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생존자-1화 (1/50)
  • 1장. 생존 전문가

    이것도 병이다. 이렇게 오지에서 극한까지 나 자신을 몰아붙여야 살 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하늘 이지.”

    남해의 무인도 모래사장에 모닥불 을 피워 놓고 직접 잡은 물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와 무인도의 조그만 숲에서 사 는 풀벌레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좋네.”

    도시의 소음이 없는 적막함과 자유 가 좋다. 그리고 먹고 살아남기 위 해 자급자족하는 무인도 서바이벌은 직장 상사의 잔소리도, 수많은 업무 자료도 잊게 만든다.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으니까.

    “오늘따라 달이 더 가까이 있는 것 같냐?”

    보름달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것 도 살아남는 데 중요한 정보였다. 특히나 이런 무인도에서는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조수 간만의 차는 보름달과도 연관 있다. 뭐 지구의 자전과 달이 끌어당기는 힘 등의 원 리는 잘 모른다. 하지만 보름달이

    뜨고 가깝게 보이면 바닷물이 높아 진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안쪽으로 더 옮겨야겠네.”

    바닷물에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해 피워 놓은 모닥불이 아깝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닷물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불씨만 옮기면 되니까.

    “내일이면 휴가도 끝인가?”

    숲 근처에 지난 3일 동안 지내던 곳이 있었다. 무인도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모래사장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보내려 했다.

    다른 직원들이 월차나 연차를 사용 할 때 꾹 참고 있다가 1년에 한 번

    5일을 사용한다. 하루 정도는 집에 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내일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예상대로네.”

    모닥불을 옮겨 피워 놓고 자리를 잡았을 때쯤 모래사장에 물이 찼다. 몇 번을 왔어도 이런 적은 없었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환경도 변하나 싶었다.

    “조금만 더 올라오면 여기까지 오 겠는데?”

    약간 불안했다. 하지만 바닷물이 올라왔던 흔적이 없어 불안함을 떨 쳤다. 그리고 이제는 내 곁에 없는 사람이 그리워졌다.

    “지혜야. 약속대로 아라 잘 키우고 있다. 1년에 한 번 이렇게 너를 기 억하는 것으로 용서해 주라.”

    15년 전 떠난 아내의 유언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딸인 아라를 키웠다. 처음에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때문이 라도 이를 악물고 적응했다.

    처음 지혜를 만난 날이 기억났다. 자연스럽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 다. 그 위험한 상황에서도 눈빛은 살아 있었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또 봉사 활동 을 갔으니.”

    그리고 한숨도 나왔다. 보통 사람 들은 반군 게릴라에게 잡혀 목숨을 위협받는 일을 겪은 후에는 다시 아 프리카로 돌아가 봉사할 생각을 하 지 않는다. 그런데 지혜는 다시 돌 아갔다. 덕분에 지혜와 결혼할 수 있기는 했지만.

    “미치겠네.”

    지혜만 생각하면 평생 흘리지 않을 것 같았던 눈물이 눈에 고인다. 눈 물 때문에 달이 두 개로 보이는 것 같았다. 눈물을 닦았다.

    “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달이 두 개가 맞았다. 눈물 때문에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두 개의 달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15년 만에 불안한 예감이 등을 찌르르 관통했다. 이런 느낌이 든 이후에는 항상 위험이 닥쳐왔다. 습관적으로 가방을 챙겼다.

    하늘에서 별똥별이 갑자기 떨어지 기 시작했다. 숫자도 엄청났다. 꼭 포탄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 불안해졌다.

    “물이 빠져?”

    근처까지 밀려왔던 바닷물이 순식 간에 빠지고 있었다. 백사장은 물론 저 멀리까지 빠지는 것 같았다.

    밤이라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전기는 물론 등대도 없는 이곳에서 어두운 바다를 확실하게 볼 수 없었 다. 하지만 밝은 두 개의 보름달로 인해 어렴풋이 보였다.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랜턴을 꺼 내 비췄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바로 가방을 메고 허벅지에 두 번 째 가방을 묶은 다음에 몸을 돌려 숲으로 달렸다.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진짜라면 가장 높은 곳으로 가야 했다. 몇 번 이나 온 무인도이기 때문에 가장 높 은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어 두운 숲을 랜턴 하나만 의지해 달렸

    다. 그리고 무인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위성 전화기가……

    가방 옆 주머니에서 위성 전화기를 꺼냈다. 한 손은 위성 전화기의 번 호를 누르면서 다른 한 손은 밧줄로 몸과 나무를 단단하게 묶었다.

    “신호가 안 떠?”

    액정에는 신호가 안 잡힌다는 표시 가 떴다. 그럴 리가 없었다. 위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신호가 안 잡힐 리가 없었다. 또한, 이곳은 가장 높 은 곳이었다.

    찌르르하는 느낌이 올라왔다. 위험 이 가까이 왔다는 증거였다. 이것

    때문에 내 목숨은 물론 동료의 목숨 까지 몇 번이나 구했는지 모른다.

    랜턴을 사방으로 비추며 확인하는 순간 한곳에서 멈췄다. 랜턴의 빛이 뻗어 나가다가 멈추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두 개의 달빛에 반사되는 물 보라까지!

