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03화 (303/366)
  • 303화

    ‘욕망’이 한 번 손짓할 때마다 폭발이 일어 인왕산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피부에 닿는 열기가 보통 수준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호흡이 멎었다.

    [욕망은 이 모든 상황이 즐겁습니다.]

    [현재 체력 : 1,000,000]

    ‘체력이 회복됐잖아?!’

    내가 입힌 피해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체력을 회복하는 듯한 설명도, 행동도 없었다. 녀석은 그저 그 자리에 누워 폭발만 일으켰을 뿐이었다.

    “물 속성 헌터들은 화재부터 막아 주세요!”

    ―콰득.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세빈이는 짧게 지시한 후 바닥에서 그림자를 뽑아냈고 하늘에 유유히 떠 있는 녀석의 몸을 다시 한번 옭아맸다. 나는 녀석을 향해 바주카를 들어 침착하게 한 발씩 내보냈다.

    ―퍼버벙!

    녀석의 몸에 박혀 터질 때마다 불로 이루어진 신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현재 체력 : 932,993]

    공격받을 때마다 체력이 닳는 것을 보면 무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녀석은 아니다. 음식을 먹고 체력을 회복했던 미식가처럼 ‘욕망’도 제 나름의 회복 조건이 있을 것이다.

    관찰해야 한다. 녀석의 움직임과 상태창, 그리고 공격 패턴까지 전부 자세하게 지켜봐야 한다. 과거의 '나‘들뿐만 아니라 지금의 나도 이 녀석을 소멸시킬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타닥.

    사방으로 날아오는 불덩이를 피하며 공격을 이어갔다. 산책로에 있던 헌터들도 대열을 제대로 갖춘 건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졌다.

    [살육의 욕망이 충족되고 있습니다.]

    [욕망은 이 쾌락에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현재 체력 : 966,984]

    ‘또 회복되고 있어.’

    더 많은 공격이 성공하고 있었지만 녀석의 체력이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퍼버벙!

    “큭……!”

    “으악!”

    “대열 지켜!”

    그때 ‘욕망’이 갑자기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헌터들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산책로 주변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나는 재빨리 방아쇠를 당겨 먼지바람을 몰아냈다.

    “하아아…….”

    새까맣게 탄 사람들의 시체 대신 돔 형태의 방공호가 눈에 들어오자 안도의 한숨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방공호가 사라지자마자 그 안에 있던 최민 헌터가 날아와 녀석의 눈 바로 앞에 푸른 불꽃을 피워냈다.

    ―쾅!

    불과 불이 만나 서로를 태우기 위해 위협적으로 일렁였다. 두 불꽃은 한데 섞이다 이내 여기저기로 튀었다.

    현재 체력 : 967,462]

    녀석의 체력이 미세하게 상승했다. 지금까지의 행동으로만 보면 불을 일으킬 때마다 체력이 회복되는 것 같다.

    ‘그럼 제압 위주의 공격을 해야 하나?'

    ―우우우웅

    방아쇠를 당긴 채로 녀석의 움직임을 살폈다. 파도에 몸이 떠밀리듯 '욕망’은 새하얀 음파를 맞자마자 뒤로 넘어갔다. 갑자기 몸이 뒤집혀 당황한 녀석은 눈을 크게 떴다.

    ―쾅!

    그러자 녀석의 머리 위에서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세빈이가 검을 밑으로 둔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욕망'의 이마에 검을 꽂자마자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니 곧 녀석의 몸 밑에서 다시 나타나며 검을 잡고 가볍게 착지했다.

    [현재 체력 : 925,648]

    합동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다. ‘욕망’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잠시 괴로워했다.

    [욕망이 결핍을 느낍니다.]

    [살육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해 금단 현상을 느낍니다.]

    ―화르륵.

    녀석의 몸이 더욱 거센 불길이 되었다. 여전히 나태하게 엎드려 있었지만, 불씨 몇 개가 산책로 쪽으로 떨어져 나무를 태웠다.

