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156화 (156/366)
  • 156화

    “공략팀 바로 들어가 주세요. 치료팀은 부상자 살피고, 방어팀은 게이트 전방 대기 부탁드립니다!”

    “네!”

    “구조팀은 이동 가능한 사람들부터 먼저 건물 밖으로 내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연회장에 모인 사람의 수는 아까보다 훨씬 늘었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욱 정돈된 것처럼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상급 스킬을 가진 치유계 헌터가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무기를 든 헌터들이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리고 그 현장의 한가운데 조슈아가 당당히 서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푸른 눈동자는 자신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신지의 헌터.”

    “네, 오랜만이네요.”

    그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

    갑작스러운 만남이 얼떨떨해 어색하게 인사를 받자 그가 피식 웃으며 다시 주위를 살폈다.

    “A급, A급 게이트 오픈 경보입니다. 미 연방 던전 관리법에 따라 이 던전은 불릿 길드가 클리어 및 사후 관리 책임을 갖습니다. 여러분들은 헌터들의 안내에 따라 신속히 대피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알립니다.”

    그때 다부진 체격의 여자가 확성기를 들고 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불릿이야?”

    “하아, 다행이다…….”

    “불릿이라면 안심할 만하지. 여기가 텍사스라 다행이네.”

    그 말에 대피하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한껏 차분해졌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불릿 길드는 미국 내에서도 믿을 만한 대형 길드 중 하나인 것 같다.

    “아―우!”

    콰과광―

    바뀐 환경에도 녹두는 아랑곳하지 않고 게이트 밖으로 나온 몬스터들을 새하얀 빛기둥과 함께 날려버렸다. 불릿 길드 소속의 헌터들은 녹두를 슬쩍 본 후 소환수인 걸 알아챘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다.

    “학회에 참석하신다고 해서 안 그래도 만나 뵈러 가려고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요.”

    “저도요. 저도 조슈아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거든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의문]

    내 말에 조슈아의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한 눈치였다.

    “마음 같아선 지금 바로 길드로 모셔서 차라도 한잔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여기를 정리해야 해서 말이죠.”

    그는 다시 자신의 표정을 정리한 후 게이트 쪽으로 턱짓했다.

    “내일 오전 중으로 얼추 정리가 될 것 같으니 오후에 연락 주세요. 저희 쪽에서 차를 보내드릴게요. 아, 제가 드린 명함 갖고 계신가요?”

    “그럼요.”

    “아하하, 영광이네요.”

    조슈아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일단 여기는 불릿한테 맡기자.’

    아자디바르 남매랑 미래 씨가 제대로 대피했는지 걱정되기도 하고.

    “녹두야! 이리와!”

    “아우―!”

    녹두는 통닭들의 공격을 뒤로 굴러 피한 후 내 옆으로 달려왔다. 연둣빛 궤적이 녹두를 따라 생겨났다.

    “수고했어. 들어가서 쉬어.”

    ‘응!’

    툭―

    녹두가 내 코에 자신의 입을 툭 대곤 그대로 팔찌 안으로 들어갔다. 그 깜찍한 행동 덕에 코가 묘하게 촉촉해졌다. 그리고 그 광경을 모두 본 것인지 조슈아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럼… 내일 연락드릴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머쓱해진 채로 조슈아에게 인사하자 그가 고개를 숙인 후 곧바로 게이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금이다.’

    그가 완전히 내게서 등을 돌렸을 때 난 오른쪽 눈을 감아 ‘구원자의 왼쪽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

    [불 속성]

    [고유 스킬 S등급]

    [S급 공격계 스킬 ‘분노의 용암(Magma Fury)’ : 정해진 공간에 용암을 생성한다.]

    [연계 패시브 스킬 ‘화염 돌격(Flare Rush)’ : 활성화 시 움직임을 따라 불길이 솟는다.]

    [C급 치유계 스킬 ‘죽거나 타거나(Dead or Burnt)’ : 불꽃으로 외상을 치유한다.]

    [귀속 무기 : S급 이도 ‘광대의 칼(Clown's Knife)’, 사용자의 능력을 증폭시킨다.]