    높이가 엄청났다. 이 조그만 무인 도 정도는 그냥 집어삼킬 만큼.

    나무에 묶은 밧줄을 꽉 잡았다. 그 리고 나무가 부러지지 않기를 기도 하는 순간 해일은 그대로 무인도를 덮쳤다.

    강력 샤워기의 물살로 온몸을 맞는 것 같았다. 아니 더 심했다. 온몸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 으려고 노력했다.

    해일이 덮치고 지나간 시간은 순간 이었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의 느낌 은 수십 분 동안 물을 맞은 것 같 았다. 그리고 한 번이 끝이 아니었 다.

    정신을 차리려는 순간 해일이 한 번 더 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견딜 수 없었다. 해일 때문인지 부러진 나무가 바닷물과 같이 날아와 머리 와 부딪쳤기 때문이었다.

    축 늘어진 상태로 해일이 지나가고 해가 뜰 때까지 있었다.

    u O 으 ’’

    머리에 고통을 느꼈다. 좋은 징조 였다. 살아 있으니까 고통을 느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나무 위에 그대로 묶인 상 태였다.

    “아! 위성 전화기!”

    손에 힘이 빠져도 잃어버리지 않게 위성 전화기의 줄을 손목에 걸어 놨 었다. 그런데 줄만 달랑거렸다. 해일 과 함께 위성 전화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오늘 무인도에 오기로 한 고깃배는 올 수 없을 것이다.

    고깃배 사장님이 살아 있다면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해 주기를 바랄 뿐 이었다.

    “하! 무인도는 이제 없는 건가?”

    바로 발밑 Im 정도 아래까지 바닷 물이었다. 망망대해에 나무가 하나 솟아 올라와 있고 그 나무에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주변은 다 물이었 다. 심지어 배로 15분 거리인 옆 섬 도 거의 다 바닷물에 잠겼다. 산꼭 대기만 달랑 보였다.

    “아라가 걱정할 텐데. 내년부터는 못 오겠네.”

    자기 엄마인 지혜를 닮아서 그런지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사고만 나면 변한다. 아주 지 아빠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이번에도 위험하니까 가 지 말라는 것을 1년에 한 번이라고

    설득하고 왔었다.

    “위성 전화기까지 없으니 연락도 못 하고……. 난 아라에게 죽었다.”

    딸 가진 아버지는 다 알 것이다. 아버지는 딸 바보가 될 수밖에 없 다. 더군다나 지혜가 죽음으로 부탁 한 딸이다. 그렇다고 아라가 아버지 를 무시한다거나 사고를 치는 그런 막돼먹은 아이는 아니다.

    어떤 때는 친구 같고 어떤 때는 엄마 같은 딸이다. 너무 똑똑해서 말싸움에서 이겨 본 적이 없었다.

    “뭐 내가 잘못한 경우에만 말싸움 했으니 당연한가?”

    아라를 생각하니 이 위험한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그냥 나온다. 내가 사랑하는 딸이니까.

    “배낭 오케이! 생존 배낭! 오케이.” 등에 멘 배낭과 허벅지에 묶은 작 은 배낭이 무사한 것을 확인했다. 식수가 문제이긴 하지만 1L 정도가 배낭에 있으니 10일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먹을 것도 비상시에 쓸 에너지 바와 전투식량이 있었다. 나 누어 먹으면 충분했다.

    “이성진. 잊지 마라. 지금 너는 20 대가 아니다. 40대 배 나온 아저씨 다.”

    생존을 위해서는 주변을 살피는 것 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

    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파 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였 다. 살고자 하는 의지!

    “아라야! 아빠가 꼭 간다. 기다려 라! 너 혼자 뒀다가는 지혜가 가만 히 안 둘 텐데 그럴 수는 없지!”

    꼭 살아서 아라를 만나러 가야 했 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 다. 전문가라면 전문가라고 할 수 있으니까.

    생존 전문가!

    아라를 찾으러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 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

    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저 멀 리 산꼭대기만 보였다. 나머지는 다 물이었다.

    “매물도인가?”

    위치를 봐서는 확실했다. 근처에 가장 높은 산을 가지고 있는 곳이 매물도이기도 했다. 문제는 무인도 에 오시기로 한 선장님이 매물도에 사신다는 것이다.

    “이런 해일에 살아남은 것도 행운 이지.”

    행운이 아니었다. 위기 감지 능력 과 잘 훈련된 결과였다. 위험이 닥 쳐온다는 것을 감지 못했다면 해안 가에서 죽었다. 나무에 올라가 몸을

    묶어야 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해 일에 그대로 쓸려 나갔다. 또한, 가 지고 있는 생존 장비들은 앞으로 유 용하게 쓰일 것이다.

    “헤엄쳐 가기에는 위험이 너무 큰 데.”

    물이 이렇게 차기 전이었다면 무인 도 해안가에서 매물도까지 헤엄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안 가에서도 한참 들어온 곳이었다.

    “하루만 더 보고 결정하자.”

