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5화 곡예사의 줄타기 (1)
202*년 10월 **일.
루손 섬, 북서쪽.
대한민국 해군 제 9전단이 태평양의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세종대왕급 이지스함 Batch2 곽재우를 선두로, 이순신급 구축함인 강감찬함과 이순신급 Batch2.
그리고 김문휴 함이 한반도의 좌우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보다 조금 떨어져서는 중형사이즈의 로로선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가운데 한반도의 함교에서는 고 제독과 함장 강원일 대령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갑판이 조용하니 좀 지루하군.”
“그렇습니다. 날씨도 좋고 중국만 아니라면 함재기 띄우느라 난리가 났을 텐데 말입니다.”
“어쩌겠나 망할 놈들….”
강 대령의 푸념에 고 제독은 같은 마음인지 불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반도를 포함한 함대가 필리핀에 근접할수록, 정확히는 중국과 대만 사이의 항로를 지나 필리핀에 가까워질수록 중국의 반응은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결국, 해군 사령부와 의논 끝에 고 제독은 함대가 필리핀 영해 깊숙이 들어갈 때까지 비행훈련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부장 이민한 중령이 대화에 끼어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덕분에 방송국 사람들의 불평이 대단합니다.”
“왜 찍을 것이 없어서 ”
“예.”
이 중령의 대답을 들은 고 제독은 창밖을 보며 투덜거렸다.
“우리 함이 군함인지 민간 유람선인지….”
항공모함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취역 이후에도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항모에서 운영할 함재기가 다 실리고, 취역한 이후 제대로 된 첫 번째 원양 훈련을 나선다는 정보를 접한 M방송국에서 국방부에 딜을 걸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연휴 특집 프로그램을 한반도 함에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포맷은 예전에 유행했던 병영체험 프로그램을 재활용한 특집 프로그램이었다. 군 홍보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한 국방부는 몇 가지 조건을 내밀었다.
- 신인은 배제한다.
- 항공모함에 설치된 방송국을 위한 컨텐츠를 제공해 달라.
국방부가 내민 조건에 방송국은 흔쾌히 동의를 하고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다재다능하다고 소문난 4인조 중견 걸그룹 1팀과 실력파 솔로 여가수 1명이 섭외되었고, 수십 개의 블루레이 디스크가 항구로 들어왔다.
디스크에 담긴 컨텐츠들의 목록을 살피던 한반도의 방송담당 선임 전길주 소령이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항의를 했다.
“왜 다 옛날 것들만 있는 겁니까 한반도 함의 방송국이 M방송국의 역사박물관입니까 ”
전 소령이 앙칼진 목소리로 항의를 하자 방송국 관계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 것들은 배의 승무원들이 우리 방송국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걸요 ”
“…….”
고 제독이 ‘민간 유람선’이라고 혹평을 한 것에는 이유가 더 있었다. 가장 먼저로는 원자로의 관리를 맡은 이들의 절대 다수가 한전 소속 직원들이었다.
1척으로 끝날 확률이 다분한데다가 전담인원을 양성할 시간과 인적 자원에 여유가 없던 국방부는 한전에 인력을 요청해 관리 인원들을 수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으로는 KAI소속 설계팀과 정비원들이었다.
함재기용으로 개조한 KFX의 성능이 의외로 마음에 든 한국 공군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KFX를 모두 다 함재기 모델을 기반으로 한 발전형으로 요구했다.
덕분에 빠른 피드백을 위해 해당기체를 설계한 설계팀이 항모에 승선했고, 제대로 된 정비 요령을 알려주기 위해 정비팀도 동행했다. 마지막으로는….
“함장 그거 아나 ”
“무엇을 말입니까 ”
배에 우글거리고 있는 민간인들의 소속을 꼽으며 투덜거리던 고 제독이 화제를 돌렸다.
