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22화 밀당… 그리고 공밀레, 공밀레… (1)
샌프란시스코에 그 이름도 유명한 ‘9전단’이 도착했을 때,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지. 그리고 그렇게 모여든 이들이 모두 다 입을 다물지 못했어. 무슨 놈의 배가 그리도 큰 지… 옆에 있던 전함 노스캐롤라이나가 무슨 순양함 같아 보였다니까….
- 빌 무어. 전직 미 해군 수병.
당시 미국의 항공기 제조사, 자동차 제조사, 통신 장비 제조사의 간부들과 엔지니어들이 모조리 샌프란시스코로 몰려갔지. 골드러시의 재림을 보는 것 같았다니까 그 때 나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리퍼블릭 사에 갓 입사한 애송이였는데 뭣도 모르고 샌프란시스코로 갔었지. 거기서 그 ‘전투기’를 봤는데… 죽을 때까지 잊을 수는 없을 거야.
- 마이클 햄턴. 전직 맥도널 더글라스사 엔지니어.
1942년 1월 27일. 대한민국 해군 9전단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기 전까지 전쟁의 판도를 바꿀 신기술들은 막 싹을 틔워 성장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9전단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순간부터 싹은 순식간에 거목으로 자라났다.
- 2005년. 2차 대전 종전 60주년 특집 BBC 다큐멘터리.
‘2차 대전 음모론의 총아. 대한민국 해군 9전단’의 2화 ‘후방 속의 최전선-기술전쟁’의 내레이션 한 토막.
* * *
행사가 끝나고 시민들은 삼삼오오 행사장을 떠나갔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함장의 배를 보고 싶소. 부디 승선을 허락해 주면 고맙겠소.”
“영광입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다소 고풍스런 어조로 승선을 요청하자 한반도 함의 함장 강 대령이 옆으로 살짝 비켜서며 팔을 들었다.
“이쪽으로.”
* * *
현문을 통해 루스벨트가 들어서자 대기하고 있던 의무병이 냉큼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나는 필요 없네만 ”
“한반도는 넓습니다. 기자들이 있을 때는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강 대령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뉘앙스로 대답을 하자 루스벨트는 고민에 빠졌다. 그 모습을 본 루스벨트의 주치의인 로스 맥킨타이어 해군소장이 귓속말로 속삭이자 루스벨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휠체어에 몸을 실었다.
“그럼 좀 부탁하지.”
휠체어에 앉은 루스벨트는 강 대령을 돌아봤다.
“함교를 구경할 수 있겠소 ”
“이쪽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시면 됩니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함교로 올라온 루스벨트와 니미츠 사령관 일행은 놀란 눈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유리창과 출입문을 제외하고 사방에 모니터와 각종 장비들로 도배가 된 함교의 모습에 루스벨트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우! 이건 마치 대학 연구소와 같아 보이는군!”
“이 모든 장비를 조작하기엔 함교가 너무 비좁은 건 아닌가 ”
감탄을 하는 루스벨트의 옆에서 장비들을 살피던 니미츠가 던진 질문에 강 대령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동화가 잘 되어있습니다.”
“자동화 ”
니미츠의 물음에 강 대령은 함장석 옆에 달린 컨트롤 패널을 조작했다. 강 대령의 조작에 함장석 옆에 달린 모니터가 환해지더니 함과 관련된 통합 정보를 화면에 표시했다.
“각부 장교들이 모니터를 보면서 보고를 하지만, 필요할 경우 함장 전용 모니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급할 경우 최소 몇 명으로 운용이 가능한가 ”
“최소라면 저 혼자서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전투상황이라면 함교 자체를 완전히 무인 함교로 만들고 작전통제센터에서 조함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허….”
강 대령의 대답에 니미츠 사령관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만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니미츠 사령관의 뒤를 따라 들어온 고급 해군 간부들 마찬가지였고. 강 대령의 설명에 루스벨트는 의문을 표시했다.
“함장석에 조타장치가 안 보이는 것 같소만 ”
루스벨트의 질문에 강 대령은 팔걸이 우측과 좌측에 달린 조이스틱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루스벨트를 조타수석으로 안내했다.
“한반도함의 조타를 담당하는 자리입니다.”
강 대령이 가리킨 곳에는 투명한 곡면 스크린으로 앞부분이 뒤덮인 조타수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강 대령이 패널을 조작하자 투명했던 스크린에 항공모함의 앞부분과 여러 관련 데이터들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조타수는 이곳에 앉아 이 조이스틱과 스로틀 레버로 한반도의 속도와 조타를 조절합니다.”
“배가 아니라 비행기의 조종석 같아 보이는군.”
조타수석을 관찰한 니미츠의 평가에 강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허….”
강 대령의 대답에 니미츠는 다시금 헛숨을 내쉬었다.
한반도의 내부를 시찰하면서 루스벨트 일행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항해함교의 아래쪽에 자리한 항공관제소에서 니미츠는 다시 한 번 강 대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함교가 피라미드 형식에다가 외부 통로가 거의 없던데, 함재기의 이함과 착함을 관제하기에는 위험한 것 아닌가 저 위쪽으로 경사진 창문으로는 갑판을 보기 힘들다고 생각되네만 ”
“그건 제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니미츠 사령관의 질문에 함재기 전대장 박 대령이 설명에 나섰다. 관제소 중앙에 있는 대형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 박 대령이 패널을 조작하자 관제소 창문 아래쪽의 벽면이 바로 모니터로 바뀌며 아래쪽 갑판의 상황을 보여줬다.
