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거제도
거제도가 가깝게 보이는 곳까지 오 자 엔진을 껐다. 그리고 노를 저어 거제도로 향했다. 모터 엔진 소리는 꽤 멀리까지 들린다. 혹시 모를 상 황을 대비해 조용하게 접근하는 것 이다.
하지만 시끄럽게 접근해도 될 뻔했 다.
“여기도 난장판이네.”
해안가에 멀쩡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쓰러지고 부서지고 갖은 쓰
레기가 넘쳐 났다. 고무보트를 댈 곳은커녕 숨길만 한 곳이 없었다.
“기름도 얼마 없는데.”
한 통 남은 기름을 중간에 반 통 이나 넣었다. 지도를 꺼냈다. 지도는 항상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가……. 거제 도 최남단이고 북서쪽으로 가서
지금 남은 기름으로는 통영까지 갈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거제도에 서 기름을 구하거나 관공서가 제대 로 운영되기만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모터의 시동을 걸었다. 노를
저어서 갈 수는 없었다.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금 달리자 왼쪽으 로 장사도가 보였다.
“여기서 동북으로!”
해안가를 따라 동북으로 가자 드디 어 고무보트를 숨길만 한 곳이 나왔 다. 거기다가 안으로 푹 들어간 형 태의 해안가이다 보니 진흙도 많이 안 쌓였다. 방파제에 막힌 것이다. 방파제 근처에 쓰러져 있는 어선과 어선 사이에 고무보트를 숨겼다.
“완벽하네.”
가까이 오지 않고는 고무보트를 발 견하지 못한다. 어선에 줄을 연결했 으니 떠내려갈 염려도 없었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생존 배낭에 약간의 음식만 넣은 다음 방파제 위 로 올라갔다. 방파제에 가려 잘 안 보였던 것들이 보였다.
이곳 역시 난장판이었다. 해일이 휩쓸고 간 흔적이 처참했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주유소가 있 네.”
지도로 확인한 결과 이곳은 남포면 이었다. 지도에 주유소가 표시되어 있었다.
“똘아 가자.”
“컹!”
똘이는 신난 것 같았다. 자신을 두 고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똘이
와 함께 주유소로 향했다. 제대로 된 길은 없었다. 온통 잡동사니 천 지였다. 멀쩡한 집도 몇 채 없었다.
“음……. 똘아 가지 마라!”
“끼 잉.”
똘이가 누워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려다가 멈췄다. 그리고 따라왔다.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사방에 시체였 다. 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막았다. 벌써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 정도 해일이었으면 이곳까지 오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겠 지.”
그렇게 믿는다고 자기 암시하듯 말 하는 것뿐이다. 자기들만 살겠다고
버려두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유소에 도착했다.
“젠장! 편하게 찾는다 했다.”
저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고 기름을 가져가려면 중장비가 필요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비집 고 들어갈 곳이 있나 살폈다. 틈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너무 위험했다.
“별로 안 땡기는 것도 있고…… 틈으로 들어가 기름을 구하는 일은 위험하다고 감각이 경고했다.
“다음 주유소는……
북쪽으로 25km는 가야 했다. 워낙
외진 곳이다 보니 주유소도 드문드 문 있었다. 어디로 쓸려 갔는지 그 흔하디흔한 자동차도 없었다.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2시간 쯤 걸었을 때 멈췄다.
“컹! 컹!”
똘이가 누워 있는 사람에게 짖으며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야!”
그런데 똘이가 달려가 얼굴을 핥자 움직였다. 시체가 아니었다. 체구를 봤을 때 어린아이였다. 아이를 향해 뛰었다.
“아••••••. 어•…"
남자아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
다. 급하게 배낭에서 물을 꺼내 입 에 부었다. 그러자 남자아이는 입을 벌려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정신을 조금 차리는 것 같자 물병을 치웠 다.
“아……. 물……. 배고파……요.”
“잠깐 기다려라.”
상태를 보니 탈진한 것 같았다. 햇 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길을 오래 걸 어온 것이 분명했다. 남자아이를 들 어 그늘로 갔다. 그리고 수건에 물 을 묻혀 얼굴을 닦아줬다.
“배고..파요.”
“알았다. 기다려라.”
매정하게 느낄지 몰라도 이런 상황
에 음식을 함부로 줄 수 없었다. 하 지만 위에 부담을 주지 않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은 없었다. 어쩔 수 없 이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되는 참치 캔을 꺼냈다.
“조금씩 물과 함께 마셔야 한다.” 남자아이는 참치캔을 따는 소리와 냄새를 맡더니 어디서 힘이 났는지 일어나 손으로 허겁지겁 참치를 입 안에 넣기 시작했다.
“야! 천천히 먹어! 물도 좀 마시 고.”
앞에 있는 사람이 아이가 아니었다 면 이렇게 쉽게 음식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라 생각도 나고 해서 준
것이다.
“하나 더 먹을래?”
남자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 치를 봤다. 음식이 귀한 것을 알고 있다. 해일이 지나간 지 며칠 지나 지 않았다. 그런데도 음식을 제대로 못 먹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
“그래. 하나 더 줄게.”
배낭에서 참치캔과 에너지 바를 꺼 냈다. 그러자 남자아이는 어렵게 손 을 내밀었다.
“그거 따지 마시고 주시면 안 돼 요?”
“왜?”
“동생 주려고요.”
“동생이 있어?”
“네••••••
“어디에 있는데?”
다급하게 물었다. 남자아이가 이 정도면 동생은 더 심각할지 몰랐다.
“저쪽에요.”
남자아이가 가리키는 곳은 북쪽이 었다.
“저쪽 어디?”
“길 따라가면 기다리고 있을 거예 요.”
“알았다. 아저씨가 가 보마. 너는 여기서 기다려라.”
혹시 같이 갔는데 동생이 잘못되었 을 수도 있었다. 그것을 보여 주기
싫었다.
“아니요. 저도 같이 갈래요. 제가 안 가면 동생 안 나와요.”
“숨어 있니?”
“네•…"
눈치를 보면서 대답했다. 숨어 있 다면 찾기 힘들 수 있었다.
“이름이 뭐니?”
“강한결이요.”
“나이는?”
“13살이요.”
“알았다. 같이 가자. 한결아.”
“감사합니다.”
“잠시 기다려라.”
배낭을 앞으로 멨다. 그리고 앉았
다.
“업혀라!”
“네? 무거운데요.”
“너 지금 못 걷는다. 동생에게 늦
게 가고 싶으면 걸어가고.”
한결이는 머뭇거리다가 등에 손을 올렸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빨리 업혀!”
한결이가 등에 업히자 달리기 시작 했다.
“동생 이름은!”
“유리요! 강유리!”
젠장! 아라의 친한 친구 이름과 똑
같았다. 아라가 기억나 더 빨리 달 리기 시작했다. 30분쯤 쉬지 않고 달렸다. 똘이도 신나게 따라왔다.
“저기 숨어 있어요!”
한결이의 말에 멈췄다. 한결이가 말한 곳은 불탄 승용차 몇 대가 있 는 곳이었다.
한결이가 등에서 뛰어내렸다.
“유리야! 강유리!”
한결이가 애타게 부르며 불탄 승용 차로 뛰어갔다. 하지만 대답이 들리 지 않았다. 한결이가 뛰는 방향으로 뛰었다. 바로 한결이를 앞질렀다.
그리고 불탄 자동차 안을 들여다봤 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불타 버린 자동차 안이 편한지 새근새근 숨을 쉬며 잠든 여자아이가 보였다. 한결 이가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다. 그리 고 동생이 잠든 것을 확인하자마자 주저앉았다.
“헉헉•…”
“나도 힘들다.”
한결이 옆에 앉았다. 똘이가 다가 와 얼굴을 핥았다.
“정말 예전 같지가 않네.”
15년 전 SAS 특수부대원일 때는 이 정도 뛰었다고 이렇게까지 힘들 지 않았다. 그래도 위기라고 느끼니 힘든 것도 모르고 뛴 것 같았다. 정
신력은 그대로라고 위안 삼으며 똘 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끼잉••••••
똘이가 기분이 좋은지 배를 드러내 고 누웠다.
“오빠?”
