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7화 필리핀으로… (1)
“으으음….”
“으으….”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의식을 찾은 이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괜찮으십니까 ”
“괜찮네… 자네는 괜찮나 ”
“저도 이상 없습니다.”
“얼마나 의식을 잃었던 거지 ”
“한 3분 정도입니다.”
“다행이로군. 좀 도와주겠나 ”
“예, 제독님.”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고 제독을 부축해 세운 강 대령은 주변을 향해 부지런히 명령을 내렸다.
“시스템 확인해! 강감찬, 곽재우, 김문휴에 연락해 상태를 파악하고! 현재 위치를 확인한 다음 본국과의 통신선을 확인해!”
“알겠습니다, 함장님!”
명령을 받은 부하들은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한반도와 주변 함대에 관한 정보가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함 내부 통신 시스템 이상 없습니다!”
“원자로 이상 없습니다!”
“함재기들은 개별 기체 모두 확인 중입니다!”
“레이더 시스템 이상 없습니다!”
“곽재우, 강감찬, 김문휴 모두 이상 없다는 보고입니다! 포스코 소속 ‘광양 프론티어 3호’도 이상 없다는 전문입니다!”
하지만 뒤이어 들어오는 소식에 고 제독과 강 대령, 이 중령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GPS 시그널이 잡히지 않습니다!”
“통신위성 시그널도 마찬가지입니다! 잡히지 않습니다!”
“GPS시스템 다시 확인하고, INS(관성항법장치)로 위치 추정해! 그리고 사령부와 장파통신 시도하고!”
“알겠습니다, 함장님!”
“후우~.”
명령을 내린 강 대령은 속이 답답한 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있던 이 중령이 한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INS만으로는 오차가 생길지 모릅니다.”
“그렇군. 나가서 수동 측량으로 확인해 보라고 해.”
“알겠습니다.”
“아니다. 너 항해과였지 네가 나가서 직접 해라.”
“제가 말입니까 ”
갑자기 짐을 떠맡은 이 중령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고 제독이 이 중령을 다독였다.
“귀관이 유능하니까 맡기는 걸세. 귀관을 믿지.”
“알겠습니다, 제독님!”
고 제독의 말에 이 중령은 신이 나서 통제센터를 뛰어나갔다. 신이 나서 사라지는 이 중령을 본 강 대령이 혀를 찼다.
“저런 팔랑귀 녀석… 저러니 이 배를 탔지….”
“그건 그렇고…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부장까지 내보낸 건가 ”
고 제독의 물음에 강 대령은 주변을 살피고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령부와의 위성통신이 날아간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령부에도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 생각하나 ”
“갑자기 미사일을 날려 보낸 놈들 아닙니까 미친놈이 아니라 미친놈들일 수도 있습니다.”
강 대령의 말도 일리가 있기에 고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군.”
“공군에게 스트라이크 패키지를 구성하라고 할까요 ”
“우선 통신망의 이상여부부터 확인하세. 이제부터는 최대한 신중해야 하네. 잘못하면 우리가 3차 대전의 시작점이 될 수 있어.”
“알겠습니다.”
“30분 후, 지휘관 회의를 열겠네. 곽재우와 강감찬, 김문휴의 함장들도 참석하라고 전하고. 아! 공군은 절대 빼먹지 말고.”
“알겠습니다.”
30분 후, 연락을 받은 각 함의 함장들과 공군 지휘관들, 그리고 각 부처의 지휘 장교들이 제독의 선실에 마련된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다들 자리에 앉지.”
장교들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본 제독이 막 회의를 시작하려는 순간, 선실 밖에서 큰 소음이 들려왔다.
“왜 막는 거야! 앙 나도 참가할 권리가 있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지금 지휘관 회의 중입니다!”
“얼씨구 나도 지휘관이야! 원자로 기관 담당 지휘관! 내가 민간인이라고 우습게 보는 거야! 당장 열어! 원자로 꺼버린다!”
“무슨 일인가 확인해 보게.”
고 제독의 명령에 제독의 부관이 선실을 나갔다 다시 들어온 부관은 난처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원자로 관리를 맡은 한전의 성 부장입니다.”
“이봐요, 제독! 나도 무슨 일인지 알 권리가 있다고!”
선실을 울리는 성 부장의 목소리에 고 제독은 이마에 손을 얹고는 손짓을 했다.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제독의 허락 덕에 회의실로 들어온 성 부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욕설부터 내뱉었다.
“썅! 제독! 민간인이라고 못 들어오게 하는 게 말이 되는 거요!”
성 부장의 욕설에 강 대령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군의 일입니다!”
“멜트 다운, 셧 다운 어느 걸로 끝장 내드릴까 ”
“당신, 그러다 큰일 나는 수 있어!”
“흥! 이 배 원자로로 밀려난 녀석들 치고 성격 좋은 녀석들 있을 것 같아 어디 손 한번 대 봐! 이 배를 떠 있는 체르노빌 아니면 후쿠시마로 만들어 주지! 응 어디 손 대 보라고! 이게 어디서 옛날 버릇 못 버리고 수작질이야, 수작질이!”
군의 일이라며 성 부장을 압박하던 강 대령은 오히려 성 부장의 협박에 입을 다물었다. 결국, 고 제독이 대표로 성 부장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비상사태로 신경이 예민해져서 말이 심하게 나왔습니다.”
