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19화 (19/464)

# 19

19화 샌프란시스코 (2)

정 수석팀장의 발언에 토론에 참석한 이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1941년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주만으로 갔다면 본토에서 진주만으로 오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만 합니다. 빠르고 편한 길은 아니지요.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본토입니다. 워싱턴의 정치인들이 열차를 탄다거나 여객기를 타고 바로 올 수 있지요. 우리는 이들을 공략해야 합니다. 워싱턴 정가의 지지를 얻게 되면 우리가 알았던 것처럼 반동강이 난 국토를 피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거기에 더해 광복 이후 정치와 경제 방면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됩니다.”

정 수석팀장의 말에 강 대령이 문제점을 지적했다.

“좋은 이야기지만 한 가지 난점이 있다고 봅니다. 무엇을 가지고 공략을 할 겁니까 뇌물로 ”

“그것에 대한 답은 나도 알 것 같습니다.”

강 대령의 물음에 답을 한 것은 이미 강 대령의 앙숙으로 공인된 성 부장이었다. 성 부장은 한쪽에 자리를 한 채 열심히 카메라를 돌리는 방송국 직원들과 병풍신세가 되어버린 연예인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문화를 가지고 공략을 하면 됩니다. 와패니즈 자포네스크 시누아즈리 다 엿 먹으라고 하세요. 모조리 한류에 중독시켜 버리면 됩니다.”

“노래 몇 곡 가지고 가능할 거라고 봅니까 충분한 컨텐츠가 있어야 합니다!”

강 대령의 반박에 한반도 방송국 담당 장교인 전길주 소령이 손을 들었다.

“컨텐츠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뭐 ”

전길주 소령의 설명을 들은 강 대령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M 방송국에서 디지털 작업에 성공한 드라마와 다큐, 영화와 음악이 다 들어왔다고 지난번에는 국립도서관의 디지털 도서가 죄다 들어와 있다고 하더니… 도대체 이 배 정체가 뭐야… 항공모함이냐, 창고냐….”

다른 함장들과 고 제독이 강 대령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성 부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것도 빌어먹을 복지 카테고리라니! ‘열려라 참깨’가 아니라 ‘복지’만 외치면 다 되는구만! 빌어먹을 공무원들이란!”

정치권에서 ‘군대 인권’과 ‘군인 복지’라는 슬로건을 내밀며 가한 압력에 국방부를 위시한 행정부 공무원들이 만들어낸 보이기 위주, 행정 편의주의, 땜빵처리의 결과물을 확인한 성 부장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고 제독은 강 대령을 돌아봤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는 대로 함에 설치된 데이터 서버를 모조리 조사해 보도록. 뭐가 들었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강 대령에게 명령을 내린 고 제독은 토론을 이어갔다.

“컨텐츠가 있다니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컨텐츠와 고위층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입니다. 해답은 있습니까 ”

고 제독의 문제제기에 정 수석팀장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맥을 이용하면 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영부인인 엘레노어 루스벨트 여사와 펄 벅 여사가 친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펄 벅 여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임과 동시에 한국에도 대단한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것을 이용해야 합니다.”

“흐음….”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토론에 참석한 모두가 생각에 잠겼다. 한편에서 토론과정을 조용히 바라보던 벌레가 빨갱이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왜 ”

“역시 재벌의 엘리트 출신이라 그런지 인맥 이용하는 법은 잘 안다. 안 그러냐 ”

“난 재벌이라는 단어가 싫어.”

불퉁한 어조와 달리 빨갱이는 토론에 집중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맥을 쌓은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

“지난 번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독립과 임시정부를 정식으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지금 중국에 있는 임시정부의 요인들과 광복군, 그리고 독립 운동가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겁니다. 임정요인들에게는 행정부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배우게 만들고, 광복군은 제대로 된 정규군의 간부들로 육성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친일파들의 재취업’은 확실히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워낙에 소수인데… 친일파들을 막기에는 명분이 약한 것 아닙니까 ”

“그래서 미국 정부의 고위층과 인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친일파들을 다시 기용한 책임은 1차적으로 미군정에 있습니다. 그들이 친일파들을 재기용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표면적으로는 ‘경험미숙과 인재부족’이고 내부적으로는 ‘말 안 듣는 임정요인들의 세력약화’에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고위층과 임정요인들의 인맥이 좋다 임정이 미군정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정이 임정의 눈치를 살펴야 될 겁니다. 아니면 미군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유 프랑스의 드골 정권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경험미숙 임정 요인들이 시스템의 운영을 제대로 배운다면 친일파들을 재기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친일파 아닌 사람들을 뽑아 교육시키면 되니 말입니다.”

“아따! ‘노안’ 정 선생 말 잘하네!”

빨갱이가 감탄사를 터뜨렸고, 옆에 앉아있던 벌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새끼 보나마나 한 자리 차지해 먹겠구먼. 안 봐도 비디오다.”

벌레와 빨갱이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정 수석팀장의 단독 프레젠테이션( )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임정 요인들에게 무게를 실어주면 하나의 이점이 있습니다. 뭐, 정치적으로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리숭민의 발호를 막을 수 있습니다. 리숭민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임정이 중국에 있는 동안 미국에서 꾸준히 활동을 했다는 점입니다. 2차 대전이 벌어지면서 한국통이 없었던 미국으로서는 리숭민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고, 그게 결국은 리숭민의 힘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임정과 미국의 커넥션이 제대로 생기면 리숭민에게 힘이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의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인 리숭민이 언급되자 고 제독은 심각한 얼굴로 정 수석팀장을 바라봤다.

