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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157화 (157/366)
  • 157화

    ―조슈아 체스터 님 외 1명, 확인되셨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스피커를 통해 기계 음성이 흘러나왔다.

    드르륵―

    평범한 벽처럼 보이는 곳에 조슈아가 손을 대자 벽이 미닫이문처럼 옆으로 열리며 넓은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창 앞에 놓인 테이블과 컴퓨터. 그리고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책꽂이까지. 대형 길드의 길드장이 쓰는 집무실다운 공간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식사는 하셨나요? 다과밖에 준비가 안 됐는데, 괜찮으신지요?”

    “밥은 먹고 왔어요.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앉으시죠.”

    조슈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집무실 중앙의 손님용 소파로 나를 이끌었다.

    달그락―

    그는 커피 머신에 캡슐을 하나 넣곤 버튼을 눌렀다. 정말로 느긋하게 티타임을 즐기려는 사람의 태도였다.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걸까.’

    겉으로는 날 스카우트할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가 사도인 이상 단순히 그 목적뿐이라고 기대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어제 연회장에서 봤던 모습을 보아하니, 레일리처럼 그의 힘에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즉, 레일리가 나를 죽일 생각으로 납치했던 것처럼 그 또한 스카우트 그 이상의 목적이 있을 것이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오셨다고 했죠?”

    “네? 아, 네. 뭐, 좀 호기심이 생겼거든요.”

    “아하하! 호기심이라니. 꼭 연구 대상이 된 것 같네요.”

    조슈아가 크게 웃으며 테이블에 있던 쿠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신지의 헌터가 저의 어떤 점에서 흥미를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동료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당연히 알려줄 수 있죠.”

    그가 부스러기가 묻은 손을 티슈로 닦으며 말을 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나고 자랐어요. 할리우드 쪽에서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큰 철부지 외동아들이었죠.”

    “각성은 언제 하신 거예요?”

    “스물두 살이었나? 한창 파트타임으로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을 때쯤이었어요.”

    조슈아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술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근처 바닷가로 놀러 나갔다가 게이트 폭발에 휘말렸지만 때마침 각성해 몬스터를 해치우고 친구들을 구했다고 한다. 그 후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본격적으로 길드 사업에 뛰어들었고, 전 세계 S급들을 모았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너 계속 리액션만 할 셈이야?’

    ‘기다려 봐. 나도 지금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머리 아파 죽겠으니까.’

    조슈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자아의 투덜거림에 대충 대꾸했다.

    그가 갖고 있는 창조자의 파편은 표리부동한 연기자, 즉 그가 했던 모든 말들이 전부 가짜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야, 지의야.’

    ‘왜.’

    ‘지금 쟤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뜯어 자세하게 물어보자.’

    그때 자아가 진동까지 하며 내 주의를 끌었다.

    ‘계속 질문하다 보면 분명 실수가 나올 거야. 그럼 걔가 너한테도 성질내지 않을까?’

    ‘흠…….’

    듣고 보니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조슈아 입장에선 조금 짜증나긴 하겠지만, 오히려 그의 신경을 건드려서 가면을 벗게 만들면 창조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쉬워질 것이다.

    달그락―

    내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대의를 위한 마음가짐에 부모님께서도 조슈아를 자랑스러워하시겠네요.”

    “아하하,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당연히 자랑스러워하시겠죠. 아, 연락은 계속 하고 지내시나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당황]

    “네? 아, 당연하죠. 제 일과 중 하나거든요.”

    조슈아가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상태창을 통해 보는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친구들은요? 저였으면 제 목숨을 구해준 친구한테 정말 평생 고마워했을 텐데.”

    “좀 과할 정도로 고마워하더라고요. 지금 저 식물들도 걔네들이 보내준 거예요.”

    “아, 정말요? 집무실 분위기랑 잘 어울리네요. 친구분께서 인테리어 관련 직종자이신가 봐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성가심]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꼬리 질문에 그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다.

    가족과 있었던 일, 친구의 직업, 어린 시절의 추억. 영양가 없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그는 매번 동요했고 인내심도 서서히 바닥나기 시작하는 듯했다.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강한 불쾌함]

    그리고 그의 감정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유독 크게 요동쳤다.

    ‘슬슬 미끼를 던져볼까.’

    나는 목을 가다듬은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대단하시네요. 그랜드 캐니언에서 친구를 구하다 각성하시다니. 엄청 위험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꺼냈다. 은근한 미소를 입가에 띤 채로 말을 걸자 묘하게 지친 기색의 조슈아도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뭐, 아시다시피 그랜드 캐니언이 엄청 험준하잖아요. 몬스터보다도 친구들과 관광객들이 밑으로 떨어질까 봐 두렵더라고요.”

    ‘됐다.’

    조슈아가 내 미끼를 덥석 물었다. 단순히 수긍한 것이 아니라 이 거짓에 살을 붙여버린 것이다.

    쉴 틈 없이 질문의 꼬리를 물던 내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하자 무언가 깨달은 듯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어, 그러고 보니 아까는 바닷가에서 놀다가 각성하셨다고 말한 것 같기도 하네요.”

    “…신지의 헌터?”

    “어떤 게 진짜예요?”

    쾅!!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끈한 열기가 얼굴 위로 훅 끼쳤다.

    열기가 채 닿기 전, 소파에서 공중으로 뛰어오르자 그 뒤를 이어 잭나이프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끼기긱―

    자아의 방아쇠를 당겨 만든 실드에 나이프가 박혔다. 나는 조슈아를 향해 실드를 통째로 던진 후 다시 바닥 위로 착지했다.