    물이 빠질 수도 있었다. 헤엄쳐서 갈 거리가 줄어든다. 위험이 줄어든 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마냥 물이 빠지기만을 기다

    릴 수는 없었다. 식량과 체력이 남 아 있을 때 가야 했다. 나무에 매달 려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조금 남은 땅이라도 있어야 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물 이 조금 빠지는 것 같아 하루 더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물이 빠져도 차이가 없었 다. 바로 밑에 있던 물이 lm 정도 내려갔다고 해서 매물도까지 헤엄쳐 가는 거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가자.”

    식량만 축내고 있을 수 없었다. 헤 엄쳐 가는 데 힘을 더 줄일 수 있 는 장비를 만들 생각이다.

    바지를 벗었다. 그나마 겨울이 아 니어서 다행이었다. 바지의 밑단을 묶고 허리 부근은 허리띠로 꼭 맸 다. 공기가 가득 차 있는 튜브가 만 들어 졌다.

    “비싼 돈 주고 산 방수 바지가 제 몫을 하네.”

    구출을 기다리기 위해 그냥 떠 있 는 것이라면 굳이 방수 바지가 아니 더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몇 시간 을 헤엄쳐 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완 전한 튜브가 되어 버린 방수 바지가

    최고였다.

    “다음은 바람과 물의 흐름인가?” 손가락에 침을 묻혀 하늘로 들었 다. 바람은 매물도 방향으로 불었다. 몇 개 안 남은 나뭇잎을 바닷물에 떨어뜨렸다. 둥둥 떠서 홀러가는 곳

    “젠장. 반대 방향이네.”

    물이 빠지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 만 그 방향이 매물도와 반대 방향이 었다. 바람과 물의 방향이 매물도였 다면 헤엄쳐 가다가 힘들면 편하게 바지에 기대어 홀러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래선 힘들어도 쉴 수가 없 었다.

    힘들게 헤엄쳐 왔던 방향으로 다시 흘러갈 테니까.

    “내 인생에 언제 편한 적 있었나?” 있었다. 그녀와의 짧은 생이 있었 다.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다. 그리 고 내 딸 아라가 밥 차려 줄 때도 편했다.

    “가자! 혼날 때 혼나더라도 아라 밥은 먹고 혼나야지!”

    바지로 만든 튜브를 겨드랑이에 끼 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매물 도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장장 4시간을 넘게.

    “헉헉……. 우웨엑!”

    물이 더 빠져서 조금 더 빨리 도

    착했다. 매물도의 산꼭대기만 보이 던 것이 10m 정도 더 보였다.

    하지만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4 시간 넘게 헤엄쳐 매물도 산에 도착 하자마자 토악질을 해 댔다.

    한참을 토한 다음 토한 자리를 피 해 하늘을 보고 누웠다. 땅에 누우 니 정말 좋았다. 하지만 곧 등에 배 기는 돌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 다.

    “캠프부터 만들어야지.”

    매물도에서 거제도까지 가려면 많 은 것이 필요했다. 비와 바닷바람을 막을 곳을 만들어야 한다.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리고 배낭

    에서 야전삽을 꺼내 땅을 파고 배수 로를 만들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방수천을 깔았다. 살아남은 나무를 잘라 지지대로 삼 고 비옷을 펼쳐 지붕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이 번쩍 떠졌다. 딱 3시간만 자 겠다고 마인드 컨트롤 한 것 때문이 었다. 해가 지고 달이 떠 있었다.

    두 개의 달이.

    가방에서 랜턴을 꺼냈다. 그리고 나침판을 꺼내 비췄다.

    “뭐야 이건.”

    나침판의 바늘이 빙그르르 돌고 있 었다. 짐작 가는 것은 너무 가까이 떠 있는 저 달이었다. 지구 자기장 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분명했다.

    나침판을 다시 집어넣은 다음 랜턴 을 껐다. 그리고 하늘의 별자리는 그대로 있기를 바랐다.

    “찾았다. 북두칠성!”

    흔히들 밤바다에서 방향을 알려면 북극성을 찾으라고 한다. 그리고 대 부분 밤하늘에 가장 빛나는 별이 북 극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백날 가장 빛나는 별을 찾아봐라. 다 똑같이 보이지.

    “국자 부분 아래 별 두 개 거리만 큼 5배면……. 저거네. 북극성.”

    봄과 여름에는 북극성을 찾으려면 북두칠성을 먼저 찾아야 한다. 가을 과 겨울은 W 모양의 카시오페아를 찾으면 되고.

    여름이니 북두칠성을 먼저 찾은 것 이다. 그리고 손잡이 부분이 아닌 국자 부분의 맨 아래 두 별을 찾는

    다. 두 별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방향으로 두 별의 거리 5배 위치에 있는 별이 북극성이다.

    모르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 찾는 다.

    “북쪽은 이쪽.”

    땅을 파서 북쪽을 표시했다. 낮이 되더라도 북쪽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모닥불을 피우고 싶었 지만 다 젖은 나무라 포기했다. 그 냥 누웠다. 새로 나타난 달이 너무 가깝게 보였다.

