의 내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