잠을 다 잔 건지 아니면 똘이가 기분 좋아하는 소리를 들은 건지, 불타 버린 차 안에서 귀여운 얼굴이 올라왔다. 똘망똘망해 보이는 큰 눈 에 짙은 눈썹 그리고 갸름한 얼굴형 이 커서 한 예쁨 할 것 같았다.
물론 아라보다 안 예쁘지만.
“야! 오빠가 올 때까지 잘 숨어 있 으라고 했잖아!”
한결은 동생의 목소리를 듣자 일어 나서 소리쳤다. 그러자 유리는 깜짝 놀라 눈을 더 크게 떴다. 그리고 울 먹이며 말했다.
“히잉……. 오빠 말대로 잘 숨어 있었어! 졸려서……. 잠깐……. 우에 엥……
유리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자 한결 은 익숙한 듯 소리쳤다.
“강유리! 울면 나쁜 아저씨들 온다 고 했지!”
“끅! 끅!”
나쁜 아저씨라는 말에 유리는 조그 만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가 나 지 않게 했다. 하지만 쉽게 멈추지
않았다.
“똘이야. 네가 나서야겠다.”
어린아이들은 생각보다 동물을 좋 아한다. 그래서 똘이를 소개하려고 혼잣말처럼 한 것이다. 그런데 똘이 가 대답하듯 짖었다.
“ 컹!”
그리고 바로 유리에게 뛰어가 얼굴 을 핥기 시작했다. 타 버린 차 문 사이를 두고 똘이가 갑자기 달려들 어 얼굴을 핥자 유리는 뒤로 넘어졌 다.
“똘이야! 잠깐만!”
똘이가 멈추는 순간 한결은 차 문 을 열고 들어가 놀란 동생을 다독이
기 시작했다.
“히끅. 히끅!”
“유리야 괜찮아. 좋은 아저씨가 데 리고 있는 강아지야. 유리 강아지 좋아하잖아.”
똘이는 유리가 왜 저러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갑자기 뛰어가서 얼굴 들이밀 면 놀라지.”
“끼 잉.”
똘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 니 배를 땅에 대고 앉았다. 그리고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양쪽 앞발을 머리 위로 올려 감싸 안는 것처럼 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잘못했으니 용서를 비는 것 같이.
“이거 참……. 똘아……
“흐극……. 오빠……. 강아지 왜 저 래?”
“어……. 큭……. 똘이가 유리에게 미안하대.”
한결은 이성진이 똘이라고 부른 것 을 알고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똘 이가 한쪽 발을 슬며시 내려 한결과 유리를 봤다. 눈치를 보는 것같이 보이자 또 웃음이 나왔다.
“유리야! 아저씨가 데리고 다니는 똘이는 유리가 좋아서 그런 거였어. 미안하다고 하니 괜찮다고 머리 쓰 다듬어 줄래?”
유리는 이성진을 보더니 수줍게 고 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결의 품에 서 벗어나 천천히 똘이에게 다가갔 다.
똘이는 유리가 다가오는 것을 알면 서도 능청스럽게 앞발을 더 올려 고 개를 땅에 박았다. 그러자 유리는 똘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할 수 있는 가장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 했다.
듣는 사람은 귀엽기만 한 그런 목 소리로.
“똘이야! 괜찮아. 나 놀라서 그랬 어.”
“끼 잉.”
똘이가 발을 내리고 유리를 쳐다봤 다. 그러자 유리는 똘이가 귀엽게 보였는지 덥석 안았다.
“아하! 간지러! 그만해!”
똘이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유리의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유리 는 간지럽다고 그만하라고 하면서도 똘이를 밀쳐 내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런 유리와 똘이를 두고 한결에게 다가갔다.
“한결아……
“네.”
“동생 때문에 급해서 묻지 못했는 데 왜 동생하고 둘만 있었어?”
한결이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
졌다. 몸이 살짝 떨리는 것을 보니 생각만으로 두려운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해일이 지나간 지 7일 만에 짐작 하는 일이 일어날까 싶었다. 하지만 한결이의 말을 들으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아니요. 아빠하고 외갓집에 놀러 왔어요.”
“그럼 아빠는 외갓집에 계셔?”
“아니요. 중간에 헤어졌어요.”
“중간에 헤어지다니? 더 자세하게 말해 줄래?”
한결이는 똘이와 재미있게 노는 동 생을 보며 이성진에게 그동안 있었
던 일을 말했다.
부모님과 함께 외갓집이 있는 거제 도로 놀러 왔다. 아빠와 함께 거제 시내로 선물을 사러 간 날 밤에 해 일이 덮쳤다. 간신히 살아난 세 사 람은 외갓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 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방에 부서진 건물과 해일 때문에 생긴 쓰레기들이 넘쳐 났다. 2일 정 도 버티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 였다.
살아남은 사람 중에는 경찰이나 소 방관 같은 공무원들도 있었다.
공무원들이 중심이 되어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고 거제시 외곽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은 2일 전이 였다.
“그러니까 아빠하고 외갓집에 가는 도중에 나쁜 아저씨들을 만난 거라 고?”
“네. 아빠가 먼저 가라고 했어요. 뒤따라오신다고.”
약간의 식량이 든 가방도 한결이 아빠가 들고 있었다. 1일 전에 헤어 졌다. 아이들이 뛰고 걸어 봤자 얼 마나 걸을 수 있을까.
한결이 아빠가 뒤따라오지 못했다.
그냥 다쳐서 못 따라온 것이길 바 랐다.
“외갓집이 어딘데?”
“남부면이요.”
한결의 말에 지도를 꺼냈다. 남부 면을 찾았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물었 다.
“남부면이 확실해?”
“네. 엄마하고 외할아버지! 외할머
니가 기다릴 거예요.”
한결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 르겠다. 고무보트를 숨겨 두고 온 곳이 남부면이었다. 생존자 흔적은 없었다. 아니 생존자를 찾지도 않았 다.
해일이 일어난 지 7일이 지난 지 금 아무런 흔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한결이는 이성진의 표정을 보더니 아직도 신나게 똘이와 놀고 있는 동 생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성진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남부면 보셨어요?”
고개를 가만히 끄덕여 줬다. 말없 이 고개만 끄덕이는 것을 본 한결은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다.
“예상하고 있었구나……
“네. 아빠는 그래도 모르니 찾아가 보자고 했어요.”
14살 아이 같지 않은 태도였다. 인 터넷이나 핸드폰의 발달로 아이들의 습득력이 좋아진 것은 확실했다. 하 지만 한결이처럼 상황을 파악하고 참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저기……. 아저씨!”
“그래.”
“죄송한데요. 부탁이 있어요.”
만난 지 몇 분 안 된다. 하지만 한 결이의 말과 행동을 봐서 짐작할 만 한 부탁이 생각났다. 한결이 말을
꺼내기 전에 말했다.
“나는 거제시까지 갈 생각이다. 가 는 중간에 한결이 아빠도 찾아보 자.”
“정말이요?”
“그럼.”
한결이를 만났을 때 탈진한 상태였 다. 그것과 다르게 동생인 유리는 멀쩡했다. 그 이유가 빤하게 보였다. 한결이가 먹을 것을 동생에게 양보 하고 힘들면 업어서 데리고 왔을 것 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는 유리가 저렇게 멀쩡 하게 똘이와 함께 놀고 있지 못한 다.
“그 전에 배 좀 채우자.”
한결이를 업고 달려온데다가 긴장 이 풀리니 배가 고팠다. 그리고 한 결이 말로는 유리도 먹을 것이 필요 했다.
배낭에서 취사도구와 고체 연료 그 리고 라면을 꺼냈다.
한결이의 눈이 반짝였다. 한결이뿐 만 아니었다. 똘이와 함께 놀고 있 던 유리는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우와! 라면이다! 히히.”
“컹컹!”
똘이도 좋아하고 있었다. 저놈 라 면에 맛 들인 것 같았다.
“알았다. 넉넉하게 끓인다.”
라면 4개를 꺼냈다. 그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끓였 다. 익숙하면서도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한결이와 유리 그리고 똘이의 시선 은 라면에만 가 있었다. 언제 다 끓 나 그런 표정이었다.
잘 익은 라면을 한결이와 유리에게 먼저 덜어 준 다음 똘이에게도 줬 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컹컹컹!”
