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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34화 (134/170)

134화

혼돈과 혼란의 가운데.

모든 플레이어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플레이어 가운데 총 세 명의 왕이 탄생했습니다.]

[에피소드 - ‘황제’가 시작됩니다.]

[앞으로 대륙에는 더욱 많은 ‘왕’ 등급의 플레이어가 탄생할 것입니다.]

[등급 ‘왕’을 달성하는 조건이 완화됩니다.]

바로 에피소드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별의별 게 다 생겼네.’

호진은 거대한 바위에 걸터앉아 그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본 에피소드는 대륙에 최초의 황제가 탄생하는 순간 클리어됩니다.]

[‘황제’ 등급의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신화 포인트의 최소 요구 조건을 충족시킬 것.]

[2. 영지의 개수 및 휘하 도시의 발전도의 최소 요구 조건을 충족시킬 것.]

줄줄이 출력되는 메시지.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밑에서 두 번째 메시지였다.

[5. 다른 ‘왕’ 셋 이상을 휘하로 복속시킬 것.]

호진은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메시지에는 왕이라고만 나와 있다.

즉, 그게 플레이어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는 뜻이다.

‘뭐, 막 왕을 달성한 이들을 복속시키는 게 제일 쉽긴 하겠지만.’

왕을 달성하는 조건이 완화되었다니 더더욱 그럴 터.

호진은 창을 인벤토리 안으로 수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나저러나 더 시끄러워지겠구만.’

시스템 메시지가 무려 에피소드라고까지 하면서 전쟁을 부추기고 있지 않나.

호진은 피식 웃으면서 마지막 메시지를 다시 보았다.

[클리어 보상 – 게임 엔딩 조건의 단서 제공.]

그 무엇보다 탐스러운 보상이다.

황제 등급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 이후에는 뭐를 해야 하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으니까.

‘오늘 치 할당량은 끝났고.’

그는 자신 밑의 바위를 보았다.

기실 그것은 보통 바위가 아니라 마물의 신체 일부였다.

일종의 골렘형 마물.

오늘만 무려 열둘의 마물을 해치웠으니 호진이 정한 할당량은 이미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놈 얼굴이나 보러 가야겠네.’

호진은 대충 방향을 가늠한 후 몸을 훅 날렸다.

* * *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뭘 고생까지야. 근방에 있었어.”

난 대충 손을 휘저었다.

금발 머리의 청년이 맑은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그 뒤로 한 노인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오랜만이군. 왕관 썼다고 좀 바쁜가 보지?”

“예.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습니다.”

“두 개 가지고 되겠는가? 끌끌.”

우리는 정답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바로 마틴과 그림자 요정 엘 루였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그냥 얼굴 좀 보러 왔습니다. 슬슬 이 일대도 안정화돼 가고 있다던데요?”

“안정화랄 것도 없지. 자네 덕분에 편하게 얻은 걸 생각하면 이건 고생한 것도 아닐세.”

그는 씩 웃으며 뒤편의 나무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본래부터 컸던 세계수는 지금에 이르러선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져 있었다.

말 그대로 하늘을 뚫을 듯이 솟아 있다고 할까.

난 고개를 들어 그 위를 헤아리다가 결국 포기하고서 고개를 다시 내렸다.

“그래서 이제 다시 전쟁을 시작하려나 보지?”

그러기 무섭게 엘 루가 내게 질문을 해 왔다.

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젯밤 하늘을 보니 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더군. 온 대륙에 당장이라도 혼란이 들이닥칠 기색이었어.”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나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엘 루는 돌연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표정은 무엇인가? 바로 믿을 줄은 몰랐군.”

“예?”

“뻥이네. 별 하나 본다고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는가?”

“아.”

이 양반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농담하는 건 여전하네.

“나도 눈과 귀가 있으니 주변 소식쯤은 듣고 있다네. 마물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지.”

“예.”

난 현재 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 주었다.

마물의 출현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배경엔 아무래도 인위적인 개입이 있는 것 같다는 점.

“처음엔 단순히 통제에서 벗어난 마물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단순히 그렇게만 취급하기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정찰병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곳곳을 들쑤시고 있는 거구먼.”

“예. 그러다가 얻어걸리면 좋은 거고. 딱 그런 생각이겠죠.”

실제로 갑작스러운 마물의 증가로 큰 피해를 보는 도시들이 한 군데씩 생겨나고 있다.

거리가 꽤 먼 이곳에 나타나는 마물의 수만 해도 상당하다는 걸 생각하면, 다른 곳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다.

“듣기로는 이미 두 나라나 함락당했다고 하더군요.”

“빠르군. 아무리 평화의 시대가 길었다고 하지만.”

“그렇죠.”

나라의 함락.

난 턱 밑을 긁었다.

갑자기 시작된 황제 에피소드.

당장 보이는 것만 따지면 그는 나보다 앞선 위치에 있는 거다.

두 왕국. 두 명의 왕을 집어삼킨 플레이어.

어쩐지 묘한 갈증이 일었다.

난 엘 루와 다시 눈을 마주쳤다. 그는 이미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안할 게 있습니다.”

엘 루의 옆에 서 있는 마틴도 내 말에 귀기울였다.

“두 분 다 저희 왕국의 밑으로 들어왔으면 합니다.”

“흐음.”

둘은 딱히 놀란다거나 하진 않았다.

엘루는 그저 말없이 턱수염을 쓰다듬었고, 마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 중 먼저 입을 연 건 엘 루였다.

“알겠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결정이 빠르시군요.”