    [무기 비문 : 거짓말쟁이의 운명을 타고 났구나.]

    이건 창조자 눈동자 통해서 이미 본 내용이고, 지옥도가 열릴 때마다 실종됐다는 사실도 회귀자의 눈동자로 봤던 기억이 있다.

    난 빠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려 내가 아직 본 적 없는 문장을 살폈다.

    [‘카르마 : 표리부동한 연기자’ : 절대자 ‘창조자’가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에게 씌운 표리부동한 연기자의 업. 단, 연기에 의존할수록 억눌린 본성이 빠르게 폭주한다.]

    [진실을 고백하는 자 : 진실을 고백하라. 잠깐의 고통은 너희들을 더욱 단단하게 할 테니.(미달성)]

    [*표리부동한 연기자의 업 청산*]

    감은 왼쪽 눈을 다시 뜨고 출구 쪽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조슈아가 받은 창조자의 힘도 분명 영향을 받았을 텐데 말이지.’

    시나리오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 레일리는 시나리오가 맞지 않자 가장 먼저 나를 죽이려 했다. 그렇다면 조슈아의 본성도 빠르게 폭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길드장님, 주 정부에는 연락해두었습니다.”

    “고마워요, 리즈. 학회 참석자 중 사상자는 없나요?”

    “없습니다. 타박상, 골절 등의 부상을 입은 참석자는 저희 쪽에서 치료 후 병원으로 이송시켰습니다.”

    조슈아는 아까 확성기로 대피 안내를 한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친절하고 사려 깊은 말투. 내가 알고 있는 조슈아의 모습이었다.

    쿠구궁―

    “우왓?!”

    그때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연달아 튀어나왔다. 그에 게이트 바로 앞에 있던 헌터 한 명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곤 그대로 튕겨져 나와 조슈아와 부딪혔다. 그 예상치 못한 충돌에 조슈아도 뒤로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옆에 있던 여자가 그를 잡아준 덕분에 넘어지진 않았다.

    “죄송해요, 길드장님! 다치신 곳은 없…….”

    “이런 씨…….”

    ‘어?’

    튕겨져 나온 헌터가 사과를 하기 무섭게 조슈아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러자 그와 부딪힌 헌터도 당황한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제 길드장을 바라보았다.

    “아……!”

    미묘한 기류가 흐르려던 순간, 조슈아가 화들짝 놀라며 제 입을 틀어막더니 곧장 얼굴을 바꾸었다.

    “괜찮으시죠? 머레이 헌터의 방어계 스킬이 단단한 건 알지만 그렇게 게이트 앞에 있으면 위험한 일이 생길 거예요.”

    “네? 네, 네…….”

    조슈아가 울 것처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머레이라고 불린 헌터는 멋쩍은 듯 웃으며 다시 전투를 하러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저게 본성인 것 같지?’

    ‘응. 그런 것 같아.’

    자아의 말에 대답해 주며 일단 연회장 밖으로 나왔다. 한바탕 엉망이 된 복도를 지나는 동안 방금 전 조슈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잔뜩 짜증이 난 얼굴과 욕을 뱉기 직전이던 입술. 그 모습이 창조자의 힘을 빌려 겨우 숨겨온 조슈아의 본 모습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업과 달리 사명은 진실을 고백하는 자였지.’

    조슈아는 표리부동한 연기자의 업과 진실을 고백하는 사명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 두 가지의 조합을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의 존재 자체가 모순 덩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닥―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컨벤션 홀 자체를 빠져나오자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이 길바닥에 주저앉은 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신지의 헌터님!”

    “미나! 무하!”

    “다치신 곳 없으세요?”

    “괜찮으신 거죠?”

    그때 미나와 무하가 동시에 내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양복 재킷에 먼지가 조금 붙었을 뿐 다친 곳은 없었다.

    “괜찮냐?”

    “네. 미래 씨도 다친 곳 없죠?”

    “없어. 안에는 불릿 놈들이 해결 중이냐?”

    “네. 방금 공략팀 들어갔고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몬스터도 잡는 중이에요.”

    미래 씨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일단 호텔로 돌아가자. 학회 놈들이 이후 일정을 알아서 안내해 줄 거다.”