한결이가 감사하다고 말하자 유리 는 먹으려다 말고 오빠를 따라 감사
하다고 했다. 똘이도 감사하다고 하 는 것 같았다.
“그래. 많이 먹어라.”
사실 그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았 다. 그저 소모된 에너지만 채워 주 면 된다. 라면을 조금만 덜어 국물 과 함께 먹었다.
나머지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는 한결이와 유리에게 양보했다.
똘이도 아쉬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더 달라고 짖지는 않았다.
“아주 국물까지 싹싹 먹는구나.”
기름기만 아니라면 설거지하지 않 아도 될 정도였다. 설거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근처에 씻
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귀 중한 식수를 설거지하는 데 사용할 수도 없었다.
“아저씨. 제가 씻어 올게요.” 한결이가 눈치 빠르게 말했다.
“아니야. 일단 흙으로 대충 씻어 낸 다음 가다가 물이 있는 곳이 나 오면 그때 씻을 거야.”
“조금만 가면 물이 있어요. 오면서 봤어요.”
“얼마나 가면 되는데?”
“음……. 5분 정도요?”
“그럼 깨끗하게 씻어 올래?”
“네!”
한결이의 눈빛은 무언가라도 시켜
달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허락했다.
“오빠! 나도 같이 갈래!”
“안 돼! 너는 아저씨하고 있어.”
“아니야! 아빠가 도움을 받았으면 뭐라도 하라고 그랬어!”
아무 생각 없이 말한 유리 덕분에 한결이가 괜찮은 아빠를 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에게 저런 교 육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한결이나 유리도 그것을 잘 받아들인 것도 대견했다.
움찔.
조그만 소리에 바로 몸이 반응했 다.
“컹! 컹! 크르릉……
똘이도 누군가 조용히 접근하는 것 을 알고 짖고 있었다.
“얘들아! 이쪽으로 와라.”
한결과 유리는 이성진의 굳은 표정 과 똘이가 이빨을 드러내는 것을 보 고 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남자 3명이 100m 정도 떨 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차 뒤에서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야구 배트와 쇠파이프 비슷한 것을 들고 있었다.
“라면 냄새가 너무 좋아서 좀 얻어 먹으려고 왔습니다.”
3명 중 가운데 야구 배트를 든 남 자가 소리쳤다. 그런데 한결이가 부
르르 떠는 것이 보였다.
이유를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 았다.
“한결아. 동생 데리고 차 안에 들 어가 있어.”
“아저씨……
한결이는 이성진 혼자 무기를 든 3명을 이길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 다. 그래서 고개를 흔들었다. 이성진 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었다.
“괜찮아. 아저씨 생각보다 강해.”
“하지만 우리 아빠도……
“한결이는 동생 지켜야지. 이거 가 지고 차 안에 들어가 있어.”
한결이에게 배낭을 줬다. 한결이는 동생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야. 오빠 손잡아.”
유리 역시 3명을 알아보는 것 같 았다. 말도 못 하고 겁에 질려 있었 다. 한결이가 손을 내밀자 손을 붙 잡고 불타 버린 차 안으로 들어갔 다.
“똘이는 애들 지켜라.”
“ 컹!”
똘이는 바로 차 문 앞으로 달려가 자리를 잡았다. 송곳니를 드러낸 것 이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사이 3명은 15m 정도 되는 거 리까지 다가와 멈췄다.
“왜 아이들을 차 안으로 들여보내 세요? 우린 위험한 사람이 아닙니 다. 그저 라면 냄새에 이끌려 조금 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 싶어 온 것뿐입니다.”
가운데 선 남자가 리더인 것 같았 다. 양옆의 두 놈은 가운데 있는 놈 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위험한 사람이 아니면 손에 든 것 들을 바닥에 내려놔!”
확신에 가까운 상황과 증거 때문에 말이 좋게 안 나왔다. 무기를 내려 놓으라는 소리에 가운데 있는 남자 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당신이 위험한 사람이 아니란 증
거가 없는데 무기를 내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웃기는 소리였다.
“나는 맨손이고 당신들은 피가 묻 은 무기를 들고 있어. 그렇다면 누 가 위험한 사람일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저 세 놈을 위험하다고 말할 거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 이는 것이고 저놈 말이 맞다.
“이거 눈치가 빠르시군요. 아이들 에게 가방만 가지고 오라고 하세요. 그러면 가방만 가지고 가겠습니다.”
잔머리가 발달한 놈이었다. 가방을 준다고 해서 그냥 가리란 장담이 없
다. 가방은 가방대로 뺐고 다른 짓 을 할 놈들이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겁을 먹고 가 방을 줬을지도 모른다.
“거꾸로 제안하지. 손에 든 무기 내려놓고 그냥 가라. 그러면 다치지 는 않는다.”
절대 그럴 리가 없는 놈들이다. 만 약 무기를 내려놓고 간다고 해서 그 냥 놔둘 생각도 없었다. 걸려들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세 놈은 그럴 생각 이 없었다. 자신들은 무기를 든 3명 이고 이쪽은 1명이니까.
아직 똘이는 어떨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더 컸다면 위협적일 수도 있 다.
“어쩔 수 없군요. 저항하지 마세 요.”
야구 방망이를 땅에 질질 끌면서 다가왔다. 양옆의 두 놈은 익숙하게 좌우로 거리를 벌리면서 포위하듯 다가왔다.
일반인이었다면 겁을 먹고 뒤로 주 춤하며 가거나 3명 중 누구를 경계 할지 몰라 당황할 것이다.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었다. 야구 방망이를 든 놈이 목표였다. 야구 방망이를 든 놈까지의 거리는 10m 로 줄어 있었다.
“어……. 어!”
크게 세 발자국이면 10m는 금방이 다. 야구 방망이를 든 놈이 어어 하 는 사이에 이성진은 벌써 앞에 와 있었다.
빠각 하는 소리가 났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친 손바닥에 턱을 맞은 놈 의 다리가 살짝 뜨더니 그대로 날아 갔다.
힘 조절한다는 것이 실패한 것 같 았다. 이 정도까지 강하게 치려는 생각은 없었다.
“상철아!”
오른쪽 놈이 소리치며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왔다. 내리치는 쇠파이프
를 오른쪽으로 가볍게 움직여 피하 면서 허벅지를 찼다.
“억!”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주먹으로 코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었다.
“커헉!”
코가 부러지는 느낌이 확실하게 났 다. 뒤로 쓰러지는 놈을 확인하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렸다.
“어……. 어……. 그러니까……. 저 는 그냥……
쇠파이프를 든 마지막 한 놈이 겁 을 먹었다. 다가오다가 멈춰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겁을 먹었다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었다. 성큼 걸어서 다가갔다.
“상철이가 시켜서 한 것뿐입니다.” 변명하며 손에 든 쇠파이프를 바닥 에 던졌다.
“꿇어!”
이성진의 몸놀림이 무술을 한 사람 같이 보였다. 마지막 놈은 절대 이 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바로 무릎 을 꿇었다.
“시켰다고 그대로 하면 지은 죄가 사라지냐?”
“하……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닥치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네!”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겁을 확실하게 먹었다. 하긴 상철이인지 뭐인지 하는 놈은 3m 정도 뒤로 날 아가 기절했다. 다른 한 놈은 피를 철철 홀리며 기절해 있다. 남이 시 키는 대로 하는 놈이니 겁을 먹을 만했다.
“어제 남자 한 명과 아이 두 명을 만났지?”
“네?”
이성진이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 고 있었다. 어쩐지 아이 2명을 본 것 같았다.
짝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다시 짝 소리와 함께 고개가 반대 편으로 돌아갔다. 입안이 터졌는지 피가 흘러나왔다.
“만났지?”
“너……에……
“남자 어떻게 했어? 죽였어?” 죽였냐는 말에 고개를 흔들며 소리 쳤다.
“아입니다. 그냥 패서 먹을 것만 뺐고 놔뒀습니다!”
말하는 것을 보니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다른 정보를 얻을 때다.
“너희 셋이 다야?”
“아…… 아닙니다. 4명 더 있습니 다. 저희는 먼저 가서 정찰하는 것 입니다.”
묻지 않아도 술술 대답하고 있었 다.