모니터를 통해 본 갑판에는 함재기들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한 대씩 올라오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관제소의 창문 아래쪽 벽들이 모두 모니터들입니다.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이 모니터를 통해 갑판에서 행해지는 작업과 관련 데이터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 대령의 말처럼 함재기들이 움직이고 갑판 요원들이 움직일 때마다 함재기들 위로 작은 말칸이 만들어지며 관련 정보가 표시되었다. 루스벨트 일행이 할 말도 잊은 채 모니터를 보는 동안 박 대령은 테이블의 패널을 조작했다. 박 대령의 조작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 상판은 대형 모니터로 변해 격납고의 평면도로 변했다.
“이 테이블에 보이는 비행기 아이콘은 실제 해당 비행기와 연동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해단 함재기를 최적의 격납위치로 이동시킬 수도 있고, 해당 함재기가 장착할 무장도 지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여기서 이 함재기에 폭장을 지시한다면 담당 무장사와 무장 이송용 무인 카트에 실시간으로 명령이 전달되어 작업이 이뤄집니다. 물론 이 테이블을 통해 우리는 현재 한반도가 보유한 항공무장의 수량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테이블이 고장 난다면 ”
“관제요원 각자의 개인 타블렛을 이용합니다.”
박 대령의 대답에 니미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맥아더가 미래의 배라더니 진짜 미래의 배로군… 미래의 함선들은 다 이 정도의 기술이 기반이란 말인가 ”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배에 매우 선진적인 기술이 대량으로 투입된 것뿐입니다.”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라는 마지막 말을 입속으로 삼키는 박 대령이었다.
함교와 항공관제소를 보면서 감탄을 하는 루스벨트와 니미츠의 모습에 맥아더는 자기 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뿌듯함을 느꼈다. 슬쩍 앞으로 나선 맥아더는 루스벨트와 니미츠에게 말을 건넸다.
“이 친구들, 이 배에서 가장 놀라운 곳을 아직 감추고 있습니다. 한번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가장 놀라운 곳 ”
“저를 필리핀에서 떠나게 만든 곳입니다.”
맥아더의 대답에 루스벨트는 강 대령과 고 제독을 돌아봤다.
“당장 가봅시다.”
“격납고와 다른 시설물들 보신 다음에 안내해 드릴 예정입니다만 ”
“다른 곳들은 조금 나중에 봐도 괜찮소!”
고 제독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루스벨트는 강하게 거부를 했다. 천하의 고집불통인 맥아더가 자기 고집을 꺾고 필리핀 철수를 단행하게 만든 장소가 어떤 곳인지 보고 싶은 호기심이 더욱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부터 보고 싶소!”
루스벨트와 니미츠의 강력한 요구에 고 제독과 강 대령은 사람들을 작전통제센터로 안내했다.
“이곳이 작전통제센터입니다.”
“허어~. 거대하군!”
“놀랍군!”
고 제독과 강 대령의 안내를 받아 작전통제센터로 들어선 루스벨트와 니미츠는 넓은 공간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여기도 모니터들이 많군.”
“다 필요한 것들입니다.”
니미츠 제독의 지적에 짧게 대답한 고 제독은 미리 들어와 대기하고 있던 담당 요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제독의 수신호를 본 담당요원들이 키보드를 조작하자 검게 꺼져있던 모니터들이 빛을 발하며 각종 정보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흐음….”
모니터들과 그 모니터들이 보여주는 각종 데이터와 영상들을 관찰하던 니미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단순히 텍스트로 된 정보들을 보고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판단하기가 편하군.”
“그게 제일 큰 장점입니다.”
“확실히 맥아더 장군이 결단을 내리게 만들 장비들이오. 놀랍군.”
루스벨트의 평가에 당사자인 맥아더 장군이 고개를 저었다.
“저를 물러서게 만든 것은 따로 있습니다. 고 제독. 그 물건은 끝까지 안 보여줄 셈이오 ”
“그건 아닙니다만….”
말을 흐린 고 제독은 대기하고 있던 담당요원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수신호를 받은 담당요원의 조작에 대형 홀로그램 장치가 잠에서 깨어났다. 홀로그램의 빛을 배경으로 맥아더가 루스벨트와 니미츠를 바라봤다.
“저를 필리핀에서 물러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태평양에서 벌어질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줄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응 ”
* * *
작전통제센터에서 루스벨트와 니미츠는 말 그대로 혼이 나가 버렸다. 맥아더가 왜 필리핀을 벗어나야 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은 이점이 무엇인지 등등을 홀로그램을 통해 확인한 다음 작전 통제센터를 나온 루스벨트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 제독을 바라봤다.
“제독. 이 작전통제센터의 시설을 워싱턴으로 옮겨줄 수는 없소이까 동맹국으로서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그러려면 이 배를 해체해야 합니다. 지금 미국은 이 배를 해체할 능력을 가진 조선소가 없습니다.”
“조선소야 지으면….”
“만재배수량 8만 톤이 넘어가는 배가 들어갈 도크를 짓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그리고 항모는 바다에서 활동을 해야 항모라 불릴 수 있는 법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잘 알겠소. 참으로 아쉽군….”
고 제독의 대답이 정론이었기 때문에 루스벨트는 입맛을 다셨다. 그런 루스벨트의 모습에 고 제독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