    “넌 어디서 갑자기 왔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상상해 보지만 다 헛된 상상

    이라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낮이 되면 잠수해서 쓸 만한 물건을 찾아 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직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 푹 자 둬야 했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 O 으”

    —"o’*

    빛이 비치는 것과 약간 으스스한 느낌에 눈을 떴다. 해가 뜨고 있었 다. 이런 곳에서는 해가 뜨는 시간 이 가장 춥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임시 캠프에서 나와 스트레칭을 가 장한 기지개를 켜다가 깜짝 놀랐다.

    “젠장. 내 인생이 뭐 이렇지. 하루 만 더 기다릴 것을.”

    밤사이에 누군가 물을 쪼옥 빨아먹 은 듯이 물이 빠져 있었다. 매물도 의 모든 곳이 보였다. 헤엄쳐 건너 온 무인도까지 보였다. 무인도 역시 물이 빠져서 잘 보였다.

    “하!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까?”

    물이 빠진 매물도의 모습은 처참했 다. 항구가 있던 낮은 지대는 진흙 같은 것이 가득 차 있었다. 그나마 높은 지대에 있던 집들은 온전해 보 이는 것 같았다.

    배낭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 임시 캠프 바닥에 놨다. 그리고 빈

    배낭을 메고 손에는 야전삽을 든 상 태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쓸 만한 것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특히나 식량과 물은 필수였다.

    온전해 보이는 집들이라고 생각했 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아니었 다. 온갖 잔해가 마당은 물론 집 안 까지 들어가 있었다. 수색하려면 잔 해를 치워야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네.” 잔해를 치우기보다 주변 정찰을 하 기로 했다. 다른 집 중에는 잔해를 치우지 않아도 되는 집이 있지 않을 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다시 가

    장 높은 곳에 있는 첫 집으로 돌아 왔다.

    “다시 해일이 올 것 같지 않으니까 캠프를 옮겨야겠네.”

    산꼭대기에 있는 캠프를 이곳으로 옮기려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엉성하게 만든 캠프보다 집 이 지내기 좋다. 두 번째로 수색해 서 얻은 식량과 물 같은 것을 저장 하기 쉽다. 그래서 다시 산을 올라 캠프를 해체하고 장비를 챙겨 내려 왔다. 그리고 집 안의 잡동사니를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거실을 다 치우고 방문이 열리지 않아 뜯어냈다. 하지만 들어가지 못

    하고 멈춰 섰다.

    “알고 있었잖아.”

    몸을 돌려 시신을 싸서 가지고 나 올 만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 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별수 없이 방으로 들어가 이불에 두 노부부의 시신을 말아서 가지고 나왔다.

    “미안합니다. 나중에 묻어 드릴게 요. 지금은 제 안전이 먼저라.”

    두 노부부의 시신을 담벼락 밑에 두고 집을 다시 치우기 시작했다.

    해가 질 때쯤 사람이 머물 만한 곳이 되었다. 깨진 창문에는 김장용 비닐을 테이프로 붙여 막았다.

    방 안에 들어가 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두 노부부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곳이다. 주인집 방에 들어가는 것은 손님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없다 해 도…….

    조그만 거실에 누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 까……

    안전한 베이스캠프가 생기니 드는 생각이었다. 아니 밤이 되자 다시 보이는 새로운 달 때문에 이런 생각 이 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었 다.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했다. 잠 을 못 자면 쉽게 지친다. 훈련받은

    대로 모든 생각을 뒤로하고 눈을 감 았다. 그렇다고 깊은 잠에 빠지지는 않는다. 가수면 상태 비슷하게 잠이 든다.

    옆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 껴지면 바로 일어날 수 있게.

    바스락!

    익숙하지 않은 소리였다. 바람 때 문에 비닐이 움직이는 소리가 아니 었다. 잠들기 전에 고정적으로 들리 는 소리는 위험에서 배제했다.

    툭. 툭.

    눈이 번쩍 떠졌다. 누군가 조심스 럽게 다가오는 소리였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는 것인가!

    익숙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15년 전과 같은 동작으로 일어날 수 없었 다. 그때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 고 일어났다.

    지금은 바닥을 손으로 집는 소리와 무릎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들렸 다. 이런 조그만 소리까지 구별해 내는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자신의 단련 문제였다.

    서울까지 안전하게 가서 아라를 찾 으려면 더 조심해야 했다.

    “누구요?”

    어차피 매물도는 물에 잠겼었다. 또한, 매물도에 사는 사람 중 40대 이하는 없었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 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엉뚱했다.

    “끼잉•…"

    강아지 울음소리였다. 솔직히 사람 보다 더 반가웠다. 생존한 사람이었 다면 고민될 수밖에 없다. 구조대를 기다리든지 아니면 데리고 거제도로 건너갈 것인지.

    지금 최우선 임무는 하나였다. 서 울까지 가서 딸인 아라를 찾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정신은 15년 전 SAS 특수 부대원으로 돌아갔다.

    일어나서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열자마자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보였다. 삽살개였다. 그리고 익숙한 놈이었다.

    삽살개는 문이 열리자마자 반갑게 뛰어올랐다.

    “어이쿠. 똘이 너 살아 있었구나.”