    [현재 체력 : 926,882]

    ‘또?'

    불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체력 창에 이젠 눈이 피로해질 지경이었다. 스킬을 쓸 때마다 회복된다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타이밍이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살육의 욕망이’라는 단어도 마음에 걸렸다.

    ―탕, 탕, 탕.

    눈 앞으로 날아온 불덩이를 허리를 숙여 가볍게 피한 후 소리 탄환으로 반격했다. 새하얀 궤적을 그리며 뻗어간 탄환은 녀석의 손바닥에 박혔다.

    패턴 자체는 단순했다. 반격당하면 불덩이를 내보내는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공격조, 시작하세요!”

    ―파바박

    땅에 있던 헌터들도 대략적인 공격 타이밍을 만들어 스킬을 퍼붓고 곧바로 방어 태세를 갖췄다. 그동안 물 속성 헌터들은 산불 진화 작업을 이어간 덕분에 큰불은 금방 꺼졌다.

    [욕망이 따분함을 느낍니다.]

    [이 정도의 쾌락으론 살육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현재 체력 : 924,611]

    ―화르륵.

    눈앞에 뜬 설명창을 다 읽기도 전에 녀석의 몸에서 불이 폭포처럼 쏟아져 또다시 산책로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현재 체력 : 968,919]

    그러자 녀석의 체력이 또다시 회복되었다. 사람들이 탄식하며 여러 조로 나뉘어 진화 작업을 시작했고 방어계 헌터들은 날아오는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했다. 산 주위에 아파트가 많아서 단지까지 번지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쿵!

    끝없이 뻗어가는 불길 앞에 커다란 음파 벽을 떨어트리자 불길은 그것을 타고 오르다 이내 제자리에서 활활 타기만 했다. 불을 끌 순 없어도 시간을 벌어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지금까지 본 ‘욕망’은 살육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할 때마다 스킬을 쓴다. 그 후에 체력이 회복되는 패턴을 가지고 있고 말이다.

    ‘…설마 욕망이 충족되면 체력이 올라가는 건가?'

    고개를 홱 들어 녀석을 바라보았다. ’욕망‘은 아까보다는 즐거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활활 타오르는 산책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얼굴을 보니 욕망이 충족된 건 맞는 것 같긴 한데, 살육의 욕망이 채워졌다고 하기엔 누가 죽긴 커녕 부상을 입은 사람도 아직 없었다.

    ―까악, 까악.

    그때 까마귀 한 마리가 불길을 피해 날아갔다. 하지만 도망친 게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욕망'의 불길에 휩싸였다.

    [현재 체력 : 925,091]

    그러자 곧바로 녀석의 체력이 올라갔다. 5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일에 모든 의문이 풀렸다.

    ‘살육의 대상이 사람에 한정된 게 아니었어!’

    ―철컥

    나는 자아를 입가로 가져와 크게 소리쳤다.

    “저 몬스터가 스킬을 전혀 못 쓰게 움직임을 봉쇄해 주세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모든 생명체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용]

    ―콰드득.

    내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욕망'의 몸에 여러 형태의 족쇄가 걸렸다. 그림자 손이 끊어낼 것처럼 녀석의 사지를 비틀었고 뒤이어 덩굴 식물과 물줄기 등 온갖 형태의 스킬들이 ‘욕망’을 에워쌌다.

    [욕망이 당황합니다.]

    [현재 체력 : 925,091]

    ―철컥.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자세를 잡은 후 바주카로 바꾼 자아를 들었다.

    ―퍼버벙!

    [현재 체력 : 891,573]

    녀석이 몸을 비틀며 공격을 피하려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내 포탄은 쏘는 족족 녀석의 몸에 박혔고, 동물이나 곤충을 죽이며 회복해 왔던 체력은 순식간에 떨어졌다.

    [욕망이 금단 증상을 겪습니다.]

    [일시적인 쾌락에 빠져 있던 영혼이 피폐해지기 시작합니다.]

    [현재 체력 : 773,850]

    ―우드득.

