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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48화 (148/170)

148화

돌아가는 길은 조용했다.

주술사와 다른 고블린들은 기가 질린 듯 창백한 안색이었고.

전투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크룩만이 간헐적으로 거친 숨을 내뱉었다.

부족으로 돌아간 후 우리는 바로 대주술사의 집으로 향했다.

“오셨군요.”

케투훌은 우리를 공손하게 맞이했다. 나는 그의 앞에 머리를 내려놓았다.

바로 모여 있던 마물 중 가장 강력했던 놈의 머리였다.

“마물은 모두 죽었다. 이들이 직접 확인했으나 못 미더우면 가서 확인해 봐도 되고.”

난 미리 준비된 의자에 턱 앉았고, 케륵과 크룩은 그런 내 뒤에 와서 섰다.

케투훌은 복잡한 눈으로 바닥에 놓인 머리를 봤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아닙니다.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 못 미더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그럼 얘기가 빠르겠군.”

난 그를 향해 말해 보라는 듯 턱짓했다.

케투훌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들은 저희에게 위대한 왕을 위해 싸우라 했었습니다. 영광스러운 명령을 받들어 가장 앞에서 싸우라고요.”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희는 어떤 역할을 맡는 겁니까?”

난 그의 고요한 눈을 마주했다.

“무언가 착각한 거 같군.”

“예?”

그리고 살짝 웃어 보였다.

“난 병사들을 원하는 게 아니라 백성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처음엔 케륵도 크룩도 적이었었다. 트롤도, 인간도 처음부터 내 사람은 아니었다.

“난 백성들 간에 차별을 두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너희들을 화살받이로, 희생양으로 내세울 생각도 없고. 혹 그런 일이 있거든.”

난 양 손바닥을 앞으로 내보였다.

“언제든 떠나라.”

그는 내 말에 조용히 나를 보았고.

곧 몸을 일으키더니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난 그가 몸을 수그리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새로운 부족이 합류했다.

마물을 압도적인 무위로 꺾은 건 아주 효과적이었다.

주술사는 처음의 경계심 어린 태도를 내려놓고, 오히려 앞서서 우리의 무력을 말해 주었다.

게다가 혹시나 후에 생겨났을지도 모르는 잡음은 바하트리스에 일부 대기 중이던 군세가 산 아래에 도착하자 그 여지가 없어졌다.

‘저 병력이 왕국의 주 전력인가요?’

‘흠. 글쎄. 한 반의반도 안 될 거 같은데.’

‘허…….’

애초에 병력 차이부터가 압도적이었으니까.

난 그들을 우리 측 병력에 붙여 이동시켰다.

혹여나 그들이 거주지를 옮기는 것에 불만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딱히 사는 곳에 애착 같은 건 없다고 했다.

이곳도 그저 전전대 족장이 정착한 이후로 살 만해서 살았던 것일 뿐.

본래 부족의 연원은 다른 곳에 있다고 했다.

“그럼 슬슬 다시 가 볼까.”

“예. 케르륵.”

“크룩. 네.”

다시 다른 곳으로 출발했다.

* * *

우리는 대륙 곳곳을 돌아다녔다.

성공한 적도 있었고, 실패한 적도 있었다.

확실한 건 우리 왕국의 규모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

합류하는 인원이 워낙 많은 탓에 왕국 근처를 지날 때면 한 번씩 들러야 했다.

가끔 들려서 격려도 해 주고, 기적도 한 번씩 보여 주고. 싹이 보이는 인물들을 직접 사제로 임명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대륙의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첫 번째로 접한 소식은 두 제국 중 한 곳이 무너졌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들었던 건 한 소도시의 주점이었는데, 깜짝 놀라서 되묻기까지 했었다.

‘뭐라고?’

‘이스타르 제국이 무너졌다고. 처음 듣소?’

이스타르 제국.

다른 제국과 더불어 대륙의 패자 중 한 곳.

그곳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쉽사리 믿기지가 않았다.