    매물도에 올 때마다 무인도로 데려 다 주시던 선장님이 기르던 삽살개 였다. 엄청 똑똑하다고 자랑하면서 이름도 똘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진짜 똑똑했다. 사람 말을 거의 알 아듣는 것 같았다.

    “야! 얼굴은 핥지 마!”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 해도 핥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엄청 반가운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하지. 너 혼자 살아남 았……

    아닐 수도 있었다. 똘이가 살아남 았다면 선장님도 살아남았을 수 있 었다. 어제는 시간이 없어서 매물도 를 다 돌아보지 못했다.

    만약 선장님이 살아 있다면 배를 수리해 거제도로 가거나 통영으로 갈 수도 있었다.

    “똘아! 너 아빠 어디 있어? 아빠!” 선장님은 똘이에게 아빠라고 가르

    쳤다. 똘이는 얼굴 핥는 것을 멈추 더니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그리고 문밖을 향해 짖었다.

    “너 아빠 있는 곳 알아? 아빠에게 가자!”

    해가 뜨고 있었다. 똘이는 바로 뛰 쳐나갔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선장님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분 명했다. 똘이의 뒤를 따라 달렸다. 난장판이 된 골목을 지나 파란색 지 붕이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똘이가 부서진 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문을 잡아당기자 그대로 떨어졌다. 몸을 틀어 떨어지는 문을 피한 다음

    들어갔다.

    “끼잉. 끼잉……

    “똘이야. 잘했다.”

    똘이가 죽어 있는 선장님 얼굴을 핥으며 일어나라는 듯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 똘이에게 화를 낼 수 는 없었다. 선장님이 살아 있을 확 률은 반반이었다. 그래도 똘이가 살 아 있으니 희망을 가졌었다.

    “너 아빠 묻어 달라고 나를 찾아온 거구나.”

    똘이는 신기하게 알아듣는 것 같았 다. 몸을 돌려 쳐다보는 눈빛이 그 랬다.

    “그래. 묻어 줄게.”

    “컹!”

    똘이가 고맙다고 하는 것 같았다. 선장님의 시신을 안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선장님의 집에서 삽 을 찾아 마당을 팠다. 선장님을 묻 고 잠시 주저앉았다.

    “후. 생각보다 힘드네.”

    죽음에 무뎌진 감각이 15년 동안 다시 살아나 있었다.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 만 선장님 덕분에 깨달았다.

    “죽어서도 도와주시네요. 독한 마 음 찾으라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최면에 가까 운 자기 암시를 하기 시작했다. 죽

    음에 대한 무감각을 느끼기 위해서 였다. 이 죽음에 대한 무감각에는 살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필요하다 면 해야 했다.

    무질서한 곳에서 사람이 얼마나 잔 인하고 비열해질 수 있는지 경험해 봤으니까.

    다시 눈을 떴다. 눈빛이 살벌한지 앞에서 눈뜨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똘이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네가 나에게 도움이 된다 면 그럴 일은 없어.”

    “끼 잉.”

    똘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말을 정 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

    지만 자신이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것 은 알았다.

    “선장님이 돌아가셨으니 배는 어떻 게 한다……

    똘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는 단어가 있었다. 배였다. 그리고 도움 이 되기 위해 맹렬히 생각했다.

    아빠와 함께 바다를 나갈 수 있게 한 것이 배였다. 아빠가 자주 태워 주던 배는 움직이지 못한다. 움직일 수 있는 배.

    “컹! 컹!”

    “왜? 또 뭐를 원하는데?”

    똘이가 바지를 살짝 물어 당겼다. 강하게 물면 바지가 찢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살짝 물어 당기는 것은 이쪽으로 가자는 표현이라고 선장님이 자랑한 것이 기억났다.

    “어디를 가자는 거야!”

    일어서자 똘이가 바지를 놓고 뛰어 갔다. 하지만 곧 멈춰서 뒤돌아봤다. 따라오라는 것 같았다.

    “그래. 간다 가!”

    어차피 선장님 집을 뒤져야 했다. 똘이가 저런 행동을 하는 것에는 분 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똘이는 뒤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집 뒤 로 돌아갔다.

    집 뒤에는 창고가 있었다. 창고 문 에 쓰레기가 조금 쌓여 있었다. 하

    지만 창고는 멀쩡했다. 꽤 튼튼하게 지은 커다란 창고였다.

    “컹컹컹컹!”

    똘이가 창고를 향해 짖어 댔다. 안 에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문 앞의 쓰레기를 대충 치우자 열 수 있었다.

    문을 열고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소리쳤다.

    “똘이야! 너 복덩이구나!”

    창고 안에는 각종 공구와 모터보트 의 엔진이 있었다. 엔진은 새로 마 련한 것인지 마침 비닐로 꼼꼼히 포 장되어 있어 침수도 안 당한 것 같 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똘 이가 한쪽 구석으로 뛰어가더니 또 짖었다.

    “뭐가 있는데?”

    네모난 상자였다. 상자 안에는 바 람 빠진 고무보트가 있었다. 모터 엔진이 있다면 보트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없다면 모터 엔진을 달아 도 된다. 그런데 똘이가 그런 수고 까지 덜어 줬다.