“얼마나 떨어져 있는데?”
“그게•…”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보란 듯이 남자 4명이 나타났으니 까.
4명은 바로 상황을 눈치챘다. 2명 이 쓰러져 있고 1명이 무릎 꿇고 있는데 모르면 바보다.
“살려•…”
소리치려는 놈의 목과 어깨가 만나
는 근육에 로우킥을 선사했다. 빡 소리와 함께 그대로 옆으로 넘어갔 다. 조금만 위로 올려 찼어도 목이 부러져 죽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목을 차서 죽 인 것처럼 보인다.
4명이 주춤하는 것이 보였다. 숫자와 손에 든 무기만 믿고 까부 는 애송이들이었다.
“여기 와서 무릎 꿇어라! 그러면 살려 준다.”
근처에 떨어진 쇠파이프를 집었다. 거리가 있는데다가 4명이면 기습의 효과가 떨어진다. 4명 중 3명은 쇠 로 든 몽둥이 비슷한 것을 들고 있 었다.
1명은 칼을 꺼냈다. 일명 사시미라 고 불리는 식칼이었다.
“다…… 다가오지 마!”
이성진을 향해 소리치며 어떻게 할 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조금 전 본 것 때문에 쓰러져 있는 다른 2 명도 죽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었다.
이성진이 살려 준다는 말을 한 것 도 오해할 만했다.
“나이도 어린 것들이 강도질이나 하고 다니냐!”
아무리 잘 봐 줘도 20대 중후반이 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놈들에게 다가가자 식칼을 든 놈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이야야야!”
칼 쥐는 법도 제대로 모르는 놈이 었다. 그리고 저렇게 달려오면 ‘내 가 배를 찌를 겁니다.’ 알려 주는 것이다.
있는 힘껏 달려오는 놈들 지켜보고 있다가 오른발을 축으로 왼발을 뒤
로 빼면서 몸을 90도로 돌려 들고 있는 쇠파이프를 내려쳤다.
“아악. 내 손!”
“손이 아니라 팔목이다.”
딱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팔목 부근이 완전히 부러졌다. 팔목을 잡 으며 주저앉았다.
“아프지. 안 아프게 해 줄게.”
일명 니킥이라고 불리는 것을 코 부근에 선물했다. 무릎으로 치는 것 이다.
피를 뿜으며 기절했다. 다른 3명은 기절했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지금 무릎 꿇으면 살려 준다!” 떨어진 식칼을 왼손으로 집어 들었
다. 그러자 3명 모두 무기를 버리며 무릎을 꿇었다.
“살려 주세요!”
“으헝…….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아 용서를 빌고 있었다.
“그래. 잘못한 것을 아니 다행이다. 그래도 일단 맞자.”
3명이 눈을 크게 뜨며 무슨 소리 냐는 듯 쳐다봤다. 이런 놈들은 뼈 에 고통을 새겨 줘야 다른 생각을 안 한다.
“악. 아악.”
“억. 컥.”
“컥……. 키엑……
“움직이지 마라. 잘못 맞으면 진짜 죽는다!”
피하려다가 한 놈이 목울대를 맞아 숨을 제대로 못 쉬었다. 일단 놔두 고 2명을 집중적으로 팼다.
기술적으로 근육 부근만 팼다. 몸 을 움직이기 힘들게만 한 것이다.
3분 정도 더 팬 다음 멈췄다.
“아으……. 살려…… 주세요.”
“커헉. 커헉……
모두 저항 의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일어나라.”
하지만 3명 모두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그런 대사를 하지. 칼이 몸 안에 들어오면 뜨거운 것이 들어 오는 것 같다고……. 누구 먼저 뜨 거운 것을 경험해 볼래?”
3명 모두 벌떡 일어났다. 역시 정 신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 다.
“쓰러져 있는 놈들 저쪽으로 모아 라.”
쓰러져 있는 놈들 모으라고 말해도 머뭇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쇠파이프를 들자 3명은 바로 달려 가 쓰러진 친구를 불타 버린 차 근
처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 들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야! 엎어놓으면 진짜 죽는다. 제 대로 눕혀! 저것도 동료라고.”
이성진의 말에 제대로 눕혔다.
“여기 와서 무릎 꿇어라.”
다시 3명이 누워 있는 놈들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너희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고 다닌 거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고 다 닌 거냐고 묻자 3명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한숨이 나왔다. 이런 놈들이 어떻 게 사람을 습격해 물건을 뺐고 다녔
는지 모르겠다.
“너희들 오늘 진짜 운 좋은 줄 알 아. 나 아니고 다른 사람 만났다면 다 죽었어.”
이성진의 말에 3명은 똑같은 생각 을 했다. 당신이니까 7명이나 때려 잡은 거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누워 있는 사 람이 이성진이었을 것으로 생각했 다.
“말 안 해!”
“아! 넵! 그러니까 저희는 저쪽에 있는 산에 놀러 왔다가……
이놈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한심 했다. 별장에 남자 7명이 놀러 왔
다. 다행히 해일이 산속에 있는 별 장까지는 덮치지 않았다.
물이 빠지고도 별장 안에 먹을 것 이 남아 있어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핸드폰도 안 터지 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무기 될 만한 것들을 가지 고 별장에서 내려온 거다?”
“네.”
“그럼 거제시로 가지 않고 이쪽으 로 온 이유는 뭐야?”
“이쪽으로 가면 거제시가 안 나와 요?”
아주 어이가 없다 못해 죽겠다.
“너희는 군대도 안 갔다 왔냐?”
대답 없는 것을 보니 군대 안 갔 다 왔다.
“어디 아픈 곳도 없는 것 같은데 왜 군대 안 갔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런데 대답은 가관이었다.
“안 가겠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빼 주셨어요.”
“너도?”
옆에 있는 놈에게 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여기 있 는 7명은 병역 비리거나 비슷하게 군대 안 간 것이다.
“너 부모님이 뭐하시냐?”
“아버지가 병원장이세요.”
“너는?”
“ 변호사요.”
“너는?”
“회사 사장이요.”
기절해 있는 놈들 깨워서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놈의 자식들이 어디서 못된 것 만 배워 가지고.”
“상철이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일 이 생겼을 거라고 해서……
손을 들자 한 놈이 변명하듯 말하 기 시작했다. 연락도 안 되고 구조 대도 안 오는 것을 보니 문제가 심 각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무기를 들고 별장을 내려왔 다가 한결이 가족을 만난 것이다.
장난처럼 시작해 먹을 것을 빼앗고 한결이 가족이 가는 방향에 거제시 가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인 것이다.
“이것들이 다 커서 일진 흉내
갑자기 일진이란 말에 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혹시 너희 일진이었냐?”
“사고치고 부모님이 덮어 주고?”
점점 더 고개를 숙이는 것이 긍정 이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슬며시
말했다.
“아저씨! 저희 서울까지 데려가 주 세요. 그러면 부모님이 보상해 주실 겁니다.”
다른 두 놈도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본 것이 많았다. 시체는 물론 제대로 된 곳이 거의 없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국가 재난 상황 인 것을 알았다.
헬기 한 대 안 돌아다닌다.
“이거 웃기는 놈들이네. 보상이면 어떤 보상?”
“제가 잘 말하면 몇억은 그냥……. 억!”
바로 뺨을 날려 줬다.
“어이. 돈이면 뭐든 다 되는 줄 아 는 것 같은데 먼저 용서를 빌어야 하지 않을까?”
“죄…… 죄송합니다.”
“후……. 너희도 잘못이지만 이렇 게 만든 사회도 잘못이지. 야!”
“네!”
“넵!”
“예?”
“저거 보이지?”
이성진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코펠이 보였다. 라면 먹고 치우지 않은 상태였다.
“저것들 깨끗하게 씻어 오면 데려
가는 것 생각해 본다. 선착순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3명은 저린 다리를 끌면서 뛰었다. 그리고 서로 씻으려고 난리 쳤다.
저 행동 때문에 확실하게 결정했 다. 서로 협동해서 씻으려고 했다면 도와줄 마음이 조금 생겼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 와도 도와줄 마음이 1도 없다.
“빨리 안 씻어 와!”