“왜 조선사의 설계사들이 이 함에 탔을까 ”
고 제독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던 강 대령이 질문으로 답을 했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 겁니까 항공모함을 또 만든다는 ”
“거의 그럴 것 같아.”
“여의도에서 OK하겠습니까 ”
“여의도에서 먼저 나선 일일세. 지금까지 보니 돈 빼고는 다 남는 장사거든.”
“예 ”
국회의원들이 먼저 나섰다는 말에 강 대령이 의문을 표시하자 고 제독이 이유를 설명했다.
“항모를 만들고 나니 지지도가 확 올랐단 말이지. 거기에 함재기 운영을 위해 공군이 인원을 빼면서 공군기지를 하나 비울 거라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국회의원들이 난리가 났어.
지역구에 공군기지가 있는 이들은 민원 해소를 위해. 또는 공항을 만들어 달라는 민원에 시달리는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다 달라붙었지. 오죽하면 ‘여의도의 로또’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
“중국 무서워하는 양반들이 과연 또 만들겠습니까 ”
“중국이 자기에게 금배지 달아주는 건 아니지 않나 ”
“아… 아!”
고 제독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강 대령이 표정을 확 바꾸고는 부장 이 중령을 노려봤다.
“너, 이새퀴! 너 이미 알고 있었지!”
“뭐, 뭐를 말입니까 ”
“한척 더 만들어진다는 것 말이다! 어쩐지… 줄 잘 잡기로 소문난 인간이 왜 이 함으로 왔나 했다! 원자력 항모 부장이란 경력 살려서 함장 달려고 그런거지!”
“전 단지 최신예 함이고… 해군 장교로서의 자부심을 위해…….”
“닥쳐라, 새캬!”
위기에 몰린 이 중령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로로선에는 뭐가 실린 겁니까 명령서에는 목적지인 로사리나 섬까지 안전하게 보내준 다음에 연합훈련에 참가하라고만 적혀있었습니다만 ”
이 중령의 질문에 고 제독은 함장인 강 대령을 바라봤다. 강 대령도 이 중령과 같은 표정인 것을 본 고 제독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잠깐 밖으로 나가지.”
함장과 부장을 데리고 바깥 통로로 나온 고 제독은 항모의 뒤를 열심히 따라오는 로로선에 대해 설명했다.
“저 배에는 PMC가 타고 있다.”
“PMC라고 하셨습니까 ”
‘PMC'라는 말을 듣고 눈살을 찡그리는 함장과 부장을 보며 고 제독은 설명을 이어갔다.
희토류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수출량을 갖고 장난을 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상황에서 필리핀의 로사리나 섬에서 대규모 희토류 매장지가 발견되었다.
문제는 이 섬의 지리적 위치와 치안상황이었다.
필리핀의 수많은 섬들 가운데 중국과 가까운 지역에 자리한 섬이라는 지리적인 상황에 더해 친중파 마오주의 공산 반군 ‘로사리나 인민 해방전선’이 정부군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중국과 미국의 대기업들이 광산을 개발해 주겠다고 필리핀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필리핀은 그것을 거부했다.
대기업들은 두 나라의 정부들을 대신한 것뿐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필리핀의 대통령은 미국을 거부했고, 다른 정치세력과 군이 중국을 거부했다. 고민을 하던 필리핀 정부는 한국 정부를 판에 끼어들게 만들었다.
애초에 한국 정부는 이미 난장판이 되어버린 판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굴지의 대기업들부터 자그마한 중소기업까지 ‘희토류의 필요성과 중국의 협잡질’을 강조하며 정부에게 압박을 가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필리핀과 협상을 시작했고, 30년간 채굴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은 이를 바득바득 갈게 되었고.
어찌됐건 채굴권을 딴 한국정부였지만 난제가 남아있었다.
‘개발초기 10년 동안 채굴지역과 그 주변 지역의 치안은 한국이 유지한다. 단, 한국군의 주둔은 불허한다.’