“정 수석팀장은 리숭민을 배제하자는 겁니까 가능성은 높습니까 ”

“가능하다면 리숭민에게 무게가 쏠리는 것을 최대한 막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적어도 일국의 수장자리는 주고 싶지가 않다는 것이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내치에는 등신, 외교에는 귀신’이라는 말답게 외무부 장관이라면 모를까 말입니다.”

정 수석팀장의 부연 설명을 듣던 벌레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외교에는 귀신이 아니라 깡패였겠지. 냉전만 아니라면 당장 어디 사는 누군가의 손에 모가지가 날아갔을 거다.”

“어라 천하의 벌레가 어쩐 일이야 너 벌레 맞냐 ”

“닥쳐, 빨갱이 새꺄. 나 ‘런 어웨이 숭민’ 싫어해. 공과가 어쩌고저쩌고 해도, 구라치고 ‘런 어웨이’한 순간부터 모든 공은 사라지고 과만 남은 거다.”

“이 새끼는 칭찬을 해줘도 지랄이야.”

빨갱이가 툴툴거리는 동안 고 제독이 참석한 이들에게 투표를 요청했다.

“내 생각에 이 부분은 여기 참석한 모든 이들의 마음의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투표여부부터 결정을 했으면 합니다. 1. 투표에 붙인다. 2. 투표하지 않고 앞으로의 상황에 맞춘다.”

투표지들을 담는 모자들이 돌아다녔고, 고 제독은 투표의 결과를 발표했다.

“참가인원의 98%가 투표를 하자고 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들과 리숭민의 관계에 대해 투표를 하고자 합니다. 1. 리숭민의 절대적 배제. 2.임정에 힘을 실어 리숭민의 힘을 최대한 줄인다. 투표해주십시오.”

또다시 모자들이 돌아다녔고, 개표 결과를 본 고 제독은 결과를 발표했다.

“1번이 43.7% 2번이 52.1%입니다. 그럼 2번. 임정에 힘을 실어 리숭민의 힘을 최대한 줄이는 것으로 우리의 정책을 결정하겠습니다.”

*    *    *

밤이 늦을 때까지 토론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토론을 통해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던 이들에게도 할 일이 잔뜩 생겼다. 갑자기 전쟁터로 떨어진 덕에 할 일이 없어 눈치만 보던 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선실로 송 사장을 부른 고 제독은 송 사장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어제 그 젊은 수석팀장은 어떤 인물입니까 ”

“정 수석팀장 말씀입니까 ”

“그렇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S그룹이 고르고 고른 인재입니다.”

송 사장은 자신의 태블릿을 뒤져 정 수석팀장의 개인정보 파일을 열어 고 제독에게 보여줬다.

“이런 개인정보까지 가지고 계신 겁니까 ”

“납치와 같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겁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해당 인원의 인적 가치를 따져야 하니 말입니다.”

“인적 가치라….”

송 사장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정 수석팀장의 파일을 본 고 제독이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대단한 이력입니다. 유학파에 고속 승진 코스를 밟았군요. 그런데 왜 이런 격오지로….”

“마지막 기회인 것 같더군요.”

“마지막 기회 ”

송 사장은 고 제독에게 자신의 인맥으로 알아낸 추가정보를 이야기했다.

“S그룹의 차기 사장단 후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필코 마이닝은 신생기업입니다. 거기에 대한민국 전자 관련 업체들이 출자자고 정부에서 보낸 이들까지… 시쳇말로 ‘혼돈의 카오스’지요. 남들에겐 피하고 싶은 지뢰밭이 정 수석팀장에게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배경도 없고 줄도 없이 스스로 올라온 ‘개룡남’이라 수석팀장에겐 절박한 기회였을 겁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1941년으로 날아온 거군요. 운도 없지….”

“수석팀장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던데요 대한민국의 경제구조를 자신의 손으로 새로 만들어 내겠다는 야심이 아주 큽니다.”

“허~. 그럼 지난밤의 그 프레젠테이션이 ”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와 그의 기획팀이 만들어 낸 작품이지요.”

송 사장의 말에 고 제독은 태블릿 안의 정 수석팀장의 사진을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    *    *

부상을 당해 한반도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부하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오던 벌레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 걸음을 걷고 있는 부하의 어깨를 잡았다.

“박인수! 이 새꺄! 정신줄 놓고 다니지 그러다 다치면 반창고가 잘 붙는다던 ”

“아, 죄송합니다! 치프!”

사과를 하는 인수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얹은 벌레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뭘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거냐 21세기에 놓고 온 여자 생각 ”

“저나 치프나 똑같이 모쏠이시면서….”

“이게 콱! 에휴~. 그렇지. 너도 울고, 나도 울 슬픈 일이지. 그건 그렇고 상담은 해봤냐 ”

“예. 조금 전에….”

“그런데 뭐라고 했기에 그렇게 정신줄을 놓고 다니는 거야 ”

“만약 전쟁 끝나고도 살아남으면 미국에서 시작하라고 하던데요….”

“잉 ”

인수의 대답에 벌레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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