소리치자 3명은 코펠을 들고 뛰었 다. 3명이 멀리 뛰어가자 불타 버린 차로 갔다.
똘이는 앞에 앉아서 재미있는 구경 하는 것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한결아! 유리야! 나와도 돼!”
한결이와 유리는 차 안에서 다 듣 고 있었다. 한결이가 유리의 손을 잡고 나왔다.
“저놈들 그릇 씻어 오면 아빠 찾으 러 가자.”
“정말이요?”
“우와. 아저씨 정말이요?”
“그럼.”
어차피 거제시까지는 가 볼 생각이 었다. 이놈들은 살인까지 할 놈들이 아니었다. 지금쯤 한결이 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으로 오고 있 을 것이다.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누구나 같을 테니까.
중간에 만나는 것이 나을 것 같았 다.
“우리 뭐하면서 기다릴까?”
“나는 똘이하고 놀래요!”
“유리야!”
“괜찮아. 똘이하고 놀아. 한결이는 나 좀 도와주고.”
유리가 똘이하고 노는 것을 보면서 한결이와 함께 바닥에 굴러다니는 흉기들을 가져다가 숲에다 버렸다.
이놈들 데리고 갈 생각이 없다. 이 놈들이 깨어나면 또 무기를 들고 설 칠 것이 분명했다.
조금 기다리니 3명이 헉헉 대면서
코펠을 들고 달려왔다.
“근처에 물 있는 곳이 있나 보네?”
“네. 저쪽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깨끗하게 씻어 왔다. 코 펠을 받아 잘 정리한 후에 배낭에 넣었다.
“한결아! 유리야 가자.”
“네.”
한결이가 유리의 손을 잡고 똘이는 옆에 섰다. 그냥 갈 것처럼 행동하 자 3명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저씨. 저희는요?”
“거기 친구들 깨어나면 같이 다녀 야지. 그냥 두고 나 따라오려고? 참
고로 나는 의리 없는 놈들은 용서 못 하지.”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3명은 이러 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멈췄다. 따라가면 맞을 것이 분명했 다.
“친구들 깨어나면 챙겨서 이쪽으로 가라. 거제시는 이쪽이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거제시 쪽으로 움직였다. 배부르게 먹여 놨 더니 한결이도 유리도 지친 기색 없 이 따라왔다.
하지만 그것도 1시간이 한계였다.
“오빠! 나 다리 아파!”
“조금만 더 걷고 오빠가 업어 줄
게.”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 유리가 다 리를 다쳐서 어쩔 수 없이 걷지 못 한다면 업고 가는 것이 맞지만, 그 런 건 아니었다.
“한결아. 잠시 쉬었다가 가자.”
“네? 하지만……
“한결아. 잘 들어라. 이제 한결이 네가 동생을 잘 보살피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유리 가 힘들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 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유리가 입을 내밀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현이었다.
“유리야. 아저씨 말 잘 들어 봐.
유리 오빠가 아저씨 처음 만났을 때 쓰러져 있었어. 만약 아저씨 못 만 났다면 유리는 오빠 다시 만나지 못 했을지도 몰라.”
유리 앞에 앉아 눈높이에서 이야기 했다. 그러자 유리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오빠 아파요?”
“유리도 힘들지만, 오빠도 힘들어.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다가 힘들면 쉬었다가 가야 해. 오빠가 유리 업 어 주고 가면 또 쓰러진다.”
“히잉. 오빠 아프면 안 되는데
“유리가 오빠 도와주면 안 아플 거
야.”
“정말이요?”
“그럼.”
유리는 오빠가 아픈 것은 싫은지 한결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빠. 내가 도와줄게.”
“그래. 유리야. 아저씨 말대로 유리 힘들면 조금 쉬었다가 가자.”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유 리를 또 위로하는 것은 똘이였다.
곁에 다가와 머리를 비비는 똘이를 보고 유리는 좋은 생각이 난 듯 말 했다.
“똘이야! 너 빨리 커서 나 태워 주 라. 그러면 울 오빠 안 아플 거야.”
“끼 잉.”
똘이는 머리 비비는 것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성진에게 갔다.
“똘이야 어디가?”
똘이는 이성진의 다리 옆에 딱 섰 다. 그리고 주저앉았다.
“유리야. 똘이는 아저씨가 데리고 다녀야지.”
유 Q.. 으....»
■q".• "S’.•
유리는 뭐라 말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하하. 이놈의 자식 의리 있네.”
“ 컹!”
똘이는 당연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짖었다. 똘이의 생존 본능은 이성진 을 택했다.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것 보다 이성진과 함께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전 주인의 뒤를 이어 새로운 주인이라고 이미 정했다.
한번 정한 주인을 쉽게 바꾼다면 삽살개가 아니었다.
조금 앉아서 쉬는데 똘이가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는 똘이가 빨랐다.
거제시 방향에서 절뚝거리며 한 남 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컹! 컹! 컹컹컹!”
똘이가 경계하며 짖자 한결이와 유 리도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남자를 확인하더니 한결이가 뛰어갔다.
“아빠!”
“한결아! 유리야!”
남자는 절뚝거리면서도 최선을 다 해 뛰었다. 그리고 한결이를 만나 안았다. 유리도 짧은 다리로 다다다 다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곧 아빠 와 한결이를 만나 같이 껴안았다.
저 모습을 보면서 아라 생각이 났 다.
한결이가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아 빠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곧 일어나 아이들과 함께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어른이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사실 지금이니까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상황이 더 나빴다 면 어떻게 했을지 모른다. 모두 챙 기다가 목적을 못 이룬다.
“강철진입니다.”
“이성진입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면서 강철진의 상태를 살폈다. 다친 곳이 꽤 많았 다.
“새끼들 더 때려 줘야 했는데.”
“아! 감사합니다. 그놈들도 두들겨
패 주셨다고요.”
“네. 버릇없는 애들이더라고요.” 한결이와 유리가 있어 욕은 더 못 했다.
“저기……. 죄송한데……
“이것 보세요!”
아! 진짜 여기서 쓰러지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다시 만나 긴장이 풀린 것은 이해한 다.
“아빠!”
“우엥. 아빠!”
강철진을 그대로 안아 그늘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생수병을 꺼내 수건을 적신 다음 피를 닦았
다.
“그놈들 진짜 더 패 줬어야 했는 데.”
생각보다 상처가 심했다. 여름이라 상처가 더 빨리 곪는 것 같았다.
배낭에서 응급 처치 세트를 꺼냈 다.
응급 처치 세트는 작은 손가방 크 기다. 정말 응급 처치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소독약도 작은 병 하나였 다.
하지만 감염 때문에라도 아낌없이 써야 했다.
곪은 자리는 소독한 칼로 살짝 쨌 다. 그리고 피가 나올 때까지 짰다.
“아빠! 히잉……
“유리야. 아저씨가 아빠 고쳐 주시 는 거야. 울지 마.”
한결이가 유리를 잘 달래고 있었 다. 똘이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유 리 옆에 가서 머리를 비볐다.
옆에서 아이들이 지켜보는 사이 상 처에 연고를 바르고 거즈를 붙였다. 찢어진 곳도 소독한 다음 연고만 발 랐다.
다리가 문제였다. 만져 보니 부러 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퉁퉁 부 어 있었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고통이 심했을 것이다. 그래도 참고 이곳까지 온 것 같았다.
인대나 근육에 손상이 가면 이렇게 퉁퉁 부을 수 있었다. 죽은피를 빼 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더는 약품을 쓸 수 없었다. 사용한 다 해도 압박 붕대 하나만 더 사용 할 수 있다. 나머지는 만약을 대비 해 남겨 둬야 했다.
“한결아!”
“네. 아저씨!”
“이 빈 통에 물을 가득 떠 와라.”
다 마신 플라스틱 생수병을 줬다. 다 마셨다고 해서 플라스틱 생수병 을 버리지 않았다. 구겨서 배낭에 넣으면 부피도 많이 차지 안 한다.
필요할 때는 바람만 넣으면 펴지니
편리했다.
“물이요?”
근처에 물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한결은 당황했다.
“똘이야!”
“ 컹!”
똘이가 바로 뛰어왔다.
“너 물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 지?”
“컹! 컹!”
숲 안쪽에 개울 비슷한 것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말을 잘 알아듣는 똘이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의 후각과 청각이면 가능했다.