    녀석이 미친 듯이 몸부림치더니 기어코 자신을 옥죄던 것들을 전부 떨쳐냈다. 너덜거리는 관절 틈으로 불꽃이 피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쿵.

    최민 헌터의 방공호가 녀석의 불꽃을 집어삼켜 아무것도 해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녀석은 자신의 욕망이 원하는 만큼 충족되지 않아 몸을 덜덜 떨었다.

    ―우우웅.

    공격을 퍼부을 타이밍은 지금이다. 방아쇠를 길게 당겨 녀석의 움직임을 다시 봉쇄하자 이번엔 세빈이가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새카만 검이 초승달 모양의 궤적을 그리며 ‘욕망’의 허리를 갈랐고 그 틈으로 온갖 스킬들이 쏟아졌다.

    [현재 체력 : 673,775]

    ‘욕망’이 분노한 듯 몸을 흔들었다. 미처 막지 못한 불덩어리 하나가 산 위로 떨어졌고, 녀석의 체력이 다시 회복되었다.

    “세빈아!”

    “알겠어!”

    세빈이는 내 의도를 눈치채곤 수십 개의 그림자 손으로 녀석의 사지를 움켜쥐었다. 그 어떤 스킬도 쓰지 못하도록 손가락 하나하나에도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타닥.

    녀석의 얼굴 바로 앞으로 달려가자 벙찐 눈과 시선이 맞닿았다. 나는 녀석의 이마에 대고 바주카를 장전했고 그대로 숨을 들이마셨다.

    ―퍼버버벙!!

    공간을 찢는 굉음과 함께 녀석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불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욕망’이 언제 존재했었냐는 듯 녀석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의문을 가질 것도 없이, 녀석은 확실하게 소멸했다.

    ‘곱게 죽지 않은 게 문제지만……!’

    ―쿵, 쿵, 쿵.

    인왕산을 넘어 옆에 있던 아파트 단지로도 불덩이가 날아갔다. 급하게 쉴드를 세워 그것들을 막은 것까진 좋았지만 여기저기서 화재가 발생해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

    “다음 페이즈 시작됩니다. 화재 진화 인원을 제외하고 전부 대열 지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세빈이의 지시를 들으며 하늘에 떠 있는 집을 바라보았다. 욕망의 소멸을 알리기라도 하듯 집을 둘러싸고 있던 불꽃이 완전히 사라졌고 차가운 바람만이 불 뿐이었다.

    ―치지직.

    [욕망과 절제―절제]

    [바람]

    [파괴자의 덕목인 ‘욕망과 절제’ 중 ‘절제’]

    [자신과 동일한 행위를 절제하는 존재들에게만 공격을 허락한다.]

    ‘이제 좀 쉽게 싸워볼 수 있겠군.’

    ‘나’들이 녀석에 대한 정보 수집을 끝냈는지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확인하기도 전에 내게 먼저 알려 주었다. 이 정보를 지금 모두에게 공개하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으니 세빈이와 최민 헌터에게만 귀띔을 해줘야겠다.

    ―탁.

    세빈이 앞에 착지하자마자 세빈이가 기다렸다는 듯 살짝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뭐 좀 알아냈어?”

    “응. 이름은 절제고 그 녀석이랑 똑같은 행위를 절제해야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 같아.”

    “흐음.”

    ―쾅!

    세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위로 올린 동시에 하늘에 떠 있던 집이 폭발했다. 그 속에서 시커먼 폭풍이 튀어나왔고 이내 ‘욕망’처럼 사람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엎드린 채 나태한 모습을 보이던 욕망과 다르게, 절제는 가부좌 자세를 한 채로 나타났다. 불상을 흉내 낸 듯한 모습이었다.

    [절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모든 욕망과 번뇌에서 벗어난 존재입니다.]

    [현재 체력 : 600,000]

    녀석이 천천히 눈을 뜨자 등장을 알리는 문장도 함께 나타났다.

    김강희가 뿌린 발악의 씨앗을 완전히 뿌리 뽑을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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