“뭐, 저도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배에 타고 있는 민간인들도 생각은 해주셔야지요. 가뜩이나 햇빛도 제대로 못 받는 원자로에 처박혀 있는데 갑자기 비상벨은 울려대지, 짱깨가 미사일을 쐈다고 그러지. 그러다 갑자기 기절하고, 눈뜨고 보니 인터넷서부터 시작해 위성전화까지 외부와의 통신은 하나도 안 되지. 가족 있는 애들은 지금 돌기 일보직전이란 말이외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지 않습니까. 국민과 군입니다. 좀 솔직하게 갑시다. 어쨌거나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성 부장의 지적에 틀린 것은 없었기에 고 제독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고, 성 부장 역시 사과를 하는 것으로 분위기는 진정되었다.
“자. 그럼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지. 아! 성 부장께서는 제가 반말로 진행을 하더라도 양해를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현재 각 함의 상황은 어떠한가 ”
“본국과의 통신문제와 GPS문제만 뺀다면 한반도는 이상 없습니다.”
한반도의 함장인 강 대령을 필두로, ‘광양 프론티어3호’의 선장을 대신한 이 중령까지 이상 없다는 보고를 하자 고 제독은 턱을 쓰다듬었다.
“통신이 문제로군… 모든 함이 똑같이 통신만 문제일 리는 없고…”
고 제독이 지적한 사실에 회의실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말 그대로 모든 배의 전자 장비들 가운데 유독 통신장비만 탈을 일으킬 확률은 지극히 낮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 본국에 지독한 문제가 생겼다.
“함대를 돌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기서 바로 중국에 타격을 ”
“강 대령, 아까부터 타격을 주장하는군 ”
“당한만큼은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
강경론을 주장하는 강 대령의 말에 고 제독은 공군 전대장인 박현석 대령을 돌아봤다.
“가능하겠나 ”
“가능은 합니다.”
“지금 당장 작전을 수립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독!”
“이대로 당한 채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전력의 가장 핵심인 공군이 가능하다고 나서자,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단번에 사나워졌다. 그런 흉흉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성 부장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투기건 폭탄이건 제대로 밥값을 하려면 GPS가 필요한데 지금 우리 배들 GPS들은 죄다 뻑 간 상태 아닌가요 ”
“그거야 INS로 대처하면 됩니다!”
“우리 애들 비행실력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성 부장의 지적에 대령들이 INS를 운운하자, 가만히 보고만 있던 이 중령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죄송합니다만…”
“무슨 일인가 ”
“INS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동으로 측정한 좌표와 INS가 표시하는 좌표가 조금 차이가 납니다.”
“뭐!”
이 중령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들이 의식을 잃은 동안에도 한반도의 INS 장비는 이상 없이 작동을 했던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고, 그 INS 장비가 표시하는 위치와 이 중령 자신과 항해 장교가 직접 측정장비를 들고 계측한 위치가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귀관들이 잘못 계산한 것 아닌가 ”
“측정은 사람이 했지만, 계산은 컴퓨터가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항해장교가 측정한 데이터 값의 오차는 무의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럼 INS의 문제인가 ”
“INS의 자가 오류 확인 결과 이상 없었습니다.”
“해킹 ”
“해킹의 가능성이 높겠군….”
위치좌표에서 오차가 발생한 이유로 해킹이 유력해지자 회의실의 분위기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모두들 고민에 빠진 가운데 고 제독이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의 현재 위치도 제대로 못 잡는 상황에서 섣부른 공격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나는 본국으로 돌아갔으면 하는데 귀관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
고 제독의 의견에 강 대령은 공군 전대장인 박 대령을 바라봤다.
“진짜 힘듭니까 ”
“솔직히 말하자면… 스탠드 오프 공격은 절대 무리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스탠드 오프를 포기하면 우리 애들의 피해가 너무 커질 수 있다는 거지요. 거기에 중국이 진짜로 일을 벌인 거라면 우리 쪽으로 몰려올 중국의 러쉬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박 대령의 설명에 회의실에 모인 모든 함장들의 얼굴에 암담함이 떠올랐다.
“회항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군….”
모두가 낙담한 가운데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위병은 고 제독과 성 부장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원자로 근무자들이 급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용건을 들은 성 부장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자 고 제독이 손짓으로 만류했다.
“원자로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 모두 알아야 합니다.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고 제독의 명령에 일단의 인원들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조 과장, 무슨 일이야 ”
“그게… 부장님. 하 대리가 이상한 방송을 들었다고 해서….”
“이상한 방송 하 대리, 말해 봐.”
성 부장의 지목을 받은 하 대리는 검은색 구형 아날로그 라디오를 내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심심풀이로 가져온 단파 라디오인데요…. 인터넷도 안 되기에 뉴스 방송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켰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단어가 들려서요….”
“이상한 단어 ”
“영어 방송인데… 처칠이 어떻고, 루즈벨트가 어쩌고, 홍콩이 어쩌네, 필리핀이 어쩌네…….”
“어디서 이상한 미드 전파라도 잡힌 거 아냐 ”
성 부장의 지적에 하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억양이 진짜 올드합니다. 요즘 미드 사극에서도 이런 억양은 거의 안 써요.”
“틀어봐.”
성 부장의 명령에 하 대리는 갖고 온 라디오의 스위치를 켰다. 최대한 전파가 잘 잡히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 끝에 자리를 잡고 하 대리는 볼륨을 키웠다.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군과 소비에트 러시아 군이 모스크바부근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중략) …이상으로 뉴스를 마치고 이어지는 순서는 라디오 드라마 ‘루시네 가족’이 이어지겠습니다. 지금까지 1941년 12월 18일 정시뉴스였습니다. 국민 여러분! 진주만을 기억하십시오!”
“소비에트 러시아 ”
“나치 독일 ”
“1941년 12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