“결정은 이미 한참 전에 내렸으니까. 무엇보다 자네의 제안을 거부하는 것도 이상하지.”

엘 루는 수염을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서 내 가슴팍을 가리켰다.

“속에 그런 걸 품고 있는 사람의 말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나?”

“…어떻게 아셨습니까?”

“늙었지만 눈 하나는 제법 쓸 만하거든.”

그는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과거에도 그런 걸 본 적이 있지. 아니, 옛날엔 꽤 많이 봤었네. 그런 시대가 있었지. 하지만 나도 오늘 자네를 보곤 꽤 놀랐었네.”

그는 나를 빤히 보았다.

“신의 대리자라는 말이 헛것은 아니었나 보군. 꽤나 그분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뭐, 그런 거 같긴 합니다.”

잠시 대화가 끊고 침묵이 이어졌다.

“저.”

마틴은 그 공백을 끊으며 내게 말해 왔다.

“저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마틴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바깥으로 나온 이후로 쭉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왕이기 이전에 기사. 제 검을 받친다면 꼭…….”

“거기까지.”

그가 아예 무릎까지 꿇을 기색이기에 난 손을 들어 그를 만류했다.

“기사이기 전에 넌 왕이야. 너보고 왕 때려치우고 신하로 들어오라는 것도 아니고.”

마틴은 엉거주춤한 포즈로 멈춰서 날 보았다.

“그러면?”

“뭐, 왕 위라고 하면 하나밖에 없잖아?”

난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꿋꿋이 말했다.

“난 황제가 될 생각이니, 그런 내 힘이 되어 줬으면 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틴의 눈이 더욱 반짝반짝 빛났다.

솔직히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호오.”

그리고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엘 루는 어느새 웬 잔 하나를 꺼내 들이키며 나와 마틴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건 분명 술이다.

“왜? 계속하게나.”

술안주 취급을 받는 건가.

난 뒷덜미를 긁적였다.

“우선은 엘 루 님에게도 똑같은 제안을 한 건데요.”

엘 루는 내 말에 잔을 휙 들어 올려 꿀꺽 삼키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지. 알겠네. 나도 자네의 힘이 되어 주지.”

인제 와서 근엄한 표정을 지어 봤자 전혀 근엄해 보이지 않지만.

“그러면 형식적으로나마 물어보겠습니다.”

난 목소리를 몇 번 가다듬고서 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 밑으로 들어와 저의 힘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예.”

“그러지.”

마틴은 물론 엘 루도 이번엔 장난치지 않고 내 말에 진지하게 답했다.

이어서 내 눈앞에도 기다리던 반응이 나타났다.

[왕 ‘마틴’을 신하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림자 요정족 대장로 ‘엘 루’를 신하로 받아들였습니다.]

[세력 규모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황제 승급 조건 일부가 충족되었습니다.]

* * *

“저들을 그냥 두고 볼 겁니까?”

“그대로 놔두기엔 세력이 너무 커졌습니다!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합니다.”

넓은 대전.

여러 사람이 한목소리로 무언가를 성토한다.

가장 안쪽의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는 묵묵히 그 목소리를 들었다.

“폐하!”

이내 결단을 촉구하듯 부르짖는 목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남자가 말을 하자마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위협적이다. 강하고.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는 느릿하게 말을 하며 눈을 빛냈다.

“그렇기에 힘을 끌어모으며 기다렸던 게 두 달.”

두 달.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긴 시간도 아니었다.

특히 전쟁을 준비하기엔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결단을 내렸다. 시간을 더 끌면 오히려 독이 될 뿐이라고.

“슬슬 그대들의 말대로 움직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몸에 걸치고 있는 갑주에서 철그럭-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자는 의자 옆에 기대 두었던 거대한 검을 집으며 말했다.

“선포하겠다. 우리 왕국은 현 시간부로 폴그룬 왕국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거대한 검이 마치 나무 막대기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들렸다.

그는 검을 들어 한 사람을 가리켰다.

“아벨 공작, 그대에게 총사령관의 위를 내리겠다.”

“영광입니다!”

아벨 공작이라는 남자는 바로 고개를 푹 숙이며 무릎을 꿇었다.

그 후로는 전쟁 선포문을 보낼 사람을 정하고, 병력을 어느 범위까지 소집할지를 정했다.

우선 일차적으로 폴그룬 왕국 인근에 있는 영주들을 총사령관의 밑으로 배치했다.

그 외의 영주들은 왕이 직접 이끌고 군대를 결성할 예정이었다.

신하들 대부분 폴그룬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었기에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왕이 그렇게 끝맺음을 한 후 영주, 신하들은 모두 대전을 빠져나갔다.

왕은 처소로 돌아가는 것을 잠시 미루고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텅 빈 대전은 아까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게 맞는 것일까.”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벨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벨 공작. 이 조그마한 왕국에서 왕인 그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남자.

사실 왕인 그는 이 전쟁을 계속 반대해 왔다.

계속 전쟁을 해야 한다고 밀어붙인 건 바로 공작 아벨.

그는 대부분 귀족을 모두 포섭하였고, 결국 왕은 계속 압박을 받아 오늘에 이르러서 승복하고 말았다.

‘전쟁이 시작되겠군.’

그가 명령을 내렸지만, 그는 절대 원하지 않았던 전쟁이 시작되려 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바하트리스 공국이 함께한다는 것 정도.

애초에 아벨이 전쟁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도 바하트리스에서 연합 제의가 들어온 후 였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 제의 자체가 아벨 공작의 수작일지도 모르지.’

“후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의 암운이 온 대륙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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