협상과정에서 필리핀은 이 한 가지 조항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이 조항의 해결책을 찾느라 정부 관계자들이 골치를 앓을 무렵 S그룹과 L그룹의 회장이 사람들을 데리고 청와대를 방문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
“어서 오세요. 그래… 필리핀 문제에 관한 좋은 해법이 있다고요 ”
“예. 남의 일이 아닌지라 대책을 세워봤습니다.”
“들어봅시다.”
기업인들이 갖고 온 대책은 철저하게 기업의 방식이었다.
1. S전자와 L전자를 필두로 84개의 기업들이 합자를 해 가칭 ‘Phil-Kor Mining. (이하 필코라 칭한다.)'이라는 광산회사를 창업한다.
2. 필코는 하부 자회사로 ‘필코 세이프티’라는 회사를 만들어 개발지역의 안전을 책임진다.
3. 한국정부는 필코 세이프티가 요청하는 장비들을 정부 공급가에 판매한다.
4. 한국정부는 획득한 채굴권을 필코에 양도한다.
“다 좋은데 마지막이 마음에 안 드는군요.”
“어차피 자본을 투자하는 회사들은 다 그 희토류가 필요한 회사들입니다. 채굴되는 광물을 투자 지분만큼 나누는 것으로 이미 합의를 봤습니다. 이는 국가경제에도 득이 되는 일입니다.”
S그룹 회장이 열심히 설득을 했지만, 대통령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 합자에 끼지 못했던 회사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리고 아이디어만 갖고 이제 막 시작하는 이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런 이들은 계속해서 중국의 협잡질에 당하고 어쩌면 여러분들의 협잡질에 당할 수도 있겠군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회장들의 장담을 믿지 않았다.
“정부 지분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여러분들의 의견은 협상할 가치도 없습니다.”
결국, 정부35, 필코 65의 비율로 로사리나 섬의 광산개발과 안전유지는 필코가 맡아서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정부와 조율을 끝낸 경제인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로사리나 섬을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로사리나 인민 해방 전선’의 전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앞에서 건네는 사례비와 뒤에서 건네는 뇌물을 이용해 전력을 확인하던 필코의 간부들은 예상외의 존재를 확인했다.
“PT-76 이 자식들 전차까지 가지고 있어 반군이라면 RPG 아니었어 ”
“어디의 반군은 T-55까지 굴리더라. PT-76이면 경전차잖아. 겨우 경전차 가지고 그리 놀라냐 ”
“경전차는 전차 아니냐 너 군대 안 갔다 왔지 ”
“…군에다 아파치를 달라고 하면 줄까 ”
“너 같으면 주겠냐 ”
반군이 기갑장비를 포함해 예상 이상의 전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필코는 이를 제압할 수 있을 장비의 판매를 국방부에 요청했다.
필코가 던진 공은 국방부에서 육군으로 넘어갔고, 공을 넘겨받은 육군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가운데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다.
- 반군의 전력은 예상외로 강력하지만 우리가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은 한정되어 있다. 이 말은 소수로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질vs.양’의 상황이다.
- 위의 상황을 확대해 보면 현재 우리 군이 처한 상황과 유사하다.
- 이런 상황을 이용해 군이 추진하고 있는 TICN(전술정보통신체계)과 새로이 배치된 장비들의 필드 테스트를 해보자.
예상과 달리 이 반짝 아이디어는 높으신 분들도 만족을 했고, 필코 세이프티는 중무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저 배에는 그 장비들과 인원들이 실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 화물선이 기를 쓰고 우리를 따라 오는 거고 우리가 저 배를 보호해야 하는 거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난리가 나니까.”
고 제독의 설명을 들었지만 이 중령은 의문을 제기했다.
“저 배에 실린 이들과 장비들이라면 어지간한 해적들은 상대도 안될 것 같습니다만 ”
이 중령의 물음에 고 제독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중국 쪽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