그리고 똘이가 짖으며 꼬리를 흔드
는 것을 보니 확실하게 이해했다.
“똘이 따라가면 된다.”
“정말이요?”
한결이는 믿을 수 없었다. 똘이가 똑똑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강 아지 였다.
한결이가 못 미더워 하는 것 같자 똘이가 한결이의 바짓가랑이를 물었 다. 그리고 잡아끌기 시작했다.
“어? 어?”
“크르르.”
“알았어. 따라갈게.”
똘이가 이끄는 대로 한결이는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유리는 아빠 옆에서 손잡아 주면
서 아빠 빨리 일어나세요. 하면은 금방 일어나실 거야.”
“정말이요?”
“그럼.”
사람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호르몬 작용일 것이다.
의식이 없다 해도 몸은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손길을 느낀다. 사 랑하는 딸의 목소리에 반응해 강철 진의 몸은 자체적으로 치료 능력을 높일 것이다.
나 역시 하늘로 떠난 아내 지혜 때문에 모든 고통을 이기고 일어설 수 있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정신 력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
떤 아버지가 자식의 목소리에 반응 안 할까.
유리가 바로 강철진의 옆으로 가서 손을 잡고 앉았다.
“아빠! 빨리 일어나요. 네?”
유리가 강철진에게 힘을 주는 것을 보면서 다른 준비를 했다. 부어오른 왼쪽 다리에 댈 부목을 만드는 것이 다.
부목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먼저 환자의 상태를 본다. 강철진 은 왼쪽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부었 다. 걸을 때 충격을 덜 받도록 하는 것이 부목이다. 발바닥부터 무릎 근 처까지 길이의 나무나 단단한 것이
필요하다.
배낭에서 칼을 꺼냈다. 이 칼은 등 이 톱날처럼 되어 있다. 나무를 자 르기에는 편했다. 나무만 자르는 것 은 아니었다. 철조망도 자를 수 있 었다.
똑같은 길이의 나무 2개를 자른 다음 강철진의 발에 대 봤다. 딱 알 맞은 길이였다. 다음은 죽은 나뭇가 지를 모았다. 불을 피우기 위해서였 다. 고체 연료를 아껴야 했다.
그때 똘이와 한결이가 돌아왔다.
“아저씨! 물 떠 왔어요!”
“잘했다.”
생수병을 받은 다음 코펠을 꺼냈
다. 물을 붓고 준비해 놓은 곳에 코 펠을 올려놓고 불을 붙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물이 끓기 시 작했다. 끓는 물에 응급 세트 안에 있는 바늘을 꺼내 넣었다.
바늘이 왜 있냐고 생각할지 모른 다. 하지만 바늘과 실은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다. 옷을 꿰매야 할 수도 있다. 그것보다 찢어진 상처를 봉합 하는 데 더 필요했다.
지금은 강철진의 부어 있는 다리를 찔러 피를 뺄 생각이었다.
바늘을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꺼 냈다. 손에 위생 장갑을 끼고 강철 진의 부은 종아리를 찔러 댔다. 그
렇다고 깊게 찌르면 안 된다. 짧게 잡고 피만 나오게 찔러야 한다.
검은색 피가 흘러나왔다. 부은 곳 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리 고 아직 끓는 물에 수건을 넣어 충 분히 삶은 다음 꺼내 식혔다.
종아리 부근의 상처를 깨끗이 닦았 다.
다음은 가방 안에서 한 번도 안 사용한 수건을 꺼내 발목과 종아리 부근을 감쌌다. 압박 붕대로 감기 전에 충격을 홉수할 만한 것을 대는 것이 좋기 때문이었다.
다시 압박 붕대로 발목부터 종아리 를 감았다.
마지막으로 잘라 놓은 부목을 대고 움직여도 흔들리지 않게 잘 고정했 다.
“에고고. 이 짓도 오래간만에 하니 까 힘들다.”
한결이와 유리는 이성진이 힘들다 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 싶었다. 하 지만 구급 대원이나 의사가 봤다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15분 만에 깔끔하게 응급 처치를 한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쉴 틈이 없네.”
잠시 숨을 돌린 다음 다시 일어섰 다. 강철진이 깨어났을 때 집고 다 녀야 할 지팡이를 만들기 위해서였
다.
적당하게 그자로 생긴 나무를 찾아 잘랐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면을 칼 로 깎아 냈다.
마지막으로 손잡이 부근을 검은색 전기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잡는 것이 편해진다. 또한, 땀 때문에 손 이 덜 미끄러울 것이다.
“우와. 아저씨! 못하는 것이 없으 시네요.”
한결이가 여태까지 지켜보고 있다 가 지팡이가 완성되자 감탄하며 말 했다.
“나도 못하는 것 많다.”
“에이. 설마요. 싸움도 잘하시고 치
료도 하시고 이런 것도 만드시는데 요.”
딸 키우는 것 못했고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사는 것도 못했다는 말 은 못 했다.
아라야 자기가 알아서 큰 것 같았 다. 직장은 진짜 욕심 없이 다녔다.
승진이나 실적에 목숨 걸고 일하지 않았다. 그저 아라와 둘이서 살 만 큼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라가 중학생이 되고 곧 고등학생이 된다. 돈이 더 필요하다 는 것을 알았다.
사실 이번 여행은 마음을 잡으려는 목적이 더 컸다.
자존심까지 내려놓고 돈을 벌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의 아 버지가 되려는 마음이었다.
“이런 것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지 아니?”
한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결이 네가 동생을 지키겠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중요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런 마음.”
한결이는 이성진이 동생인 유리를 지키겠다는 마음을 예로 들자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수없이 오 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쓰러지면 잠
시 쉴지언정 다시 일어나는 그런 의 지를 가진 마음.”
한결이의 눈이 빛났다. 심성이 착 하고 생각이 제대로 된 아이였다. 똑똑하기까지 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동생 유리를 업고 걸었던 것이 기억났다. 아빠가 없으니 기댈 곳도 없었다. 동생을 지켜야 했다.
“그래.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이곳 에서 야영해야겠다.”
“네. 제가 뭐 도우면 될까요?”
알아서 도울 것이 있나 묻고 있었 다.
“아직 해가 떠 있으니까 생수병하 고 코펠 냄비 큰 것 가지고 가서 물 더 떠와라.”
“네.”
한결이가 바로 뛰어가 비어 버린 생수병과 코펠을 들었다. 그러자 똘 이가 바로 한결에게 뛰어갔다.
같이 가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똘이 도 알아서 같이 갈 생각인 것 같았 다.
똘이와 한결이가 다시 숲으로 달려 가자 배낭에서 전투식량을 꺼냈다.
저녁은 불고기 비빔밥으로 할 생각 이었다.
밤새 불이 꺼지지 않도록 나뭇가지
를 더 구해다 놨다. 동시에 살아 있 는 나무를 베었다. 지름 10cm에 길 이는 20cm 정도로 베었다.
그리고 한쪽을 팠다. 계획한 대로 거의 다 팠을 때 똘이와 한결이가 돌아왔다.
“아저씨 물 떠 왔어요!”
“ 컹!”
“그래. 수고들 했다.”
한결이가 물이 들어 있는 코펠을 그대로 불 위에 올려놓으려고 했다.
“한결아! 그 물은 끓일 거 아니 야.”
“네? 안 끓이면 왜?”
“그건 내려놓고 생수병을 먼저 줘
라.”
한결은 생수병을 이성진에게 건넸 다. 그러자 생수병을 나무에 꽂았다. 나무 한쪽을 파 놓은 이유는 생수병 을 꽂기 위해서였다.
“아저씨 그걸 왜?”
“다른 냄비 가져와라.”
한결이는 일단 빈 냄비를 가지고 왔다. 냄비에 나무를 넣어 세웠다.
그리고 한결이에게 이유를 설명했 다.
“한결아 만약 나무를 자를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이렇게 물을 정수하 면 된다.”
“ 정수요?”
“그래.”
약탈했던 놈들에게 들었던 정보에 의하면 모든 통신은 끊긴 상태였다. 한결이에게 들었던 거제시 상황도 좋지 않았다.
이건 나중에 헤어지더라도 살아남 았으면 하는 일종의 호의였다.