더욱 자세히 얘기를 들은 후에야 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스타르 제국이 무너진 첫 번째 이유는 제국의 내분 때문이었다 한다.

전대 선왕이 급사한 이후 왕위는 장자였던 1왕자가 물려받았다 한다.

한데 그 1 왕자는 딱히 못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잘난 것도 없는 왕자였다.

만약 2왕자나 3왕자가 유능했다면 그들에게 왕위가 갔을지도 모르는 일.

‘문제는 2왕자나 3왕자 모두 무능한 놈들이었다는 거지.’

더더욱 큰 문제는 그들이 능력에 어울리지 않게 야심은 큰 놈들이었다는 것.

놈들은 1왕자가 장자라는 이유만으로 왕위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했고, 저들이 더 그 자리에 잘 어울리리라 생각했다.

보통 왕위에 오른다면 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이들을 쳐내야 했지만, 선왕이 급사한 탓에 분위기가 뒤숭숭해 그러지 못했다 한다.

사달이 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왕자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2왕자는 금세 진압되었다.

문제는 3왕자. 그는 바로 옆에 붙어 있던 왕국과 결탁했다.

놈이 딱히 능력이 있다기보단, 왕국에서 3왕자의 야심을 이용해 먹은 것이다.

그래 봤자 제국의 기반은 탄탄했고, 3왕자의 반란 또한 시간이 지나면 진압이 됐을 터였다.

평상시라면 말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당시 서부 전선이 뚫렸다.

겉으로나마 평화롭던 제국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제국과 서부 전선 사이에 몇 왕국이 있긴 했지만, 마물 군세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놈들은 서부 전선을 뚫자마자 왕국을 무너트렸고, 그 왕국의 시체들을 되살려서 몇 배로 늘어난 병력으로 계속해서 진군했다.

제국도 병력을 급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3왕자는 그런 제국의 빈틈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마물과 3왕자, 그리고 왕국까지.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배신과 암투, 음모가 횡행했다.

그리고 약 삼 주 전.

‘듣기로는 용이 나타났다고 하더군.’

‘용?’

‘그래.’

온몸이 흑색인 용.

그 용이 제국의 수도에 나타났다고 한다.

본래 제국이라면 용조차 사냥할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었지만.

‘병력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게 문제였겠지.’

제국은 수비를 위한 병력만 남겨 둔 채로 군세를 곳곳에 급파한 상태였다.

그리고 결국 그날 제국은 한 마리의 용에 의해 무너졌다.

‘용이라.’

난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그 용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흑색의 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한 건 바로 기억 속에서 봤던 ‘흑발의 남자’였다.

‘뇌신이 말한 게 이런 건가?’

이슈타르 제국은 용에게 파괴당한 후, 현재는 마물들에게 점령당한 상태.

마물 군세와 용이 같이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사람들은 이미 용 또한 그 군세 중 일부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둠.’

나도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말이다.

마물의 군세는 생각보다 더욱 강력하고, 빠른 속도로 진격하고 있다.

제법 거리가 있다곤 하나 더 이상 마음 놓고 지켜볼 순 없다는 소리.

“후우.”

난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언제나 그렇듯 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도착했군.”

난 창을 건틀릿으로 변환시키며 앞을 보았다.

우리는 높은 산 위에 있었다.

케륵과 크룩, 그리고 나는 다 함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온몸이 검은색인 용이 웅크려 있었다.

“정말 이곳에 있군요. 크룩.”

난 크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을 파괴했다는 그 흑룡이 우리의 앞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난데없이 흑룡을 찾아온 건 약 삼 일 전의 일이었다.

삼 일 전.

난 뇌신의 유산 중 하나를 회수하기 위해 던전에 진입했었다.

던전의 끝에서 우리는 무사히 그 유산을 회수했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근처의 마을에 들렸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흑룡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이 근처로 흑룡이 날아갔었다고요?’

‘예! 그것 때문에 마을이 난리가 났었지요. 다들 도망가야 한다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고 그래서요.’

마을은 그 규모에 비해 사람이 아주 적어 황량한 모습이었다.