    “이야. 너 은혜 갚는 거야?”

    똘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똘이 는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다.

    “배는 해결된 것 같고……

    SAS 특수부대원 시절에 고무보트

    를 이용한 침투를 많이 해 봤다. 그 말은 고무보트에 모터 엔진을 달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제 식량만 찾으면 되겠네.” 식량이라는 말에 똘이가 또 짖었 다.

    “너 설마 식량이 어디 있는지 아는 거야?”

    “컹! 컹!”

    대답하듯 쳐다보며 짖더니 부서진 문을 통해 뛰어 들어갔다. 집 안으 로 안내하는 것이다. 따라가지 않고 일부러 기다렸다. 그러자 똘이가 뒤 를 돌아봤다.

    “컹! 컹!”

    “안에 있다는 거야?”

    “ 컹!”

    “그래. 알았다. 알았어.”

    눈빛이 나를 못 믿냐였다. 강아지 가 저런 눈빛을 보이는 것은 처음 봤다. 똑똑하기로 유명하다는 개들 을 훈련해 작전에 투입한 적도 많았 다. 그 어떤 개도 똘이만큼은 아니 었다.

    삽살개가 영물이라고 하더니 진짜 영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똘이를 따라갔다.

    “부엌문을 열라는 거야?”

    똘이가 부엌 뒤쪽에 있는 문을 앞 발로 긁고 있었다. 멀쩡한 문이니 똘이가 열 수 없었다. 손잡이의 위 치도 높아 입으로 열기도 힘들었다.

    똘이 대신 손잡이를 돌려 문을 밀 었다. 하지만 문이 조금 열리다가 무언가에 걸린 듯 멈췄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어렴풋이 보이는 실 루엣과 문에 걸려 나는 소리는 정말 반가웠다.

    “무슨 캔을 놔뒀길래 이렇게……. 끄응……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밀자 캔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나고 간신히 들 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그러 자 똘이가 먼저 들어갔다.

    “야!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안에 있던 물건 쏟아져 문이 제대 로 안 열렸다. 위험하게 쌓여 있는 물건이 또 있을 수 있었다. 주머니 에서 랜턴을 꺼냈다. 빛을 비추자 꼬리를 살랑거리며 흔드는 똘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사료 포 대가 있었다.

    “너 먹을 것 찾아간 거냐?”

    강아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똘이의 사료 같았다.

    “그래 미안하다. 너 여태까지 아무

    것도 안 먹었으니 배고플 만도 하 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랜턴으로 어두운 곳을 둘러봤다. 그리고 똘이 의 사료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도 알았다.

    “야! 이 귀여운 자식!”

    처음 들었던 소리와 통조림 캔의 어렴풋한 모습은 예상했던 것들이었 다.

    “참치에……. 고추장 튜브에 생수 그리고……

    라면과 전투식량이 있었다. 그것뿐 만 아니었다. 캠핑 도구도 있었다. 고체 연료까지.

    이 안은 보물 창고였다. 그리고 왜 이런 창고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낚시꾼들에게 팔거나 빌려주려고 쌓아 놓으신 거구나.”

    선장님의 주 수입원은 고기잡이가 아니었다.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 들을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간다. 그 리고 민박집도 운영했다.

    “똘아. 네가 나를 살리는구나.”

    “ 컹!”

    똘이가 꼬리를 흔들며 ‘나 잘했지.’ 라고 짖는 것 같았다. 똘이의 머리 를 쓰다듬어 주자 꼬리를 더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사료 포대를 쳐다 봤다.

    “알았다. 알았어. 밥부터 먹자.” 사료 포대를 꺼내 굴러다니는 그릇 에다가 담아 줬다. 그러자 똘이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너 그렇게 먹는 것 보니까 나도 배고프다.”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가장 간단하면서 빠르고 맛 있으면서 영양가 좋은 것을 준비했 다.

    “참치 라면이 최고지.”

    코펠에 물을 붓고 고체 연료에 불 을 붙였다. 그리고 물이 끓기 전에 면을 넣었다. 레시피 대로 끓는 물 에 면을 넣으면 최상의 맛이 나온다

    고 한다. 하지만 급한 대로 이렇게 먹어도 맛있다. 면이 불어서 익기까 지 시간을 단축해 준다.

    “참치는 기름을 제거하고.”

    휘파람이 나온다. 느끼함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참치캔 안에 보존용 기 름을 따라 버렸다. 그리고 조금 기 다렸다. 물이 끓기 시작했다. 스프를 넣으면 물이 더 빨리 끓는다.

    “이건 조금 더 기다려야지.”

    참치의 비린 맛을 조금이라도 더 없애려면 팔팔 끓는 물에 넣는 것이 나았다. 그래도 라면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물이 팔팔 끓기 전에 일어나 냉장

    고를 열었다.

    “김치는 발효 식품이거든. 냉장고 가 며칠 꺼져도 상관없지.”

    락앤락 통에 들어 있었다. 물이 안 에 들어가지 않았다.