    “네에…….”

    “그래도 발표하고 나서 터졌으니 다행으로 생각해.”

    “네, 소장님…….”

    나는 잔뜩 풀이 죽은 아자디바르 남매와 함께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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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룻밤 사이에 학회에서 벌어진 일들로 인터넷 뉴스가 시끄러웠다.

    액체형 배리어의 실용화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기사부터 내가 아자디바르 남매를 미래 씨에게 소개해 줬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도 몇몇 보였다.

    미래 씨와 남매는 이곳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연구에 관심을 보인 기업 몇 군데를 만나볼 거라고 했다.

    “나도 내가 할 일을 해야지.”

    나는 벤치에 기댄 채 눈앞의 고층 건물을 바라보았다.

    [Guild Bullet]

    커다란 글자가 건물의 외벽에 붙어 있었다. 얼핏 보이는 길드 내부는 대형 길드답게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사락―

    인벤토리에서 조슈아의 명함과 핸드폰을 꺼냈다. 명함 속에 적힌 그의 핸드폰 번호를 입력한 나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 뚜르르―

    ―체스터입니다.

    통화 연결 음이 세 번이 채 울리기도 전에 조슈아의 목소리가 수화구를 타고 전해졌다.

    “안녕하세요, 조슈아. 신지의입니다.”

    ―아하하! 정말로 연락을 주셨군요~

    그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던전은 잘 클리어하셨나요?”

    ―네. 오늘 새벽 네 시쯤에 클리어했죠. 덕분에 신지의 헌터와 느긋하게 이야기할 틈도 생겼고요.

    “다행이네요. 혹시 지금 바로 만날 수 있을까요?”

    ―기다리던 대답이었습니다. 지금 바로 차를 보내죠. 어느 호텔에 묵고 계신가요?

    “아, 호텔로 오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지금 불릿 길드 건물 앞이거든요.”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조슈아 체스터’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당황]

    내가 적극적으로 나와서 그런가, 어제만 해도 내 행동에 의문을 갖던 그가 이젠 당황했다.

    짧은 정적도 잠시. 그는 낮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일부러 이쪽으로 와주시다니 영광이네요. 돌아가시는 길은 꼭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건물 로비로 들어갈게요.”

    ―네.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뚝.

    조슈아와의 통화를 끊자마자 명함과 핸드폰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불릿 길드의 건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떻게 오셨을……. 어?”

    “조슈아 길드장과 만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시, 신지의 헌터님 맞으시죠?”

    건물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내 이름을 입 밖으로 내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적당히 소란스럽던 로비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신지의 헌터!”

    그 적막감이 불편해질 때쯤, 조슈아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로비 구석에서 튀어나온 그는 활짝 웃는 얼굴로 입구로 걸어왔다.

    “뭐야……? SS급 우리 길드 와?”

    “오우. 상상도 못했는걸.”

    “근데 왜 이제야? 한국 헌터 협회랑 싸웠나?”

    이 정도 헛소문이 도는 건 예상했다. 저 루머가 혹시라도 퍼지게 되더라도 세빈이에게 조슈아를 만날 거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으니 큰 오해를 사진 않겠지.

    “자, 신지의 헌터. 제 사무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그가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입구의 잠금을 풀어주며 내게 손짓했다. 그의 안내를 따라 어려움 없이 입구를 그대로 통과해 그 뒤를 따랐다.

    “연락을 기대하긴 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와주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하하, 그런가요?”

    “그럼요. 제 스카우트 제의를 칼같이 거절하셨잖아요.”

    조슈아는 피식 웃으며 로비 구석으로 발을 돌리곤, 검은색 엘리베이터들 사이 유일한 빨간색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어떤 이유로 저랑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시는 건지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실 수 있나요?”

    “그냥 뭐, 조슈아가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져서요.”

    “면접 보는 기분이네요. 좋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전부 말씀드리죠.”

    띵―

    나와 조슈아를 태울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여기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서 어떻게든 파편을 부수도록 해야 해.’

    그렇게 사람 둘과 은은한 긴장감이 함께 탑승한 엘리베이터는 건물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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