“물 안에는 수많은 세균이 살고 있 다. 그 물을 그냥 마시면 배탈이 난 다. 그래서 정수를 해야 한다. 정수 알약이 있다면 편하겠지만 없는 경 우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낫다.”
“저도 학교에서 배웠어요. 그런데 제가 배운 정수는 자갈이나 흙
한결이가 말한 방법도 정수가 되긴 한다. 하지만 돌이나 홁을 크기별로 넣고 마지막에 숯을 넣는 것은 생각 보다 힘들다.
살아 있는 나무를 이용할 수 있다 면 편했다.
“그래. 그 방법도 사용해 보고 이 것도 알고 있으면 좋다. 이렇게 밤 새 놔두면 깨끗한 물만 나무의 섬유 질을 통과해 냄비에 모인다.”
한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물질이나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천 같은 것으로 덮어 놓으면 끝이지.”
이건 야영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
다. 그냥 걸어 다니면서 정수할 때 는 테이프로 생수병을 고정하고 밑 에 비닐봉지 같은 것을 달아 놓으면 된다.
다른 냄비의 정수하지 않은 물은 내일 걸어 다니면서 정수하는 방법 을 보여 주려고 놔뒀다.
“그럼 저녁 준비나 해 볼까?”
꺼내 놓은 전투식량을 뜯었다. 그 러자 한결이도 전투식량을 집어 들 었다.
“저도 할게요.”
“할 줄 알아?”
“그럼요. 아빠 따라서 캠핑 갈 때 마다 자주 먹던 거예요.”
요즘 전투식량은 참 좋아졌다. 15 년 전만 해도 뜨거운 물을 부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발열 용액이 들어 있다.
그래도 한결이가 제대로 하는지 옆 에서 지켜봤다. 한결이가 전투식량 을 제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웃으면
서 다른 전투식량을 집어 들었다.
“잘하네.”
“저 잘한다니까요.”
“그래.”
전투식량을 5개 모두 만든 다음 충분히 뜨거워지기를 기다렸다.
“아저씨. 그런데 왜 5개나 만들어 요?”
“모자라면 조금씩 더 먹으려고.”
똘이까지 생각하면 4개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강철진은 아직 의식이 없으니.
“네!”
한결이는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은지 기분 좋게 대답했다.
전투식량이 다 만들어지고 열어서 일회용 수저로 참기름을 넣고 비비 자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에도 유리는 아빠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유리야! 밥 먹고 아빠 옆에 있어 도 되지 않을까?”
“아니요. 아빠 빨리 일어나게 하려 면 옆에 있을래요.”
밥 먹으라는 말에도 유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쩔 수 없이 똘이가 잘 먹을 수 있도록 전투식량 봉지를 뜯 어 준 다음 1개를 들고 유리에게 다가갔다.
유리는 고소한 냄새가 옆에 오자 침을 삼켰다. 원초적인 것에 가장 관심이 많은 것이 어린아이였다. 배 고픔을 아빠를 빨리 낫게 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참는 것이다.
“이거 먹으면 아빠가 더 빨리 일어 나실 거야.”
“정말이요?”
“그럼. 유리가 맛있게 먹어야지 아 빠도 맛있는 것 먹고 싶어서 빨리 일어나시지.”
살살 꼬셨다. 아라도 8살 때까지는 속이는 것이 가능했었다. 아직 실력 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유리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
니게 되었다.
“ O 으.99
—M •
“아빠!”
“유리니?”
강철진이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 의 손을 잡은 유리를 보며 다른 손 으로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이성진을 쳐다 봤다.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가 자신이 이성진을 만나는 순간 쓰 러졌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아! 감사합니다.”
강철진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이성 진에게 인사했다. 상황 파악이 빠른 것 같았다.
강철진이 유리의 이름을 부르고 이 성진에게 감사하다고 하자 조금 떨 어져 있던 한결이가 뛰어왔다.
“아빠!”
“한결아! 윽……
한결이가 안기자 고통을 느끼는지 인상을 썼다. 하지만 한결이의 머리 를 쓰다듬었다.
“한결이가 유리 잘 지켰구나. 아빠 잠깐 이 아저씨하고 이야기 좀 하게 옆으로 나와 줄래?”
“ O ”
’〒
한결이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옆으 로 비켰다. 그동안 참고 있었던 감 정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똑똑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한다 해 도 아직 14살 어린아이였다. 동생을 지키고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 에 힘든 것도 내색하지 않고 있었 다.
그러다 아빠를 다시 만나고 기댈 곳이 생기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거 아이들 보살펴 주신 것 감사 합니다.”
아무리 봐도 강철진은 평범한 사람 이 아니었다. 침착하게 한결이와 유 리를 돌봐 줬다는 것을 파악하고 말 했다.
“아닙니다. 한결이가 똑똑해서 잘 따랐습니다. 유리는 귀엽고 예쁘고
요. 저도 딸이 있어서……
“네••••••
강철진은 이성진이 딸이 있다고 말 하자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거제도 분은 아니신 것 같고 혹시 다른 곳에서 오셨습니까?”
“네. 서울에서 왔습니다.”
“서울이라……. 그렇군요.”
강철진은 무언가 아는 것 같았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혹시 서울에 연락할 수단이 있습 니까?”
핸드폰도 안 되고 위성 전화도 안 되었다. 그냥 물어봤다. 그런데 대답 은 그렇다였다.
“있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되고 군 시설에 가야만 합니다.”
군 시설이라고 말했다. 거제도에 있는 군 시설에 가서 통신할 수 있 다면 군인이 분명했다.
“강철진 씨는 군인이시군요.” 강철진이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대 답했다.
“네. 정보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 다. 계급은 소령입니다.”
어쩐지 군인이 양아치에게 맞고 다 닌다 했다. 물론 7명이 한꺼번에 달 려들면 맞을 수밖에 없다.
현장을 직접 뛰지 않으며 정보 분 석을 하고 지시만 내리는 영관급 소
령의 경우 실전이나 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제가 몸이 이래서 그런데 이성진 씨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제가요?”
“네. 대신 군 시설에 가면 서울과 연락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대답 대신 어이없는 표정을 보여 줬다. 지금 강철진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협상하고 있다.
이성진의 표정을 본 강철진은 설득 하기 위해서는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야 했다.
“군 시설에는 해일은 물론 핵에도 무사한 지하 벙커가 있습니다. 만약
위성이 사라져 통신이 안 된다면 극 비 기술을 이용한 통신이 가능합니 다.”
“극비 기술이요?”
군 시설이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 고 있다. 도와준다는 확답을 받은 다음에 말할 것이 분명했다.
“저도 확실한 원리는 모릅니다. 하 지만 가능합니다.”
강철진의 말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확인해야 했다.
“몇 가지만 사실대로 대답해 준다 면 도와주겠습니다.”
어차피 거제시에서 서울과 통신이 되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군 시설
에 가서 서울과 통신할 수만 있으면 된다. 서울이 무사하다면 아라 역시 무사할 테니까.
“네. 물어보세요.”
강철진은 이성진의 도움이 꼭 필요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준비한 겁니까?”
“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질문의 의도와는 다른 대답이 나왔 다. 이성진이 질문한 것은 이런 재 난 상황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지하 벙커를 만들었는지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강철진의 대답은 이번 해일
의 원인을 알고 있는 것같이 대답했 다.
“해일 피해가 없는 내륙 지역은 지 금쯤 계엄 상황일 겁니다.”
아직 정부가 제대로 움직인다고 생 각하는 것 같았다.
“계엄인 것은 이해하지만 구조대가 오지 않는 것은 이해가 안 갑니다.”
정부가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면 거 제도는 벌써 구조대가 왔어야 했다. 그런데 한결이의 말을 들어보면 구 조대는 오지 않았다.
구조대가 올 것 같았으면 강철진이 한결이와 유리를 데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섬 지역은 포기했을 수도 있습니 다. 수많은 시나리오 중에 해일에 의한 재난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그 러니 거제도에 아직 살아 있는 사람 이 있다고 통신을 보내야 합니다.”
“통신을 보내면 구조대를 보낼까 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필요한 물품은 보낼 겁니다.”