    언제 또 김치를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 김치를 싸 가지고 갈 수는 없다. 김치 냄새는 생각보다 멀리서 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홍. 음……

    콧노래를 부르며 김치를 가지고 왔 을 때 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다. 라 면 스프 때문에 나오는 노릿한 거품 이 보였다. 최대한 기름기 뺀 참치 살만 넣었다. 그리고 시계를 봤다.

    “1분 땡!”

    조그만 그릇에 라면을 덜어 후후 불면서 입안으로 넣었다. 후루룩 소 리가 들리는 것이 더 맛있다. 약간 불은 듯한 면의 상태가 목 넘김을 쉽게 했다. 다음은 국물이었다. 그릇 에 국물을 떠서 마셨다.

    “캬……. 이제 나도 한국인 입맛이 네.”

    3살 때 영국으로 입양 갔다. 그리 고 영국에서 자랐다. 태어난 곳은 한국이지만 자란 곳은 영국이다. 당 연히 맵고 짠 음식은 먹지 않았다.

    SAS 특수부대원이 되었을 때는 작 전 중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많은

    음식을 먹어 봤다. 하지만 고향의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이 아라 엄마를 만나고 난 이후부터 시작해 한국에 정착하면서 입맛이 변했다.

    신 김치를 집어 우걱우걱 씹어 먹 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똘이가 사료를 다 먹고 옆에 와서 침을 흘리고 있었다.

    “한 개 끓였다.”

    한 개면 충분할 줄 알고 한 개만 끓였다. 사실 모자란 느낌이었다. 더 끓일까 고민할 정도였다. 면은 이미 3분의 2가 사라졌다.

    “컹! 컹!”

    “이거 진짜 영물 아니야?”

    똘이가 두 번 짖더니 라면 2개를 물고 앞에 내려놨다.

    “끼잉. 끼잉.”

    “너. 선장님하고 라면 먹어 봤냐?”

    “ 컹!”

    애처롭게 끼잉 대며 쳐다보다가 바 로 짖었다. 아마 선장님과 같이 먹 었던 라면이 생각나서 저러지 않을 까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모자라서 더 끓이려고 했 다. 한 개 더 끓이지 뭐.”

    한 개 더 끓인다는 말에 똘이가 몸을 돌리더니 라면 한 개를 더 가 지고 왔다.

    “하하! 내가 너 때문에 웃는다. 아 라가 너 보면 좋아하겠다.”

    아라는 동물을 무척 좋아했다. 나 중에 아파트가 아닌 마당 있는 집에 이사 가면 강아지 키우자고 약속했 었다.

    “일단 만나야지. 그 전에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물을 더 부은 다음 똘이가 가져온 라면 3개를 넣었다. 참치캔도 하나 더 넣어 라면을 끓였다. 알맞게 익 은 라면을 덜어서 주자 똘이는 익숙 하게 먹기 시작했다. 아주 맛있게

    “안 맵냐.”

    매운 듯이 혀를 내밀었다가 다시

    라면과 국물을 같이 먹고 있었다. 하지만 안 맵냐고 물어보는 것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마치 지금은 라면 이상 가는 것이 없다는 둣 다 른 것에는 관심을 안 보였다.

    “알았다. 먹는 중에는 말도 안 거 마.”

    똘이에게 신경 끄고 라면 먹는 것 에 열중했다.

    라면을 다 먹은 후에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식료품 창고 안에 있는 것들을 잘 보이는 곳으로 꺼냈다. 그리고 분류 작업을 했다.

    “배낭이 몇 개 있어서 다행이네.” 커다란 배낭도 몇 개 있었다. 여러

    개의 배낭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 개의 배낭에 같은 종류의 물건 만 넣어서는 안 된다. 골고루 넣어 야 했다. 만일의 경우 배낭 한 개만 챙겨도 충분히 여러 가지를 먹을 수 있게 해야 했다.

    만약 배낭 한 개에는 통조림만 넣 고 다른 배낭에는 라면만 넣었다고 하자.

    재수 없으면 생라면만 먹어야 했 다. 스프 뿌려 먹으면 별미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른 것을 잘 먹을 때 가끔 먹어야 맛있다.

    배낭 세 개에 통조림과 라면, 물 등을 골고루 배분해 넣었다.

    “이제 무기를 구하러 가 볼까? 똘 이야!”

    “ 컹!”

    배낭에 물건을 넣을 동안 똘이는 마당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 었다. 부르자 바로 달려왔다.

    “파출소 가자.”

    “컹! 컹!”

    이번에도 그냥 한 말이었다. 그런 데 똘이는 바로 짖더니 몸을 돌려 먼저 뛰어나갔다.

    “너 이번에도 진짜 파출소 가는 거 면 영물 인정이다.”

    똘이의 뒤를 따라 달렸다. 똘이는 즐거운지 신나게 달렸다. 그래도 중

    간에 살짝 뒤를 돌아보며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곧 멈췄다. 그리고 똘이는 영물 인정을 못 받았다.

    “이래서는 파출소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

    길이 진흙으로 덮여 있었다. 길 밑 으로는 진흙에 깔린 집의 지붕이 조 금씩 보였다. 저 아래 어딘가에 파 출소가 있다면 절대 찾을 수 없었 다.