‘이미 많이들 도망쳐서 남은 건 저를 포함해 몇 명밖에 없어요.’

그는 그리 말하며 자신들의 사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난 그 긴 대화 끝에 흑룡이 바로 옆의 산 건너 쪽으로 날아갔다는 걸 보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우리는 그것을 확인해 보고자 산을 탄 것이다.

그렇다고 흑룡이 바로 마을의 옆 산 건너편에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마을 주민들이 가리켰던 방향 쪽으로 이동하며 산을 네 개를 넘은 후에야 흑룡을 발견한 것이다.

만약 이동하던 도중에 발견한 흔적들이 아니라면 도중에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케르룩.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난 케륵의 말에 신중한 눈으로 흑룡을 살폈다.

놈은 깊게 잠이 들기라도 한 건지 미동도 않고 누워있었다.

난 용안까지 개방해 놈을 살폈다.

그리고 곧 결론을 내렸다.

“놈을 친다.”

“그렇군요. 크루룩.”

내 말에도 둘은 깜짝 놀란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주섬주섬 무기를 챙겨 들 뿐.

난 그런 둘을 보며 씩 웃었다.

“좋은 자세야.”

물론 저 흑룡이 만만해 보인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과거 지룡이 격을 잃고 퇴화한 걸로 추정하는 이무기조차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저 흑룡은?

겉모습만 봐도 흉흉하기 그지없다.

“가자.”

하지만 결국 우리는 가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수도 없이 많고, 저 흑룡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특히 ‘어둠’이라는 것을 알아내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아닌가.

이번 여정 중에서 난 뇌신의 유산을 두 개나 흡수했고, 더욱 강해졌다.

그렇기에 우리는 산을 미끄러지듯 타 내렸다.

* * *

평야의 한복판에 흑룡이 잠들어 있다.

놈은 잠들기 전 주변을 정리하였는지, 곳곳에 바닥이 깊게 파인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또한, 그 주변에는 괴수들의 시체 또한 널려 있었다.

-우우.

첫 변화는 바로 그 시체들로부터 일어났다.

분명 머리가 박살 나고, 팔과 다리가 잘리고, 몸통이 박살 나서 죽었을 것이 분명한 시체들이 몸을 일으킨 것이다.

놈들은 소리를 내며 용으로 다가갔다.

-우어어어!

제법 커다란 덩치의 괴수 하나가 흑룡의 몸에 달려든다.

놈의 손톱이 그 몸통에 닿기 직전.

콰아아아아앙-!

부지불식간에 용의 꼬리가 휘둘러져 그 괴수의 몸뚱어리를 박살 냈다.

이미 잠에서 깨어 있던 건지, 아니면 방금 깬 건지 용은 형형하게 빛나는 눈으로 주변을 보았다.

그리고 꼬리를 휘둘러 주변을 휩쓸었다.

콰가가가가가강-!

그 한 방에 주변이 초토화가 되었다.

굉장히 파괴적이고,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용을 공격하려던 시체들은 모두 그 공격에 스러졌으니까.

다만 용은 주변에 다가오던 시체에 신경 쓰느라 정작 더 위협적인 공격은 눈치채지 못했다.

콰츠츠츠츠츠츠-!

그렇기에 호진의 공격은 쉽게 완성되었다.

용이 뒤늦게 고개를 든다.

그의 동공에 주변 하늘을 모두 뒤덮은 황금빛의 그물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전격의 그물이었으니까.

-크라라라라라!

용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그 그물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전격의 그물은 더욱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며 막 몸을 띄운 용을 그대로 덮쳤다.

파지지지지직!

-크라라아아앗!

용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휘이이이이이잉-!

산등성이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말뚝.

콰드득!

온통 철로 이루어진 그 무식할 정도로 거대한 말뚝이 용의 몸통에 박혀 들었다.

“좋아!”

크룩과 호진은 흑룡에게 효과적으로 공격이 먹히는 걸 보며 웃었다.

용 사냥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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