    쿵―

    조슈아는 제게 향하는 실드를 나이프의 손잡이로 쳐냈다. 그 힘에 실드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실드가 사라짐과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약하게 진동했고, 사무용 테이블 위에 있던 연필꽂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날 선 목소리와 기묘한 억양이 귀에 꽂혔다.

    “아까부터 꼬치꼬치 캐묻기나 하고. 짜증나게 진짜…….”

    조슈아는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항상 사람 좋은 웃음을 띠우고 있던 그의 얼굴이 누군가를 향한 혐오와 살의로 뒤덮여 있었다.

    “앗.”

    하지만 곧 그는 어깨를 흠칫 떨며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엉망이 된 집무실과 나를 번갈아 보다, 이내 자신의 무기를 다시 반지 형태로 되돌렸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엄청난 결례를 범했네요.”

    그는 그렇게 말하곤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나를 향해 살의를 드러냈던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음, 어디 나가서 차라도 한 잔…….”

    “다 알고 왔으니까 굳이 연기할 필요 없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네가 사도인 것도, 창조자랑 거래해서 연기력을 얻은 것도 다 알고 있다고.”

    [발언 결과 : 분노]

    호선을 그렸던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억지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모습이다.

    “신지의 헌터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

    “창조자, 사도……?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신지의 헌터가 저희 길드에 도움을 요청한다면 저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잠깐 동요하는 듯했던 그가 다시 번지르르한 말을 쏟아냈다. 벽에 대고 말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더 공격적으로 나와야 하나.’

    조슈아가 연기로 무마하지 못할 정도로 날 것의 감정을 꺼내야 한다.

    “창조자한테 받은 그 연기 능력으로 이런 파괴적인 본성을 숨겨온 거야?”

    “신지의 헌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군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 주세요.”

    “이제 그 연기 능력도 슬슬 끝나가는 것 같은데, 그럼 곧 모두가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

    끼기긱!!

    “큿……!”

    “X발 뚫린 입이라고 아무렇게나 말을 하네.”

    조슈아가 빠르게 내게 달려왔다. 곧 이어 그의 잭나이프와 배트 형태의 자아가 맞닿아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탱그랑!

    잭나이프와 배트가 동시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조슈아의 주먹이 내 얼굴에 꽂히기 직전 몸을 뒤로 빼 그의 공격을 피했다.

    나는 그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 그 순간, 그의 복부를 발로 차내려 했지만 조슈아의 방어가 한발 빨랐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배를 팔로 막았다.

    “처음엔 네가 어떤 인간인가 궁금했거든? 근데 이젠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됐어.”

    쾅!!

    조슈아의 잭나이프와 나의 실드가 다시금 맞부딪혔다. 실드에 제법 굵직한 금이 생겼다.

    “네 정체가 뭐든 간에 일단 여기서 널 죽일 거니까.”

    ‘일단 제압하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깡!!

    실드로 그를 밀어내고 곧바로 확성기 형태의 자아를 꺼냈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부탁해!’

    ‘오케이.’

    자아에게 말한 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자.

    똑똑똑―

    어디에선가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조준을 위해 굽혔던 몸을 세웠다.

    ‘뭐지?’

    놀란 것은 조슈아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는 눈을 크게 뜬 채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스킬을 쓰려다 관둔 건지 그의 손 주변으로 시커먼 연기가 흩어지고 있었다.

    똑똑똑―

    또다시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사무용 테이블과 마주보는 벽에 있던 책장께였다.

    “아빠……?”

    “뭐?”

    “헉……!”

    그때였다. 갑자기 책장에서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탱그랑―!

    조슈아는 내게 나이프를 던진 뒤 책장 쪽으로 달려갔다. 그동안 난 실드로 조슈아가 던진 나이프들을 튕겨냈다.

    ‘방금 분명 아빠라고 했는데……!’

    바닥에 떨어진 조슈아의 나이프를 발로 치우며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드르르륵―

    조슈아가 책장 안으로 깊숙하게 손을 집어넣자 책장이 문처럼 옆으로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그리고 그 안엔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유치원에나 있을 법한 파스텔 색의 매트와 벽, 한편에 가지런히 정리된 장난감 상자까지. 한눈에 보아도 어린 아이의 방 같은 공간에 지유보다도 어려 보이는 남자 아이가 서있었다.

    “아빠, 거, 거기 있는 거 맞죠?”

    ‘눈이 안 보이는 건가?’

    지금 보니 아이의 눈동자가 불투명한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아이는 잔뜩 겁에 질린 채 책장으로 된 문 바로 앞에 서있었다. 몸을 떨 때마다 곱슬거리는 금색 머리카락도 같이 흔들렸다.

    “응. 여기 있어. 많이 놀랐니?”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무서웠어요.”

    조슈아는 허리를 숙여 아이의 몸을 안아 든 후 아이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물건을 옮기느라 그랬어. 미리 얘기해 줬어야 하는데 까먹었네.”

    “깜짝 놀랐어요…….”

    “아빠가 미안해.”

    조슈아가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다정한 말로 아이를 달랬다. 상상도 못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넋 놓고 그를 바라보자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곤 검지를 제 입술 앞에 가져다 댔다.

    “이따가 얘기해.”

    그가 작은 소리로 내게 말한 후 아이의 방으로 몸을 틀었다.

    ‘이 인간의 파편을 부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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