    “끼잉. 끼잉.”

    똘이가 제자리에서 몇 번 돌더니 진흙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는 것 같 았다.

    “파출소는 안 되겠다. 집으로 돌아 가서 떠날 준비 하자.”

    “ 컹!”

    말을 알아듣는 것인지 아니면 눈치 가 빠른 것인지 똘이가 바로 선장님 집으로 달려갔다.

    “야! 같이 가자.”

    이번에는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앞서 달리던 똘이가 뒤를 돌아보더 니 멈췄다. 그리고 기다렸다가 같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선장님 집에서 구한 고무보트로는 통영까지 가기는 무리였다. 일단 거 제도로 간 다음 그곳에서 상황을 파 악한다. 매물도와는 다르게 큰 섬이

    니 생존자도 많고 관공서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지도 몰랐다.

    서울 소식을 들을 수도.

    똘이를 데리고 노부부의 집으로 먼 저 갔다. 그곳에서 짐을 챙겨 다시 선장님 집으로 왔다. 식량과 고무보 트를 옮기는 것보다 나은 것은 물론 잠도 창고에서 자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똘이와 간단하게 밥 을 먹은 다음 매물도 탈출이 시작되 었다.

    탈출을 위한 준비는 다 끝났다. 바 람을 넣지 않은 고무보트를 진홁이

    있는 곳까지 가지고 왔다. 엔진도 굴러다니는 외발 수레로 편하게 옮 겼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

    “ 컹!”

    고무보트를 입으로 불어서 바람을 넣거나 자전거 바람 넣는 것처럼 펌 프질은 안 해도 된다. 자동으로 바 람 넣는 기계가 있었다. 고무보트에 연결하자 순식간에 고무보트가 부풀 어 올랐다. 탱탱해진 고무보트에 혹 시 바람이 새는 곳이 있나 살피기 시작했다.

    “관리도 잘하셨네.”

    말끔한 것이 바람 새는 곳은 없었

    다. 원래 가지고 있던 배낭과 식량 을 담은 배낭 3개 그리고 모터 엔 진을 고무보트에 올렸다. 하나 남은 연료통도 올렸다.

    이제부터가 생고생이었다. 진홁으 로 뒤덮인 곳은 원래 집들이 있던 곳이었다. 지붕만 보일 정도로 쌓였 다. 잘못하면 늪처럼 진흙 아래로 들어가 나올 수 없다.

    “똘아 타라!”

    “ 컹!”

    똘이가 고무보트에 올라탔다. 똘이 를 안 데려갈 수는 없었다. 매물도 에 살아남은 유일한 존재였다. 더군 다나 도움도 줬다. 냉정하게 생각해

    도 그냥 버리고 가는 것은 아니었 다.

    똘이와 함께 아라를 찾으러 가는 길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 갑니다!”

    고무보트를 있는 힘껏 밀었다. 진 흙 위로 올라갔다. 다리가 쑤욱 빠 지는 느낌이 드는 순간 가볍게 회전 하며 고무보트 위로 올라갔다.

    “예상대로네. 아직 굳어지지 않았 어.”

    진홁이 굳어지기에는 시간이 모자 랐다. 고무보트는 면적이 넓어 무게 를 분산하니 빠지지 않았다.

    “언제 편하게 산 적 있었나? 보트

    찾은 것만 해도 행운이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노를 들었다. 그리고 진흙을 헤치며 바다까지 나 가기 시작했다.

    아침 먹고 시작해 2시간 만에 바 다에 닿았다. 하지만 노를 놓지는 않았다. 조금 더 나가서 모터 엔진 이 바닥에 안 닿을 정도로 깊어야 했다.

    밀려오는 파도를 헤치며 또 30분 을 더 저었다. 팔이 다 저려 왔다. 쉬지 않고 2시간 30분 동안 노를 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딱 15년만 젊었어도 이 정도는 쉬운데.”

    가는 세월 잡을 수 없다고 나이가 들며 약해진 체력도 잡을 수 없었 다. 물론 평소에 훈련하지 않은 이 유도 있다. 사용하지 않은 근육을 다시 사용하니 힘들다. 하지만 지금 은 정신력으로 버텨낼 뿐이다.

    “이제 모터 달고!”

    목표가 있다는 것은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모터만 달면 노 저을 필요가 없다. 힘겹게 모터를 단 다음 기분 좋게 줄을 당겼다. 시 동을 걸기 위해서였다.

    부다당…….

    “한 번에 시원하게 걸리면 모터가 아니지.”

    희한하게 한 번에 시동이 걸리는 법이 없다. 한 번 더 강하게 당기자 그제야 시원한 엔진음이 들렸다.

    “가자! 거제도로!”

    방향은 알고 있었다. 북쪽으로 가 면 된다. 똘이가 익숙하게 고무보트 앞으로 뛰어가 자리 잡았다. 고무보 트에 부딪혀 튀는 물살을 맞으며 좋 아하는 것이 보였다.

    선장님과 고무보트를 탈 때마다 저 런 짓을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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