사실 강철진도 확신은 못 한다. 하 지만 거제도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 다고 알리면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좋습니다. 그렇다 치고 이런 일이 왜 일어난 겁니까?”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러자 강철진은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다.
“정확한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다 만 다른 세계에서 지구를 침공할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대한 민국 안에서도 군 수뇌부와 관련자 만 아는 극비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다른 세계 라니.
다른 세계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 성이란 말인가 싶기도 했다.
“지금 강철진 씨가 말하는 것을 보 면 다른 세계에서 침공했다고 확신 하는 것 같은데……
“네. 침공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다
른 세계에서 침공할 때는 전자기기 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무슨 마나 간섭현상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특수한 시설을 갖춘 곳이 아닌 이상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 특수한 시설을 갖춘 곳이 군 시설이다?”
“맞습니다.”
이해가 안 가지만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군 시설은 어디에 있습니 까?”
“장목면에 있습니다.”
“장목면이라.”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은 밝았다. 지도를 꺼내 장목면이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강철진을 노려봤다.
“장목면은 거제시에서 북동쪽으로 올라가야 있군요.”
“네••••••
지금 있는 곳은 거제시에서 남서쪽 이었다. 완전 반대 방향이었다.
강철진은 이성진이 지도까지 가지 고 있을 줄 몰랐다. 그냥 여행객인 줄 알았다.
“남부면에 먼저 들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아내 분 때문이라면 그 이유는 사 라진 것 같습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렇게 말 해야 했다.
“사라지다니요!”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남 부면에서 오는 길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 었습니다.”
강철진은 이성진을 노려봤다. 조용 히 말해도 될 것을 굳이 한결이와 유리가 옆에 있는데 말했기 때문이 었다.
이성진을 노려보던 강철진은 힘겹 게 말했다.
“그래도 가 봐야 합니다.”
“그럼 제 도움은 여기까지입니다.”
장목면에 시설이 있다면 혼자 가도 된다. 어지간한 장비는 다 다룰 줄 알았다. 문이 막혀 있다면 군 시설 이니 재료를 구해 폭탄을 만들어 뚫 고 들어가면 된다.
“이성진 씨!”
“그렇게 소리쳐도 소용없습니다. 장목면이 아니더라도 내륙에만 가면 다른 세계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한 시설이 있을 테니 그곳에 가도 됩니 다.”
“거제 대교는 끊겼습니다!”
“거제 대교로 건너갈 생각 없습니 다.”
기름만 구하면 통영 쪽으로 건너가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된다.
이성진의 말에 강철진이 눈을 반짝 였다.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수단이 있군 요.”
강철진이 아내의 생사를 확인한 다 음에 장목면에 가려는 이유는 통신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목면 군 시설은 해군 기지였다. 가까운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장비가 있다. 이렇게 되면 장비 때문이라도 이성진의 도움이 더 필요했다.
“이성진 씨 직업이 무엇입니까?”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광고 마케 팅 회사 다녔습니다.”
“그걸 지금 저보고 믿으라는 말입 니까?”
“ 네.”
“이성진 씨가 가지고 있는 장비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상황 파악을 하는 것은 평범한 직장 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보 계통이라고 하더니 눈치가 빨 랐다.
“서바이벌에 관심이 많아서 공부 좀 하고 실전처럼 10년 가까이 내 면 무인도에 가서 합니다.”
“무인도에서 이런 능숙한 응급 처 치도 하나 보군요.”
여러 번 해 본 것 같은 처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안 믿 으면 어쩔 수 없고.
“네. 무인도에서 혼자 지내다 보면 다칠 때가 많더군요.”
강철진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 이 성진이 도와줄 것 같았다.
“저를 도와주신다면 내륙으로 쉽게 갈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요?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면서요.”
요즘 세상에 전자기기가 안 들어가 는 곳은 없었다.
“평범한 전자기기는 안 됩니다. 특 수한 처리를 한 전자기기는 작동 가
능합니다. 지금쯤 정신없이 전자기 기에 특수 처리하는 중일 겁니다.”
“자꾸 말이 바뀌는군요. 못 믿겠습 니다.”
강철진은 이성진을 설득하기 위해 더 많은 사실을 말했다.
“다른 세계에서 침공할 것을 알면 서 대비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 까!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면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생각하죠. 그■럼 어 떻게 내륙으로 쉽게 갈 수 있게 해 줄 수 있습니까?”
“긴급 상황임을 알리고 구조 요청 을 할 것입니다.”
“구조 요청을 하면 구조하러 온다 는 말인가요?”
“네. 저와 아이들 그리고 이성진 씨 정도는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강철진은 어차피 여기까지 말한 것 자신이 하는 일을 말했다.
“다른 세계의 침공이 일어났을 때 대비하는 작전 계획을 수립하는 일 과 다른 나라와 연계하는 일이 제 임무입니다. 제 머릿속에는 대한민 국의 작전 계획과 다른 나라와 연락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이죠.”
강철진의 말을 들으니 한숨이 나왔 다. 꼭 이런 경우가 있다. 그 어떤
희생을 치러도 구출해야 하는 사람 이 엉뚱한 곳에 있다.
최악의 경우 죽여야 하는 임무가 떨어진다.
구출할 수 없다면 죽여야 했다. 그 래야 더 많은 사람이 죽지 않으니 까.
“음……. 그렇다면 생각해 보겠습 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너무 겁먹은 것 같으니 저녁을 먹고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죠.”
한결이와 유리가 눈을 크게 뜨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전투식량도 다 식었다.
“그럼. 똘아 가자.”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그곳에 함 께 있으면 강철진이 편하게 놔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결이와 유리를 안심시키는 것도 강철진의 몫이었다.
똘이와 함께 조금 떨어진 곳에 다 시 모닥불을 만들었다.
그리고 늦은 식사를 했다. 슬쩍 보 니 강철진과 아이들 역시 전투식량 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강철진이 말한 것들은 구미가 당겼다.
쉽게 서울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 만 찜찜한 것도 많았다.
강철진이 말한 것을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무언가 감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위험 신호였다. 그렇다고 강철진 때문에 느끼는 위험 신호도 아니었 다. 강철진 때문에 느꼈다면 벌써
알았다.
“저기……. 아저씨.”
한결이가 다가왔다.
“왜?”
“아빠하고 이야기했어요. 아저씨가 나쁜 아저씨들 혼내 준 거하고 저 구해 준 것도요. 그리고 외할아버지 댁도……
한결이의 표정은 ‘같이 가 주시면 안 돼요?’였다.
“불편한 아버지가 걱정되니?”
“네.”
한결이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했 다.
“왜 한결이가 미안해해?”
“제가 최대한 도움이 될 테니 까……. 그러니까……
“도와 달라?”
“네. 제가 지금 아저씨 말처럼 최 선을 다해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어요. 대신 제가 더 크면 꼭 이 은혜 갚을게요.”
젠장. 했던 말을 하니 난감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포 기하지 않으면 기회가 온다고 말했 었다.
똑똑해도 너무 똑똑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알았다. 잠시 한결이 아버지하고 이야기 좀 해야겠다.”
“정말이요?”
“그래.”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강철진에게 갔다.
“강철진 씨!”
“네.”
“첫 번째로 서울과 통신해서 상황 을 알아보고, 두 번째로 무조건 구 조 요청을 해서 나를 데리고 가 주 세요.”
“물론입니다.”
강철진이 기쁜 표정을 했다. 하지 만 아직 한 가지 조건이 더 남았다.
“세 번째로 알고 있는 것은 절대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극비인 것도 말입니까?”
“네. 극비보다 더한 것이라 해도요. 그렇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정보가 적으면 상황을 판단할 수가 없어요. 상황 판단이 늦으면 대처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 이 될지는 모릅니다.”
강철진은 이성진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았다.
“그럼 저도 이성진 씨에게 정말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네.”
“정체가 뭡니까?”
“거창하게 정체랄 것은 없습니다. 다만 15년 전……
SAS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유리가 소리쳤다.
“우와! 달에서 별똥별이 떨어져 요!”
새롭게 나타난 달에서 유리가 말한 것처럼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었다. 엄청난 숫자였다.
그중 하나는 정확하게 거제도의 중 심부를 향하고 있었다.
“젠장! 모두 최대한 산에 가까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